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일승보성론 제4권
9. 여래공덕품(如來功德品)
≪논≫ 이미 때[垢]가 없는 진여의 법신을 설하였고,
다음엔 저 때 없는 진여의 법신을 의지한 일체 공덕을 설하겠으니,
마치 마니 보배[摩尼寶]가 그 광명과 형색(形色)의 모든 모양을 떠나지 않는 것처럼,
여래의 법신 한량업고 그지없는 그 자성의 청정한 때 없는 공덕도 그러한지라,
이런 뜻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공덕에 의지하여 다음의 두 게송을 설한 것이다.
스스로가 이롭고 남을 이롭게 하는
그것이 제1의 이치 진리의 몸이니
제1의 이치 진리 몸을 의지하여
이 세간의 진리 몸이 있는 것이라
그 과(果)가 모든 것을 여읜 순숙(淳熟)한 가운데에
예순네 가지 갖가지 법과
모든 공덕의 차별이 구족해 있네.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먼저 자신을 성취하되
모든 불법을 주지(住持)하여야
제1의 법신을 섭취하여
남을 위해 주지할 수 있네.
모든 여래 세존이시기에
세간의 진리 몸이 있나니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은
처음 부처님 몸의 섭취하는 것이고
열 가지 힘과 네 가지 두려움 없음과
대장부(大丈夫)의 모습 등
저 법의 즐거움을 수용한 보신(報身)은
두 번째 부처님 몸의 섭취하는 것이네.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힘인가? 열 가지 힘 등
예순 네 가지 부처님 몸의 공덕을 밝힘이다. 어떻게 아는가?
바로 저 뜻을 의지해 아느니,
이 때문에 두 게송을 설한 것이다.
부처님의 힘은 금강저(金剛杵)이어서
지혜 없는 자의 장애를 부수되
여래는 두려움이 없으므로
대중 가운데 처하심이 사자와 같으니
여래의 특수한 법은
그 청정함이 허공과 같고
저 물 속의 달과도 같으므로
중생들이 이것을 두 가지로 보네.
여기서부터의 공덕품(功德品) 가운데 나머지 게송을 논한 것은
이 두 게송을 의지하여 차례로
저 열 가지 힘 등 예순네 가지 여래의 공덕을 나타내 보인다.
다라니자재왕경(陀羅尼自在王經)에 널리 설한 것과 같으니, 알아 두라.
처음 열 가지 힘을 의지해 이 때문에
두 게송을 설한 것이다.
도리에 계합하고 계합하지 못함과
과보와 업과 모든 근성과
믿음과 두루 이르름과
때를 여의는 모든 선정과
또는 과거세세를 기억함과
하늘눈과 적정(寂靜)한 지혜
이러한 등등의 여러 글귀를
열 가지 힘이라고 말하는 것이네.
또 네 가지 두려움 업음을 의지하여 이 때문에 세 게송을 설한 것이다.
여실히 모든 법을 깨달음과
모든 도(道)에 장애되는 것을 막음과
도를 연설함과 번뇌를 끊음이
이것이 네 가지 두려움 없는 것이라.
알 바의 경계에 있어서
필경 자타(自他)를 다 알되
스스로가 알고서 남을 알게 하는
이것이 곧 장애되는 길을 막는 것이며
능히 수승 미묘한 과(果)를 증득하되
스스로가 얻고서 남을 얻게 하여
자타의 이로운 진리를 설하는
이것이 곧 모든 곳에의 두려움 없는 것이네.
또 열여덟 가지 부처님의 특수한 법을 의지해 이 때문에 여덟 게송을 설한 것이다.
부처님은 허물이 없고 다툼이 없고
허망한 생각 등의 잘못이 없고
산란한 맘을 안정하지 않음이 없고
가지가지의 모든 생각이 없으시며
뜻을 조작하거나 마음을 두둔함이 없어
욕망과 정진에 물러나지 않고
염(念)ㆍ혜(慧)ㆍ해탈(解脫)과
해탈지견(解脫知見)에 물러나지 않으시며
모든 업에 지혜를 근본삼아서
세 세상을 알아 장애가 없으시니
이것이 열여덟 가지 공덕이고
또 나머지 말하지 않은 것이 이러하네.
세존의 몸과 입은 잘못이 없으므로
그 누가 와서 파괴하더라도
속마음에 움직이는 모양이 없으시니
이는 조작한 마음도, 버리는 마음도 아닌 것이며
세존의 욕망과 정진하는 생각과
청정한 지혜와 해탈지견은
언제나 잃어버리지 않으시니
이는 알 수 있는 경계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며
일체 모든 업 따위에
지혜를 근본삼아 전전(轉展)하사
세 세상에 장애가 없으시니
이는 광대한 지혜의 행함이 항상한 것이라.
이것을 이르되 여래의 몸이
큰 지혜와 상응(相應)하여서
저 크나큰 보리의
가장 수승 미묘한 법을 깨닫는 것이라 하나니
일체 중생들을 위해
큰 법 바퀴를 굴리사
두려움이 없는 수순 미묘한 법으로써
저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시네.
또 서른두 가지 대인의 모습에 의지하기 때문에 열한 게송을 설한 것이다.
발바닥의 모양은 편편하여
천 폭(幅)의 바퀴를 구족하고
발등은 높으면서 위가 두둑하고
이니녹왕(伊尼鹿王)의 장딴지와 같으며
손발은 모두 부드럽고
온 손가락이 다 가늘면서 길고
아왕(鵝王)과 같은 비단결의 손가락이고
팔뚝과 팔꿈치는 위아래가 두둑하며
두 어깨는 앞뒤가 편편하고
좌우 양편이 함께 원만하고
서면 손이 무릎까지 내려가고
말의 음경처럼 감추어져 있으며
키의 헌칠하고 단정함은
니구수왕(尼拘樹王)과 같고
몸매는 일곱 군데가 가득하면서
윗부분은 반은 사자와 같으며
위덕(威德)의 힘이 견고함은
마치 나라연(那羅延)과 같고
몸빛이 신선하고 청정하고 미묘하고
부드럽고 연함은 바로 금빛의 피부이며
깨끗하고 부드럽고 섬세하고 빽빽하게
한 구멍엔 한 터럭이 나 있으며
털은 보드랍고 연하게 위로 쓸리면서
가느다란 바퀴처럼 오른쪽으로 쏠렸고
몸엔 깨끗한 광명이 둥글게 돌려서
정수리 위의 모습이 높이 나타나며
목은 공작왕(孔雀王)과 같고
턱 모양은 사자왕(獅子王)과 같으며
머리털은 깨끗한 금정기의 빛이어서
마치 인타라(因陀羅)와 같으며
이마 위 백호(白毫)의 상은
온 낯에 청정한 광명이며
입에는 마흔 개의 이[齒]를 갖추어
두 어금니가 눈[雪]보다도 흰데다가
그 깊고도 빽빽하고 안팎이 환한
위아래의 이가 함께 다 가지런하며
가릉빈가(迦陵頻伽)의 음성처럼
묘한 음성이면서 길고도 먼 음성이고
음식은 씹어 넘김이 없으면서도
맛 가운데 최상의 맛을 얻으시며
혀는 가늘고도 엷고 넓고도 길고
두 눈은 순수한 검푸른 빛인데다가
눈썹이 마치 우왕(牛王)과 같고
모든 공덕은 연꽃과 같으신지라.
이같이 사람 중에 높은 이로서
서른두 가지 묘한 모습을 설하노니
그 낱낱 모습이 잡란(雜難)하지 않아
온 몸에 흠 잡을 것이 없으시네.
이 부처님의 열 가지 힘과
네 가지 두려움 없음과
열여덟 가지 특수한 법과
서른두 가지 대인의 모습을
대략 하나로 뭉친 이것을
예순네 가지 공덕이라 함이니, 알아두라.
게송으로 말한다.
예순 네 가지 공덕의
닦는 원인과 결가 갚음의
그 낱낱 각각 차별을
‘보녀경(寶女經)’에 차례로 설하였네.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밝힘인가?
앞서 모든 부처님, 여래 예순네 가지 공덕의
그 원인과 결과의 차별을 설한 것을 밝힘이다.
이 차례에 의지하여 ‘보녀경’ 가운데, 널리 설했으니, 알아두라.
다시 이 네 가지를 의지하여 차례로 네 가지 비유가 있었으니,
이른바 금강저(金剛杵)와 사자왕(獅子王)과 허공의 비유와
물 속 달의 비유 등 아홉 줄의 게송이 그것이라,
저 아홉 게송을 의지하여 대략 게송으로 말하겠다.
하물며 충돌하면 인자한 마음이 없어서
저 무심(無心)함과 같지 않나니
이 때문에 금강저, 사자왕의 비유와
허공 또는 물 속 달의 비유를 설함이네.
또 열 가지 힘의 금강저 비유에 의지해
이 때문에 두 게송을 설한 것이다.
도리에 계합하고 계합하지 않음과
과보와 근성과 중생의 모든 신근(信根)과
가지가지의 도 닦는 지위와
과거세 일의 온갖 차별을 아시며
하늘눈을 통하고 번뇌를 다 끊는 등
이러한 부처님의 힘 금강저로써
저 어리석음의 갑옷ㆍ산ㆍ답장ㆍ나무를
찌르고 부수고 흩고 끊어 버리시네.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인가?
게송으로 말한다.
모든 여래 여섯 가지 힘의
그 차례의 셋과 또 하나와
아는 바 경계 가운데에
삼매의 모든 장애를 여의며
또 나머지 번뇌의 장애를 여의는 것이
마치 저 무겁고 굳고 파괴할 수 없는
갑옷ㆍ담장 또는 나무들을
부수고 흩고 끊어 버림과 같으매라.
여래의 열 가지 힘도
마치 저 금강과 같이
부수고 흩고 끊으므로
이 때문에 금강저를 설함이네.
또 네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없는 사자왕의
비유에 의지해 이 때문에 두 게송을 설한 것이다.
마치 사자왕이
모든 짐승 가운데 자유로이
항상 산 숲에 처하여
모든 짐승들을 겁내지 않듯
사람의 왕이신 부처님도
모든 군중 가운데 처하여
겁내지 않고 잘 머물러
굳고도 힘세고 빠르시네.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인가?
대략 게송으로 말하겠다.
병고(病苦)를 알고 병고의 원인을 알아서
저 병고의 원인을 아주 여의고
성스러운 도의 묘한 약을 설하사
병고를 여의기 위해 멸(滅)을 증하며
모든 두려움을 아주 여의고서
힘차고 빠른 성(城)에 잘 머무시니
불왕(佛王)께서 대중에 계시어
그 두려움 없음이 사자와 같으시네.
일체 법을 잘 앎으로써
이 때문에 잘 머무시고
일체 곳에 겁내지 않음으로써
이 때문에 우치한 범부를 여의시며
이승(二乘)과 청정한 이로선
나에겐 견줄 이 없음을 봄으로써
일체 모든 법 가운데에
마음이 항상 안정되고 견고하시매라.
어째서 힘차고 빠르다 하는가 하면
무명(無明)의 머문 자리를 벗어나서
자유롭게 거리끼는 곳이 없으시니
이 때문에 힘차고 빠르다 함이네.
또 열여덟 가지 공동하지 않는 법의
허공 비유에 의지해 이 때문에 세 게송을 설한 것이다.
땅ㆍ물ㆍ불ㆍ바람 뜻을
저 법이 〈공〉 가운데 없고
모든 물질 가운데에도 없고
허공은 거리끼는 법이 없는지라
모든 부처님도 장애가 없으심은
마치 허공의 모양과 같은 것이고
여래께서 세간에 머물러 계심은
마치 물ㆍ불ㆍ바람과 같은 것이네.
그러면서도 부처님ㆍ여래의
그 모든 공덕은
또한 한 가지 법도
세간과 공동한 것이 없네.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인가?
대략 게송으로 말한다.
성문(聲聞)과의 공한 행[空行]과
슬기로운 이와의 자재함은
최상의 미세(微細)한 법이므로
이 때문에 다섯 가지 원소[五大]를 나타내 보임이며
모든 중생들 수용하는 것은
마치 땅ㆍ물ㆍ바람 같아서
세간도 떠나고 출세간(出世間)도 떠났으므로
이 때문에 허공의 요소[虛空大]를 설함이네.
서른두 가지 공덕이
법신을 의지해 있는 것이
마치 세간의 등심지[燈炷]의
밝고 따뜻한 빛ㆍ모양과 같으매라.
상응(相應)의 차별 없음이
모든 여래의 법신인 만큼
그 일체 모든 공덕의
차별 없음도 역시 그러하네.
또 서른두 가지 대장부의 모습인 물속 달의
비유에 의지해 이 때문에 두 게송을 설한 것이다.
가을 허공에 구름 한 점 없고
달이 하늘 또는 물속에 비추면
일체 세간의 모든 사람들이
죄다 달의 세력을 보는 것처럼
청정한 부처님 법 바퀴 속에는
모든 공덕의 세력을 구족했으므로
불자(佛子)로서 여래를 볼 때에
그 공덕의 몸이 또한 그러하네.
이 게송이 무슨 뜻을 나타내 보인 것인가?
대략 게송으로 말한다.
서른두 가지 공덕을
보는 이가 환희심을 내는 것은
그 공덕이 법신ㆍ보신ㆍ화신의
세 가지 부처님을 의지해 있기 때문이라.
법신은 청정하여 때가 없어서
모든 세간을 아주 여의고
여래의 바퀴 속에 있으므로
중생들이 이것을 두 곳으로 보지만
마치 청정한 물속의
달그림자 모양을 보듯이
이 서른두 가지 모습은
형상 몸을 의지하기에 그러함이니
저 마니 보배 구슬이
광명의 빛과 모양을 여의지 않듯이
형상 몸도 그와 같아서
서른두 가지 모습을 여의지 아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