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0 창조 기사는 왜 두 번 기록되어 있으며, 그 두 번째 기사는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창 2:4)
창세기 1~2장에는 창조 기사가 두 번 기록되어 있다. 이 사실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독자들은 창세기 1장과 2장이 충돌되는 것처럼 보이는 기사를 읽으면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1장 11~12절에서 분명히 셋째 날에 풀과 채소와 나무가 창조되었는데, 2장 5절은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하여 마치 사람의 창조 후에 식물이 나는 것처럼 말한다. 또 1장 20절과 24~25절에서 분명히 새와 짐승들이 창조되었는데, 2장 19절에서 다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신다. 더군다나 1장에서는 "새가 날으라" "땅은・・・짐승을 종류대로 내라"고 명령만하시고 "그대로 되니라"고 기록되었는데, 2장에서는 그 새들과 짐승들을“흙으로…지으셨다"(2:19)고 말한다. 1장 26~27절에서 남자와 여자가 함께 창조되었는데, 2장 20~23절에서는 여자를 아담 창조 후에 그의 갈빗대로 창조하신다는 기사가 나온다. 그러나 이런 기록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모든 의문은 창조 기사가 다른 방식으로 두 번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쉽게 해소될 수가 있다.
그러면 그 기사는 어디에서 바뀌는가? 흔히 2장 3절까지를 첫 번째 창조 기사라고 하지만 조금 더 복잡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창세기 2장 4절과 관련된 문제이다. 한글개역은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였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가 부사절로 전반부절(a)이고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가 주절로 후반부절(4b)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히브리어 문장의 어순을 바꾸어 번역한 것이다. 그래서 개역개정은 어순을 바로잡아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4)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46)"로 번역하였다. 히브리어 문장의 어순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 그러면 두 번째 창조 기사는 개역개정이 바로잡은 2장 4절의 전반부(4a)에서 시작하는가? 아니면 후반부(4b)에서 시작하는가?
'내력'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톨도트를 기준으로 보면 4절 처음(4a) 부터 두 번째 기사가 시작된다. 이 단어는 개역개정 창세기에서 여기 2장 4절의 '내력'과 5장 1절의 “아담의 계보를 제외하고는 모두 '족보'(6:9; 10:1; 11:10; 11:27; 25:12, 19; 36:1; 37:2)로 번역되면서 매 번 새로운 문단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그러니 2장 4절에서도 이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문단이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경우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라는 문장이 두 번째 창조 기사의 서론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기준으로 보면 4절 후반부(4b)에서 두 번째 창조 기사가 시작된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3절까지는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매 절의 주어가 '하나님'(Elohim)이다. 그러나 4b부터 2장 25절까지는 역시 예외 없이 '여호와 하나님'(YHWH Elohim)이다. 그러니 새로운 주어가 사용되는 순간부터 두 번째 기사가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경우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라는 문장은 첫 번째 창조 기사의 결론이 된다. 많은 현대 영어 역본들이 4절 후반부(b) 바로 앞에 제목이나 간격을 두어이 구분을 따르고 있다.
이 두 개의 증거는 각각 너무도 분명하고 강력하여 어느 하나를 기준으로 선택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이다. 그래서 또 다른 증거를 찾아야한다. 그것이 '하늘과 땅'이라는 구절이다. 2장 4절에는 4a와 4b에 각각 한 번씩 '천지(天地)'가 두 번 언급된다. 그런데 그 표현 방식은 다르다. 4a에는 하샤마임 웨 하아레츠이다. 이는 창세기 1장 1절의 표현과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4b의 '천지'는 우선 관사 (7)가 없고 다음으로 어순이 '하늘과 땅'이 아니라 그 반대인 '땅과 하늘', 즉 지천(天)인 에레츠 웨 샤마임이다.
이런 표현의 차이는 4에서 1장 1절에 언급된 '그 하늘과 그 땅'에 대한 기록을 똑같은 단어와 표현으로 마무리하고, 4b에서 다시 '땅과 하늘', 즉 지천의 창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하겠다. 그것도 아주 이례적으로 그 순서를 뒤집어 표현한 것은 지금부터 창조 기사를 전적으로 '땅과 인간중심으로 다시 시작하겠다고 강조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 1~2장의 창조 기사는 2장 4절의 전반부로 마치는 첫 번째 창조 기사(1:12:4a)와 두 번째 창조 기사(2:46~2:25)로 반복 기록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면 이 두 창조 기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첫째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名]'이 완전히 다르다. 첫 기사는 일관되게 엘로힘(Elohim)이고, 둘째 기사는 일관되게 야훼 엘로힘(YHWHElohim)이다. 둘째는 첫 기사는 날짜순으로 기록되어 있고, 둘째 기사는 사람 중심으로 재구성되어 있다.
창세기 1장과 2장의 신명이 다른 것은 그 각각이 하나님을 다르게 인식한 문서에서 왔기 때문이라는 이론이 있다. 소위 고등비평이라 불리는 문서가설이다. 당연히 창세기의 모세 저작을 부인한다. 흔히 BC850년경부터 570년경까지 연대순에 따라 다른 시대에 편집된 네 가지문서인 JEDP 자료설로 불린다. 이 이론은 구약의 어떤 본문이 어떤 문서에서 왔는지 분석한다. 심지어 같은 구절도 갈가리 찢어 각기 다른 문서에서 온 내용들이 조합되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이 이론을 증명해 주는 어떤 외적 증거도 없다. 이름 그대로 '가설'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이 이론은 그것을 따르는 서클 안에서도 의견 통일을 이룬 적이 거의 없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창세기 1장과 2장에 사용된 하나님의 이름이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 각각의 자료가 다른 문서에서 왔기 때문이 아니라 각 장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와 기별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론을 바로 말하면 그것은 각 장의 주제와 일치시키기 위한 신학적 의도이다. 엘로힘은 권능의 하나님을 나타내며, 여호와는 언약의 하나님을 나타낸다. 창세기 1장의 주제는 지구를 중심으로 한 '권능의 창조'이며, 2장의 주제는 '인간을 위한 창조이다.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엘로힘을 만난다. 그리고 2장에서 그 엘로힘이 바로 인간을 위해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그들에게 금령을 선포하시며, 일을 주시고, 가정을 이루어 주시는 언약의 하나님여호와이심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