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평양성 탈환에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西山大師)
임진왜란이 나던 해 서산대사는 묘향산 토굴에서 73세를 맞이하고 있었다.
선조는 나라를 지키려 하기보다 자기 한 목숨 지키기 위해 의주까지 도망하여 행재소를 차렸다.
조금만 밀리면 조선을 버리고 명나라로 망명할 준비를 하였다.
임진년 9월 선조는 청주성 탈환에 승군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말을 듣고 문득
3년 전에 만난 서산대사가 생각났다. 묘향산으로 사람을 보내 대사를 의주 행재소로 초청했다.
3년 만에 서산대사를 본 선조는 대사에게 매달렸다.
“나라의 위태로움이 이와 같은데 대사께서는 어찌 나를 잊었단 말이요.
무슨 도술을 부려서라도 나라를 구할 방도가 없겠소. 대사께서는 부디 도탄에 빠진 이 나라 백성들을 구해주시오.”
어찌하다가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불교를 불효불충의 가르침이라고 국법으로 탄압하고, 승려는 천민으로 내치더니 인과의 시기가 무르익어 올 것이 왔구나 하고는 선조에게 말하였다.
“소승에게 무슨 계책이 있겠습니까마는 전국의 승려들을 모아 창과 방패를 들고 적군을 물리쳐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고 나라를 구할 것입니다.”
평양성 탈환에 나선 서산대사와 승군의 모습(사진=석현장)
서산대사는 선조의 명을 받들어 팔도십육종도총섭이 되어 드디어 전장에 나섰다.
조선팔도에 선종과 교종 총섭을 두고 팔도의 총섭을 지휘하는 직함이었다.
서산대사는 전국 사찰에 격문을 보냈다.
『아, 하늘의 길이 막히도다.
조국의 운명이 위태롭도다.
극악무도한 도적의 무리가 하늘의 이치를 거슬러 함선 수 천 척으로 바다를 건너오니
그 독기가 조선 천지에 가득한지라.
삼경(三京)이 함락되고 우리 선조들이 누천 년 이룬 바가 산산이 무너지도다.
저 바다의 악귀들이 우리 조국을 무참히 짓밟고 무고한 백성들을 학살하는 광란을 벌이나니
이 어찌 사람의 할 짓이랴? 살기가 서린 저 악귀들은 독사 금수와 다를 바 없도다.
조선의 승병들이여! 깃발을 치켜들고 일어서시오!
그대들 어느 누가 이 땅에서 삶을 이어받지 아니 하였소?
그대들 어느 누가 선조들의 피를 이어받지 아니하였소?
의(義)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바, 또 무릇 중생을 대신하여 고통을 받는 바가 곧 보살이 할 바요 나아갈 길이라.
일찍이 원광법사(圓光法師)께서 임전무퇴(臨戰無退)라 이르시니,
무릇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구함은 불법을 따른 우리 조상들이 대대손손 받들어 온 전통이오.
조선의 승병들이여!
우리 백성이 살아남을지 아니할지,
우리 조국이 남아있을지 아니할지,
그 모두가 이 싸움에 달려 있소.
목숨을 걸고 우리 조국과 백성을 지키는 일은 단군의 피가 핏줄에 흐르는 한 누구나 마땅히 해야 할 바라.
이 땅의 나무와 풀마저 일어나 싸워야 할 터, 하물며 붉은 피를 지닌 이 땅의 백성이야 새삼 무슨 말을 하리오?
또한 세상을 구하는 것이 바로 불법(佛法)이 아니리까?
백성들이 도적 무리의 창칼에 죽임을 당하고 그 피가 붉게 조국을 적시오.
조국이 사라지고 백성이 괴로워할진대, 그대들이 살아남은 바가 곧 조국과 백성에 대한 배신이 아니리까?
조선팔도의 승병들이여!
나이가 들고 쇠약한 승려는 사찰을 지키며 구국제민(救國濟民)을 기원하게 하시오!
몸이 성한 그대들은 무기를 들어 도적의 무리를 물리치고 조국을 구하시오.
모든 보살의 가피력으로 무장하시오!
도적의 무리를 쓰러뜨릴 보검(寶劍)을 손아귀에 움켜쥐시오!
팔부신장(八部神將)의 번뜩이는 천둥번개를 후려치며 나아가시오!
참변에 울부짖는 백성들이 분하고 원통하오. 촌각도 머뭇거릴 수 없소.
지체 없이 일어나 불구대천의 원수를 토벌 격멸하시오!
조선의 승병들이여!
조정 대신들은 당쟁 속에 헤매고 군 지휘관들은 전선에서 도주하니 이 아니 슬프오?
또한 다른 나라 세력을 불러들여 살아날 길을 꾀한다 하니, 우리 민족의 치욕이 아니리까?
이제 우리 승병만이 조국을 구하고 백성을 살릴 수 있소.
그대들이 밤낮없이 수행 정진하는 바가 생사(生死)를 초월하자 함이오.
또한 그대들에겐 거둬야 할 식솔(食率)이 없으니 돌아볼 바 무엇이오?
모든 불보살이 그대들의 나아갈 길을 보살피고 거들지니, 분연히 일어서시오!
용맹의연하게 전장(戰場)으로 나아가 도적의 무리를 궤멸하시오!
도적 무리의 창검포화가 두려울 바 무엇이오?
전투가 없이는 승리도 없소. 죽음이 없이는 삶도 없소.
조선팔도의 승병들이여!
일어서시오!
순안(順安)의 법흥사(法興寺)로 집결하시오!
나 휴정(休靜)은 거기서 그대들을 기다릴 터이오.
우리 일치단결하여 결전의 싸움터로 용약 진군합시다!』
스승의 호소문을 보고 호남의 뇌묵 처영, 충청도의 기허 영규, 경상도의 중관 해안,
구월산의 의엄, 금강산의 사명 등이 승군을 조직하여 순안 법흥사로 모여들었다.
서산대사가 이끈 승군은 특히 평양성 전투에서 용맹을 떨치고 큰 공을 세웠다.
이 전투에는 우리 관군과 명나라 이여송의 군대 그리고 승군이 합세하였다.
평양성에서는 소서 행장이 이끄는 5만의 왜군이 지키고 있었다.
대사는 평양성 공격에 앞서 전략적 요충지인 모란봉을 공격하여 탈환하는 것이
평양성 전투의 사활이 걸렸다고 판단하였다.
왜군도 모란봉을 중시하여 2천의 병력으로 수비하였다. 그러나 서산대사가 지휘하는
용맹한 승군들의 공세에 모란봉의 왜군 막사는 불타고 승군의 깃발이 올라갔다.
곧이어 명군의 포병부대가 모란봉에 올라왔다. 평양성이 내려다보이는 모란봉에 포진지를 설치하고
공격하니 큰 피해 없이 평양성을 탈환할 수 있었다.
이여송 장군이 모란봉을 찾아와 서산대사를 친견하였다. 선산 대사의 고매한 인품에 감동한 이여송은 시 한 수를 바쳤다.
삼가 큰스님의 옥장 아래 봉정합니다.
공명과 욕심에는 뜻이 없고
오직 불도를 닦는 일에만 전념하셨네.
위급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총섭이 되어 산에서 내려오셨네.
선조 26년 평양성을 탈환하고 이어서 10월에는 한양을 되찾았다.
선조는 대사로 하여금 어가를 호위하게 하였다.
대사는 젊은 승군 100명을 선발하여 어가를 호위하게 하였다.
선조는 전란 중에 모든 관리들은 ‘서산대사를 재상처럼 대우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전장에 나서며 서산대사가 남긴 시 한 편이다.
기억에 보면 그날 수전을 할 때
만 척의 배가 하늘의 송골매처럼 바다를 날고
양쪽 병사들이 서로 공격하여 분간할 수 없어
고통을 참는 고함 소리에 파도도 목말라하였다.
서릿발 같은 창검이 숲을 이루어 햇빛에 반짝이고
천 개의 머리를 털 하나 베는 것 같이 하였고
아득한 푸르른 바다에서는 놀란 영혼이 울고
밤이면 달이 차가운 모래밭 해골을 비추었다.
백 리의 봄 숲에는 제비가 날아다니고
사람 없는 마을 버들가지에 앵무새 노닐었다.
그대들은 듣지 못했는가.
태평한 날이 오래되면 사람 마음 무디어져
일없이 놀기만 하고 게으르면 하늘이 벌주심을
나그네 가을바람에 지팡이 하나 짚고 떠나가는데
옛 절 조각난 비석이 풀 속에 묻혀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