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0년 된 배롱나무에 올해도 어김 없이 붉은 꽃이 피었다. 한 가문의 시조 선산에 뿌리를 내린 덕분일까? 도심에 있으면서도 거센 개발의 바람을 피해 여전히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정대현·김경현 기자 jhyun@
무더운 여름, 100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운다. 그래서 '백일홍나무', '목백일홍'이라고도 부른다. 제대로 된 우리말 이름은 '배롱나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롱나무이자 천연기념물(168호) 나무가 부산에 있다. 부산진구 동평로 화지공원에 있는 '부산진 배롱나무'다. 수령이 무려 800년이나 된 것으로 추정된다. 배롱나무 중에선 국내 최고령 정씨 문중서 자손 번영 위해 심어 화지산은 풍수지리상 손꼽히는 명당 시민공원 연계한 나들이 코스 적합
■800년 고목이 피워낸 붉은 열정
배롱나무 꽃이 100일을 가는 것은 가지 끝마다 원뿔 모양의 꽃봉오리가 반복해서 피고 지기 때문이다.
도종환 시인의 시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올려/ 목백일홍 나무는 환한 것이다.'(시 '목백일홍' 중에서)
양정동 화지공원 배롱나무. 정대현 기자 jhyun@
이성근 부산그린트러스트 사무처장은 "배롱나무가 우리나라 문헌에 처음 기록된 것이 고려 때인 1254년 최자의 '보한집'인데, 이 나무의 수령도 그 때쯤으로 보는 것이 설득력 있다"며 "800년 된 배롱나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부산의 복"이라고 말했다.
배롱나무는 화지공원 입구에서 5~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두 그루의 나무는 고려 중엽 동래 정씨 2세조인 정문도 공의 묘지 양쪽에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묘지목이 자라 노거수(수령 100년 이상의 크고 오래된 나무)가 된 경우다.
배롱나무는 햇볕을 좋아해 외따로 자라는 경우가 많다. 건조하고 물빠짐이 좋은 곳이 생육에 적합하다. 그런 면에서 "묘지 좌우로 우뚝 솟은 지금의 자리가 딱"이라는 게 이 처장의 설명이다.
그는 또 "부챗살처럼 펴진 가지가 지금처럼 둥근 수형을 갖게 된 것은 사람의 손길에 다듬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일부 가지에서 흰가루병과 그을음병이 보이고 있어 빠른 조치가 필요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도심 속 숨은 명소, 화지공원
한여름인 7월부터 9월까지 꽃을 피우기 때문에 배롱나무 꽃을 보려면 땀깨나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다행히 '부산진 배롱나무'는 숲이 울창한 공원 내에 있어 가는 길에 어느 정도 그늘을 만날 수 있다.
동래 정씨 시조 선산을 중심으로 공원 산책로도 잘 가꿔져 있다. 편백나무가 많아 삼림욕을 즐기기에도 좋다. 이미 인근 주민들에게는 친숙한 휴식처이자 운동 코스다.
양정동 화지공원 배롱나무. 정대현 기자 jhyun@
사계절 아름답지만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배롱나무 꽃을 볼 수 있어 특별하다. 주차비를 따로 받지 않는 데다 주차장 면적도 비교적 넓은 편이라 가족 나들이, 데이트 코스로도 입소문이 나있다.
특히 이곳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백두대간의 끝자락인 "금정산 정기가 이곳으로 내려와 맥을 퍼부었다"는 게 정인호 동래 정씨 대종중 감사의 설명이다.
정 감사는 "풍수지리 대가들이 극찬한 명산 중의 하나가 바로 이곳 화지산"이라며 "영리한 후손이 태어나기를 염원하며 심었다는 배롱나무 덕분인지 가문이 지금까지 평안하고 화목하다"고 말했다.
화지공원에서 인근 부산시민공원까지는 에코브리지(생태통로)로 연결돼 있다.
여호근 동의대 호텔컨벤션경영학과 교수는 "에코브리지를 통해 야생동물은 물론 사람도 도로를 건너지 않고 두 공원을 오갈 수 있다"며 "배롱나무와 시민공원을 연계하면 좋은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린이를 위한 생태 편지 꽃꽂이용 백일홍 꽃과는 달라 배롱나무는 우리나라 어느 지역이든 따뜻한 곳이면 만날 수 있는 나무예요. 고향은 중국 남부입니다. 꽃이 백일 동안 핀다고 '백일홍 나무'라고도 부르지만, 꽃꽂이 할 때 흔히 쓰는 백일홍 꽃과는 전혀 다른 식물이랍니다. 배롱나무의 꽃잎은 예닐곱 장인데 주름이 잡혀있는 것이 특징이에요. 전남 담양의 소쇄원과 명옥헌,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도 지금 가면 붉은 배롱나무 꽃이 피었겠네요. 줄기는 얇은 조각이 떨어지면서 얼룩 무늬를 나타내는데, 표면이 아주 매끄럽게 보인답니다. 간지럼을 잘 탈 것 같아 '간지럼 나무'라고도 부른대요. 배롱나무는 전통 가옥과 정자, 서원의 정원에서 자주 볼 수 있어요. 한결같이 꽃을 피우는 모습이 충절과 절개를 굽히지 않는 선비와 같다고 해 선비들이 좋아하는 나무랍니다. 또 절에서는 배롱나무 줄기처럼 스님들이 속세의 때를 벗고 수도에 정진하라는 의미로 많이 심었대요. 요즘은 가로수로도 인기가 많아요. 김동필·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주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