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관계 회복을 간곡히 부탁한 편지
註 : 1569년 9월 16일, 69세의 퇴계선생께서 20세인 제자 이함형(1550~1577, 本貫 全州. 字 平叔, 號 天山齋, 居 京畿 城南)에게 써준 편지이다. 이함형은 이 해 5월13일에 서울서 도산으로 찾아와 도산서당에 머물면서 퇴계선생께 가르침을 받았다. 이 때 퇴계선생께서 이함형이 부부사이에 문제가 있어 탄식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함형에게 자신의 어려웠던 처지를 설명하며 부부관계를 좋도록 하라는 간곡히 부탁하는 편지이다. 이함형은 이 편지를 읽고 깊이 뉘우치고 부부의 도리를 다하였다고 한다.
이평숙에게 주다
공자(孔子)는 이르기를, “천지가 있은 뒤에 만물이 있고, 만물이 있은 뒤에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은 뒤에 군신이 있고, 군신이 있은 뒤에 예의(禮義)를 둘[錯] -음은 조(措)이니 ‘조(措)’와 같다- 곳이 있다.” 하였고, 자사(子思)는 이르기를, “군자의 도는 부부에게서 시작되니, 그 지극한 데 이르러서는 천지(天地)에 밝게 드러난다.” 하고, 또 이르기를, “《시경》에 ‘처자 간(妻子間)에 정이 좋고 뜻이 합함이 금슬(琴瑟)을 타는 듯하다……’ 하였는데,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부모가 편안하실 것이다.’ 하셨다.” 하였습니다. 부부의 인륜이 이토록 소중하거늘 어찌 정이 흡족하지 못하다고 해서 소박할 수가 있겠습니까. 《대학》에는, “그 근본이 어지러우면서 끝이 다스려진 경우는 없으며, 후하게 대할 자에게 박하게 하고 박하게 대할 자에 후하게 하는 자는 있지 않다.” 하였고, 《맹자》에선 그 말을 거듭하여 “후하게 대할 자에게 박하게 하면, 박하게 하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아, 사람됨이 박절하면 어찌 부모를 섬길 수 있으며, 어찌 형제와 종족과 마을에서 처신할 수 있으며, 무엇으로 임금을 섬기고 대중을 부리는 근본을 삼을 수 있겠습니까.
듣건대 공이 금슬이 좋지 않아 탄식한다는데, 무엇 때문에 이러한 불행이 있게 되었습니까. 가만히 보면 세상에 이런 걱정이 있는 자가 적지 않으니, 부인의 성질이 나빠 교화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못생기고 슬기롭지 못한 경우도 있고, 남편이 광포하고 방종하여 행실이 없는 경우도 있고, 호오(好惡)가 정상과 어긋나는 경우도 있는 등 그 다양한 유형을 다 들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대의(大義)로 말해 보면, 그중에 성질이 나빠 교화하기 어려운 자가 실로 소박 당할 죄를 자초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편에게 달려 있습니다. 남편이 반성하여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고 노력하여 잘 처신하여 부부의 도리를 잃지 않는다면 대륜(大倫)이 무너지는 데 이르지는 않을 것이며 자신도 박절하게 굴지 않는 데가 없는 처지에 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이른바 성질이 나빠 교화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대단히 패역한 짓을 저질러 명교(名敎)에 죄를 지은 자가 아니면 마땅히 합당하게 선처(善處)하여 성급하게 결별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습니다.
대개 옛날에 쫓겨난 부인네들은 그래도 달리 시집갈 길이 있어 칠거지악을 범한 부인을 쉽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의 부인네들은 대체로 일부종사(一夫從事)를 하여 일생을 마치게 되니, 어찌 그 정의(情義)가 맞지 않다고 하여 길가는 사람처럼 대하거나 원수처럼 보아 한 몸이던 부부가 반목하게 되고 한 자리에 들던 부부가 천 리(千里)나 떨어져서, 가도(家道)는 출발점을 잃고 만복의 경사를 누릴 근원을 끊는 짓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대학》의 전문(傳文)에 “자신에게 허물이 없어야 다른 사람을 탓한다.” 하였으니, 여기에 대하여 내가 일찍이 경험한 것을 얘기하겠습니다. 나는 두 번 장가들었지만 줄곧 불행이 심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부분에 대해 마음을 박하게 하지 않고 노력하여 선처한 것이 거의 수십 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동안 몹시 괴롭고 심란하여 번민을 견디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어찌 감정대로 하여 대륜(大倫)을 소홀히 해서 편모(偏母)에게 근심을 끼칠 수 있겠습니까. 질운(郅惲)이 말한, “아버지도 부부 문제에선 아들을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이 도리를 문란하게 하는 간사한 말이니, 이 말을 핑계 대면서 공에게 충고를 안 할 수는 없습니다. 공은 마땅히 반복하여 깊이 생각하여 징계하고 시정하도록 하십시오. 이 문제에 대해 끝까지 시정하지 않는다면 어찌 학문한다 하며 어찌 실천한다 하겠습니까.
출전 : 한국고전번역원
與李平叔
孔子曰。有天地然後有萬物。有萬物然後有夫婦。有夫婦然後有父子。有父子然後有君臣。有君臣然後禮義有所錯。音措。與措同。 子思曰。君子之道。造端乎夫婦。及其至也。察乎天地。又曰。詩云妻子好合。如鼓瑟琴云云。子曰。父母其順矣乎。夫婦之倫。其重如此。其可以情好之未恊。疎而薄之乎。大學曰。其本亂而末治者否矣。其所厚者薄。而其所薄者厚。未之有也。孟子申其說。亦曰。於所厚者薄。無所不薄也。噫。爲人旣薄。何以事父母。何以處兄弟宗族州里。何以爲事君使衆之本乎。似聞公有琴瑟不調之歎。不知因何而有此不幸。竊觀世上。有此患者不少。有其婦性惡難化者。有嫫醜不慧者。有其夫狂縱無行者。有好惡乖常者。其變多端。不可勝擧。然以大義言之。其中除性惡難化者。實自取見疎之罪外。其餘皆在夫。反躬自厚。黽勉善處。以不失夫婦之道。則大倫不至於斁毁。而身不陷於無所不薄之地。其所謂性惡難化者。若非大段悖逆。得罪名敎者。亦當隨宜處之。不使遽至於離絶。可也。蓋古之去婦。猶有他適之路。故七去可以易處。今之婦人。率皆從一而終。何可以情義不適之故。而或待若路人。或視如讎仇。牉體歸於反目。衽席隔於千里。使家道無造端之處。萬福絶毓慶之原乎。大學傳曰。無諸己而后。非諸人。此事請以滉所嘗經者告之。滉曾再娶。而一値不幸之甚。然而於此處。心不敢自薄。黽勉善處者殆數十年。其間。極有心煩慮亂。不堪撓憫者。然豈可循情而慢大倫。以貽偏親之憂乎。郅惲所謂父不能得之於子者。眞是亂道邪諂之言。不可諉此而不忠告於公。公宜反覆深思。而有所懲改焉。於此終無改圖。何以爲學問。何可爲踐履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