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 창세부터는 길가 밭, 돌밭, 가시덤불밭을 갈아엎어서 옥토 밭으로 개간 한다는 뜻이다.
나. 마음 밭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심리 현상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다. 코스모스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면의 마음 밭을 가리키다.
라.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는 겉 사람의 삶을 개간하여 옥토 밭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2. 본론
창세부터는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 개간)를 잘못 번역한 것이다.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 감추어진 것(크룹토)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 13:35)
아버지여 창세 전(프로 카타볼레스 코스무)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5)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프로 카타볼레스 코스무)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 17:24).”
가. 창세부터는 길가 밭, 돌밭, 가시덤불밭을 갈아엎어서 옥토 밭으로 개간 한다는 뜻이다.
창세부터(오역)는 ‘율법의 마음 밭, 종교의 마음 밭을 파헤치고 갈아엎는다’라는 뜻으로 길가 밭, 돌밭, 가시덤불 밭을 갈아 엎고 해체하여 옥토 밭으로 만들기 위함으로,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가 임하려면 ‘프로 카타볼레스 코스무’가 선행되어야 한다. 반드시 율법 아래에서(프로 카타볼레스 코스무) 훈련받아야 복음 안으로(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 들어올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생명)을 따라 내면을 들여다보고 알아야 하는 과정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프로 카타볼레스 코스무’로부터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독사 : 거룩)를 드러내기 위함이다(요 17:5, 24). 함께 가졌던 거룩(독사)은 아들과 하나 되기 위함이다. 따라서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는 아버지와 함께하는 그리스도 예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으로 내면의 일이다.
나. 마음 밭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심리 현상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요 17:5) 아버지여 창세 전(프로 카타볼레스 코스무)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독사:거룩)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프로 카타볼레스 코스무)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 아포 : 전치사. '~로부터',
⁃ 프로 : 전치사. '~이전에',
⁃ 카타볼레: '마음 밭을 개간하다(말씀의 씨를 뿌리기 위해)'.
⁃ 크티세오스 : '카타볼레'와 같은 동의어다.
마음 밭을 분석하려면 내면을 들여다보고 마음의 심리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서 작용하고 유지되다가 사라지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마음은 항상 찰라생, 찰라멸 하면서 조금도 빈틈없이 이어져 흘러감으로 연이생(緣已生 : 인연에 의해 생성된 것)이다. 겉 사람은 몸과 마음을 항상 나와 일치시키려 하고 모두 한 덩어리로 보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애굽에서 일이며 출애굽이 일어나야 몸과 마음이 허상임을 알고 떠나게 된다.)
‘카타볼레’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면 세상(마음 밭)에 오셔서 거칠고 황폐한 마음 밭을 해체하고 갈아엎어서 말씀의 씨를 뿌릴 수 있는 옥토 밭으로 가꾸는 일이다.
‘카타볼레’는 인생의 마음(코스모스)을 들여다보고 하나하나 해체하여 그 실상이 무엇인지 낱낱이 알려주시기 위함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처음 사용하신 말씀이다.
다. 코스모스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면의 마음 밭을 가리키다.
‘카타볼레’의 사전적 의미는 ‘던지다, 놓다, 뿌리다’의 뜻에서 비롯된 것으로 기초, 시작, 씨 뿌림, 뒤엎음의 의미가 있으며, ‘카타볼레’의 씨 뿌림은, 옥토 밭이 된 ‘마음 밭(코스모스 세상 : 아그로스 밭)’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코스모스는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 내면의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라는 용어를 쓰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은 아버지 하나님 곧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내용으로서 하나님 나라는 내면의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 곧 씨앗은 복 받은 자의 마음 밭(세상)에 뿌리시기 위함이다. ‘세상’으로 번역하고 있는 ‘코스모스(마음 밭)’ 안으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셔서 말씀의 씨앗을 뿌리시기 위함이다. 말씀의 씨앗을 뿌리려면 우선 마음 밭을 파헤치고 갈아엎어서 옥토 밭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다.
마음 밭을 해체하여 의식으로 드러내야 길가 밭, 돌밭, 가시덤불 밭(프로 카타볼레스 코스무)을 개간하게 되며 말씀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옥토 밭(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의 결과)이 된다. 옥토 밭이 되지 아니하면 옥토 밭으로 변화할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 고난의 과정이다.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가 일어나지 아니하면 그 누구도 고난의 과정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씨는 개간된 옥토 밭에만 뿌려져야 생명이 자랄 수 있고 열매 맺을 수 있다.
라.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는 겉 사람의 삶을 개간하여 옥토 밭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는 고난의 과정(애굽의 삶)에서 해방되는 과정을 말씀하고 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변화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옥토 밭은 길가 밭, 돌밭, 가시덤불 밭 속에 살아가는 고통의 원인인 무명(뱀)의 실체를 드러내서 뱀의 종말(에스카토스)로서 마음 밭이다. 그 마음 밭 안에서 일어나는 고난의 과정이 무엇인지 왜 일어나는지 온전하게 꿰뚫어 보았고 그 해결 방법을 알았기 때문에, 개간된 옥토 밭에 천국의 씨가 뿌려지고 자라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비유(파라볼레)로 말씀하시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깨닫게 되면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몸과 마음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조건에 의하여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조건에 의하여 생겨난 것은 모두 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의 씨는 조건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므로 영원하다.
창세기 1:1에 그 하늘들과 그 땅을 ‘바라’하시는 목적이 바로 그 실체를 드러내어 옥토 밭으로 만들어 말씀의 씨를 뿌리고자 하심이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다.
생명의 그 빛과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