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기도가 맞습니다
임래호
가을 끝자락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젖은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애처러이 발버둥을 치던 마지막 잎새 한 장,
그것은 분명
절박한 아우성의 기도가 맞습니다
손수레에,
주워 모은 종이상자들을 한가득 싣고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을 오르기 위해 몸부림을 치시는 할머니,
그 모습은 참으로 절박한 기도입니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발견하고 급히 뛰어가
할머니의 손수레를 뒤에서 말없이 밀어주는 학생 또한 기도가 분명합니다
이른 새벽,
일을 나가기 위해 두꺼운 옷을 챙겨입으며
곤히 잠든 자식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그 눈빛은 기도입니다
초여름 들녘,
쩍쩍 갈라진 논바닥의 벼들을 보고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농부의 그 안타까운 모습은 기도입니다
축사에서
소들과 눈을 마주치며 소들에게 정성껏 먹이를 챙겨 주는 그 농부의 사랑 또한 기도가 맞습니다
폭풍우가 지나간 뒤 우수수 떨어진 과수원의 낙과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농부의 그 피눈물은 아픈 기도가 맞습니다
배추 파 마늘 등
모든 농작물들을 잃은 농민들의 뜨거운 눈물들 또한
가슴 아픈 기도가 맞습니다
시끄러운 재래시장,
그 한 켠에서 채소와 곡식들 몇 가지를 시장바닥에 깔아놓고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느라 지쳐서 꾸벅꾸벅 졸고 계시는 주름 많은 할머니의 애잔한 모습은 기도입니다
그런 할머니에게 일부러 다가가 무엇인가를 사주려고
이것 저것을 물으시는 아주머니 또한 기도가 분명합니다
더운 여름날
장대같은 소나기가 한 차례 퍼붓은 후, 열심히들 울어대는 도시 매미의 요란한 울음소리는
우리들에게 시원함을 선물하려 애 쓰는 매미들의 기도가 분명합니다
정오
무료급식소의 긴 줄,
그 맨 뒤에 서서 제발 자신의 순서까지 급식이 동나지 않기만을 바라며
초조히 기다리시는 할아버지의 그 허기진 모습은 분명 기도입니다
도시 쪽방촌,
집 앞 골목길에 멈춰 서서
희미한 눈으로 공과금 고지서를 자세히 들여다보시는 할아버지의 불안한 모습은 기도입니다
그 쪽방촌 골목길을 들어서시는 자원봉사자님들 또한 기도가 분명합니다
교통이 번잡한 횡단보도에서
지팡이를 든 할머니의 손을 잡고 길 끝까지 도움을 드리는 그 경찰관은 기도입니다
군대에 간 아들이
추운 겨울날 보초를 서며
떠오르는 보름달 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그리는 것은 기도입니다
공무원이
관공서를 찾아온 민원인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교단에 서 계신 선생님이
인자한 눈으로 제자들을 바라보시는 것은 기도입니다
택배 기사님이
고객을 위해 열심히 땀을 흘리며 바삐 서두르시는 것은 기도입니다
정치인들이
오직 국민들만을 위한다는 말은 기도가 맞습니다
그것은
거짓말의 달인들이
우리 동네 개들을 웃게 할려는
진실된 기도입니다
바닷가,
오늘의 그물을 치기 위해 바다로 나가려는 어부가
근심어린 눈으로 바람과 파도의 표정을 살피는 것은 기도입니다
그 어부의 옆에서
박자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그물에서 멸치를 힘차게 터느라 땀 범벅이된 어부들 역시 기도가 맞습니다
바다 끝자락,
높은 등대에서 철썩거리는 파도의 모양을 살피며 정성스럽게 등대의 유리창을 닦는 그 등대지기는 기도입니다
추운 겨울날,
자맥질을 위해 차가운 바닷물로 뛰어드는 해녀들 또한 절실한 기도입니다
염전에서,
영그는 소금꽃을 바라보며
태양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는 염부는 기도입니다
더운 여름날,
타오르는 숯불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고기를 굽는 식당 사장님의 그 땀방울은 기도입니다
병원,
수술실 앞에서 수술중인 아버지의
수술시간 중계 전광판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초조하고 애처로운 기다림은 절박한 기도입니다
축구경기장, 농구경기장, 배구경기장,야구경기장 등등등
각종 운동경기장에서
자식들의 경기장면을 지켜보며 두 손을 모으는 부모님들의 그 모습은
간절한 기도가 맞습니다
소파에서 고양이와 강아지들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집주인의 속마음은, 가정의 평화를 기도하는 따뜻한 그 기도가 맞습니다
결혼식장,
딸의 손을 잡고 입장하여 사위에게 딸의 손을 맡긴 후 그들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친정 아버지의 그 눈길은
자식의 행복을 바라는 그 기도가 맞습니다
장례식장,
조문객들의 엄숙한 침묵,
그것은 애절한 기도가 맞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날카로운 삶의 시간 위에 서서 열심히 흘리는 모든 땀들은
정성스럽고 진실된 기도입니다
시인이 밤잠을 설치며 쓴 한 편의 시는
기도입니다
그것은 분명,
우리들 모두의 행복을 위한 멋진 기도가 틀림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쩜,
세상의 모든 땀들은
분명히 기도가 맞습니다.
임래호 제2시집
<시인의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