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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산에스라 원문보기 글쓴이: 이동기
성경의 힘 - 제128강 사도행전 2부
자 우리 사도행전 본문을 살펴봅시다.
사도행전을 공부하는 방법은 CH터너라는 사람이 어떤 단락을 나누었는데, 복음이 예수님 말씀대로 예루살렘에서 어떻게 전해지고, 온 유다에 어떻게 퍼져갔으며, 사마리아에 어떻게 복음이 전해지고, 나아가서 땅끝까지 어떻게 복음이 전해졌는가..
이런 순서로 살펴보는 그런 방법이 있습니다.
괜찮은 방법이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할 때, 이런 말이 예루살렘 사람 다 믿거든 유대로 가고, 유다 사람들이 다 믿으면 사마리아로 가라 이런 말이 아닙니다.
전부 다 현재형입니다. 동시형이고..
그래서 마치 잔잔한 연못에 돌맹이를 하나를 던지면 그냥 거기에서 물결이 일면서 웨이브가 함께 퍼지죠.
그런 것처럼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전파되면 순식간에 온 세계로 퍼져나가는 거야.
그러니까 불과 30년 만에 로마까지 전파 된 거예요. 짧기 기간에..
그렇게 교통과 통신이 불편한 때에 치안도 안전도 보장이 안 되는 때에..
그렇게 열심히 달려갔다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너무 우리가 노닥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성경을 가르치는 것도 너무 비능률적으로 가르치고 있고, 전도하는 것도 선교사나 되어야 전도하는 것처럼 되어가지고..
그것은 제가 볼 때 이런게 있습니다. 적당한 핍박이 교회 성장의 활력소가 될 수 있어요.
지금은 아무 핍박이 없으니까 교회가 침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형 예배당이나 어떤 시설 안에 교회가 갇혀버리는 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사도바울 때부터 시작해가지고 사도들 시대부터 해가지고 313년, 다시 말하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 자유를 선포할 때까지는 거의 예배당 개념이 없었습니다.
거의 다 숨어서 가정 교회로 모이고 아니면 무슨 회당에 모였다손 쳐도 건물 안에 갇혀있는 교회가 아니고 항상 유동적인, 살아 꿈틀거리고 움직이는, 이리저리 흘러가는 그리고 모였다가 흩어져서 복음 전하는 이런 스타일이었는데,
전도자도 한 교회에서 상주하면서 목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순회하면서 돌고 도는.. 아주 역동적인..
건물에 매이거나 갇히지 않는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그런 스타일의 교회였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빨리 퍼졌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가 만약에 정부에서 예배당 짓는 것을 전혀 허락을 하지 않고, 바라는 것은 아닌데, 어떻든 그럴 수 있는데, 교회를 적당하게 핍박하면 숨어서 굉장히 많이 퍼져 나갔을 거예요.
우리는 모여가지고 우리만 잔치하고 놀고 하니까 복음이 잘 안 퍼져나가요.
지금 우리가 한 때 크리스챤 프로테이지가 많을 때는 국민의 25%, 어떤 분은 30% 그러면서 1천2백만 했는데, 제가 볼 때 1천 2백만은 글쎄요.
지금은 하여튼 정부측에는 낸 인구 센서스에 종교분포도는 860만 정도라고 합니다.
줄고 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거기다가 서울이라든지 인천 혹은 호남 지방 일부가 25-30% 정도지, 우리 지리산 지역 내지는 경남 산청 합천 의령 이런 쪽은 겨우 4% 3% 이런 정도예요.
10% 넘는 곳은 상당히 활동적인 곳이고, 경남 지역 대구까지 해서 도시는 10%도 잘 안돼요.
6-7%밖에 안 됩니다.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하고 믿는 않는 사람들이 근 80% 이상인데, 우리가 지금 복음 전하는 것도 열심이 없고 교회를 개척하는 것도 열심이 없어요.
개인이 지금 개척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고 지금은..
그래서 우리가 잘 사는 것 같은데, 복음 선교 혹은 복음 전파에 있어서는 너무 우리가 교회가 소극적이다.
선교사는 특별사명 받은 사람만 가서 선교하든지 개척하든지 하고, 너무 침체되어 있어요.
여기 사도행전 1장 13절에 보면,
[사도행전 1장]
13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 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가룟유다만 빠졌죠.
그리고 이 사람들이 부활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는 몇번을 봐도 흩어져서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이렇게 했는데, 승천하신 것을 보고는 물고기 잡으러 안 갔습니다.
예수님 승천하는 것을 보더니 생각이 많이 달라지게 된거야.
예수님께서 위에서부터 오셨다 하더니 정말 위에서 오셨구나..
왜? 올라가는 것 봤잖아.
올라도 가는데, 내려오는 것은 얼마나 더 잘 내려오겠어요?
그래서 승천하는 것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니까..
그리고 다시 오실 것도 더 확실히 믿게 된 거죠.
왜? 올라가는 것을 봤으니까..
그리고 물고기 잡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다락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많은 사람들이 전혀 기도에 힘을 썼다 하니까 아무 것도 안 하고 전혀 기도만 했다,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고 베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성경을 살펴보고 지금 우리 앞에 전개되어 있는 모든 것이 무슨 말씀이 이루어진 것인가? 하는 성경을 예언서를 상고하면서 그 교육을 했어요. 교육을..
그리고 기도하지만 또 맛디아, 사도중에 하나가 궐이 났으니까 제비 뽑아서 맛디아를 충원해서 12사도를 맞춘거죠.
그렇게 했을 때, 그렇게 하면 일주일 걸렸는데, 승천주일에 예수님 승천하시고 한 주간 지나서 성령강림주일에 역시 주일입니다.
부활도 주일이고 승천도 주일이고 성령강림도 주일이예요.
그래서,
[사도행전 2장]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이런 것은 1회적인 사건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또 기독교 역사 어디에도 이런 사건이 재현되었다는 말은 없습니다.
한번만 있었던 사건이예요.
그러면서,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런데 이것은 상당히 우리가 애매한 면이 좀 있어요.
여기 말들을 각기 다른 방언으로 말했다 하는데, 그때 모인 사람들이 120명 되었다고 하는데, 120명이 전부 딴 소리 했느냐?
나중에 듣는 사람들은,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4-15개국으로부터 사람들이 모여 왔는데, 이 사람들이 뭐라고 하느냐?
자기가 태어나서 자라던 곳 방언으로 듣게 된다는 거예요.
듣는 사람들이 전부 다 자기 태어난 곳 방언으로 듣는다는 것이고, 말하는 사람들은 12사도 그 때 맛디아까지 했는지 12사도가 12가지 방언으로 했는지..
아니면 한 사람이 대표적으로 말했는데, 듣는 사람이 다 자기 나라말로 알아 들어버렸는지..
상당히 난해합니다. 이게..
우리가 그저 예사로 넘어가면 예사로 넘어가는데, 분명히 앞에서 말할 때,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했는데, 듣는 사람들은 전부 자기 난 곳 방언으로 들었다는 거야.
그래서 이런 것도 어떤 방언의 역사도 이러한 방언은 재현된 적이 없어요. 그 뒤에..
다시 한번 기독교 역사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하는 기록은 찾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고린도전서 공부할 때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방언의 은사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그것은 그 영이 기도하는 방언이지, 사람이 자기 난 곳 방언으로 알아듣는 것과는 달라요.
그래서 어떻든 그런 큰 역사가 일어나면서 그 때가 어디냐 하면, 유대인들 중에서 온 세상이 흩어져 있는 이른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자주 오지 못하고 해마다 오지 못하고 평생에 몇번 오거나 그런 정도인데, 꼭 예루살렘에 와서 명절 한번 지키고 싶다. 이렇게 하면 대개 언제 오느냐 하면, 유월절 전에 와요.
유월절 전에..
유월절 전에 와서 한 두달 정도 머뭅니다. 최소한 두달..
유월절 전에 와서 유월절 지키고, 무교절 지키고, 그리고 한 50일 있다가 오순절까지 지키고 그리고는 고국으로 돌아가요.
그때도 보니까 바대, 메대, 엘람, 메소보다미아, 유대, 가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애굽, 리비야, 로마, 그레데인과 아라비아..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 적어도 15개국 정도에서 왔다는 얘긴데, 이분들이 다 오순절 지키러 온 것이 아니고, 원래 유월절 지키러 온 사람들이야.
유월절 지키러 온 김에 좀 기다리고 일가친척집에 방문하고 시간 보내고 오순절까지 지키고 고국으로 돌아가니까..
그러면 오는데 몇개월씩 걸리고, 머무르는데 2개월 이상 걸리고, 돌아가는데 몇개월 걸리는 거야.
그러면 거의 성지순례 한번 할려면, 예루살렘 순례할려면 1년 계획을 잡고 온 겁니다.
그렇게 사모해서 온 사람들이죠.
그래서 왔는데 예수님 십자가 사건이 일어났던 유월절 다 경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유월절과 부활에 관한 흉흉한, 그 당시로 봐서는 모르는 사람에게는 흉흉한 소식이죠.
사람이 죽었는데 시체를 훔쳐갔단다 아니다 살아났단다..
이렇게 했는데, 여기 제자들은 아직도 긴가민가 하고 흩어졌다가 모았다가 하는 중이고..
예수님 승천하셨다가 1주일 만에 성령님 강림하셨는데, 강림하셨을 때에 지금 오순절 명절 지키러 온 사람들이 유월절부터 오순절까지 다 지켰기 때문에 이 명절 끝나면 자기 살던 곳으로 15개국으로 돌아갈 참이야.
그러니까 이 사람들에게 어떤 복음을 전하면 얼마나 효과적으로 빠른 시간에 퍼질 수 있는가..
그래서 지금 너무 절박하기 때문에 사도들의 입을 열어서 다른 방언으로 말하게 했기도 하고, 더 놀라운 것은 듣는 사람들이 전부 자기 난 곳 방언으로 들었다는 거야.
15개국 사람들이..
이게 어찌된 일이냐..
이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유월절부터 지금 오순절까지 일어난 이 엄청난 사건을 좀 제대로 알고 가게 하기 위해서 성령이 특별한 역사를 일으킨 거예요.
이것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일으킨게 아닙니다. 사실은.. 성령이 주도적으로 하신 거예요.
사람들이 무슨 성령운동 한다고 이렇게 집회를 만들어가지고 그 집회에 성령이 수동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능동적으로 하신 것이고 사람들은 그런 은혜를 체험한 것에 불과한 거예요.
하여튼 이것은 엄청난 일이죠.
그래서 2장 11절에,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이렇게 하면서 조롱하는데,
베드로가 요엘서 이야기를 꺼냅니다.
14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이렇게 하면서 베드로가 외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사실은 복음이 이때 벌써, 베드로가 물론 예루살렘에서 외치지만 지금 14개국, 유대를 빼면 14개국으로 이 소식이 막 퍼져나갈 판이죠. 일순간에..
그러고나서 다시 나중에 사도바울이 회개하고 나니까 회심하고 나니까 선교여행을 하면서 이 때에 왔던 사람들, 여기 오순절에 이적을 본 사람들,
유월절의 소식과 오순절 이적을 본 사람들이 온 세계에 흩어져 갔고, 물론 한국이나 중국은 아니고, 갔고 나중에 사도바울이 그런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거죠.
처음에 이 사람들이 가져간 소식은 완전한 복음은 아니었겠죠.
모든 것이 이해될 만한 것은 아니지만, 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보고 가서 외쳐가지고 소문이 퍼져있을 때 누군가 가서 제대로 훈련된 사람들이 가서 제대로 설명하면서 복음 전할 수 있는..
이것은 전부 다 사람들이 사람 의지 사람 주도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역사하신 겁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시면서 너희가 권능을 받아가지고 이렇게 증인 될 것이다.
그런 사건이죠.
그리고 ‘제자들이 3천이나 더하더라’ 그런 말이 있는데,
2장 37절,
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여러분 성령을 선물로 받는데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가지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
회개가 먼저 입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죄사함을 얻을 것이고 회개하면 죄사함을 얻을 것이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성령세례를 받는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38절,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세례받고 죄사함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고 이런 일이 벌어진다.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이렇게 베드로가 외치게 되는데
그 말을 듣고,
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여러분 신약성경에 우리 말 성경에는 ‘신자’라는 말은 로마서에 한번 나와요. 한번..
거의 신자가 아니고 어디든지 ‘제자’입니다. 제자..
여러분 제자는 뭐하는 거죠?
제자는 배우는 거예요.
신자로 머물러서는 안 돼요. 신자는 그저 믿기만 하면서 공부를 안해.
한국은 신자는 꽤 많은 것 같은데, 제자가 없어요.
제자는 성경을 배우고 예수님을 배우고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을 닮아가야 되는데, 놀랍게도 신자도 시원찮지만 제자가 안 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교회 목회자들이 너희 교회 신자가 얼마냐?
맨날 제자라 하지 않고.. 신자라는 말은 신약성경에 딱 로마서에 한번만 나오는데 전부 신자가 얼마냐?
신자 신자..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신자하지만 우리는 제자예요.
제자는 배우는 사람이야. 지식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배우고 하나님을 배우고 예수님을 배워 닮아가는 거예요.
기본 개념이 안 되어 있어요.
그래서 여기 2장 42절,
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여기도 또 우리가 오해가 있어요.
여러분 그 때 제자들이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 발 앞에 갖다 두니까, 필요를 따라서 나누어 주고,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자기 재산을 조금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이렇게 했다해서, 이것을 보통 설교하는 분들이 아주 마치 천국에 온 것처럼 낙원에 온 것처럼 아주 고무적인 것으로 잘 하는 것으로 이렇게 설교하는 분이 대부분인데, 그것도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왜 이렇게 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 우리도 이렇게 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그게 아주 명쾌해야 됩니다.
이 때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어서 그렇게 한거야.
무슨 얘기냐?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산업 도시가 아니고, 종교도시이고 정치도시예요.
그 종교도시이고 정치도시인 예루살렘에서 나사렛파라는 예수를 믿어가지고 유대교 공동체에서 출회되면 모든 종교직에서 공직에서 물러나야 돼요.
그리고 상업적으로 완전히 소외됩니다.
상거래도 안 돼요.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에서 예수 믿으면 먹고 살 길이 없어지는 거예요. 생업이 다..
다 박탈됩니다.
그래서 먹고 살려면 성도들 가진 재산을 팔아서 나누어 먹어야 돼요.
그래서 그런 일이 발생하는 그것도 모르고, 자기 재산을 다 바쳐가지고 서로 통용하고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줬다니까, 공산주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이렇게 설교하는 분들이 많고..
공산주의 이론은 맨날 이것을 가지고 인용해요.
그리고 오늘날 공동체 교회하면 좋고 잘 하는 것으로 알고, 초대교회 이렇게 하니까 매우 썩 잘하는 것으로..
물론 그때 그렇게 하는 것이 굶어 죽는 것 보다는 잘 하는 거죠.
그런데 그게 언제 어디서 누구든지 반드시 따라 해야 될 보편 타당성 있는 일이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교회에서 만약에 이런 식으로 성도들이 다 재산 팔아가지고 교회에 갖다 바치고 먹어치우고 있어봐요.
그러면 밖에 소문이 어떻게 나느냐?
저 교회에 가면 전부 재산 팔아가지고 갖다 바쳐 나누어 먹어버리고 나올 때는 빈털털이 되어서 나온다..
그러면 전도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안되죠. 보나마나..
미련할수록 눈치가 빨라야지..
그래가지고 어떻게 교회가 되겠어요?
물론 너무 가난해서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 아니면 장애인이어서 자기 바칠 것도 없고 그런 사람들은 공동체 해도 괜찮아요.
그런데 보통 정상적인 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재산 팔아가지고 공동체 생활한다고 하면 바깥에 소문이 아주 좋지 않게 납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돼요.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가 아주 좋은 교회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도 뭘 잘 몰라서 그래요.
교회 중에 인류역사상 예루살렘 교회가 골치아픈 교회예요.
속 썩이는 교회이고 애먹이는 교회이고 마침내 안 되는 교회이고 어려운 교회이고 힘든 교회이고 말 안 듣는 교회이고 제멋대로인 교회이고 파벌이 심하고..
맨 먼저 파벌은 히브리파 헬라파가 갈등을 해요.
히브리파 헬라파..
히브리파 사람들에게는 구제할 때마다 재산 팔아서 조금 더 주고, 헬라파는 자꾸 소외되고 하니까 그것도 불란이 나는 거예요.
거기다가 할례파 무할례파가 속을 썩이는 거야.
할례파는 말 안 들어요. 12사도가 다 달려들어도 말 안 들어요. 제 멋대로야.
할례파 무할례파가..
그리고 생업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성도들의 재산을 팔아다가 다 먹어치우는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예요.
입 그거 감당 못합니다. 그것..
아무리 재산이 있어도 재산에서 자꾸 재산이 나와야 되는 것이지, 재산 팔아 먹어 없애버리면 몇일 안 가서 거덜나버려요.
그래서 얼마 안가서 예루살렘 성도들이 재산이 다 거덜나버리고 먹고 살아야 되는데, 팔것도 없고 먹을 것도 없으니까 안디옥 교회를 개척해서, 개척교회인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먹여 살려야 돼요.
그래서 결국은 예루살렘 교회가 거지교회가 되어 버립니다. 거지교회..
나중에 그래도 안 되니까 사도바울이 아시아 마게도니아 아가야 유럽쪽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를 다 설득을 해가지고 예루살렘 가난한 교회를 위해서 우리가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서 연보하자.
예루살렘으로부터 우리가 신령한 것을 공급 받았으니까 육신의 것으로 섬기는 것이 마땅한 거야.
이렇게 하면서 사도바울이 그 어린 개척교회 성도들을 설득을 해가지고 예루살렘 교회를 먹여살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이고..
또 결국은 재산을 다 먹어치웠기 때문에 생업도 없고 먹고 살길이 없으니까 흩어져 가는 거야.
그것은 잘 된거야.
재산이 있으면 그 재산 때문에 흩어져가지 않고 똘똘뭉쳐 애를 먹일텐데, 다 팔아 먹어치웠기 때문에 거기 미련 둘 것도 없이 핍박날 때마다 줄줄이 떠나는데, 그것은 아주 잘 된 거야.
여러분 떠났기 때문에 AD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안 죽고 살아남은 거예요.
재산이 남아가지고 안 바치고 아나니아 삽비라처럼 꼬불쳐 놓던지 속이든지 해가지고 자기만 잘 먹고 살겠다고, 그렇게 안 바쳤던 사람은 틀림없이 재산 때문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못했을 것이고 AD70년에 그 안에서 죽었을지 몰라요.
내가 죽었을지 모른다고 했어요. 죽었다는게 아니고..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 성도들로서는 그게 잘 한거예요. 사실은..
왜냐하면 그렇게 다 팔아먹어치웠기 때문에 65년경 쯤 되었을 때는 이미 예루살렘 교회는 안 되고 문을 닫고 말죠.
사도들은 제비 뽑아서 온 세상에 흩어져 버렸고, 성도들은 이미 없어져 버린 거예요.
다시 말하면 결국은 안 되고 안 되고 문을 닫고 마는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예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까?
왜 그렇게 안된다고? 예루살렘 교회가?
종교도시이고 정치도시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면 종교계 공직계에 전혀 나갈 수 없고 상거래가 안 돼.
그래서 먹고 살려면 재산 있던 사람이 팔아서 나누어 먹어야 일단 사니까.. 그렇죠?
이해가 됩니까?
그래서 그렇게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두니까 필요를 따라서 나누어 주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하는 것 자체가 그 때 예루살렘 교회로서 잘 한 것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그것을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목회를 하든간에 그런 식으로 본받아야 된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것이 어떤 책을 읽을 때에 보편 타당성이 있어서 언제 어디서 누구든지 간에 본받아야 될 모델(Model)이 될 말씀이냐?
아니면 그 때 그 상황에서 전개되는 특수상황 특수 케이스(Case)에 해당하느냐?
모델이 되는 것이냐? 하나의 케이스에 불과하냐?
이것은 예루살렘에만 해당하는 케이스예요.
이해가 됩니까?
이런 것을 정확하게 읽어야 됩니다. 설교 할려면..
설교하거나 목회하거나 하면 이런 것은 애매하게 읽으면 안 돼요.
제가 설교를 들어보면 어정쩡하게 애매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이게 잘 된 것처럼 입에 침이 마르게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을 잘 못 본 겁니다.
그리고 말 안 듣기로 유명한 교회예요.
사도바울이 오면 때려죽일려고 해요.
바울이 올 때 마다 그래도 뭔가 싸들고 와서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먹여 살릴려고 하는데,
실컷 갖다 주고 얻어터지고..
경상도에 가면 ‘떡주고 뺨맞고’ 그런 말이 있어요.
쌀 갖다주고 배 빼앗기고.. 소 500마리 갖다주고 잠수함 내려오고..
실컷 퍼주었는데 핵개발하고..
그런 식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아주 못된 교회예요.
사도들이 그렇게 말해도 말 안 듣는 제멋대로, 할례당이 제멋대로 돌아다니면서 애를 먹이던 그런 교회이고..
그리고 더 자세히 보면 사도파와 장로파 안에 일종의 알력이 있어요. 그 안에..
심지어 베드로까지 자리가 편안하지 않습니다.
자꾸 베드로가 겉돌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베드로가..
우리가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교황 노릇하고 있었는줄 아세요? 전혀 아닙니다. 전혀..
예수님 동생이 큰 소리 쳐버리고 베드로도 별로 거기에서는 편안하지 않았다는 거야.
외곽으로 돌다가 나중에 안디옥 교회에 가서 거기에서 바울에게 혼쭐나고.. 베드로가..
후배 바울에게 책망까지 들었어요. 베드로가..
그래서 그런 것을 성경을 좀 제대로 리얼하게 실제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다보면 우리가 설교가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불과 40년도 채 기록하지 못한채 예루살렘 교회는 문을 닫습니다.
그런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예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게 잘한 것일 수 있다니까.. 그 때 그 교회로서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까?
그 때 만약에 재산을 안 팔고 있었다면 옛날 유대교로 돌아가 버렸든지 아니면 AD70년에 다 바쳐보지도 못하고 먹어보지도 못하고 다 그저 몰살당하고 그럴 수 있었죠? 그렇죠?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로서는 그 때 그것이 잘한 것일 수 있지만, 보편 타당성이 있어서 어느 시대 어느 교회 누구든지 그렇게 해야 된다 그런 말이 아니라는 겁니다.
자, 이제 사도요한 베드로 이런 사람들이 법정에 끌려가서 심문 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당합니다. 이분들이..
베드로 요한이 기탄없이 말하고, 아주 담대해졌어요.
그리고 5장에 가면, 그 유명한 아나니아 삽비라 사건도 나오는데, 이 사람들은 바치기는 바치되 남들 다 바치니까 나는 안 바칠 수가 없고 체면 가림은 해야 되니까 조금 바치면서 이것 뿐이다 해서 죽을 짓을 한 거죠.
그런 것도 재산 다 안바치면 죽는다 이런 식으로 공갈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이상한 설교하는 분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을 잘 못 봐서 그래요.
그래서 이런 사건도 일회적 사건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런 일이 또다시 재현되었다 그런 말은 없어요. 역사에 봐도..
일벌백계(一罰百戒) 형식으로..
이것은 성령을 속이는 거짓말을 한 행위로 간주된다는 거죠.
그리고 어떻든 재산을 팔아가지고 전부 선교비가 아니고 구제비예요. 구제비..
온 재정이 사람들이 먹고 살아야 되니까 이것을 구제비식으로 자꾸 나누다 보니까, 이것 나누는데 또 이게 불평이 나는 거야.
히브리파 헬라파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는데, 그 갈등하고 원망이 결국은 사도들에게 자꾸 덤태기가 씌워지니까 사도들이 말발이 안 서는 거야. 이를테면..
그래서 사도들이 고민하다가 이것 우리가 맨날 일하는게 성도들 재산 가져다가 나누어 먹는 것 나눗셈하다가 감정이 폭발해서 이래가지고 되겠느냐? 교회가..
이런 식으로 우리가 누명을 뒤집어 써서는, 정작 본연의 임무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안 되겠다 해서, 이른바 집사를 뽑자.
꼭 집사라는 말을 쓰지 않지만 어떻든 7명을 뽑자는 거예요.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사도행전 6장]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2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일곱을 ‘집사’라고 보통 통칭을 말하는데, 여기에서 뽑을 때는 집사라고 말을 쓰고 않고 그냥 일곱을 택했다는 거죠.
그런데 어떤 사람이냐 하면,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해서,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그래서 이 때 뽑힌 일곱 사람이 우리가 얼른 볼 때는 사도들이 제일 높은 계급이고, 그 밑에 집사 일곱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사도는 계급도 아니고 권위와 책임은 있지만, 실력으로 하면 일곱 사람이 열두 제자 사도보다 나을 수 있어요.
그런 말도 처음 듣죠? 처음 하니까..
여러분 그 때 12사도 해봤자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전부 갈릴리 벳세다에서 어부하던 사람들, 예수님 3년 따라다녔어도 그 실력해봤자 대개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기 7사람은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 이런 사람들은 5천명도 넘고 여자까지 하면 1만명이 훤씬 넘었을거야.
그런 중에서 뽑은 사람들이예요. 이 사람들이..
대개 서울 사람들이예요. 이 사람들은..
그러니까 5천명 중에서 뽑은 사람들과 그냥 저 갈릴리 벳세다 동네에서 한동네에서 5명 6명 부른 사람들과 차이가 나죠. 실력으로 하면..
여러분 스데반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야?
사도바울이 깨어진것은 사실은 스데반 설교 때문에 깨어진거예요.
스데반 설교를 들었는데 부인할 수 없어.
왜냐하면 스데반이 설교하는 것을 보니까,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이야기를 사도행전 7장 한 장 안에 압축을 해가지고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폐부를 찌르니까 그것을 들으면 설득 안 당할 수가 없어요.
전부 다 귀를 다 막고 스데반을 때렸는데, 거기에 누가 실수로 귀를 안 막은 사람이 있는 거야.
그게 누구겠어요? 그게 사도바울이야.
귀를 안 막고 있다가 그것을 들어버렸어요. 그냥..
들어보니까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로 밀어붙이거든.. 그러니까 그것을 반발을 해가지고 길길이 뛰면서 저런것은 죽여야 된다고 하면서 반발하는 거죠.
반발해도 이미 화살 한방 심장에 맞았으면 껑충하고 길길이 뛰지만 한 산등성이 넘어가면 거꾸러지는 거야. 별 수 없이..
여러분 바울이 이 스데반의 설교를 얼마나 성실하게 들었으면 들은 것을 기억에 생생했다가 나중에 누가에게 그것을 말해가지고 누가가 기록한거죠?
이해가 됩니까?
바울이 스데반 설교를 잘 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사실을 나중에 누가에게 전달을 해서 누가가 썼는데, 7장안에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이야기를 압축하고 있다는 거예요.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그래서 하나님편에서 본다고 하면 스데반이라고 하는 그 하나님의 사람 신실한 사람 하나를 희생을 해서 사도바울 하나를 얻으면 그런데로 수지가 맞는 거죠.
수지라 하면 곤란한가..
어떻든 그런 일이 있었다고.. 굉장한 설교입니다. 스데반의 설교가..
제가 좋아하는 설교가 스데반 설교를 좋아하는 편인데, 압축하는 설교예요.
뻥튀기하는 설교가 아니라 누룩을 타는 설교가 아니고 물타는 설교가 아니고,
오히려 성경을 압축을 해가지고 촛점이 모아지게 하는 설교예요.
이런 설교는 거의 다 설교학적으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설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예수님 설교이고 스데반 설교이고 바울의 설교이고 베드로 설교예요.
다 마찬가지예요.
요즈음처럼 한절 읽어놓고 물을 막 타가지고 구역질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압축을 해가지고 불이 일어나게 하는 거예요. 불이 일어나게..
여러분 우리가 돋보기를 볼 때 빛을 모으니까 불이 일어나는 거죠?
마찬가지로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압축을 해가지고 7장에 다 압축을 해서 그런 설교가 스데반의 설교인데,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말하니까 부정할 수가 없는 거죠.
오기와 살기등등해가지고 ‘죽여야 돼. 씨를 말려야 돼’ 그러면서 길길이 뛰는 사람이 바울이었어요.
스데반도 대단한 분이고, 빌립도 사마리아에서 부흥이 일어나는 것 봤잖아요. 대단한 인물이예요.
지금도 제가 볼 때, 목사님들 잘 들으세요. 목사님들이 ‘집사님들은 목사보다 못하다.’
그럴 수 있죠. 그럴 수 있는데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집사님들 중에서도 신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뿐이지, 굉장한 인물이 많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교회 안에..
우리 목사님들 그것을 잊어버리면 안 돼요.
또 지금은 성도들도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는 분들이 많아요.
목사님들은 바빠서 성경공부할 시간이 없는데, 성도들은 별로 바쁜것이 없으니까..
열심히 공부하고 히브리어 헬라어를 일반 성도들이 공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인터넷으로 인터넷신학을 하는 분도 있고 굉장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젊은 목사님들 공부 열심히 해야지..
이것 틀리고 저것 틀리고 이것 빼먹고 저것 빼먹고 횡설수설하고 그러면 목회가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설프게 신학했다해서 우리가 집사님보다 나을 것이다. 그런 착각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여기 지금 스데반 빌립 이런 분들이 절대 사도들보다 실력이 못지 않다는 겁니다.
대단한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때 여기 꼭 이분들은 집사라고, 원래 집사라고 이름붙인 것이 아니고, 구제하고 공궤하는 일을 책임지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한 거죠.
5천명이나 1만명 중에서 일곱을 택한 거예요.
보나마나 탁월한 사람들이예요. 탁월한 사람..
앞으로 우리가 교회에서 집사님들이나 장로님들을 뽑을 때, 신중을 기하고 진짜 실력과 덕망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정말 칭찬받는 사람..
그냥 막 함부로 집사 남발 교사 남발 하지 말고..
인물이 안 되면 길러야 돼요. 충분히 길러서 교육을 해서..
그리고 장로님들 같으면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 존경받아야 돼요.
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외인에게도 선악간에 증거를 받아야 됩니다. 그런 것은..
7장에는 스데반 집사의 설교가 나오는데, 집에 가서 읽어보시면 대단한 거예요. 60절까지 나가니까 길기도 하지만,
어떻든 한장 안에서 아브라함부터 예수님 이야기까지를 압축을 하는 설교입니다.
그 다음에, 8장에는 복음이 빌립에 의해서 스데반은 순교하지만, 빌립은 일곱중에 빌립은 사마리아에 가서 선교를 하는데, 사도들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선교를 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8장에,
[사도행전 8장]
1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스데반이 죽었는데 자기 친구가 죽었는데, 마땅히 여기더라.
..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그러니까 여러분 예수님께서 사도행전 1장 8절에는,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서 내 증인이 되리라 했는데,
8장 1절에 가니까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유다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이렇게 흩어져가서 복음을 전하게 된 거예요.
꼭 사도만 가서 전하는게 아니라 성도들이 흩어져 갔어요. 성도들이..
그리고 우리 아직도 전도라는 개념도 좀 정리가 덜 되어 있어요.
여러분 전도는 일반 성도들이 잘 못해요. 이 실력을 가지고는..
성도들이 믿지 않는 분들을 교회로 인도해 오는 것은 인도입니다. 인도..
교회로 모시고 오는 것은 인도라고 하고, 전도는 뭐냐?
인도해 온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심어주는 것은 목사가 전도하는 거예요.
도를 전하는 것은 도를 알아야 돼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제대로 전도할려면, 도를 전하는 이 말씀 전하는 사람이 도사가 되어야 돼요. 도사가.. 그야말로..
전 도사..
성경 말씀을 그대로 다 66권을 사람들 마음에 심어줄 수 있는..
여러분 컴퓨터는 사실 깡통에 불과합니다. 깡통..
여기 이른바 반도체 메모리 이런 것이 있어서 그 안에다가 오퍼레이팅 시스템 파일(Operating System file) OS라고 하는데, 윈도스 XP나 윈도즈 비스타 같은 오퍼레이팅 시스템 파일이 여기에 셋업 되어야 워드프로세서도 하고 음악도 하고 영화도 하고 하는 것이지, 여기 프로그램 소프트가 깔리지 않으면 깡통에 불과해요. 깡통.. 그렇죠?
사람도 마찬가지..
사람도 교회에 인도해놨다 해서 된게 아니라, 인도해온 사람들에게 성경 66권을 완전히 셋업해야 돼요.
66권에 있는 그것도 안 되면 기독교 교리를 심어주든지..
교리도 심지 않고 성경도 안 가르치고, 겨우 그냥 예수 믿으면 천당간다고 해가지고 그것만 가지고 믿음도 확신도 없이 그냥 헌금하라 주일성수하라.. 그러니까 안 밴 애를 낳으라는게 낫지 차라리..
사람에게 전도를 하면 교회까지 끌고 온 것은 인도한 겁니다. 전도가 아닙니다.
인도해 온 것이고, 인도해 온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심어주는 것이 목회자가 해야 될 일이죠. 교사와 함께..
인도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죠. 열심히 해야 되는데 인도하는 것으로 끝난게 아닙니다.
진짜 전도는 목회자가 성실하게 하나님 말씀을 심어가는 것이 전도예요.
어떻든 8장 3절에 보면,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교회를 잔멸하는 것은 잔인하게 진멸한다.
..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그랬더니,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빌립이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사역을 하는데, 귀신들이 막 나가고 또 중풍병자가 낫게 되고 앉은뱅이가 낫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 따르는 표적을 가지고 빌립이 전하는 복음이 진실하다 하는 것을 보증하는 거죠. 성령께서..
그래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 말씀을 잘 배워서 아무데에 심어도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해야 돼요.
저는 우리 성도들에게 이사를 갔는데 교회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더 좋고..
교회가 있으면 교회에 나가서 잘 섬기고 없으면 교회를 세워야 돼요.
교회 없는 곳에 가면 교회를 세우라고..
그렇게 길러요. 우리 성도들에게..
그저 교회 나간지 1년 2년만 되면 아무데에 가서도 교회가 없으면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자체 예배를 드리면서 사람들 전도해서 세울 수 있도록 그렇게 가르쳐요.
그리고 몇군데에 새신자 초신자 1년 2년 된 사람을 파송했는데, 다 교회가 개척된 거예요.
그리고 새신자는 교회 개척이 어려운지 쉬운지 아무 것도 몰라.
그러니까 잘 해요.
신학을 하거나 뭘 배우면 아는게 많고 걱정도 많고 근심도 많아서 아무 것도 못해..
제가 그렇게 했어요.
제가 예수 믿고 1년 반만에 개척하러 갔어요. 제가요.
무식하면 담대하다고 아무 것도 모르니까..
그렇게 해서 교회가 다 설립되고 했기 때문에 저도 꼭 배운대로 합니다.
믿은지 1년 2년 되면 다 어디가서 심어도 교회 개척할 수 있게 길러야 돼요.
저는 어린애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을..
여기 초대교회가 그렇게 했거든요. 진짜로..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빌립이 하는 것을 보고 전혀 마술을 하지 않은데, 이적 표적 기적이 나타나니까 성령의 은사를 돈주고 살려고 하다가 혼줄 났죠.
그런데 거기에서 빌립이 한창 사마리아에서 일하고 있는데,
26절 보세요.
26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그 길은 광야길이죠. ‘비아마리스’라고 하는 해변길인데,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거기 줄을 그으세요.
읽는 것을 깨닫느뇨?
이리 보세요.
이 사람이 읽기는 읽고 있죠.
‘읽을 수 있느뇨?’ 하는 것이 아니고 ‘읽는 것을 깨닫느뇨?’ 라고 묻고 있어요.
31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목사님들은 빨리 여기에 눈을 떠야 돼요.
성도들은 읽어도 깨닫지 못하는 수가 많다.
그리고 깨닫지 못하는 것은 차라리 괜찮은데, 잘못 깨닫는 수가 있어요.
잘못 깨달아서 잘못 해석해서 잘못 믿게 되면 이게 바로 이단이 되는 거예요. 이단..
지금까지 수많은 이단들이 전부 성경을 혼자 읽다가 QT하다가 나온 거야.
지도하는 사람이 없이 혼자서 성경을 읽다가 착각을 해가지고 이단 사이비가 나온 거야.
모든 이단이 그렇게 해서 나왔어요. 전부 다..
그래서 성경을 성도가 혼자 읽으라 혼자 큐티하라. 아주 미련한 일입니다. 그것은..
여기 이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 맡은 큰 권세있는 내시 같으면 무지렁이가 아니죠?
일반 그런 평범한 무지렁이가 아니라, 상당한 실력이 있고 열정도 있죠?
먼데서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러 왔고, 거금을 들여가지고 이사야서 같은 두루마리, 이 두루마리 책이라고 하면 양피지에 쓴 것 같은데, 굉장히 비싼 겁니다.
그런 것을 샀단 말이죠.
지금처럼 성경책이 만원 2만원 주고 산 것이 아니라, 굉장히 비싼 겁니다. 그게..
그리고 마차에서, 집에 가서 읽어보자가 아니고 가면서 읽어서 깨달을려고 애를 쓰는데, 애를 쓰지만 깨달아지지 않는 거예요.
성령께서도 어떻게 이 사람을 도와줄려고 애를 썼는데 도저히 안 돼요.
그래서 누가 가는 거예요?
지금 사마리아에서 집회한다고 바빠서 정신없는 그런 빌립을 거기에서 빼내어요. 거기에서 하던 일이 있는데, 거기에서 빼내어가지고 예루살렘에서 가자지구로 가는 길까지 갈려면 그 길이 한 100리는 가야 돼요. 걸어서..
다시 말하면 성경이 있고 성령만 있으면 되는게 아닙니다. 성령이 아무리 할려고 해도 사람이 교사가 없으면 어려워요. 교사가 있어야 돼요.
여러분 성경을 읽어서 되는 것 같으면 얼마나 쉽겠소?
그러면 성경만 출판해가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성경 나누어 주고 읽어봐라. 그러면 될 것 아녜요? 그렇게만 된다면 목사가 얼마나 수월 하겠어요?
성도들이 혼자 성경 읽어서 되는게 아니고, 반드시 지도하는 사람이 있어야 돼요.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깨닫지 못한다는 거야.
그래서,
..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이렇게 빌립이 복음을 전하니까 내시가 세례받겠다고 해서 세례주었다는 그런 얘기죠.
그러니까 지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하냐 하는 것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여러분 자신이 다 혼자 성경 읽기 어려웠죠?
그런데 저와 함께 하니까 쉽죠?
왜냐하면 지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런 거예요.
그래서 그런 면에서는 저는 모든 교회 모든 목회자 모든 성도가 성경에 빨리 통달해가지고 이것을 읽으면서 애타는 사람들에게 지도할 수 있는 일군들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