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안믿는 놈들은 모조리...” 어떻게 진검승부할 것인가
우리나라는 전세계적으로 매우 특수한 나라이다. 이데올로기로 인하여 남북이 갈라져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가 하면, 남한 내부에서는 사상적, 종교적 갈등또한 심각하다. 특히 종교적으로 다수 종교가 없다보니 고만고만한 세력을 형성한 종교끼리 종종 갈등을 표출하고 있는데, 주로 기독교측의 공격에 기인한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그 도가 지나쳐 이제 불교의 경우 존립의 위기까지 걱정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깊은 산속에서 도를 닦고 있는 스님들은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절에만 있다보면 아마도 세상이 모두 부처님나라로 보여서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고 가혹하다. 고요한 절집에서 무사안일하게 도만 닦고 있기에는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하였다. 그렇다면 위기에 처한 불교를 구해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기독교의 측의 자비로운 처분만을 기대해야 할까.
종단도 스님도 나서지 않는다면 재가불자라도 나서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를 향하여 ‘진검승부’를 펼쳐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총과 칼을 들고 싸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상’을 바로 알리자는 것이다.
또 출가수행자들과도 진검승부를 해야 한다. 이 또한 총칼을 들고 싸우자는 것이 아니다. 출가수행자들이 스스로 나설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 주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진검승부를 펼치는 재가불자는 완전한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자신과의 진검승부를 펼쳐야 한다.
이렇게 기독교와 출가수행자, 자기자신과의 진검승부를 펼쳐서 모두 승리하였을 때 부처님의 가르침은 확고해 질 것이다.
첫째 기독교와의 진검승부이다.
기독교와 진검승부를 벌이려면 그들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특히 한국적 상황에서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영향력 있는 목사들의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도를 하려면 진도개처럼
개그맨보다 더 웃긴다는 ‘장경동목사’는 늘 뉴스메이커이자 동시에 ‘트러블 메이커’이다. 그는 불교와 스님을 비하하는 발언을 밥 먹듯이 하고 있는데, 최근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불신자는 애 낳지마라, 모두 지옥갈것인데 뭣하러 낳는가? 전도를 하려면 진도개처럼 해야 한다, 물면 놔주지를 마. 예수 믿는다고 할때까지. (장경동목사)
예수천국불신지옥
예수를 믿을때 까지 끝까지 진도개처럼 물고늘어지자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은 애를 낳을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은 이 세상에 살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목사의 말에 신자들은 모두 “할렐루야!” “아멘!”을 연발하면서 훌륭한 목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놈들은 모조리
다음으로 ‘전병훈목사’가 있다. 그는 정치적발언으로 유명한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예수님 나라 만들기 간단하다. 국회를 1백프로 점령하고 299명 다 채워서 예수 안 믿는 놈은 감방에서 5년. 얼마나 좋아. 내가 군사독재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생각이 보통 독재가 아니다. 끝까지 (예수) 믿으라고 해서 안 믿으면 섬을 하나 정해놓고 중들을 집어넣고 헬리콥터로 컵라면만 떨어뜨리자. 예수도 안 믿는 인간들이 왜 살어” (전병훈목사)
스님을 스토킹하는 전도사
예수를 믿지 않는 놈들은 모조리 잡아서 섬에 처넣고 죽여버리자는 말과 똑 같다. 그리고 국회를 모두 목사들이 점령하여 대한민국을 ‘기독교공화국’으로 만들자고 한다. 그렇게 되었을 경우를 한번 상상해 보자.
목사들이 국회를 장악하게 되면 가장 먼저 헌법부터 바꿀 것이다. 그 경우 ‘기독입헌제’가 되기 쉽다. 그 다음에 법을 만들어 모든 ‘우상숭배’를 금하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어 있는 ‘석굴암’도 바미안 석불처럼 파괴 될지 모른다. 도심의 조계사나 봉은사는 마치 ‘여리고성’을 함락하듯이 빙빙돌아가며 항복할때 까지 씨가 마를 때 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외에도 수 많은 목사들이 불교와 불교인을 능멸하는 발언을 할 때 기독교인들은 “할렐루야!” “아멘!” 하며 화답하였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공격적인 선교와 노골적인 불교폄하는 언제 부터 본격화 되었을까.
종교편향 행위내용
최근 불교평론에 실린 서강대 ‘박광서교수’의 논문(공격적 선교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따르면 김영삼 장로대통령 때 부터라고 한다. 그 동안 몸집을 불리고 체력강화를 해 온 보수 기독교가 그 남아 도는 힘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이 장로가 정권을 잡으면서 시작 되었는데, 최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제 공개적으로 노골화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기독교의 사적및 공적인 종교편향행위내용
두고 보고 있을 것인가
이처럼 수 없이 많은 종교편향행위가 사적인 영역에서 또 공적인 영역에서, 방송에서, 교육현장에서 남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과연 두고 보아야만 할 것인가. 불자들은 이런 현상을 접하면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진검승부를 하여 극복해 내야 한다.
기도세레모니
우리불자들은 기독교인들의 공격적인 선교행위와 지독한 불교 폄하 행위에 대하여 그저 마음속으로만 삭이어 왔다. 심지어 하나의 수행의 과정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이는 수행이라기 보다 ‘자기합리화’나 ‘자기기만’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불자들은 위와 같은 사적인 영역, 심지어 공적인 영영에서 벌어지는 종교편향행위에 대하여 ‘사회문제화’ 하여야 한다. 그래서 일반국민을 상대로 이를 이슈화하고, 인터넷에 띄워서 기독교의 세뇌공작행위를 고발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저절로 수그러들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불자들은 기독교들의 사적이고 공적인 영역에 있어서 변칙적인 선교행위에 대하여 진검승부를 해야한다.
둘째, 출가수행자와 진검승부이다.
재가불자가 출가수행자와 진검승부를 벌이는 이유는 스님들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스님들이 도시에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산중에만 머물러 있을 때, 도시에서 불교는 찾아 볼 수 없다. 그 결과 오늘 날 십자가 천지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 번 출가한 출가자들이 다시 세상속으로 되돌아 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가자들이 돌아 올 수 있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 그 방법은 “출가수행자보다 더 수행자다운 재가수행자”가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재가불자가 깨어나야 불교의 개혁도 이루어질 수 있고, 동시에 불교도 중흥 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출가자보다 더 수행자다운 재가불자가 될 수 있을까.
“무사보다 더 무사다운 무사가 되기 위하여”
몇 년 전 드라마를 보았다. 그 것은 일본드라마이었다. ‘신센구미(新選組, 2002년NHK작품)’라는 50부작에 가까운 대하 시대드라마이었다. 일본에서 도쿠가와 막부 말엽 ‘시대의 흐름을 막고자’ 막부에서 고용한 ‘낭사(浪侍, 떠돌이 무사)’들의 이야기이다.
이 드라마에서 흥미있게 본 것은 낭사들이 모두 미천한 신분이라는 것이다. 그 중에는 하급무사도 있었지만 농민출신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당시 일본에서는 가문과 신분에 따라 사회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는데, 그들은 농민출신들이 칼을 차고 상투를 틀고 다니는 것에 대하여 못마땅해 하였다.
하지만 농민출신 사무라이들은 상급무사의 차별과 냉대와 무시를 당하면서도 다짐을 하게 된다. 그것은 “무사보다 더 무사다운 무사가 되기 위하여”이었다.
무사보다 더 무사다운 무사가 되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은 오로지 ‘실력’밖에 없었다. 따라서 가문과 신분이 보잘 것 없었던 농민출신 사무라이들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피나는 연습을 하였고, 이런 실력은 장차 있을 ‘진검승부’에서 위력을 발휘하였다.
진검승부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일대일’ 승부로서 ‘누군가 한 명은 죽어야’ 한다. 상대방을 베지 못하면 자신이 베이게 되므로 ‘일격필살’의 정신으로 임하여야 한다.
이처럼 한 번의 진검승부를 위하여 오로지 자신의 검에 의지하여야 하는데, 그결과 농민들과 떠돌이 무사, 하급무사로 이루어진 미천한 신분들은 그 때 당시 사상 최강의 무사집단을 이루게 된다. 드디어 무사 보다 더 무사다운 무사가 된 것이다.
무사도에 어긋나면
이처럼 최강의 무사조직인 신센구미는 당시 수도인 ‘쿄오(京, 쿄오또)’의 치안을 맡고 있었는데, 무사보다 더 무사답게 하기 위하여 역시 ‘무사도’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무사도에 어긋나면 ‘할복 (割腹, 切腹, 셋푸쿠)’이라는 매우 엄한 자체규범이었다. 그런데 그 무사도는 간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느 때 신센구미의 서열 3위의 간부가 무사도를 어기는 행위를 하게 되었다. 무사도를 어겼을 경우 예외없이 할복이라는 초 강경 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간부는 스스로 할복하게 된다. 조직의 질서를 유지하려면 간부가 솔선수범을 보여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아끼는 후배에게 ‘가이샤쿠닌((介錯人, 뒤에서 칼로 목을 쳐주는 사람)’을 부탁하게 된다.
할복과 가이샤쿠 2002년 NHK 대하드라마 신센구미(新選組)에서
이처럼 미천한 신분으로 이루어진 낭사조직에서 무사보다 더 무사다운 무사가 되기 위하여 실력을 쌓고, 더구나 무사도까지 만들어 더욱 더 무사다움을 보여 주는 것이 드라마 신센구미의 내용이다.
신도가 아니라 수행자로
마찬가지로 재가불자들 역시 출가수행자 보다 더 수행자다운 재가불자가 되어야 한다. 단지 신도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리를 공부하고 수행을 통하여 부처님의 제자로 거듭나게 되었을 때 진검승부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무사안일에 빠져 있는 출가수행자들에게 자극을 주어야 한다. 출가자들이 해주기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실력을 키워서 출가수행자들 보다 더 수행자다운 수행자가 되었을 때 한국불교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되지 않을까.
셋째, 자기자신과 진검승부이다.
불교는 자각의 종교이다. 창조주나 초월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믿을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자기자신 뿐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연로하여 완전한 열반이 가까웠을 때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하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말라.
가르침을 섬으로 하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하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말라. (상윳따니까야 :47 , 사띠빳따나 상윳따9)
사람들은 누구나 위기에 처하면 누군가에게 의지 하고 싶어한다. 더구나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같은 경우 더 그렇다.
하지만 형성된 모든 것들이 무상함을 알고 오로지 연기적 흐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어디에도 의지 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자기자신을 섬으로 삼고, 가르침을 섬으로 삼으라고 하였다.
윤회의 바다, 고통의 바다에서
망망대해의 바다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섬이듯이, 윤회의 바다 또는 고통의 바다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섬과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자기자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고 실천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수 많은 난관을 겪게 된다. 그 중에 감각기관의 절제가 있다.
부처님은 감각기관의 절제에 실패하면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 하였다. 눈으로 대상을 볼 때 즐거움을 주는 대상에 대한 욕망을 버려야 하고, 마찬가지로 귀로 들을 때 유쾌한 소리에 매혹되지 말아야 한다. 냄새, 맛, 감촉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여섯가지 감각대상과 진검승부를 벌여야 한다. 이 승부에서 지면 즐거운 것, 유쾌한 것, 기분좋은 냄새, 맛있는 것, 감촉이 좋은 것의 노예가 되기 쉽다. 따라서 이것들으로 부터 감각기관의 문을 지키고, 도둑이 들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강력한 무기는 ‘알아차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알아차림이라는 지혜의 검만 가지고 있다면 그 어떤 진검승부에서도 단 칼에 베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진검승부의 시대에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수 많은 문제에 부딪친다. 간단한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지만 좀 복잡한 문제가 생기면 초월적 존재에게 떠 넘겨 버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상하고, 무아인 연기의 세계에서 믿을 것은 자기자신외에 믿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로지 자기자신만이 자신의 문제를 풀어 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지혜의 검’으로 자신의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문제를 헤쳐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매순간 승부를 벌여야 한다. 그 승부에서 때로는 질 수 도 있고 이길 수도 있다. 하지만 갈고 닦고 노력하다 보면 질 때 보다 이길 때가 더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매순간 이기는 싸움을 하는 것이다.
‘지혜의 검’으로
지금은 진검승부의 시대이다. 진검승부를 하면 누군가는 쓰러져야 한다. 불자라면 비장한 각오로 불교를 말살하려는 기독교도와 무사안일에 빠져서 산중에서 나올 줄 모르는 출가수행자와 매 순간 시험하려 하는 여섯가지 감각기관에 대하여 ‘지혜의 검’으로 승부하여 이겨야 하지 않을까.
2011-07-06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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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 고뇌의 강을 건너 원문보기 글쓴이: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