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배 시인이 만난 문인 . 58
동전 서영수 시인
고향은 언제나 살아 있는 / 어머님 가슴, // 치마폭 굽이굽이 풀어낸 세월을 / 진달래꽃, 산허리마다 / 피로 뱉은 / 길을 따라 / 兄山江 물줄기를 타고 내리면 / 太古의 음향이 꽃그늘에 우는 곳.// 빛이 일어서는 여울 건너 / 돌아 선 그림자를 불러 세우고 / 붕새춤을 추는 우리는 / 옷섶에 저린, 촌놈 냄새가 그리워 / 머리 위에 마주 뜬 / 해와 달만 부른다.
이 작품은 동전 동(東田) 서영수(徐英洙) 시인이 1995년 『경주문학』14호에 발표한 「고향송」전문이다. 이처럼 그는 ‘촌놈 냄새가 그리’운 내면의 진실이 현재의 모순된 실상이든, 부조화된 인간의 사유이든 간에 그의 지고지순의 화해방식으로 설정함으로써 자칫 일상적 허무감에 안주하려는 내적 심층구조를 회귀를 통한 존재의미와 자아의 긍정으로 극대화하여 그의 시학을 더욱 선명한 향토 서정으로 형상화하고 있다고 내가 말한 적인 있었다.
그는 이와 같이 고향이 천년고도인 경주이다. 그는 몇 년전 어머니를 先山 幽宅에 모시고 지금은 경주를 떠나 인천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다. 며칠 전 전화가 왔다. 물론 토박이 경주보다야 외롭고 삭막하기도 한 타향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경주에는 이근식, 정민호, 장윤익 선생 등 문주(文酒)로 교감하는 일상이 일시에 바꿔지니 얼마나 적막할까 싶기도 하다. 이제 서서히 인천에서 적응하면서 서울 나들이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와 처음 만난 것은 박목월 선생님이 창간하신『심상』에 등단하고 나서 문협행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벌써 30여년이 흘렀다. 또한 내가 예총에 근무할 때 경주 출신인 박동규 교수를 연사로 모시고 경주에 문학강연을 다녀가면서 이곳에서 경주의 문학의 전통과 맥을 지키고 있는 이근식, 서영수, 정민호 시인들과도 교류하게 되고 그와도 더욱 선후배로서의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또한 나는 박목월 선생님의 고향과『심상』이 연관하면서 경주와 그에게 보이지 않는 애착이 있어서 해마다 열리는 ‘목월백일장’이나 ‘신라문학대상’ 등에 참석해서 이곳 문인들과 교류한 일들이 큰 인연으로 남아 있다. 특히 1991년 보문 홍도공원에 ‘목월시비-달’을 제막하는 날, 목월 제자들과 심상시인회 회원들이 대거 참석하여 이곳 문인들과 어우러졌던 기억도 새롭다.
그는 1937년에 경주시 건천에서 출생하여 유년시절 만주를 거쳐서 경주 안강 등지에서 성장하였으며 서라벌 예술대학 문창과를 나와 1955년 ‘학원문학상’을 수상하고 대구일보(56), 영남일보(57)와 세계일보(64)에 신춘문예가 당선되고 다시 1972년에 『현대시학』에 박목월 추천으로 작품「외박」「언저녁 달빛」「세수」「어제의 비」등이 3회 추천 완료하여 화려하게 등단하게 된다.
그 이후 시집으로 『별과 야학』『낮달』『동전시초』『경주 하늘』『선도산 일기』『엊저녁 달빛』『바람의 고향』등을 출간하여 경북문화상(86), 금오대상(88), 금복예술상(91), 한국예술문화공로상(91), 경주시문학상(92), 그리고 문협 한국문학상(12)을 수상하는 영광도 있었다.
그의 문학 활동은 경주문협 지부장, 경북문협 지회장, 경북문인협의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문인협회와 국제PEN한국본부의 고문과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한국현대시인협회 중앙위원으로 있다.
또한 그는 경주고등학교 교장을 정년퇴임하고 현재 경북 중등문예연구회 고문과 동리 . 목월기념사업회 부회장, 동리 . 목월문학관 문예대학 부학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원로문인이다.
나는 바위가 되어 / 경주의 하늘 아래 바위가 되어 / 천둥이 지나간 골짝을 타고 앉아 / 말씀보다 강한 뭇 소리 들을 삼키며 / 하늘만 지키는 벙어리같이 / 나는 눈만 껌벅거리며 살렵니다. / 月城 언덕빼기 솔숲 같은 / 내 머리칼이나 만지며 / 머리 위에 하늘처럼 / 날 부른 門을 향해 / 입술보다 더 큰 귀를 맞대며 / 살렵니다.
위의 작품「경주의 바위」에서 알 수 있듯이 그에게서 경주는 생명과 문학의 원류인 고향의 개념 이외에도 천년 고도의 신라 정신이 바로 시 정신으로 곰삭아 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경주만이 간직할 수 있는 독특한 역사성이나 찬란했던 예술성은 바로 우리 민족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는 인식의 중심축이 그의 시세계를 형성하고 또한 시적 창출을 위한 촉진제가 되고 있다.
그는 다시 ‘千年 前 // 이미 千年 新羅를 접어 올린 / 김유신의 / 꼬리 긴 하얀 紙鳶이 / 깊숙히 숨어 사는 / 푸른 골짜기(「경주의 하늘」)’와 ‘깨어진 사금파리 조각에 / 발이 찔려, 피를 흘리던 / 경주의 가을 햇살(「경주의 꽃」)’. 그리고 ‘나는 보았지. / 東里 先生이 그린 / 巫女圖가 둥둥 떠 오는 / 외진 늪의 물살을(「경주의 늪」)’ 등에서도 경주와 관련된 작품을 많이 발표하고 있다.
‘내 고향 경주, 겨레의 고향이다. 여기에 나서, 여기서 자라, 여기서 묻혀야 할 나의 땅, 경주를 나는 사랑한다.’ 그의 어떤 글에서도 밝힌바와 같이 서영수 시인은 경주를 통해서 존재인식의 근원을 확인하고 심오한 생명의 가치를 순명으로 긍정하면서 시혼을 승화시키고 있다. 또한 “지금 앉아 있는 우리집 방바닥 밑에도 분명 신라적 그 무엇이 파묻힌 채 앓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밟아야 할 신비의 땅, 겨레의 안방”이라고 덧붙임으로써 신라의 의식은 곧 경주라는 고향 의식에 복합적으로 병치시켜 원형적인 생명력과 정겨운 사랑의 원류로 자아를 성찰하는가 하면 존재미학을 명징하게 조화시키는 특성을 읽게 된다.
나는 이렇게 그의 시집『엊저녁 달빛』의 시평을 써서 1998.『심상』지에 게재한 바도 있어서 그와의 교류는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이러한 그의 경주 사랑은 작품은「경주 장날」,「경주의 들판」,「선도산 일기」연작시,「처용의 그림자」그리고 「안압지에서」등 실명으로 거론된 경주와 관련된 작품들에서 감지되는 그의 고향 의식은 소박한 토착 정서의 예술적 형상화에 그의 시적 열정이 집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는 반세기에 가까운 시창작에서의 세월의 연륜이 말해주듯이 그의 심저에 정착한 시학의 본질은 아마도 생명과 존재의미의 추구라는 거시적인 명제로서 과거의 회상이나 성찰에서 도출된 인생의 관조로 변이되는 어쩌면 누구나 당면하게 되는 일련의 허무감 같은 것으로 표징되는 특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내면에 관류하는 철학을 그의 모든 작품에서 잔잔하게 엿볼 수 있는데 그가 결론처럼 제시하는 일상적 현실에서 추출한 인간 본연의 목소리가 투영됨으로써 자기 발견을 통한 정서의 회귀가 궁극적인 시 미학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후덕하게 생긴 경주 토박이의 향기를 항상 내뿜고 있다. 장윤익 전 경주대 총장이며 문학평론가는 시집 『엊저녁 달및』작품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서영수 시인을 상찬하고 있다.
문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시인은 문단정치에 연연하지 않고 민족정서와 소박한 인간 본성의 소리를 통하여 생명의 근원을 미적 가치로 형상화하는 창작인이다. 순수와 토착정서와 신라정신이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서영수 시는 거창한 철학이나 사상을 토로하지 않는다
동전 선생님 더욱 건강하시고 서울 나오시는 길에 한번 전화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