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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얼굴 좀 들어 볼래요”
어렸을 때부터 소아마비를 앓아서 오른쪽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자라온 진영숙은 여학교
다닐 때에는 웅변에 소질이 있어 이름 있는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우승을 하게 되자 학교에
서는 진 영숙을 학교의 보배라고 칭할 만치 그의 명성은 남달랐다.
이렇게 이름이 나자 남학생들의 귀에 진영숙에 대해서 알려졌는지 만나고 싶어 하는 학생도
있다는 소리가 들렸지만 진영숙은 자신의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그런데 대해서는 관심을 두
지 않았다.
진영숙은 자랄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딸의 몸이 불편한 것에 대해서 만날
치근하게 생각하고 매사를 자신을 갖게 하기 위해서 시간만 있으면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절대로 위축되지 말고 학교에서는 친구들을 잘 사귀고 공부가 다는 아니니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고 하셨다.
이렇게 아버지가 단단히 교육을 시켜 주셨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위축이 되거나 자신을 잃지 않았는데 어느 날 아침 일찍 등교를 하다가 학용품을 사려고 문방구엘 들어가서 책받침과 공책을 사가지고 빠른 걸음으로 학교를 가는데 뒤에서 아이들이 몇 명 따라오는 것 같아서 돌려다 보다가 깜짝 놀랐던 것은 한 아이가 영숙이의 걸음걸이 흉내를 내고 있는가 하면 아이들도 같은 흉내를 내면서 뒤따라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영숙이는 그런 일이 한 두 번 있던 일이 아니어서 그냥 돌아서 걸어가는데 또 다른 아이가 큰 소리로 놀리는 것이었다.
“ 저 병신이 웅변을 잘 한다면서. 걸음걸이가 삐뚤어졌으니까 재의 등뼈도 삐뚤어졌을 거야. 하하.”
“ 야 네 말이 맞을 거야. 우리 한번 옷을 베껴보자.”
영숙이는 그 말을 듣자 홱 돌아섰지만 너무도 분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도저히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어서 제 자리에 앉아서 울고 말았다.
영숙이는 그런 아이들과 같은 학교를 다니는 것이 분하여 순간 학교로 가서 선생님께 일러주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없어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런데 그날이 바로 학교에서 구강검사를 하는 날인데 영숙이가 보이지를 않자 선생님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딸이 등교를 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곧바로 집으로 와서 보니 딸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 영숙아 웬일이냐 어디가 아파서 학교를 가다말고 돌아왔냐.”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은 영숙이는 깜짝 놀라 얼른 얼굴을 훔치고는 일어나면서 순간 아버지에게 걱정을 끼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배가 아파서 가다가 돌아왔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영숙이를 병원으로 가자고 하셨지만 영숙이는 집에 와서 소화제 한 알을 먹고 났더니 괜찮다고 대답을 하였다.
“ 정말 지금 배가 아프지 않다는 말이냐.”
“ 네 아빠 걱정 하지 마세요. 엄마가 오시게 되면 약방엘 가서 약을 사먹을 테니 아빠는 어
서 직장으로 가셔요 ”
“ 아빠가 가도 된다고. 학교에서 네가 오지 않았다는 말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
영숙이는 아버지가 가신 다음에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서는 지금까지 누가 뭐라고 해도 용
기를 잃지 않았던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기로 하였다.
그런 다음부터는 누가 뭐라고 해도 들은 체를 하지 않기로 하였지만 그래도 이따금 어디를
가다 보면 흘끔거리며 놀리는 것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목격을 하였다.
그런데 웅변대회 출전이후에 뜻하지 않게 한 남학생으로부터 연애편지를 받았으니 생전 처
음으로 이런 편지를 받고 나서 얼마나 가슴이 후둥대는지 진정할 수가 없었다.
영숙이는 사실 같은 반의 친구 중에 주현자라는 아이가 어느 남학생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은근히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는 부럽긴 하였지만 자기는 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아무도 관심
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서글프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공부라도 열심히 하게 되면 언젠가 자기에게도 희망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던 차였는데 의외의 편지였으니 엄마나 놀랄 일인가.
그 계기가 된 것은 언젠가 웅변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 시청강당에 모였을 때에 영숙이 바
로 뒷 번호의 한 남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이날 이 학생은 시골학교에서 출전을 하였는데 웅변지도 선생님이 없이 혼자 연습을 하다
보니 시선을 어디에다 둘지 몰라 그것을 알고 싶다고 하기에 영숙이는 자기가 아는 대로 일
러 주었다.
그날 대회에서는 영숙이가 1등을 하고 이 학생은 가작 상을 받게 되었는데 나중에 이 학생
은 자기가 궁금했던 것을 잘 알려 주어서 입상을 했다면서 점심을 먹으러 같이 가자는 제안
을 하였지만 모처럼 엄마가 오셨기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고 헤어졌다.
그리고는 이 학생을 아주 잊어버렸는데 이번 오는 일요일 읍내에 나올 일이 있으니 점심
시간에 만나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영숙이는 한번 거절했던 일이고 다시 만나고 싶지를 않아서 이다음에나 만나자고 하자 이
학생은 특별한 일도 아닌데 점심 한번 먹는 것이 무엇이 그리 어려우냐며 서운해 하여 마음
이 약한 영숙이는 대답을 하였다.
일요일 아침 조반을 먹은 다음에 어머니께 친구가 만나자고 한여 나가겠다고 하자 엄마는
쾌히 승낙을 해주셔서 영숙이는 기분 좋게 집을 나서서 그가 만나자는 장소로 가서 보니 그
곳은 초 중등학교 학생들 모두가 좋아하는 짜장면을 파는 중국집이었다.
영숙이는 한번 본 학생이지만 관심 있게 쳐다보지를 않아서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들이 많
으면 얼굴을 금방 알아볼 수가 있을까 하여 현관으로 들어서는데 누가 뒤에서 영숙이의 허
리를 꽉 잡는 바람에 기겁을 해서 손을 치며 돌아보니 잊어버렸던 그 남학생이었다.
“ 야, 너 이래도 되는 거니.”
영숙이는 잽싸게 돌아서면서 칼같이 말을 하자 남학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바라보는 눈
빛 속에는 웃음꽃이 활짝 핀 것 같이 느껴져 영숙이는 순간 깜짝 놀랐다.
‘ 보기보다는 좀은 멋이 있게 생겼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남학생은 영숙이가 귀엽기라도 하다는 듯이 다가오더니 이번에는 영
숙이의 손을 꽉 잡았다.
영숙이는 그의 다음 행동이 너무도 엉뚱하여 손을 빼려 하자 웬걸 남학생은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 나 앞으로 이 귀한 손을 절대로 놓지 않을 것이며 남에게 내주지도 않을 거야.”
영숙이는 그 말을 듣자 “너 이 손 못 놓아 어서 놓으란 말이야. “ 하자 그는 태연자약하게
다시 말하였다.
“ 영숙아 모처럼 사나이가 너의 손을 잡았는데 왜 자꾸 빼려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나 솔
직이 말해서 네가 너무 좋아서 이제부터 너의 손이 되고 발이 되고 내 뼈가 부서져도 너를
위해 희생할 각오를 단단히 하였단 말이야. “
“ 야 너 지금 연극하려고 대사를 오이고 있냐. 너는 아직 청소년이고 네가 하는 말이 내
귀에는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두었으면 좋겠다. “
“ 너 몇 살부터 어른이 되는 것이나 알고 하는 소리냐. 남자 나이가 열여덟 살이면 생산능
력이 넘치고 이때에 아이를 낳으면 가장 튼튼한 아이를 낳는다고 하였어. 너의 나이 또한
나와 같으니 너도 어른 노릇을 충분히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해. 애 엄마가 충분히 될 수 있
다는 말이야 . “
“ 뭐야 너 지금 처음 만나는 나보고 애 엄마가 되라는 말이냐.”
영숙이는 그의 너무도 엄청난 말에 기분이 나빠서 도로 발길을 돌리려 하자 남학생은 영숙
이의 앞을 가로 막았다.
“ 영숙아. 내 본래의 뜻은 그게 아니란 말이야. 오해를 하였다면 미안해 앞으로는 네 성질
건드리지 않을 깨. “
방금 전과는 딴판으로 하는 말에 영숙이는 혼자 생각을 하였다.
‘ 얘가 제법 어른스런 말을 다 할 줄 아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남학생은 영숙이의 팔을 잡으면서 짜장면 집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
더니 희죽이 웃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 미안해 우리 짜증 내지 말고 짜장면 한 그릇 맛있게 먹자. 응. 아니 두 그릇이라도 좋아.
네가 먹고 싶은 대로 싫건 먹어, 우리 집 이야기를 하면 우리 집은 시골이긴 하지만 네가
원하는 것은 다 있는데 한 가지 교통이 불편한 것이 문제야. 그래도 버스가 하루에 세 번은
다니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 아니니. 버스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가을에 버
스를 타게 되면 얼마나 신기한지 네가 그 장면을 보면 입을 다물지 못할 거야. 뭐가 신기하
냐 하면 읍내로 나가는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에 등에 올망졸망한 자루를 이고지
고 나와서는 버스 올 때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거야. 그러다가 차가 오게 되면 그 짐들을
싣는데 너무 늘이다 보니 기사 아저씨는 빨리 실으라고 하지만 일선에서 나라를 지키는 팔
팔한 군인 보초병도 아닌 어르신들이 어떻게 짐들을 빨리 싣느냔 말이야. 그리 되자 기사
아저씨가 운전대에서 내려 숨을 헐 덕이면서 짐들을 한꺼번에 몰아서 싣다 보면 뒤에서 어
떤 할머니는 ‘ 내 짐을 섞으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소리를 지르신단 말이야. 그러면 운전기
사 아저씨는 잠시전과는 다르게 할머니를 마치 손자를 대하듯이 알아듣게 말을 하는 거야,
" 할머니 첫날밤에 신랑이 바뀔지는 모르지만 이 버스에 실은 짐은 절대로 바뀌지 않으니
걱정일랑 하지 마세요. 아셨지요. “ 하면 차안에 탄 사람들이 운전기사의 소릴 듣자마자 하
하하 웃는 소리가 창밖으로 흘러넘친단 말이야. 그렇지만 할머니는 그 말을 못 들으셨는지
“기사양반 내 짐 잊어버리면 안돼요. “ 그러면 옆의 아주머니가 할머니에게 무어라고 말씀
을 전했는지 가만히 계시는 것이야. “
영숙이는 그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애가 좀은 재미있는 애라
는 생각은 들었다.
홀 안에는 다행히 아는 얼굴이 없어서 마음이 놓였다.
“ 내 이름 궁금하지 않니. 앞으로 나를 보고 ”공갈대“라고 불러 줘 알았지. 영숙이는 그의
이름이 공갈대라는 말에 웃음이 배시시 입술에 배어나오고 있었다.
" 그래 너도 웃을 줄 아는구나. 네 웃는 모습을 보니 내가 너를 찍은 것이 참 잘했다는 생
각이 들기도 한다. 너도 웃었지만 다른 애들이 내 이름을 부르면 왜 그리 웃는지 모르겠어.
사실은 우리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거든 내 형의 이름은 공 갈 덕이고 내 바로 위의 누
나 이름은 공 갈려야. 아버지가 지으신 것을 자식들이 뭐라고 할 순은 없지만 내가 보아도
내 이름인 공갈대는 조금 이상하지 않니. 만일 아버지 성씨가 오 씨라고 하면 오 갈대가 되
는 것이니 더 웃어 운 생각을 하면 공 씨가 차라리 좋은 성씨 같기도 해. 어쨌거나 이름은
잘 짓는 것이 좋긴 하지만 이미 남들이 불러주고 있으니 내 이름을 갈아달라고 할 수는 없
지 않니. 그냥 쓰는 거지 뭐. 아무리 쓴다고 해도 닳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야. “
공갈대의 말을 들으면서 영숙이는 하도 웃음이 자꾸만 입에서 새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자
니 이따금씩 혹 혹 소리가 나왔다.
“ 너는 이상하게 웃음소리를 내는구나, 우리 어머니에게 들으니 웃을 때에는 하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어야 된다고 하더라. 웃으면 복이 온다든가 뭐 수명이 길어진다던가. 그래서
그런지 우리 어머니의 웃음소리는 동네사람들의 말로는 복이 들어오는 웃음을 웃으신다고
하던데 나는 그 흉내를 내지 못하고 있어. 보아하니 네가 잘 웃는 것으로 보아 너는 우리
어머니의 웃음소리 흉내를 잘 낼 것 같다. 내가 못하는 것을 네가 잘 한다면 우리 어머니는
너를 보고 며느릿감만은 잘 골랐다는 말씀을 하실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니 너무 기분이
좋다. 어머니 얘기를 한다면 우리 어머니도 너처럼 어렸을 때에 소아마비를 앓으셔서 한쪽
팔을 잘 못쓰셔. 어쩌면 너를 알게 된 것도 우연이긴 하지만 너야말로 우리 어머니의 사랑
을 듬뿍 받을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너를 꼭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것 같아. 내
말이 너무 길었지 미안해, 저기 음식이 나오네. 어서 먹어야지. “
영숙이는 공갈대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어떤 최면술이라도 걸린 것 같은 착각 속으로 빠져
드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친구의 이름이 생각이 나서 깔깔 웃고 말았다.
그 전에 한반에 다니다가 서울로 이사를 간 여자아이 동 차주의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걔는 성도 희귀성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다 좋아할 정도로 붙임성이 많은 아이인데다가 그
림을 잘 그렸는데 어느 날 선생님은 출석을 부르시다가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걔의 얼굴을
한번 보시고는 훗훗 하고 웃으셨는데 반의 아이들도 덩달아서 ‘와아’ 하고 웃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반 아이들이 웃은 것은 뒤 쪽에서 한 아이가 동 차주에게 손가락질을 하
면서 ‘똥차 주인’ 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름 이야기가 나온 김에 또 한 아이의 이름이 생각났는데 걔의 이름은 누가 들어도 한참을
오여도 제대로 발음이 되지를 않았다. 아버지가 서울에서 살다가 홍천 시골의 장남리라는
곳으로 이사를 와서 아이를 입학시켰는데 ‘ 박차고 나온 놈이 차돌박이’ 가 애 이름이었다.
아버지는 박 씨의 이름들이 너무도 비슷비슷하다 보니까 아이 이름을 아주 독특하게 짓는
다는 것이 이렇게 긴 이름이 되었는데 출석부를 부르시던 선생님은 걔의 이름을 부를 때
마다 또박또박 부르셨으니 틀리지 않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이름으로 해서 여러 가지 오해
를 받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보면 이름이야말로 부르기 쉽고 보편적으로 누가 불러도 그냥 아
무관심도 두지 않고 지나가는 이름이라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공갈대는 영숙이에게 연애편지를 보내기 시작하였는데 거의 이틀에 한번 꼴로 하
는 것이었으니 영숙이는 그 편지를 혹여나 엄마나 아버지가 보시면 어떻거나 하고 마음을
조리면서 또 한편으로는 장애를 가진 처지에서 그를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더는 만나지
말자고 결별의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렇지만 공갈대는 그것이 무슨 문제냐면서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왔다.
속담에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 없다’는 격으로 영숙이도 그의 인간됨을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꼬리가 길면 밟힌다더니 어느 날 시내에 나갔다가 공갈대를 만나서 짜장면을 먹고
나오다가 천만 뜻밖에도 아버지에게 정통으로 들키고 말았다.
사실 영숙이는 지금까지 학교에서 끝이 나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날 아버지를 만나
게 된 것은 수업이 끝나고 나서 공갈대가 급하게 만날 일이 있다고 해서 만나니 짜장면을
혼자 먹으려다가 생각이 나서 불러서 갔다가 우연히도 아버지를 만났던 것이다.
이날 밤에 영숙이는 아버지 앞에 불리 켜 갔는데 아버지는 지금까지 영숙이를 사랑해주시던
것과는 딴판으로 붙들어 앉히고는 계집애가 언제부터 남자 아이를 만났느냐면서 회초리로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때리는 것이었으니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맞는 매라서 아프기도
하였지만 너무도 서러워서 엉엉 울고 말았다.
아버지는 아직 학교도 졸업을 하지 않았는데 남여가 함께 음식점엘 들어가는 것은 아버지
얼굴에 똥칠을 하는 것과 같다면서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려거든 집에서 나가 없어지라고
까지 극단적인 말씀을 하시기까지 하셨다.
사실 그날 아버지에게 들킨 때는 아버지가 은행에 갔다가 몹시 기분이 상한 상태로 돌아 나
오시던 때로 언젠가 사업을 하는 친구가 급전이 필요하다면서 6백만 원을 석 달간만 빌려
달라고 하여 아버지는 거절할 사이도 아니어서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무 문서도 받지
않고 꾸어 주었다.
그런데 입금해 주기로 한 그 날짜가 되어 은행엘 가니 친구는 은행 계좌까지 파기한 상태라
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 맥없이 나오던 차에 딸을 만난 것이다.
영숙이는 지금까지 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면서 자라왔고 칭찬만 받으면서 살아오다가
의외의 야단을 맞은 다음부터는 아버지가 무서워져서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시장에 나가서 남의 일을 돌봐주시는 엄마는 아버지에게 딸이 혼이 났다는 소리를 들으시
고는 네가 잘 되라고 하신 말씀이니 괘념치 말라고 하셨지만 사춘기에 접어들어서 그런지
딸의 마음은 도무지 아버지가 점점 싫어졌다.
“ 내가 이집에서 나가야 하겠지. 아버지가 그렇게 미워하시는데 내가 뭣 하러 이집에 있는
거냐고 맞아 난 집에서 없어져야 해, “
영숙이의 마음은 지금까지 한 번도 상상치도 못했던 상념들이 그의 머리를 그물망처럼 얽
히게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소아마비를 앓아서 장애를 가지게 된 딸을 볼 때마다 엄마가 잘못해서 딸을 저렇
게 만들었다는 자격지심에서 딸에 대해서 늘 미안하고 가슴을 아파하시며 하고 싶은 말도
주의를 하시며 언짢으신 말씀을 한 번도 하시지를 않았다.
그렇지만 이튿날 등교를 한 영숙이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친한 친구네 집으로 바로
갔던 것이다,
‘여 소연’이라는 이 친구는 영숙이가 아버지에게 혼이 났다는 소릴 듣고는 “너는 아버지에
게 야단을 맞을 수 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냐. “ 하면서 오히려 영숙이를 부러워하였지만
영숙이는 아버지가 싫어서 나왔기에 아무 대답도 하지를 않았다.
“ 음,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샘터에 물이 넘치는 모양이구나.”
영숙이는 친구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 샘터에 물이 넘치다니 그게 무슨 말이니.”
“ 넌 한 여름에 비가 많이 올 때에 산속의 샘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는 것을 알고 있겠지.
그러다가 가을철이 되면 어떤 샘은 말라버리는 수가 있는데 혹시 네가 관리하는 샘터는 어
떤지 그게 궁금하다. “
“ 난 지금 네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무슨 뜻이냐."
“ 정말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단 말이냐. 나이가 그만큼 먹었으면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너는 아직 먼 것 같구나. 다시 말해서 너는 남녀에 대한 생리학에
대해서 연구 좀 단단히 해야 하겠다. 샘터에 물이 넘치게 되면 밭둑이 넘치고 강물에 모든
것을 휩쓸어 가듯이 사람의 마음에 엉뚱한 생각들이 쌓인다는 것이지 다시 말해서 사춘기를
벗어날 무렵이면 어른과 대등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이른바 쟁탈전 같은 것이 마음에서 요동
치기 때문에 부모에게 꾸중이라도 듣게 되면 그것을 참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온다는 거야.“
“네가 철학을 공부하였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는데 우리 학교 철학 선생님보다도 고차적인
말을 하니 내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 하하. 난 네가 굉장히 똑똑한 줄 알았더니 내 생각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데 솔직히 말해서 너는 지금 네 처지가 어떤지도 모르는 것만 같아서 안타깝기만 하다. “
“ 너 같으면 어떻게 할 셈이냐.”
“ 나 같으면 집에서 가출을 하지 않을 거야 잠자코 아버지의 말씀을 새겨듣고 다시는 불장
난을 하지 않겠다고 맹서를 하였겠지. “
“ 난 지금 아버지가 싫어졌는데 어떻거면 좋으냐.”
그러자 소연 이는 영숙이의 손을 잡더니 조용히 말을 하였다.
“ 너는 아버지가 무섭다고 하였지만 자식 잘 되라고 회초리를 들으신 것을 나쁘게만 생각하
지 않는 것이 좋지 않니. 오늘 넌 집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리 집엘 왔는데 그것은 네
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야. 내일 너는 무조건 집으로 돌아가야 해. “
그러자 영숙이는 소연이의 의견에 반기를 들었다.
“ 소연아. 나 이참에 집을 아주 나갈까 생각중이야. 어젯밤에 밤새도록 생각을 하였는데 아
버지가 무서워서 다시는 집에 들어가고 싶지를 않단 말이야. “
“ 영숙아 너 지금 알고 지나는 남자아이와 어떤 사이이냐.”
“ …………….”
“ 어느 정도 그와 알고 지냈느냔 말이야. 나는 잘 모르지만 지금 같은 때가 가장 주의를 해
야 되는 시기라고 아는 언니가 말을 하더라. “
“ 너 지금 같은 시기라는 게 무슨 말이냐.”
" 그건 네가 더 잘 알 텐데 그러니. “
“ 난 통 모르겠는데 자세히 말 좀 해보아.”
“ 원래 지집아들은 자기의 비밀을 남에게 알리려 하지를 않는다지만 걔에게 혹시 너의 모든
것을 준 것은 아니니. “
“ 내가 걔에게 줄게 뭐가 있니.”
“ 아직은 그렇지를 않은 모양이니 다행이다.”
“ 철학자의 말을 통 못 알아듣겠네.”
“ 곡식도 여물어야 타작을 한다지만 이제 너도 차츰 여물어 가겠지.”
“ 우리 쉬운 말로 하자. 철학적인 용어는 빼놓고 말이야.”
“ 그래 그러자. 그럼 이참에 우리도 어디로 도망 한번 가면 어떨까.”
너무도 뜻밖에 소리를 들은 영숙이는 그의 귀를 의심하면서 물었다.
그러자 가만히 한참을 있던 소연 이는 그 얘기는 잠자코 나중에 하자고 회피를 하여 그날
은 그렇게 잠을 잤다.
그런데 문제는 영숙이네 집에서 소동이 났던 것이니 학교엘 갔던 영숙이가 집에 아무 연락
도 하지 않은 채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숙이는 그날 이후 학교에 등교도 하지 않고 소연이네 집에 있으면서 전날 소연이가 한 얘
기가 무슨 뜻인지 궁금하여 물었다.
그런데 소연이의 말을 들은 영숙이는 깜짝 놀랐던 것이니 그 것은 다름이 아니고 다방엘
나가시던 소연어머니에게 어떤 남자가 생긴 것을 소연이가 알고부터는 어머니를 자유롭게
해드리기 위해서 집을 나가는 게 어떤가 하고 여러 날을 생각하고 있던 중에 영숙이의 사정
을 듣게 되었다.
소연이의 이야기를 하자면 소연이의 아빠는 전기회사의 직원으로서 소연이가 초등학교를 졸
업을 할 때까지는 단란하게 살았는데 어느 추운 날 전봇대에 올라가서 작업을 하시다가 바
람이 갑자기 부는 바람에 전깃줄이 꼬여 감전이 되어 아버지는 그 즉시 감전으로 돌아가셨
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소연이가 중학교 2학년쯤 되자 어머니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
해서 다방에 나가셔서 허드렛일을 하시기 시작을 하였는데 3년쯤 지나면서부터는 밤에 일
을 끝내고 들어오실 때에 간혹 술을 잡수시고 들어오시는 가 싶더니 어느 날은 밤늦게 들
어 오시더니 혼자서 우시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 다음부터 소연이는 엄마에게 남모를 고민이 생겼다는 것을 짐작하고는 어머니가 직장에
서 돌아오시면 어머니의 시중을 다른 때보다 더 잘 해드리느라고 하였는데 어머니의 인상
은 좀처럼 펴지지를 않아서 소연이는 엄마에 대해서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밤에는 다른 날보다도 아주 늦게 술이 잔뜩 취해 들어오신 어머니가 딸을 앉혀
놓고 하시는 말씀이 네가 없으면 내가 팔자를 좋은 데로 고쳐 갈 텐데 하더니 엉엉 우시었
다.
딸은 워낙 어머니가 술이 많이 취하신 상태라서 꿀물을 타드리고 억지로 아기처럼 재워드
렸는데 이튿날 어머니는 어제 저녁의 하신 말씀을 전혀 기억을 하시지 못하시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어머니는 그날도 밤늦게 들어오시더니 그냥 쓸어져서 주무시다가 잠꼬대
를 하시는 소리를 들으니 어느 남자와 거래가 있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소연이는 엄마의 쌓여가는 깊은 고민을 생각해서 어떻게 위로해 드릴까를 생각하다가 아무
래도 집을 나가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을 때에
영숙이가 나타난 것이다.
영숙이가 막상 가출을 하였지만 소연이의 말대로 라면 일단은 둘이 함께 가는 것이 좋을 듯
싶었는데 문제는 소연이가 엄마에게 허락을 받고 집을 나가느냐 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않
고 나가느냐 이었다.
그런데 하루 동안을 생각한 소연이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놓고 가는 것이 어머니에게 다소
나마 걱정을 덜어드리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둘의 의견이 접근이 되자 이번에는 가는 장소를 어디로 정할 것이며 우선은 먹고 자고 하
는 해결을 무슨 방법으로 할 것이냐가 고민으로 떠올랐다.
영숙이와 소연이는 일단 가출을 한다면 아는 집을 찾아가서 며칠간이라도 머물다가 직장을
찾던가 아니면 어디 가서 알바라도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둘이 아는 집을 알아보니 영숙이도 소연이도 찾아갈만한 집이 없었으니 둘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영숙이가 소연이에게 누가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하자 소연이는
영숙이의 얼굴을 보더니 그의 뒤로 손을 넣었다.
영숙이가 깜짝 놀라자 그는 태연하게 웃기만 하였다.
“ 야.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 내가 뭘.”
“ 뭘 이라니 너 지금 손으로 방금 내 궁둥이를 만지지 않았니.”
“ 그랬나. 아무것도 없던데.”
“ 그건 또 뭔 소리니.”
“ 이렇게 아둔해서야 어디 남자 하나 제대로 다루겠나. 원.”
“ 너는 어제부터 그렇게 이상한 소리만 골라하냐.”
“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그 남학생이 너의 꽁무니를 따라다니게 되었는지 그게 궁금하
다.”
“ 오라 이제 네가 내 궁둥이를 만진 뜻을 알겠다. 아무리 만져도 꼬리가 있을 리는 없을거
다. 그 순진한 남학생은 내 입에서 흘러나가는 멜로디의 바람을 보고 쫓아온 아이였어. “
“ 그렇지 네가 웅변대회에 우승을 하였다고 하였지, 그때 대보름날에 띄운 연이 대추나무
에 걸리듯이 그 남학생이 걸려들었구나 . 그런데 그 집에서 우리를 재워주기나 할까. “
“ 일단은 내가 오갈 데가 없으니 공 갈대의 집으로 가는 방법을 연구해 보자.”
“ 연구할 것도 망설일 것도 없을 것 같다. 우리 엄마는 내가 편지를 써놓고 가면 처음에 며
칠 간은 딸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서 근심을 하시겠지만 어머니의 성격으로 보아 곧 잊어버
릴지도 몰라. 그리고는 혼자서 말씀을 하시겠지 “아이들은 머리가 크게 되면 어차피 시집을
보내야 하는데 그러자면 얼마나 힘이 들겠어. 지가 미리 알아서 나가서 자리를 잡고 혹시나
오다가다 신랑이라도 제대로 만나게 되면 그것이 효도일지도 몰라 .“ 아마 어머니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실거야. 영숙아 나는 그렇다 치고 네가 문제일 것 같다. 어디 말 좀 해보아라.“
“ 어제까지 엄마 아빠 슬하에 있다가 막상 객지로 나갈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를 않긴 하
지만 ‘산 입에 거미줄 치랴’ 는 속담도 있듯이 어디가면 밥이야 굶겠냐. “
“ 어쭈 이젠 제법 진실한 말도 할 줄 아네. 당장 내일이 걱정인데.”
“ 공 갈대가 하는 말이 내 손을 결코 놓지 않는다고 하였어.”
“ 얘 너 그런 말을 믿냐 . 남자들이라는 게 다 도독 놈이라는 말을 우리 엄마는 만날 입에
다가 달고 사시더라. 너는 그 뜻이나 알고 하는 말이냐. “
“ 그 뜻을 내가 어떻게 알아.”
“그렇다면 솔직하게 한 가지 물어나 보자. 너 혹시 천안삼거리에 태극기 꽂는다는 소리 들
어 봤니“
“ 얘는 이따금씩 아리송한 말을 하니 내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 네가 하도 내 말을 못 알아들으니 자세히 물어보자, 최전방 진지까지 탐색을 해본 적이
있기나 하냐. “
“ 최전방이면 철원이나 연천 지방인데 그런데 가 본 적이 없는데.”
“ 최전방까지 공격을 아직은 당하지를 않은 모양이구나. 그러니까 그 학생이 죽자 사자 하
고 편지를 보내겠지. 정말 진실로 그 학생이 너를 사랑한다면 너야말로 그 사람을 절대로
놓지를 말아야 하겠다. “
“ 이제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 그런데 너는 어서 그런 고차적인
이론이라고 할까 상식이랄까를 알게 되었니. “
“ 이제 너에게 이야기지만 나에게도 한때 그런 남자아이가 내 주위에서 맴을 돌때가 있었어
야. “
“ 야 너를 반에서는 아주 얌전한 시골애로 취급을 했었는데 너에게도 사내아이가 따른 적이
있었다구. 얌전한 개가 부뚜막에 먼저 기어 올라간다더니 너에게도 남자를 끌어내는 장끼가
있었던 모양이구나. “
“그런데 말이다. 방금 고지에 태극기 꽂는다는 말을 하였지. 이 아가 글쎄 사귄지 며칠이
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강가로 산책을 가자고 해서 따라갔더니 주머니에서 손바닥길이의 자
그만한 태극기를 하나 꺼내더란 말이야. 야외에 나가서 태극기를 보니까 얼마나 신기한지
이것을 어디다가 쓸려고 가지고 다니느냐고 하니까 그는 아무 말 없이 숲속의 모래가 쌓여
있는 곳에다가 그것을 꽂고는 여러 번 손으로 다독거리는 거였어. 그런데 한참을 그렇게 하
고난 뒤에 내 귀에다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하는 말이 “ 나 너에게 태극기를 꽂고 싶은데
하는 거야,“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를 쳐다보니까 대번 나에게 달려들면서 나를
넘어트리는 거 있지 그제야 나는 그가 무슨 짓을 할려는건지 알아차리고는 모래 한줌을 집
어서는 그의 얼굴에다가 뿌리고는 걸음아 날살려라 하고는 쫓겨 나왔단다. 그때 태극기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 “
“ 그랬었구나. 그러니 남자들을 도둑놈이라고 하는 말이 일리가 있다는 말이네.”
소연이네 집에서 이틀을 묵은 다음 영숙이와 소연이는 함께 남학생의 집으로 일단은 찾아가
기로 하고 소연이는 엄마에게 편지를 섰다.
그 내용은 엄마에게 더 이상 누가 되는 딸이 되지 않기 위해서 가출을 하는 것이며 친구인
영숙이와 함께 기기로 한곳은 바닷가 관광지에 가서 함께 알바를 할 계획이며 1년쯤 있다
가 엄마에게 경과를 보고드릴 것이며 나가서 정 고생이 된다면 그때는 어머니에게 다시 돌
아 가겠다고 썼다.
소연이는 어머니가 워낙 일찍 직장엘 나가시기 때문에 그날이 지나면 어머니를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아서 일찍 일어나서 어머니 시중을 들어드렸다.
“ 네가 오늘은 웬일로 일찍 일어났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어미 걱정일랑 하지 말
고 너만 잘되면 엄마는 그 이상의 바람은 없어 알지? 사랑하는 우리 딸, 그럼 엄마는 일찍
간다. “
엄마의 나가시는 뒷모습을 보던 소연이는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 엄마. 미안해 사랑해.”
영숙이는 아침 늦게야 잠이 깨었다.
어제 저녁에 늦도록 소연이와 얘기를 하다가 내일 친구네 집엘 가기로 하였으나 사전에 아
무 연락도 하지를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침을 먹고 나자 소연이는 집안을 깨끗이 정
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집이라 생각을 하니 이번에 갑자기 가
출을 결심한 것이 잘못된 생각은 아닌지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막상 어머니의 요즘의 근황
을 생각하면 그의 결정이 잘 한 것 같기도 하였다.
아침을 먹고 나서 집안을 한 바퀴 돌아본 소연이는 속으로 엄마에게 미안한 생각이 자꾸 들
었다.
대문을 나서게 되자 소연이는 한참동안이나 대문 밖을 떠나지를 않는다.
“ 소연아 네가 결정한 이 순간을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보거라. 지금이라도 후회가 된다면
너는 집을 떠나지 말아 나 혼자 갈 테니까. “
“ 그게 무슨 말이니, 나는 오늘 너와 함께 집을 떠나기로 하였고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
어. 단지 혼자 사시는 엄마를 두고 떠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서
엄마의 새 삶을 펼치실 수가 있을 거야. “
“그래 누구에게나 갑작스럽게 살아가는데 대한 변화가 일어난다면 당황하게 되고 어떤 미련
을 갖게 되는 것이겠지만 그것을 극복함으로서 어떤 목표를 달성할 수가 있다는 생각을 하
면 과감하게 한번 생각한 것을 밀고 나가는 뚝심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우리 이제부터 용
기를 잃지 말고 나가자. “
영숙이가 그 말과 동시에 오른 쪽 손바닥을 높이 쳐들자 소연이도 손을 들어서 마주친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순간 희비가 교차하는 듯 한 햇살이 얼굴을 스치고 있었다.
읍내에서 시골로 가는 버스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손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들려 있는가.
하면 한 시간에 한 대씩 있다는 차라서 그런지 차안에는 손님들이 가득하였다.
영숙이와 소연이는 앞자리를 차지할 수가 없어서 맨 뒤로 가니 겨우 두 사람이 앉을 수가
있었다. 자동차는 꽤 오래 되었는지 출발시간이 다 되어도 떠나지를 않더니 기사가 하는 말
이 갑자기 바퀴에 이상이 생겨서 그러니 차에 탄분들은 잠시 내렸다가 다른 차로 바꿔 타
라고 하여 영숙이와 소연이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내렸다.
잠시 후에 같은 모형의 차를 타게 되었는데 둘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뒷좌석으로 가서 자리
를 잡으니 차가 곧 출발을 하였다.
가로수는 차가 달릴 때 마다 스쳐 지나가고 들에는 누렇게 익은 곡식들이 황금물결을 이루
고 있어 아름다운 경치에 잠시 마음을 빼앗겼지만 영숙이의 마음속에는 자꾸만 아버지가 무
섭게 나무라시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기분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 때 소연이가 가방에서 무엇을 꺼냈는데 거기에는 초콜릿 두 개가 손에 들려져 있었다.
“ 너 어제 보니 초콜릿을 꽤 좋아하는 것 같아서 사왔다.”
영숙이가 그 소릴 들으면서 문득 아빠의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는데 아빠는 그때 영숙이 생일이라고 초콜릿 한 곽을 사주셨는데 그
맛이 얼마나 좋은지 영숙이는 자주 아빠에게 초콜릿을 사달라고 하면 우리 딸이 좋아하는
초콜릿 사다주고말고 하시며 한 곽씩을 사다 주셨다.
초콜릿을 한입을 베어 물다가 아빠생각에 영숙이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지만 소연이가 볼까
봐서 밖에만 내다보았다.
마침내 버스가 1시간이 넘도록 시골길을 가다가 공 갈대가 산다는 근방의 지서 앞을 지나
자 순경이 손을 들어 차를 세운다.
“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순경은 차에 올라오면서 차안을 한 바퀴 눈으로 훑더니 차 안으
로 들어오고 있었다.
영숙이와 소연이는 차의 맨 뒤꽁무니에 타고 있었지만 차를 타면서도 혹여나 누구 아는 사
람이라도 만나게 되면 어쩌나 하고 얼굴을 가릴 생각으로 맨 뒤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순경이 차를 세우고 검문을 한다는 소리를 생전 처음으로 들은 둘은 이런 광경을 처음으로
보게 되자 겁이 덜컹 나기 시작을 하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혹시 누가 물건이나 돈을 잃어버려서 순경이 범인을 잡기 위해서 올라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났지만 또 한편으로는 영숙이의 아버지가 지서에다가 신고를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나기에 둘은 얼굴을 될 수 있는 대로 밑바닥으로 숙이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자니 순경의 발소리가 점점 뒤로 오는 느낌이 들었는데 나중에는 걸음이 멈춰
진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 순간 영숙이와 소연이는 꼼짝을 하지 않은 채 눈을 감고 있었는데 무슨 소리가 들리는
데 얼른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다음 말은 똑똑하게 들렸다
“ 학생 얼굴 좀 들어볼래요.”
영숙이기 먼저 고개를 들고 소연이가 나중에 눈을 뜨자 양쪽 어깨에는 무궁화 계급장이 번
쩍거리는 순경아저씨가 앞에 서 있었다.
순경은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더니 어디를 가느냐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 시골 가는데요.”
옴츠러드는 말을 소연이가 하자 순경아저씨는 잠시 있더니 앞으로 오라는 손짓을 하였다.
“ 잠시만 내려 볼래요.”
영숙이와 소연이의 얼굴은 금방 추석날 달밤에 장독대 바구니에 담겨있는 하얀 송편처럼
굳어지고 있었다.
" 계간 농민문학 109호 ( 2019 가을호 ) 발표
金 斗 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