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니샤드
1. 개요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궁금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존재가 그 뒤에도 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없다고 말합니다.
당신에게서 지혜를 얻어
이 문제에 대한 궁금증을 풀게 해 주세요.[1]
이것이 세 번째 소원입니다."
<<카타 우파니샤드 제1부 1장 20절>>
산스크리트 : उपनिषद् Upaniṣad [ˈʊpɐnɪʂɐd]
비밀의 교의(敎義), 심의서(深義書)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로 "스승에게 가까이 앉아 귓속말로 전해듣는 (진리)" 이라는 뜻. 힌두교와 불교 교리의 이론적 · 사상적 토대를 이루는, 동서양을 통틀어 자아에 관한 가장 오래된 철학적 사유들의 집대성. 대중에게 친숙한 업(業), 윤회(samsara) 등의 개념이 여기서 처음 정립되었으며, 언급한 두 종교뿐만 아니라 인도 철학의 근간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2. 우파니샤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진작에 신들[2]조차 의심을 품은 적이 있다.
그것은 너무 어려운 문제다.
내가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구나.
나찌께따[3]여, 그것 대신에 다른 소원을 말하라."
<<카타 우파니샤드 제1부 1장 21절>>
먼저 우파니샤드를 논하기 전에 베다에 관한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해설집(브라흐마나{Brahmana})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파니샤드는 베다 전통의 맨 마지막 단계에서 형성되었고, 그 내용이 가히 베다 사상의 결정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베다의 끝'이라는 의미인 '베단타'라고도 불린다.
베다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사람들[4]은 불, 바람, 천둥, 태양과 같은 자연의 힘을 형상화하여 자연신으로 숭배하고, 이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례용 서적을 전하고 모았다.
이렇게 만든 초기 베다시대에는 자연 신들에 대한 찬양을 중심으로 하는 제사가 가장 중요한 인간 행위로 여겨졌지만, 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점차 여러 자연 신들이 하나의 신(세계신, 일체신)으로 신이라기보다는 세계의 근원을 추구하는 사상으로 발전했다.[5] 우파니샤드는 이런 베다의 사상을 계승하여 이것을 신이 아닌 인간이 주체가 되는 사색의 장에서 존재의 본질(아트만), 세상의 참모습(브라흐만)에 관한 고찰로 발전시켰다.
주의할 점은 우파니샤드가 베다와 설정상 동격이 아니란 것. 어찌됐건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수많은 해설서들 중 하나일 뿐이다.[6][7]
2.1. 제사 제일주의에 대한 반기
"아버지, 그럼 저는 누구에게 바칠 건가요?"
<<카타 우파니샤드 제1부 1장 4절>
베다의 해설집들은 시대의 변화[8]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워진 각 베다의 내용을 분석하고 의미를 밝히기 위한 것이었는데, 제사 라는 행위에 치우친 해석에 반발한 사람들이 또 다른 해설집(아란야까(Aranyaka))를 통해 제사보다는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제사는 하나의 상징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베다의 상징을 신이 아닌 인간의 입장[9]에서 해석하고 발전시킨 것이 바로 우파니샤드다.
베다에서 우파니샤드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제사의 형식주의와 권위는 점점 강화되다가 마침내 강한 저항에 부딪힌다. 형식적인 제례의식보다는 정성이 중요하고, 신에게 제사의 대가를 기대하기보다 인간과 우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반대 주장이 나온 것이다.
업과 윤회의 개념도 이러한 저항으로부터 나왔다. 제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선한 행위를 하면 선한 결과를 받고, 악한 행위를 하면 악한 결과를 받는다는 업 사상과 업으로 인한 결과를 받기위해 사람이 반복해서 세상에 태어난다는 윤회 사상이 등장한 것이다.
3. 저자에 관해
"죽음의 신이여,
신들도 알고 싶어했고,
당신도 쉽게 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하시니
저는 더더욱 알아야겠습니다.
그처럼 심오한 가르침을 당신 말고 또 누가 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저에겐 이것 말고 아무런 소원도 없습니다.[10]"
<<카타 우파니샤드 제1부 1장 22절>>
우파니샤드는 어떤 철학자 개인의 철학이 아니다. 베다를 해설하는 전통에서 나타난 것처럼, 인도철학은 언제나 기존의 것에 해설을 붙이는 형식으로 발달했다. 베다과 기원전 1000년경부터 쓰여진 베다의 해설집에서도 계보의 흔적만 드물게 찾을 수 있을 뿐, 저자의 이름은 발견할 수 없다. 해설집의 마지막 부분인 우파니샤드도 철학자 개인이 아니라 전통을 중시하는 수많은 이름없는 철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긴 시간 동안 철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위키백과(…)라고 할 수 있다.[11]
이렇게 만들어진 우파니샤드의 형성 연대는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전 300여 년경이다. '우파니샤드'라는 이름이 붙은 우파니샤드 문헌은 200여 종이 있는데, 대표적인 우파니샤드들이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이때 형성된 우파니샤드들은 인간 존재에 관한 깊은 사색을 담고있고, 특정한 철학자들의 철학을 펼친 것이 아니라 수백 년간 많은 철학자들이 남긴 어록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수많은 해설집을 통해서 여러 가지 인도 철학의 갈래를 낳게 된다. 특히 그중에서도 특정 철학이나 종파에 관계없이 후대에 영향을 크게 미친 고전 우파니샤드 18종을 고古우파니샤드라 하며, 이 페이지에서는 이것만을 다룬다.[12]
4. 우파니샤드에서는 무엇을 찾는가?
"옴-[13]
브라흐만의 지혜를 구하는 자들이 서로 이야기하기를
과연 브라흐만은 세상의 근원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생겨났는가.
누구로 인해 우리는 살아 있는가.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 설 것인가.
브라흐만을 아는 자들이여!
누구에게 영감을 받고
우리가 이 모든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지 말해 보세.
시간, 본성, 필요성, 우연, 근원 물질, 자궁, 푸루샤.[14]
이것들이 세상의 근원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세.
이 모든 것들을 합한 것도
근원 아트만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으리오,
또한 아트만도 기쁨과 슬픔에 매이니
세상의 원인이 되지 못하네.
<<슈웨타슈와따라 우파니샤드 제1장 1절>>
우파니샤드의 가장 큰 주제는 신이 아닌 인간 존재에 관한 탐구다. 우파니샤드에서는 기존의 베다가 풍부하게 보여 주던 자연 신들과 신들에 대한 제사가 오히려 관심에서 멀어진다.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불신과 근원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베다의 형식주의를 누른 것이다.
4.1. 개략적인 이해를 위한 용어들
4.1.1. 아트만과 브라흐마
아트만: 산스크리트어에서 '호흡, 숨'을 뜻하며, 절대 변하지 않는 초월적인 자아를 뜻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육체와 대비되어 윤회해도 변하지 않는 영혼에 해당되며, 전 우주의 영원한 정수이자 영혼이며 모든 개인과 현상의 정수라고 한다. 달리 생기, 신체로 되고 자아, 지기, 영혼으로써 다시 본체, 만물에 내재되어 있는 영묘한 힘을 의미하고 아트만에 의해 세계 창조가 설명되고 우주의 본질이고 만물에 내재하여 우주의 모든 존재를 지탱하는 우주의 근본이자 보편적 원리 및 힘과도 같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언제나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편재성[15]을 띄고 있고 브라흐만이 우주 혹은 세계(혹은 우주에 퍼진 모든 것)라면 아트만은 개체를 표현하고 우주를 포함한 모든 존재의 내부에서 발견되는 생명력에 해당되는 영원한 자아를 뜻한다.
브라흐마(브라만 혹은 브라흐만): 산스크리트어에서 '힘'을 뜻하며, 우주와 일체 그리고 현상을 창조하고 우주 전체의 기초를 이루며[16] 이렇게 창조된 전 우주와 일체(혹은 우주만물)를 지배 및 통치하는[17] 근본 원동력에 해당되는 범신적인 우주령이자 절대신이자 우주의 절대정신이자[18], 곧 우주와 존재의 모든 것에 퍼져있고[19] 창조 전체에서 활동하는 보편적인 최고원리이며 궁극적이고 초월적인 현실로 달리 '변하지 않는 것', '지식', '무한'이라 할 수 있는 만물을 형성하는 법칙이자[20] 모든 것에 해당되고 우주만물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세계의 근원적 창조원리이며, 일체만물과 모든 현상과 존재들이 모두 브라흐만으로부터 나온다.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전체 우주 이자 만물에 편재하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스며드는 우주적인 최고의 존재이자 힘[21]이다.[22] 우주의 질서이며 곧 근본, 구성, 제일원리이며 곧 우주의 조화와 작용의 원리(우주작용의 근거가 된다)로 우주의 궁극적 실재이고 만물의 통일적 실재이고 거대한 법칙으로써의 신이며, 우주만물의 근원이자 뿌리고 버팀목이며 회귀점이다. 서구의 관점으로 보면 우주 전체 혹은 하느님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유진의 춤추는 자들의 왕이라는 소설에 의하면 도저히 개념화할 수가 없는 중성에 해당되는 우주 전체 혹은 아예 그러한 것(우주 전체)를 넘어서는 존재라고 한다.[23] 브라흐만은 신들을 포함한 이 세계의 모든 것들과 모든 존재들의 근원[24] 및 기초와도 같다고 할 수 있으며, 본래 모든 우주와 만물은 이 브라흐만의 안에 있었던 것이라고 하며[25], 모든 생명의 근원지이자 세상 전체의 참모습이며, 개인의 근본이자 우주의 근본이라고 한다. 힌두교에서 일체만물을 창조·지배하는 우주의 최고신 브라흐마(Brhama, 梵天)로 신격화되었다. 또한 이 브라흐만은 시작도 끝도 없는 모든 것의 원인이자 결과이며 우주적인 진리이고 본질이며, 절대신, 영원불변하는 원리이고 마지막에도 언제나 브라흐만이 존재하고 우주적인 자아로 여겨지는 우주의 아트만이자[26], 세계(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우주적인 영혼이자 참모습이며, 남성, 여성, 중성 이 3가지 성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나, 그럼에도 어디에나 존재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인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모든 세계의 에너지원적인 존재이자 창조의 원천을 뜻한다.[27] 그러면서 '브라흐만과 아트만은 서로 동일한 것'으로 간주된다.[28] 만물의 창조자, 유지자, 변형자, 재흡수자이자 우주를 창조, 유지, 파괴하는 존재이며[29],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포함하고 아울러 시간을 초월한 지고의 영혼이고 우주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모든 것은 그저 브라흐만의 마음 속이고[30] 마음 속에서 브라흐만이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31]
그리고 인격이나 성격이 없는 신(deity)이라고 할 수 없난 초자아이자 신들의 시작점이고 모든 것이기도 하지만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한다. 모든 살아있는 영혼인 아트만은 우주적인 하나의 혼, 즉 브라흐만을 구성하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않으며, 이 브라흐마가 신격화된 것이 푸루샤이며, 인격신으로써의 면모가 바로 이슈바라라고 한다.[32][33] 존재가 사방천지에 고루 퍼져 있고, 잡히지도, 쇠하지도, 고착되지도 않으며, 인간의 감각과 생각을 초월해버린, 욕망과 고통도 겪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중력처럼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초월한 무형의 존재이자, 우주만물을 운행을 다스리는 동양의 기와 유사할 수 있다고 한다. '마야'는 브라만이 만물을 통제하는데 쓰이는 것이자 창조 의지이고 브라흐만은 만물에 온 우주에 퍼져있는 우주적인 영혼이며, 이 물질세계는 이 브라흐만의 구현이자 확장으로써 부단히 변화하며, 곧 브라만 계급의 사제들이 표현한 우주만물의 운행원리라고 한다.
슈베타슈바타라 우파니샤드(신의 얼굴) 5장에 따르면 우리들이 보고 있는 모든 것들은 이 브라흐만이 창조해낸 것이자, 그(브라만)가 인간의 마음에 속에 투영되어 만들어내는 환영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무한한 불멸자이기도 하며, 그 속에는 지혜와 무지라는 두가지 속성[34]을 지니고 있으나, 브라흐만 자신은 2가지 속성(지혜와 무지)을 초월해있다고 한다. 거기에 만물의 내면에서 만물을 다스리며, 시간이 시작될때 생명의 씨앗을 뿌렸고, 그의 자녀들로 하여금 그와 하나가 되도록 돕게 한다고 한다. 또, 수많은 존재들의 환영의 그물을 펼쳤다가 다시 거두어 들이며, 모든 생명의 힘을 창조했고 생명의 힘으로 창조된 만물를 지배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모든 존재의 가슴에 빛을 비추는 것으로써 그들의 존재 전체를 신성한 빛으로 충만하고 자신의 확장을 통해 세상만물로 나타난다고 한다. 철학적으로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주장을 하기는 하나, 그렇게 해도 언어라고 하느 것으로 이 브라흐만을 증명할 수가 없는데, 브라흐만의 모든 존재와 인식의 근원 혹은 절대적인 존재와 인식이며 곧 자아와도 같은 것이라서, 마음의 본질을 깨달은 사람만이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이 브라흐만은 '니르구나'와 '사구나' 이렇게 2가지로 분류가 되는데, 전자인 니르구나는 샨스크리트어로 '속성이 없는 브라흐만'이라는 의미로 베단다 철학에서는 속성이 있는 브라흐만과 비교하여 속성가 없는 점에서 '절대자, 둘도 업는 유일자'로 불리는 것과 동시에 사고라고 하는 개념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신으로 여겨지며, 속성을 가진 사구나보다도 더 높은 단계의 영역에 속한다고 한다. 이 니르구나는 시간을 초월해버린 아직 창조가 되지 않는 원료의 상태로 있고 이렇게 무시간적인 존재인 니르구나 브라흐만이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속성을 가지게 됨으로써 비로소 우주는 창조,유지,파괴의 과정을 밟게 되며[35], 이렇게 시간 속에서 자아와 세계라고 하는 환상이 생겨나게 된다고 한다. 힌두교에서 중시하는 해탈이라는 것이 바로 이 시간 을 초월해버린 특성을 가진 니르구나 브라흐만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36] 이 니르구나 브라흐만은 아래에 현상계라 할 수가 있는 사구나의 이치가 현상계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가 없기에 현상계의 의지처로 설정된 절대계와 같은 개념이고[37] 형태가 없음을 뜻한다. 달리 브라흐만이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개념을 뜻하고 특별한 형태를 갖지 않고 모든 생명체와 모든 곳에 존재함[38]을 의미하고 절대적이고 형언할 수 없고 모든 것을 초월하는 무한한 현실 혹은 모든 자질과 속성을 뛰어넘어 형태가 없고 무한하다 여겨지는 브라흐만의 측면을 가리킨다. 인간의 모든 이해를 초월해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 일컬어지는 궁극적 현실로 힌두교 철학에서 종종 말하는 자신 혹은 아트만과 같다고 우주에 작용하여 살아있는 의식적인 힘이자 현실 및 최고의 자아와도 같다. 어떤 물질적 특성도 없는 비인격적인 절대 진리를 뜻하기도 했다. 모든 존재들의 실질적 원인이고 원인과 형태가 없는 모든 범주적이고 개념적인 지식과 경험을 초월해야 알 수 있다. 모든 이름과 형태, 부속물에 자유로운 형태였다.
후자인 '사구나 브라흐만'은 나르구나와 정반대가 되는 '속성이 있는 브라흐만'으로 나르구나는 여려 속성과 형태를 가짐으로써 숭배의 대상이 되고 현상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39] <라마타파나야 우파니샤드>에서는 '브라흐만은 순수의식으로 나누어질 수 없고, 형태도 없다. 브라흐만을 찾는 자를 위해 여려 가지 상징과 특성이 브라흐만에게 부여되고 있다. 예컨대 경배와 존경의 대상으로서의 인격신 이슈바라와 같은 것이 그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브라흐만은 시간적인 것과 시간을 초월했다는 2가지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인도 신화 세계관에 존재하는 수많은 신과 여신들은 브라흐만의 수많은 이름과 형태이기에 전혀 숭배되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주장 및 의견과 같고 브라흐만을 어떠한 형태로든 상상(혹은 구상)하는 즉시 해당되는 자질과 속성에 맞는 현현으로 객관화되며 브라흐만의 모든 발현은 시구나로 알려진 현현된 측면을 나타내며 시구나는 이름과 형태, 기능, 능력을 지닌 형태이며 자연 분야에 있는 브라흐만을 반영한 것이다.[40] 형태와 속성을 지니고 나타나는 모든 것을 포함하면서 또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절대자로써 그의 프라크리티로 세계를 창조한 인격신이자 우주의 지배자이자 근원인 이슈바라로도 설명된다. 사구나 브라흐만은 브라흐만이 형식, 정체성,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41] 모든 자질과 속성[42] 같은 속성을 부여받은 최고의 존재로써 상대적 형태이고 자질과 속성으로써 정해지는 브라흐만의 측면이며 신이 이름과 형태, 여려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반대로 니르구나는 신은 이름과 형태, 속성이 없음을 뜻한다.) 우주를 창조, 유지, 파괴하는 인격화한 신 혹은 창조, 유지, 파괴와 같은 우주적 기능을 부여받은 보편적 원칙으로 간주되는 최고 정신, 모든 존재의 창조자, 유지자, 파괴자로써의 자질과 동일시될 때의 절대적 현실을 뜻하기도 하고 예배자들을 위해 이름과 형태, 특성과 속성을 지닌다.
니르구나와 사구나 외에도 말, 옴, 하늘, 모든 것, 생명 에너지, 힘(권력), 주시자, 연설과 체험 그리고 지복, 실재의 현상과 형언할 수 없는 것으로 설명이 되는데 하늘과 모든 것은 광대함과 모든 것에 넒게 편재해있음을 묘사하고 모든 것은 오대 원소가 혼합된 것이나 본질적으로는 브라흐만이며 생명 에너지와 힘은 원소 형태로 환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고 생명체가 활기있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이며 주시자는 생명 에너지를 알거나 주시(목격)하고 관찰하는 것이고 체험과 지복은 말로 절대 묘사할 수 없고 연속적이고 뚜렷한 특징이 없는 것을 뜻한다.
브라흐만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불변의 존재이자 우주의 질료이며 곧 동력인이며, 곧 모든 것의 궁극적인 자아와도 같은 개념이며, 곧 모든 생명의 근원지이자 세계 전체의 참모습이라고 한다.
절대적으로 초월적이며, 어떠한 점에서는 존재와 비존재를 넘어서는 순전한 침묵이자 완전한 무(無)이며, 참으로 절대적인, 곧 비판계적인 존재라고 한다. 브라흐만은 외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가 없고, 이쉬비라 표상의 현현을 통해 그 외적 기능을 대신한다고 한다.[43] 그러면서 브라흐만은 결코 사람이 될 수가 없으며[44] 세계의 창조자일 수가 없다고 할만큼 절대적인 초월성을 가졌다고 한다.[45] 모든 것의 가장 깊은 '숨결'로서 사물 '안에 있는 것'인 내면성이라는 용어로 가장 잘 이해가 된다고 한다.
또한 최후 최초의 존재이자 태초에 브라흐만이 있고, 모든 신들의 뒤에 브라흐만이 있으며[46], 마지막에 남는 것 또한 브라흐만이라고 한다.
우주의 모든 것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유일하고도 진정한 현실이자 창조를 초월하는 최고의 전지적 지성이며 단일한 통일체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 브라흐만의 다른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며, 창조물의 여려 부분에 모든 힘을 펼치는 것으로써 이를 인도하고 규제하며,뭐라 형언할 수가 없으면서도 무한하고, 형체가 없으며(혹은 영적인), 전지적이면서도 모든 곳에 존재하고, 영원하면서도 최초의 것이자, 초월적이자 내재하고 있는 것이며,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이자 시작도 끝도 없으며, 모든 곳에 숨겨져 있고, 알려진 모든 창조물들과 것들의 원인이자 근원이라고 한다.
시간과 공간, 인과관게를 초월하는 무한하고도 평온한 것이며, 모든 것을 보는 것이자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이며, 지성 등을 비추면서 이를 비추 수 없는 것과도 같은 것이자, 태어나지 않고, 죽지 않고 불멸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본질이며, 이 세계가 나온 곳이자 존재하고, 해체되는 곳과도 같으며 무한한 원인이자 우주의 의지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근원이자 시작[47]이고 끝에 해당되고 모든 것들은 브라흐만에서 나오고 다시 브라흐만에게로 되돌아가며[48] 우주의 질서이자 모든 것의 제1원인(혹은 최초의 원인)[49]이고 참자아[50]를 깨닫고 참자아가 결국 브라흐만과 동일함을 알게 되면 모든 것은 브라흐만이기에 나와 나의 아닌 것의 분별이 사라지며 모든 것이 동일하고 브라흐만이고 자신의 참자아와 브라흐만과 똑같음을 알게 되면 윤회의 구레에서 벗어나 불멸의 경지에 이르는데 여기서 말하는 불멸은 브라흐만과의 합일을 의미하고 형태도 이름도 없는 불멸의 브라흐만은 만물 안에 현존 및 포괄하되 동시에 초월해 있고 참자아를 깨달은 이는 모든 세상과 원하는 모든 것들을 성취 및 얻게 되고 배후에서 모든 신과 만물을 움직이며 전 우주이며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이며 우주와 동일시함으로써 우파니샤드는 모든 것 안에서 브라흐만을 보고 브라흐만 안에서 모든 것을 보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자이며 무지의 어둠을 넘어선 태양처럼 밝은 자다.
불멸의 이름으로 불리고 모든 세상에 의지하며 그 무엇도 벗어날 수 없으며 '존재(saya)', '지성(jnna)', '무한(annata)'으로 정의되며 불변하고 정신의 영역에 있고 불멸이기에 변화하고 물질적이고 소멸하는 모든 것들과 명백히 구별이 되며 형상이 없는 것과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다양하고 다원적인 현상계의 기저에 이고 변화하는 세계의 배후에 있는 불변의 실재이고 우주의 바탕이고 불가멸하고 궁극적이기에 존재의 온갖 형상에 선행해 그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고 그 어떤 다른 것을 빌어 적절히 정의내릴 수 없기에 어떤 범속한 방식으로 알려지지 않고 언어로 표현되지 않고 오히려 언어를 능가하게 마음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마음이 생각할 수가 있게 하며 변화하는 세계의 모든 부분과 측면의 기저에 놓인 불멸하고 불변하는 실재이며 우주에 있는 무엇이든 모든 사물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우주의 주재자와 같고 마음의 운동에 의하여 나타난 모든 힘은 전적으로 브라흐만의 힘이며 스스로 빛나고 무형체이고 모든 것의 안과 밖에 있으며 태어지 않고 청정하고 가장 큰 것보다도 크고 호흠도 마음도 없는 영원불멸의 존재이고 감관과 이지의 세계와 달리 이름과 형태를 초월하기에 무엇으로도 묘사할 수 없고 아무것도 브라흐만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기에 기술되지 않고 표현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생각도 할 수도 없는 존재의 기반이며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이고 인간이 숭배하는 어떠한 유일신과 다른 신들과 동일시되지 않고 감관과 이지로는 파악되지 않고 브리하다란야까에서 묘사되길 앞, 뒤, 안, 밖에 있는 것도 아닌 것이자 접히지도, 쇠하지도, 어디 붙어 있지도 않고 고통과 상처를 입지도 겪지도 않아서 접히지도, 쇠하지도, 붙지도, 고통은 느끼지 않는다고 나오고 모든 행위는 이 브라흐만으로부터 비롯된다.
모든 신들을 통합하는 마지막 존재자고 자연과 인간 그리고 신들을 움직이게 하는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통일성을 지니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에 적용되는 법칙[51]이나 정작 스스로는 이러한 법칙에서 자유로운 존재다.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에는 예외 없이 브라흐만이 존재하며 브라흐만 안에 모든 사물이 존재하는데 이는 스스로가 자신과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에 들어가 있고 세계(우주)를 포괄하되 초월했기도 하다.
우파니샤드는 세계의 다양성의 배후, 즉 모든 신들과 피조물들, 인간과 자연의 이면에 하나의 절대적 동일성인 최고의 브라흐만이 존재하는 사상을 펼치며 브라흐만은 전 우주이고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이다.[52] 이인도인들은 모든 자연의 사물들 안에 브라흐만의 내재성을 인정하고 동시에 창조된 세계를 뛰어넘는 브라흐만의 초월성에 대해서도 성찰했다.
창조되지 않고 영원하며 무한하고 초월적이며 모든 존재의 원인이자 토대이며 곧 근원이고 목표인 궁극의 불변하는 실재를 가리키는 힌두교의 형이상학적 개념이었고 우주의 질서인 다르마[53]에 의해 윤회하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아의 본질인 아트만도 다르마에 의해 탄생과 삶, 죽음을 반복하는 윤회[54]를 하고 자신을 기준으로 외부에 있는 모든 것(우주의 질서, 시공간,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와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신들)을 아우르는 우주의 본질이고 불이론(Advaita)철학에서 전체 우주는 브라흐만이라 부르는 우주적 자아(the Self) 안에서 모두 하나이며 우주의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유일무이한 진정한 실체이고 시공간을 초월한 인과이자 최고자아이며 평온하고 무한하며 이 세계에 존재하고 나오고 해체되는 것이며 우주의 빛이며 기쁨이며 통치자이며 파괴할 수도 형연할 수도 없으며 행복하게 스스로와 모든 곳에 몰입되어 있고 영원하고 정의를 내릴 수 없고 나눌 수 없고 무한하며 순수하고 어디에나 손, 발, 얼굴, 눈, 코, 귀가 있는 존재로 여겨지며 이름인 브라흐만은 '확장한다'라는 뜻의 어근인 'brah'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브라흐만이 지닌 무한한 능력과 차원 그리고 끝없는 발현에 대한 언급과도 같고 12개나 되는 측면 혹은 발현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고[55] 스스로를 내제적인 현실에 투사하는 초월적이고 영원한 현실과도 같으며 우파니샤드는 신체의 다양한 기관 및 창조의 측면과 동일시하며 각 개인의 인격이자 영혼으로써 개인에 숨겨져 있다.[56] 브라흐만의 절대 현실은 어떠한 형태나 상태로 나타내거나 육화되지 않는 사물과 존재 혹은 표현 속에 숨겨져 있거나 모든 것에 퍼져 있을 수 있으나 항상 형태가 없고 변하지도 분할되지도 않으며 마음과 몸을 초월하고 이원성이 존재치 않으며 결코 어떠한 형태와 모습으로 현현 및 화신하거나 변형되지도 탄생치 않으며 영원히 태어나지도 창조되지도 않으며 불변하고 방해받지 않고 형태조차도 엇으며 감지할 수도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57] 지치지도 않고설명할 수도, 독창적이고, 최초이며 영원하며 절대적인 원리이며 곧 모든 것 안에 숨겨져 있고 알려진 창조의 모든 원인이며 근원이며 재료이자 결과와 같으며 하나이자 다수이며 유한하되 무한이며 중심이자 둘레와 같은 것이자 우리가 할 수 있는 혹은 상상하는 모든 것, 배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통합으로도 설명되었고 무수한 형태를 취함으로써 속성을 지닌 시구나 브라흐만이 되었고 형태가 없으되 있는 존재로써 광대한 우주의 모든 다양성이 되었고[58] 모든 것이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서[59] 낮과 밤, 빛과 어둠, 지식과 무지, 강과 바다, 하늘과 땅, 소리와 침묵, 가장 작은 것이자 큰 것이기도 한 불가사의한 무의 심연과도 같았고 지닌 속성이 다양하기에 그 보펼성과 우월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것이 존재하는 하나이자 영원하고 보편적인 자아로 여겨진다.
마음, 감각, 언어 너머에 있는 이름도 형체도 없고 어떠한 생각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초월적인 무언가이며 마음과 감각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을 지탱하는 주체이기에 깨어있는 상태에서는 결코 알 수 없고 진실하게 개념화할 수도 완전히 실현시킬 수 없으며 이원성이라는 개념이 없으며 이 때문에 브라흐만을 알기 위해선 어떠한 분열이나 이원성 없이 하나가 되어야 하며 무한한 가능성과 차원을 지니고 있으며 알려지지도 드러나지도 않았고 스스로 존재하고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모든 것보다 먼저 존재했고 모든 것들이 변화하거나 해체된다 해도 변함없이 홀로 유지되는 유일한 현실이고 추론이나 구두 증언을 통하지 않고서는 신을 포함해 그 누구도 브라흐만의 존재 전과 존재 후의 상태를 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모든 것이되 아니기도 하는 모든 측면과 이중성 그리고 모순의 총합과도 같다.[60]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이며 곧 존재이되 비존재이되 존재이며 실재이면서도 동시에 비실재이며 모든 것 안에 존재하고 모든 존재는 브라흐만의 안에 존재하며 브라흐만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브라흐만 밖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여려 가지 방법으로 실현이 되고 모든 면에서 완전한 존재이고[61]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현실을 상징하고 모든 지시과 다양성과 발현의 원천격에 해당되었고 스스로를 포함한 어디에나 찾을 수 있고 존재 전체의 모든 신성과 신성함의 총합과도 같았고 우주의 모든 것에 스며들고 숨겨져 있고 둘러싸여져 있고 모든 창조를 명령하고 유지하는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원리이며 우주의 이분법과 원리에 완전히 구속되지 않은 모든 특성과 속성을 지닌 전체성의 실체이며 '존재'와 그 너머의 속성으로서 모두를 포괄하며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이고 무한한 가능성과 확률, 각각 무한한 현실과 우주 혹은 차원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예외와 제한 없이 모조리 하나의 존재에 통합되어 있고 모든 것을 지원하고 있다.
무한하고 무정형이고 무색이고 인격과 형식이 없는 전능하고 보편적인 정신이며 우주의 에너지처럼 만연하고 보이지 않고 뭐라 형용할 수 없고 우주의 근원이며 곧 힘이며 지원이고 기원, 유지 및 파괴와 같았다. 우주의 진리이자 우주라는 개념이며 우파니샤드 시대에 이르러 인도의 요가 전통에 포괄적인 우주를 지칭하는 전체성으로써 나타났다. 현대에선 '전체성'이라는 용어가 이 브라흐만의 가장 적절한 표현이었고 우주의 동력에 해당되었다.
우주의 모든 것과 인간이 그 안에서 보는 모든 것이 바로 브라흐만이며 브라흐만은 우주의 모든 것들의 일부이나 우주와는 별개에 해당된다. 최고의 우주적 힘, 존재론적 근거, 모든 영적 지식의 근원, 목적, 목표를 뜻하고 모든 존재의 구조이며 곧 모든 비존재에 스며든 존재다.
4.1.2. 마야(maya), 무명(無明)
우파니샤드에서는 사람이든 무엇이든 한번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 살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은 배우가 연기를 하듯, 사람이 살아가는 무대인 것이다. 배우가 연기에 몰두하다 보면 자신의 본모습을 잊고 스스로 그 배역에 심취하듯, 사람도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본모습을 잊고 그 역할에 심취한다. 그러나 배우도 연극이 끝나면 자기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집으로 간다. 그 집을 우파니샤드에서는 바로 우주의 본체이며 영혼인 브라흐만이라고 부른다.
우파니샤드에서는 세상이 연극 무대처럼 진짜 집이 아니고, 잠시 머무는 곳이기 때문에 환영(幻影)과도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마야(maya)라고 하는데 우주의 본체이며 창조의 근원인 브라흐만이 만들어놓은 그물망이라고도 하고,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도 한다. 거기에 이 세계는 브라흐만이 주관하는 마야에 의하여 발생하는 현상[62]이며[63] 절대신의 신성하고 신비한 마술적 힘으로 간주되거나 우주생성의 자궁, 창조와 파괴 그리고 균형의 세 가지 속성이 있는 신성한 여신으로 여기고 달리 현상의 세계를 일컫는 말이자[64] 물질적인 존재들의 순간적인 현상들을 보여 줄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면서도 비실체와 실체가 상보공존하는 모든 우주이고 가끔 무명의 동의어로 우주의 질료인과 같은 개념으로 쓰이기도 하고 불교에서는 심(心)작용의 하나라고 하여, <기만>, <배반>을 의미하며, 또한 <사람을 현혹하는 힘>, <환상>을 의미하고 사물에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되기도 한다고 한다. 락슈미와도 연관된 개념이기도 하다.
마야는 환영이나 현상이 아니라 힘이며, 신은 그 것으로 자신의 힘의 구현인 동시에 물질화인 현실의 우주를 창조한 것을 뜻한다고 한다. 브라흐만은 이 마야를 통해 끊임없이 시·공간적 세계를 창조했다고 한다. 세계의 다양함과 자연현상, 그리고 참된 실재가 아님을 뜻하기도 하며, 이 마야에는 우주를 창조하고 만물을 생성한 라쟈스 마야, 우주를 유지하는 사트바 마야[65], 우주를 파괴하여 갖가지 재앙을 일으켜 생명을 멸하게 하는 타마스 마야 총 3가지 성질을 지녔다고 하는데, 현상계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인간, 식물, 생물, 모든 무생물들)은 이 세가지 성질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고 한다. 브라흐만은 이 마야를 통해 호흡을 하는데, 브라흐만의 호흡은 창조, 유지, 파괴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 마야에는 '우주적 환영체'와 '개별적 환영체'라는 총 2가지의 형태로 가시화된다고 한다. 우주적 환영체는 브라흐만이 창조신, 유지자, 파괴자(악마)로 둔갑하여 나타나는 것이고, 개별적 환영체는 브라흐만이 아트만으로써 산이나 나무,돌,식물, 인간의 육체 등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개체로 분화되어 나타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66] 브라흐만에 현상계를 현현시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브라흐만이 개체적인 형상들로 이루어진 현상계로 현현하는 브라흐만이 지닌 복합적인 환력(幻力)이라고 한다.
그리고 니르구나 브라만은 이 '창조의지'(=브라만의 창조에너지)[67]라 할 수가 있는 마야를 통해 분화력으로 수많은 혼들(아트만들)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68] 아트만은 이 마야에 의하여 통제를 받게 받게 되며, 마야에 의해 통제받는 아트만은 선과 악, 고통과 즐거움, 인과법칙 등 상대적인 것들 속에서 생사윤회에 있게 된다고 한다. 비이원론자들은 이 마야를 가리켜 '무한한 브라만을 유한한 현상의 세계로 나타나게 보이는 우주적 힘'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마야는 존재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 상상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이 마야는 환영으로 이루어진 물질계를 가리키는 것이고 브라흐만의 인격화된 형태인 이슈와라의 영향력에 의하여 창조된 것이고[69] 마음과 물질의 기초를 이루는 우주적인 원리라고 한다.
그리고 마야는 한때 바루나가 관장했다고 하는 르타(rta)와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르타와 같은 것으로 간주되는 마야는 '최고신의 특권인 형태나 존재를 창조하는 우주적 마야'였다고 한다. 리그베다에서 마야는 '의도적인 변화', 창조나 파괴의 교체를 뜻하며, 우주적인 환상, 비실재, 비존재로서의 의미로 쓰여지기 전까지는 한때는 우주적인 개념의 '변화', 바루나의 주술 혹은 악마적인 변화와 창조력의 의미로 사용되었고 바루나가 이 마야에 의해 우주질서를 재건립할때 사용했었다고 한다. 이 마야는 우주질서의 아감적인 변화라는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거기에 브라흐만의 주술적 힘에 의한 우주창조적 힘의 개념일 뿐만 아니라 '꿈'이라는 개념으로 동화되었다고 한다.[70]
무지 혹은 우주적 환영으로써의 마야는 브라흐만을 감추는 베일을 씌우고, 또 우리 인간의 통찰도 어둡게 함으로써 우주적 근원에 도사린 유일한 하나의 실재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다양한 현상세계만을 바라보게 한다고 하며, 이러한 마야는 무지와 앎이라고 하는 2가지 측면을 지니는데 '무지'는 우리를 신으로부터 멀리 떠나보내 세속적 물질적 감옥에 가두면서 욕망과 탐욕에 빠지게 하며, 반면에 '앎'은 신적 실현(신의 깨달음)을 가능하게 하며, 영적인 미덕을 찾아 수행하게 한다고 한다. 이러한 2가지 측면은 시간과 공간, 인과성에 따라 작용하기에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인간은 절대적인 존재인 브라흐만을 깨닫는 것으로만 상대적인 무지와 앎 모두를 초월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마야는 달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시간과 공간을 가리키는 뜻으로 풀이 되며, 힌두교도인들이 현상의 세계를 일컫는 용어이기도 하며, 물질적인 존재들의 순간적인 현상을 보여줄 수가 있는 능력이자,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의 모든 현상라고 한다.
그러나 마야를 환영이라고 하는 것이 세상이 아무것도 아닌 환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세상은 영구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잠시 사용하는 공간일 뿐이라는 뜻이다. 브라흐만은 우주의 본체이고 시간이나 공간을 초월해서 항상 존재하는 것이지만 세상은 늘 변하고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환영이라고 하는 것이다.[71]
그러므로 '자신이 살고있는 세상이 영원할 것처럼 자만'하거나 반대로 '자포자기하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지혜가 부족한 사람, 즉 무지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무명(無明, avidhya)[72]이고 무명은 우리 눈을 가려 자신의 참모습, 우주의 근원을 볼 수 없게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이것은 거울과 같이 맑은 마음에 자신의 참모습에 대한 지혜를 담아야만 없앨 수 있다.
4.1.3. 업과 윤회, 해탈
4.1.4. 신의 개념과 신적 존재들
우파니샤드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 복을 구하는 기복 신앙과 이론에 반대한다. 우파니샤드의 관심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고, 우파니샤드 철학은 인간의 존재(방식)을 고민하는 철학이다. 따라서 우파니샤드의 가장 큰 주제인 아트만과 브라흐만은 신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영역에서 파악해야 할 존재의 본질이다. 그런 까닭에 우파니샤드에 등장하는 신들은 다른 종교의 신들과 달리, 인간의 존재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동원된 다양한 은유적 도구에 불과하다.
아그니, 바유, 인드라는 인도 사상이 형성되어 기록으로 전해진 베다 시대의 주요 신들로 베다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신들이지만, 우파니샤드에서는 단지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한 등장인물에 불과하다. 베다 시대의 신들 가운데 바수(Vasu, 생명의 신), 루드라(Rudra, 파괴의 신), 아디띠야(Aditya, 태양신의 일종.)도 등장하지만, 역시 전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신뿐 아니라 인도신화에 나오는 신들도 이야기에 끌어들인다. 인도 신화에서 신적 존재로 분류되는 존재에는 브라흐마(Brahma, 창조주), 프라자바티(Prajanapati, 조물주) 피트라가나(Pitragana, 조상신,귀신), 간다르바(Gandharva, 반인반신의 음악 신.)[73] 아크샤(Yaksa, 부의 신인 쿠베라를 보좌하는 신.), 아수라(Asura)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브라흐마는 신화 시대의 대표적인 신으로 비슈누(Visnu, 유지의 신), 시바(Siva, 파괴의 신)와 함께 우주의 3대 원리를 표현하지만, 우파니샤드에서는 엑스트라처럼 잠깐 나오고 만다. 프라자바티도 이야기 속에 여러 번 등장하지만, 마찬가지로 은유적 도구일 뿐이다.
우파니샤드는 신화에서처럼 조물주가 사람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만심, 욕심, 이기심과 같은 설명하기 어려운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서 신을 잠깐 빌려올 뿐이다.
우파니샤드가 설명하려고 하는 근원 존재 브라흐만은 설명할 길이 없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주, 조물주, 베다의 신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그 근원존재를 상상해 보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신들은 어떤 위계도 계보도 없다. 다시 말하면 우파니샤드에서는 신이 살아움직일 수 없는 막대인형에 지나지 않는다.
5. 힌두교, 불교와의 관계[편집]
우파니샤드 이전 인도를 지배하던 브라만 교의 베다들은 본래 아리아 인들이 인더스 문명의 건설자인 드라비다 족을 침략하고 군림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제사장인 브라만에 그 종교적 권력과 구원이 집중되어 있는 구조였다. 따라서 당연히 위에서부터의 교리를 통해 카스트 제도에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했다.
사물에 영적인 신이 들어가 있다는 베다의 권위를 의심하기 시작면서 우파니샤드의 사상은 발전해 왔으며, 특히 사람은 죽은 뒤에도 영혼인 아트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다시 태어난다는 윤회 사상을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세력이 커지게 되며, 이러한 윤회사상은 '자신의 직분에 순종적으로 일해야지만 더 좋은 계급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지배자의 지배논리로 사용되면서 더욱 대중적인 사상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나 아리아 인들이 인도 주변 부족과 전쟁을 거듭하면서 쇠퇴하고, 생산력과 금권을 가진 상인들 즉 바이샤 계층이 성장하면서, 브라만과 크샤트리아 다음 가는 3인자로서의 위치에 불만이 점점 가중되었다. 이들에게 기존의 우파니샤드 교리를 뒤집는 불교의 탄생은 혁명적이었다. 불교는 '아트만이 없다'는 안-아트만(무아)를 주장했다. 불교에서는 모든 현상이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찰나에 일어나고 사라짐의 연속, 즉 연기의 과정으로 설명하였다(무상). 때문에 영원 불멸의 실체, 곧 영혼 역시 존재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아트만과 같은 윤회의 주체는 없으며, 여러 인연의 일어남과 사라짐 속에서의 연속적인 흐름으로 윤회를 설명하며 '무아-윤회'의 사상을 정립하였다.[74] 이러한 사상은 점점 커져 우파니샤드 사상을 삼켰으나, 아트만에 대한 믿음은 이후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