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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서대장
하나님 주신 능력 받아 큰일을 감당하라 삿 6:11-24
오늘 주신 말씀 삿6:11-24 말씀을 통해 [하나님 주신 능력 받아 큰일을 감당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앞문장인 1-10절은 기드온이 부르심을 받기 전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에 대해 설명한 후 본문은 미디안의 압제로 인하여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므낫세 지파의 기드온을 사사로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보잘 것 없는 집안의 가장 작은 자였으며 심성적으로 담대하지 못했던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건질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이 하나님의 명령임을 의심하는 기드온에게 표징을 보여주심으로써 그 말씀의 전달자가 하나님의 사자이며, 또한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담대하여 자기 스스로를 의지하는 자보다는 연약하고 두려움이 많아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자들을 들어 쓰시기를 즐겨하시며 ,또한 의지할 수 있는 믿음조차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말씀입니다.
첫째로 하나님만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십니다. (11-12)
둘째로 하나님은 사명을 주실 때 능력도 함께 주십니다.(14-16)
셋째로 성도의 헌신과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큰 일을 하십니다.(19-24)
이러한 본문 말씀을 따라가며 하나님 주시는 세 가지 멧세지를 선포합니다.
첫째로 하나님만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십니다. (11-12)
11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가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게 이르렀을 때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추수한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기드온이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미디안 사람들을 심히 두려워하는 나약한 성품의 소유자요,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음을 분명히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기드온을 부르셨을까요?
기드온이 이렇게 나약한 사람이었기에 더욱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기드온이 이스라엘을 구원한 후에도 기드온 자신의 힘과 용맹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인간적으로 강한 자, 혹은 능한 자를 사용하시기 보다는 오히려 약하고 무능한 자를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강하고 능한 것보다 오히려 약하고 무능한 것이 더욱 강한 것이요 또한 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출애굽한 지도자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떼를 치며 하늘의 별을 보고 이제 인생을 갈무리 하려 할 때 부르셨고, 다윗은 그 아비 이새가 사무엘에게 소개도 하지 않는 보잘 것 없는 막내 양치기 소년이었을 때 부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으로 강하고 능한 자들보다 약하고 무능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신실한 자들을 택하여 강하게 하시고 능하게 하셔서 크게 사용하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인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약함과 무능함을 인정하고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 되기 원합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는 기드온을 큰 용사라 부릅니다.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는 기드온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씀입니다.
큰 용사는 커녕 겁쟁이, 혹은 비겁자라는 호칭이 더욱 어울리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큰 용사라 부르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큰 용사가 되게 하시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타고난 운명이나 인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하찮은 사람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존귀케 하시면 존귀케 되고 , 아무리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고 많은 재능을 가진 성실한 사람일지다로 하나님께서 하찮게 하시면 하찮은 존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형들에게 미움 받아 애굽에 종으로 팔려간 요셉은 그곳에서도 모함으로 옥에 갇히는 죄수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므로 그가 하는 일들이 형통하므로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어 70명의 야곱의 가문이 200만 이스라엘 민족으로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느브갓네살은 대제국 바벨론 왕으로서 그 누구보다 높은 지위와 권세를 지닌 귀한 존재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낮추시니 그가 사람에게 쫓겨나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풀을 먹는 참으로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욥5:11“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애곡하는 자를 일으켜 구원에 이르게 하시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듯 인생을 높이고 낮추는 일은 하나님께 속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진정으로 존귀한 자 되기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께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며 귀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한 자가 되게 하시고 큰 용사 삼아 주실 때 존귀한 큰 용사가 될 줄 믿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사명을 주실 때 능력도 함께 주십니다.(14-16)
1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하십니다.
이 말은 기드온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서 [네 힘]이란 기드온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며 그에게 공급해 주시는 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일꾼을 부르셔서 사명을 주실 때 단지 사명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명과 함께 그 사명을 이룰 수 있는 능력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군을 부르실 때 사명만 주시는 폭군이 아닙니다.
일방 통행식 스파르타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군을 부르시고 사명을 주실 때 반드시 그 사명을 이룰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주십니다.
그리하여 아무리 나약한 자일지라도 그 사명을 반드시 이룰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사명을 감당할 줄 믿습니다.
모세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라고 사명만 주시고 능력을 주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기 전에 그는 바로에게 감옥에 갇혀 목 베임을 받고 말았을 것입니다.
모세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뿐만 아니라 그 사명을 능히 이룰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주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소질이나 능력 그리고 지혜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그 사명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셨다면 , 그 사명과 함께 그 사명을 이룰 수 있는 능력과 지혜도 주셨음을 믿고 담대하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 그 사명을 이루어 가야만하겠습니다.
이곳 인후동 아중 지역에 온 교회를 세워주셨다면 이 지역사회와 전주시 성시화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을 주신 줄 믿습니다.
목회자에게만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에 능력을 주십니다. 교회사를 볼 때 목사가 큰일을 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의 큰 사명은 평신도들에 감당했습니다.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은 집사였습니다. 최초의 전도자 빌립도 평신도였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대부분은 평신도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조만식. 이승만, 김구, 김할란.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장로 모두 평신도들이 큰일을 감당한 것입니다.
아론이 큰일을 감당한 것이 아니라 아론의 아들들이 큰일을 감당한 것이 아니라 평신도 지도자들이 큰일을 감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침체되고 잘못되는 교회들은 평신도들은 관중석에 앉아 있고 목회자들이 선수가 되어 뛰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 성도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구경하고 고함칠테니 교회에서 돈 받는 목회자들이 뛰어라.”
이런 교회는 침체되고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엡3: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본분을 온전히 감당할 때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을 100% 발휘할 때 교회는 하나되고 성장하고 풍성한 가운데 성령 충만함으로 부흥할 줄 믿습니다.
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합니다.
이 말은 겁 많고 연약한 사람에 불과했던 기드온에게 있어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미디안 사람에게 곡식을 빼앗길 것이 두려워서 타작마당을 두고도 도둑고양이처럼 포도주 틀에서 조심조심 타작을 하고 있는 기드온이 어찌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이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처럼 기드온에게 그 일을 행할 수 있도록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며 그를 도우실 것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여호수아는 칼 한번 휘드르지 않고 단지 여리고를 칠일동안 13바퀴를 돌므로 정복했고 , 다윗은 물맷돌 하나로 블레셋 거인장군 골리앗을 쓰러뜨렸으며 다니엘의 세 친구는 용광로 속에서도 눈썹 하나상하지 않았으며, 다니엘은 살아있는 사자를 침대삼고 하룻밤을 푹 자고 나왔으며 , 베드로는 물위를 걸었습니다. 이것은 조작된 설화나 신화가 아닙니다.
로마교에 의해 조작되거나 왜곡된 하늘 어머니 어쩌구 저쩌구 하는 말이 아닙니다. 교황이 하나님의 대리자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과 다릅니다.
우리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며 , 지금도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바울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의 인간적인 판단과 계산으로 제한하려 해선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길 구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묵묵히 이루어나가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 주신 사명이 도저히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일지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담대히 이루어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반드시 그 사명을 이루게 하셔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분명히 나타내시고 분명히 큰 영광 받으실 줄 믿습니다.
셋째로 성도의 헌신과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큰일을 하십니다.(19-24)
19절부터 21절은 기드온이 드린 제물을 반석위에 올려놓게 한 후 반석에서 나온 불로 사름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사자이며, 자신이 전한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분명하게 나타냈습니다. 기드온이 요구한 표징을 나타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내준 이같은 표징이 기드온이 최선을 다하여 바친 예물과 또 그 예물을 반석 위에 쏟는 철저한 순종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좌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미디안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고 수탈당한 그 때 기드온이 바친 염소 한 마리와 고운가루 한 에바 그리고 고기 국물은 적은 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기드온이 바친 최대한의 정성을 다한 헌신의 예물이었습니다.
이와같은 예물을 먹지 않고 반석위에 쏟으라는 사자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 먹을 음식도 없어 처자식이 아우성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포도주 틀에서 조심조심 타작하고 있던 어렵고 곤궁한 처지의 기드온이 자기 식구들이 몇 일은 먹기 족한 이런 음식을 바위에 쏟아 붓는 것이 쉽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쉽게 결정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기드온이 드릴 수 있었던 최대한의 예물을 드리고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에 말없이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그의 헌신과 순종을 통하여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이 성도의 순종과 헌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순종과 헌신 없이 이적과 역사를 일으키지 못해서가 아니라 ,성도의 헌신과 순종을 기뻐하시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서 하나님께 헌신하며 순종하는 성도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영광에 동참하게 하시려 한다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이 잘 말해줍니다.
막6:30-44에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 묻습니다.
무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예수님께서 재료가 없으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먹일 음식을 만들지 못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이 가진 양식 전부를 바치게 함으로써 헌신과 순종을 통하여 예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역사와 그로 인한 영광에 참여하고 동참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극진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작은 헌신과 순종을 요구하시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을 바로 깨닫고 최선을 다해 헌신하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빌2:30“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우리가 이렇게 전심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며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비록 우리의 헌신과 순종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룸에 있어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는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그 작은 헌신과 순종을 인하여 한 없이 기뻐하심을 물론 그것을 통하여 놀라운 역사를 이루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지극히 큰 영광과 기쁨에 동참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24절을 보면 기드온은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그 단의 이름을 ‘여호와살롬’ 곧 여호와는 평강이시다 합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대면하여 본 일로 인하여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기드온에게 “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말씀해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얼마나 큰 두려움을 느꼈는지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로서 짐작할 수 조차 없는 너무 큰 두려움이었습니다.
그 두려움을 “안심하라”는 한마디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두려움에서 한없는 큰 기쁨과 평안에게로 나아가는 감격적인 경험을 하였으며, 그 감격을 인하여 이처럼 단을 쌓지 않을 수가 없었던 큰 위로와 평안이 되었습니다. 안심하라는 이 한마디가 기드온이 당면하고 있었던 죽음의 문제를 능히 해결할 수 있으신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기드온에게 참 평안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에게 진정한 평안을 주실 수 있는 분은 누구입니까?
그분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뿐인 줄 믿습니다.
성자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 외에는 그 누구도 우리를 죄의 문제, 사망의 문제에서 건져내어 참된 평안 가운데로 들어가게 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평강을 원한다면 오직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까운 인생 낭비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를 찾음으로 참 평안을 누리기 원합니다.
결론
기드온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큰 용사가 된 것은 기드온이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주께서 먼저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과 일꾼으로 세워주신 줄 믿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주신 능력 받아 큰일을 감당하라는 제목으로 세 가지 멧세지를 선포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만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십니다. (11-12)
둘째로 하나님은 사명을 주실 때 능력도 함께 주십니다.(14-16)
셋째로 성도의 헌신과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큰일을 하십니다.(19-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선택하여 그의 백성이 되었고 , 우리의 행실로 복 받을 짓을 해서 구원 받은게 아니라 오직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대속 받았을 뿐임을 고백하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가 되기 원합니다.
이 길만이 우리를 부르사 값없이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며,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더욱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리는 비결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택하여 가치를 결정하고 사명을 주시며 사명을 감당할 만한 능력도 주시고 작은 헌신과 순종을 하는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시며 크고 놀라운 영광에 참여하도록 인도하심을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