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417
천자문037
동봉
0133흰 백白
가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가마귀 흰 빛을 새오나니
청강에 됴이 씻은 몸을
더러일까 하노라
흰 백白자는 간단합니다
그냥 위로 퍼지丿는 햇살日입니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빛깔입니다
둥글게 눈부시게 퍼져갑니다
꽃송이 한가운데서 둥글게 에워싼
해바라기 꽃을 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이 해를 그릴 때
눈이 부시도록 햇살이 구球 밖으로
퍼지게 그리는 게 이해됩니다
아이들 생각은 꾸밈이 없습니다
본대로 그냥 아이들 느낌대로
하얀 햇살을 그려냅니다
천문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본인이 알고 있는 상식을
그림에 반영하는 게 어른들인데
아이들은 상식이 아니라 느낌입니다
나는 흰색을 생각하면서
가끔 백의종군白衣從軍이 떠오릅니다
어떤 빛깔도 지니지 않았기에
물들기 쉬운 게 곧 흰빛입니다
그런데 사실 흰 빛깔은
어떤 빛깔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방색 가운데 서쪽색이 흰색이지요
순수의 색 흰색은 정치색이 아니고
벼슬 색이 아니고
지위를 갖고 있지 않은 색입니다
지위가 없고
벼슬이 없고
정치 빛깔이 없기에
백의종군은 순수 그 자체입니다
요즘 정치인들이 각오를 다지면서
쓰는 말이 백의종군입니다
한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사장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계급장 떼고 얘기하자 했던 게 생각납니다
밀린다왕에게 나가세나 존자가
신분을 떠나 대화하자고 제안했던
저《밀린당왕문경》이 있듯이요
왕이 왕의 지위를 갖고 있으면
언제든 왕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으니
나가세나 존자는 왕에게 얘기합니다
제대로 얘기가 되려면
욍의 신분과 수행자 신분을 버리자고요
그러면 대화에 응하겠노라고
이에 대해 밀린다왕은 동의했고
그래서《밀린다왕문경》이 탄생합니다
그런데 요즘 정치인들이
국민들이 일 하라고 뽑아주어
배지는 버젓이 달고 있으면서
정작 국민을 위해서는 일하지 않습니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대한민국 정치인들 맞긴 맞습니까
표를 얻고자 할 때는
백의종군을 들먹이면서
당선된 뒤에는 그토록 순수한 마음이
대관절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밀린다욍문경에서는
문득 왕이 위엄을 내세울까 싶어
나가세나 존자가 계급장 떼고
대화하자고 제안했는데
노무현 전대통령은 대통령이 먼저
검사장들에게 계급장 떼어놓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하자 했으니!
솔직하지 않은 검사장들이 있을까를
염려한 생각도 생각이지만
대통령의 신분을 지닌 채
그토록 파격적 언어를 썼다는 데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백의종군이란 순수의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흰 빛깔도 순수입니다
흰 빛깔은 평화를 상징합니다
싸울 생각이 없을 때
백기를 들어 이 쪽을 표현하듯
흰 빛깔은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전쟁터가 아닌 마당에서
집어주는 먹이를 먹는 흰 말
구유가 아닌 마당에서 정원에서
풀을 뜯는다는 것은
전쟁이 아니고 살육이 아닙니다
잔잔한 평화입니다
흰 망아지는 2살 정도입니다
아닙니다
흰 망아지가 2살 난 게 아니라
망아지 구駒자가 2살의 뜻입니다
한 참 전쟁터에 있어야 할 말駒입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장수들이 타고 싸우는 말들은
흰 말이 아니라 붉은 갈기의 말입니다
이른바 적토말입니다
붉은 빛 흙빛이 감도는 적토마는
전쟁터를 마음껏 누벼도
쉽게 지치지 않는 말입니다
흰 말도 쉽게 지치는 말은 아니나
흰 말은 한 나라의 군주의 말입니다
왕이 타는 말이고
제후가 타는 말이고
황제가 타는 말이고
천자가 타는 말이 곧 흰색 말입니다
도원수가 타는 말이 흰말입니다
왕이 타고 전쟁터에 나가야 할 말이
정원에서 풀을 뜯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한다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전쟁이 없는 시대며
평화가 유지되는 시대며
태평성대 시대를 뜻하고 있습니다
0134망아지 구駒
위에서 언급했듯이 구駒는
두살배기로서 한창 때의 말입니다
말 마馬자가 의미 값이고
글귀 구句자는 곧 소릿값입니다
보통 망아지 구駒자를 쓰면서
몰 구驅자와 혼동하곤 하는데
몰구자는 말 마馬자가 의미값이고
지경구區 또는 '숨길 우'자가
소릿값입니다
어제는 해인사를 다녀왔습니다
우리절을 아끼고 사랑하는 불자들과
아침 7시 45분 우리절을 출발하여
용탑선원에 내린 것이
정오가 되기 직전이었습니다
용탑선원龍塔禪院에서
점싱공양을 하고
불자님들과 108배를 올리고
병신년丙申年이 모두 무사하기를
빌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용탑선원은 해인사 산내암자로
해인사 왼편에 자리하였는뎨
용성 선사 사리탑을 모신 곳입니다
용성 선사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으로
일제강점기의 한국을 구하고자
만해 스님과 분연히 일어섰던
고승 중의 고승이었습니다
왜 용성 대선사를 고승이라 하는가요
세간으로는 독립운동을 주선하고
독립자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르며
일제의 온갖 취조 회유에도
끝내 조국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출세간적으로는 불교집안에
대처승은 있을 수 없다며
스님들의 계율정신을 부르짖었지요
서기 1864년 5월 8일 이 땅에 태어나
1940년 2월24일 생을 마감하기까지
일제침략기를 거쳤는데
당시 스님들은 결혼을 했습니다
일제는 불교마저 일본불교를 따라
결혼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승려에게는
주지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지요
한국불교가 왜색화되는 과정에서
한국불교에 대처승은 없다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과제만을 밀고 나갔습니다
당시 한국불교계 고승 중에서
취처하지 않고 계율을 지켜온 이가
용성 선사 외에도 물런 상당히 많았지요
하지만 선사는 선과 교와 율을 고루 닦으셨고
나아가 사찰행정과 재정건전성으로
불교의 자급자족을 실천하되
탄광을 비롯하여 농장운영과
신용조합에 힘을 쏟는 한편
포교의 현대화에 앞장섰던 분입니다
삼장역회를 결성하고
경전을 한글화하고
스스로 곡을 쓰고 작사 하고
법당에서 풍금을 연주하기도 하셨지요
그러면서도 단 한시도
불교 계율에서만큼은 가을서리였습니다
당시 용성 대선사가 없었더면
한국불교는 완벽하게 왜색화되어
비구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고승의 사리탑이 모셔진
용탑선원에서 법회를 본 뒤
해인사 대적광전을 참배하고
팔만대장경각에 올랐습니다
아! 그런데 어쩌란 말입니까
대장경각에 오르기는 했는데
법보전을 참배할 수 없었습니다
해인사가 어떤 절입니까
한국의 법보종찰法寶宗刹입니다
그런 해인사의 상징
팔만대장경각을 참배할 수 없다니
어쩌면 좋은 일이라 여기면서도
한편 서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0135밥/먹을 식食
사람이 사람일 수 있음은
음식의 다양성 때문입니다
으레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아무리 영리한 말이라 하더라도
음식을 조리해서 먹지는 않습니다
자연상태에서는 현장성일 뿐입니다
그 때 그 자리에서
거기에 있는 풀을 뜯을 뿐
음식재료를 모아 두고 저장하였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꺼내서 먹는
저축성이 말에게는 없습니다
망아지가 마당에서 풀을 뜯는다는
이 짧은 한 줄 시 속에는
주군을 태우고 전장을 누비며
생명줄 내놓고 뛰어다녀야 할 말이
마당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습니다
말은 탁발할 줄 모릅니다
금강경 첫머리에서 설명하는
탁발과 환지본처還至本處
반사법회飯食法會와
바릿대를 거두는 장면이 없습니다
말에게 그런 식사문화란 없지요
먹는다는 용어를 생각해봅니다
영어로는 이트Eat입니다
이트 브렉파스트Eat Break fast
'아침을 먹다'처럼 배를 채우는
일종의 육체적 배부름만이 아니지요
인간은 문화를 먹습니다
인간은 역사를 먹고
인간은 철학을 먹고
인간은 종교를 먹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으로 음식을 삼습니다
법보종찰 해인사에서
이제는 장경각 참배는 고사하고
고려대장경판을 볼 수 없습니다
이는 그림의 떡입니다
그림의 떡이라 먹을 수 없습니다
먹지 못하니 배가 부를 수 없습니다
1976년 여름이었습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각 법보전에서
나는 매일 5,000배씩
만 21일에 걸쳐 10만배를 올렸지요
그 인연공덕으로
오늘날 내가 있다고 자부합니다
어즈버, 1975년 여름입니다
해인사 용탑선원과 인연을 맺고
1979년 해인사를 떠나오기까지
해인사는 내게
어머니의 젖이었고
아버지의 훈계였으며
스승의 가르침이었습니다
나는 망아지처럼
육신을 채우는 존재가 아닙니다
금강경 반사법회에서
탁발해 온 음식만 먹는 게 아니라
그 음식에 담긴 문화를 먹고
농부들의 땀방울을 섭취하고
조리한 이들의 정성을 먹듯이
우리는 육신 생명만이 아니라
정신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먹습니다
먹을 식食자에는
사람人이 어질良기 위해서라는
소중한 명제가 들어있습니다
'어질어지기 위해 먹는다'
'밥 식食'자 '먹일 사食'자의 뜻은
바로 사람의 어짊에 있습니다
어짊은 스스로 하인皂이 됨입니다
하인이란 옛날 사대부 집안의
종의 개념 그 하인이 아니고
기독교에서의 주主에 대한
종의 개념이 아닙니다
하인皂은 밝음白으로의 변화匕입니다
스스로 순수白하게 변함匕입니다
0136마당 장場
마당은 삶의 현장입니다
삶은 대지土에서 이루어지며
대지는 태양昜 에너지를 넘겨 받아
모든 생명을 밝고 순수하게 만듭니다
마당 장場자 양昜에서의 아침旦과
백구식장白駒食場에서의
흰 백자의 밝음白은 같습니다
모두 태양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생명들의 광원이자
그 에너지의 발산이며 채움입니다
양은 역易과 같습니다
끊임없이 변화易하는 법칙입니다
이 변화의 법칙은 자연스럽기에
역易은 '바뀔 역'이라 새기며
'자연스러울 이' '쉬울 이'로 새깁니다
변화의 법칙을 순수히 받아들일 때
음식으로만 창자를 채우지 않고
진리로써 정신을 채울 것입니다
늙음이 오면 오는 대로
순수한 변화로 받아들아는 지혜
변화의 법칙입니다
아! 법보종찰 해인사는
변화의 최고 바이블
화엄이 살아 숨쉬는 곳,
여기 우리절과 함께 좋은 도량입니다
02/21/2016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