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지킴’이라는 ‘육근(六根)수호’ 수행이 있는 것이기에 여기서 ‘사띠’라는 용어의 의미와 함께 ‘작의, 상, 기억’이라는 용어와의 관계를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초두에서 '육근(六根)수호' 라고 했는데, 이 의미를 풀어보면,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의 세계는 우리 몸이 지닌 '안, 이, 비, 설, 신, 의' 라는 6가지 감각기관(六根)이 우리 외부세계를 접촉하여 받아드리는 과정에서 각 대상들이 가진 고유의 특성, 특징, 이미지를 상(相, 니미따) 이라고 부르며 이를 받아드려 인지하는 과정을 의(意)가 담당한다. 이 과정에서 올바른 사고를 위한 필수요소로서 '사띠' 라는 역할이 필요하다.
‘사띠(sati)’의 본래 의미는 ‘기억’이다. 그리고 우리의 심의식에서 '의(意)가 '사띠'를 의지처로 한다' 라는 경전의 지적이 있다.
자신이 겪은 삶에 대한 ‘기억’은 ‘기억이라는 형태’로 저장되는데,
①그 기억되는 장소가 의(意, 마노)이고
②정보의 기본 단위는 상(相, 니미따, 이미지)이며
③그 相을 저장하는 과정이 작의(作意, 마나시까라, 의에 새김)이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기억이라는 형태로 가지고 있다가 유사한 대상을 접하면 그 기억을 활용하여 대상을 판단하는데 쓰는 것이다.
소위 학습이라는 것도 그러한 기억을 확실하게 해두는 것이고, 그러한 학습의 효과는 ‘상(相, 니미따, 이미지)이 새겨진(=작의 된) 강도’에 좌우된다. (첫사랑의 경험에 대한 상(相, 니미따, 이미지)이 오래 지속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나 끊임없는 외부 정보의 홍수에 시달리는 사람은 자신의 기억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
기억력이 좋지 않다는 것은 ‘사띠와 의(意)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끊임없는 외부 정보의 홍수에 시달리는 사람은 의(意)에 새겨진 정보량의 과다로 인하여 (=스트레스나 번뇌의 증가로 인하여) 산만해져서 집중을 하는 능력 (‘사띠’를 ‘주의집중’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음)이 떨어져서 이미 저장된 정보인 ‘기억’을 활용하는 기능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외부 대상을 경험 할 때 괴로움이 발생하는 것(착각, 갈등, 오해, 반목, 편견 등등)을 불교에서는 ‘상(相)에 걸려 넘어지고, 상에 매어 삶을 영위하고, 상에 울고 상에 웃는’ 것으로 우리들의 삶의 현상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러한 만큼 ‘사띠’와 ‘상’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외부 정보인 육상(六相, 색상 등의 여섯 상)과 작의의 과정에서 의에 새겨지는 종종상’으로부터 ‘마음지킴’을 하는 것이 ‘사띠’의 의미라고 보는데, 그러한 ‘마음지킴’이 ‘육근(六根)수호’라는 이름의 수행으로 불리는 것이다.
우리가 영화 마니아라고 부르는 것은, 그 영화라는 ‘상(相)이 좋고, 상(相)에 매료되어, 상(相)을 떠나지 않는’ 그러한 상태다. 자신의 과거 기억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소중하게 여길게 아니라, 반야(지혜)로써 ‘작의의 집이 법의 집임’을 통찰하는 것이 ‘올바른 작의의 시작’이고 그것이 수행의 첫 단계 (☜이것이 정정진(正精進)의 터닝포인트임)이다. 이 正精進 다음 단계가 정념(正念, 올바른 사띠의 확립)이다.
‘사띠’라는 용어의 의미를 고찰할 때, 수시로 등장하는 ‘작의, 상, 기억’이라는 용어와의 관계를 잘 살펴보는 것이 우리 삶이라는 수행에 대해 필수적인 고찰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