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52
행복공식
행복하냐고? 원숭이 바나나 까먹는 소리 하지 마. 어떤 여자들은 팔자가 늘어져 비행긴지 크루즌지 전세 냈다고 하는데 몸뻬바지가 외출복인 주제에 행복은 개뿔. 냄새나는 영감이 살가워서 손뼉 치겠어, 장날 파장에 고등어 한 마리 덤으로 얻었다고 잔칫상 차리겠어! 사는 재미? 임플란트 공사에 밤마다 삭신까지 쑤셔봐, 저승사자가 딴 집으로 갈까 걱정이지. 그렇게 웃을 일이 없냐고? 지아부지 생일 때 딸내미가 휴대폰에 지 딸내미 박아 놓고 갔는데 그게 아른거려 하루에도 서너 번 열어봐. 카톡 프로필인가 뭔가 하는 사진에 외손녀가 내 얼굴여.
어떤 경제학자의 충고다. 행복해지려면 부질없는 욕심을 거두어야 한다. 이같이 욕망을 줄여야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고전적인 주장으로 ‘욕망충족이론’에 기초한다.
1970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사무엘슨(Paul Samuelson)은 행복을 공식으로 만들었다. 즉 행복은 소유를 욕망으로 나눈 정도로 결정된다. 이 단순한 논리대로라면 분자인 소유를 늘리거나, 분모인 욕망을 줄여야 행복해질 수 있다. 이를 뒤집어 보면 불행은 소유의 결핍이다. 따라서 욕심만큼 가질 수 없어 불행하니 소유를 늘리는 것보다, 욕망을 줄이는 것이 현명하다.
경제학자만 별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긍정심리학자인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도 행복공식을 만들었다. “행복=S+C+V”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순간적인 행복이 아니라 영속적인 행복을 의미한다. S는 유전적 특성처럼 이미 설정된 행복의 범위(set range)이고 C는 우리가 처한 삶의 상황(circumstances)이다. 예를 들어 돈, 결혼, 나이, 건강, 교육, 인종, 성별, 종교 등 여러 삶의 상황들이 우리의 행복에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이다.
이런 행복요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부정적인 요소들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 V(voluntary control)다. 생물학적 불리한 특성이나 처한 상황들을 긍정적인 환경으로 변화시킬 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통제능력 V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극대화하는 노력으로 키울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용서 그리고 감사의 심성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신체적 약점과 빈곤을 극복하고 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 더 존경스러운 까닭이다.
얼마 전 권남훈 건국대학 경제학과 교수가 소개한 두 편의 논문이 눈길을 끈다. 먼저 SNS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 SNS에 접할수록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작년 말 미국의 3대 경제저널에 실린 이 논문은 페이스북이 초기에 대학별로 이용 가능 시점이 달랐던 점에 착안하여 자연실험으로 이루어졌다. 미국의 775개 대학 43만 명을 대상으로 하였다니 표본집단 수가 상당하다.
이 연구에서 SNS의 이용은 우울증을 24%까지 증가시키고 학업성적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원인은 비교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란다.
행복에 관한 또 다른 논문은 더 흥미롭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의 사회학자가 공동으로 참여한 연구는 중국 황하강 유역의 농민을 대상으로 했다. 연구의 동기는 강물을 끌어들여 벼를 재배하는 지역의 농민과 강물을 이용할 수 없어 밀을 재배하는 인근 농민들 사이에 행복감이 다르다는 데 있었다. 이 연구에 의하면 벼를 재배하는 지역 사람들은 밀을 재배하는 사람들보다 소득과 지위나 직업에 따라 행복감에 미치는 영향이 2배나 높았다.
이런 차이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데에서 온다는 점에서 SNS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같다. 다시 말하면 밀을 재배하는 농민들은 독립적인 데 비하여 벼를 재배하는 사람들은 작업에 협동이 필요하고 그만큼 사회적 연결성이 높으며 그 사회적 관계에서 비교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세계국가별로 확대하여 분석했는데 아시아권만 하더라도 벼를 재배해 온 지역의 국가들일수록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물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사무엘슨의 행복공식대로라면 한국인들은 과도한 욕망의 소유자들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은 3,628만 원으로 세계 22위권이다. 반면 2020년 기준 『유엔행복보고서』를 보면 충격이다. 세계 각국 국민의 행복도 조사에서 한국은 62위로 OECD 국가 중 하위 그룹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맛집에서도 음식이 나오면 사진부터 찍는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 같은 인간 심리를 어떤 이는 악셀 호네트(Axel Honneth)의 ‘인정투쟁’에서 찾아 설명한다.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면 상실감과 결핍이나 굴욕감에 빠진다고 한다. 물론 인정투쟁이 지나치면 관종이 되고 다른 이의 인정투쟁을 관조할 여유에 다다르면 철이 든다.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가 주머니에 들어온다. 이 요물단지를 열어보면 그럴싸한 말과 화려한 사진들이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예를 갖추라는 부고나 청첩이 아니면 축하나 위문을 강요하는 문자이거나 돈을 내라는 청구서다.
정제되지 않은 시각은 이성의 추리를 방해할 때가 많다. SNS에 떠도는 허세의 인정 투쟁을 보면서 누군가의 자랑이 그가 연출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세상 사람이 다 그렇게 잘나고 잘 먹고, 잘 사는 줄 착각하면 분자인 소유가 작아지고 불행을 자처하는 공식에 말려든다.
알면서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또한 세상살이다. 몸뻬바지(일바지)를 외출복으로 아는 여자는 카톡에 만발한 꽃을 보다가 머리에 서리 내린 남편이 고등어조림에 쩝쩝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울화가 돋는다.
언제까지 화려할 것 같던 꽃들이 지고 있다. 행복을 연구한 사람들의 결론이다. 부정적인 사고로 소통하는 사람은 자기의 삶을 불행하게 한다. SNS를 줄일수록 행복도가 높아진다. 일바지에 더 짙은 사랑을 염색할 수 있다는 사실, 타자에 대한 사랑의 무늬가 없는 명예나 돈과 권력은 지는 꽃잎보다 추하다는 사실, 이 두 가지만 기억하면 고등어조림도 비리지 않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