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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만찬으로 주님을 만나는 은혜 (고전 11:17-34)
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19.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교회에 들어와서 믿음을 갖고 세례를 받게 되면 그 사람은 세례교인이 됩니다. 세례는 하나님께는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고 주님과 함께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세상을 향해서는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는 선포입니다.
세례교인이 되면 몇 가지 중요한 의무가 생깁니다. 국민에게는 국민으로서의 의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례교인은 모든 공집회에 참여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세례교인은 헌금을 드려야 할 의무 책임이 있습니다. 십일조, 주일헌금, 절기헌금 등 헌금의 의무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 공수로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평상시에도 헌금을 하지만 절기헌금은 특별하게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부모님에게 용돈을 늘 드리던 사람도 생신이 되면 더 드리는 것처럼 절기헌금은 그렇게 특별히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하나님이 우리가 드리는 헌금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제 큰 아들이 군대에게 가기 전에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저에게 가을 잠바를 하나 사주고 갔습니다. 제가 그 잠바를 입을 때 마다 특별한 감정이 생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부모님에게 받은 옷하고는 다르더군요. 입을 때마다 ‘내 아들이 사준 잠바’라는 생각이 들면서 기쁘더군요. 제가 잠바를 살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들이 사주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우리의 헌금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사랑해서 드린 헌금이기 때문에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세례교인은 교회의 치리에 복종할 의무가 있습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경건하게 살아감으로 매사에 본이 되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세례교인은 의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권리가 있습니다.
선거권과 피선거권입니다. 또 하나는 성찬식에 참예할 권리가 주어집니다. 본래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면 누구든지 성찬식에 참예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찬식의 질서를 위하여 세례교인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 때는 성찬식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수찬정지를 시키기도 했습니다. 또 자녀를 불신자와 결혼시키면 수찬정지를 시키기도 했고, 장로가 주일을 세 번 범하면 수찬정지를 시켰습니다.
성찬식은 중요합니다.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제대로 된 성찬식을 하면 믿는 사람들에게 복된 생활을 보장해주기 때문입니다.
슥 9:16,17을 보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왕관의 보석처럼 귀하게 보십니다. 그리고 성찬식을 잘하는 자들을 형통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고 강건하게 하십니다.
요 6:53-57을 보면 성찬식을 잘하는 자가 받는 3대 축복이 나옵니다. 첫째는 영생의 복입니다. 둘째는 부활의 복입니다. 셋째는 주님과 하나 됨의 복입니다.
교회가 처음 세워졌을 때에는 성도들은 모일 때마다 성찬식을 했습니다. 지금은 편리를 위하여 성찬용 떡과 포도즙을 준비하지만 당시에는 평소에 먹는 빵과 평소에 마시는 포도주를 갖고 했습니다. 또 따로 성찬식을 가진 것이 아니라 유월절 만찬을 하듯이 음식을 먹으며 성찬식을 거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찬식은 거룩한 식사입니다. 그런데 본 서신을 받아보는 고린도교인들은 성찬식을 잘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성찬을 위한 음식을 준비해왔습니다. 그런데 각자 가져오는 음식을 함께 먹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부자들은 시간 전에 먼저 모여서 가난한 사람들이 오기 전에 먹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포도주를 많이 먹어서 취하여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올바른 성만찬을 위하여 본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 본문을 통해서 성만찬에 대한 진리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잘못된 성만찬의 결과
첫째, 성만찬을 잘못하면 유익 되지 못하고 해롭습니다. 17절입니다.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성찬식을 제대로 하면 영적인 생명을 얻고 건강의 복까지 얻습니다. 반면에 성찬식을 잘못 사용하면 유익이 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해롭기까지 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사용하는 사람이 잘 못 사용하면 유익이 되지 못하고 해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전기는 너무나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 사용하면 감전되고, 화재의 원인이 되어 인명 피해를 보거나 재산상의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성만찬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사용하면 큰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지만 잘못하면 해를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성만찬을 잘못하면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됩니다. 27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여기서 ‘죄를 짓는다’는 말은 ‘욕보임’ 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여러분 누군가가 마경훈 목사의 이름으로 못된 짓을 한다면 그건 저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은 나를 욕보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의 이름으로 모여서 성찬식을 하는데 잘 못된 성찬식을 하면 주님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주님을 욕보이는 것입니다.
셋째, 성만찬을 잘못하면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29절입니다.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여러분! 하이타이를 먹고 락스를 먹고 마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몸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만찬을 잘못하는 것은 죄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은 하이타이를 먹고 락스를 마시는 것보다 우리의 영과 혼과 몸에 더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느 지역에서는 광산이 문을 닫았는데 뒤처리를 잘못해서 지하수가 오염이 되었고 그 결과 온 동네 사람들이 뼈가 휘어지는 병에 걸렸고, 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려 죽어간다는 기사를 본적 있습니다. 물 하나 잘못 먹은 것 때문에 온 동네가 질병과 사망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죄를 먹고 마시면 얼마나 영육간에 질병과 사망이 충만하겠습니까?
넷째, 성만찬을 잘못하면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아집니다. 30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몇 년 전에 김석환 집사님이 저에게 CD 한 장을 주셨습니다. 내용을 대충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그 CD에서는 노화에 대해서 말합니다. 노화의 원인은 산성노폐물입니다. 그래서 젊음을 유지하려면 산성을 중화시켜야 합니다. 산성을 중화시키기 위해서는 알카리가 들어있는 야채를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몸에 있는 산성을 중화시키려면 엄청난 양의 엄청난 야채를 먹어야 하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알카리수를 마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카리수를 먹으면 산성노폐물이 중화되고 배설되기 때문에 알카리수를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뇨병은 췌장에 산성노폐물이 쌓여서 생기는 병이라고 합니다. 골다공증은 산성이 뼈에서 칼슘을 빼가서 생기는 병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산성수를 계속 마시기 때문에 현대병에 많이 걸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산성수를 마시는 것 때문에 이렇게 몸이 병들게 되는데 죄를 먹고 마시니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적으로 병의 원인을 추적해서 올라가보면 마지막에 죄가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성만찬을 잘못해서 죄를 먹고 마시니 약해지는 사람이 많고 병든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성만찬을 잘못하면 영적으로 잠자게 됩니다. 30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영적으로 맑은 상태에 있던 사람이 죄를 범하면 그는은 영적으로 혼탁해집니다. 은혜를 받아서 영적으로 아주 밝아있던 사람을 누군가가 감정을 건드려서 그가 화를 낸다면 그는 영적으로 흐려질 것입니다. 기도에 불이 붙어서 깊은 기도생활을 하던 중에 치명적인 죄에 빠지면 그는 기도가 막히고 영적으로 침체가 찾아옵니다. 이렇게 영은 굉장히 민감합니다. 그런데 성찬식을 잘못해서 죄를 먹고 마시니 영적으로 잠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죄 문제는 빨리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잘못된 성만찬의 원인
성찬식에서 중요한 것은 주님의 사랑과 그 사랑을 받은 우리들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본질에서 벗어난 성찬식을 거행했던 것입니다.
성찬식과 관련된 가슴 아픈 사건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몇 년 전 부활절 다음 주일에 미국 메인 주 뉴 스웨덴에 있는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 예배 후에 약 50명의 참석자가 커피 테이블로 가서 교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커피가 유독 썼습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신 몇몇 교인들이 심한 복통을 일으켰고, 그날 저녁 16명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한 명이 죽었습니다.
그 사건을 조사하면서 경찰은 커피 메이커에 다량의 비소가 넣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조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교회의 중직 중의 한 사람이 권총으로 자살했고 그의 노트에는 자신이 비소를 넣었다는 글이 남겨져있었습니다.
그 사건이 일어난 배경은 성찬 테이블에 관한 교인들 간의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성찬 테이블을 벽에 붙여놓고 떡과 포도주를 벽을 보면서 들었습니다. 그 모습에 불만을 느꼈던 한 사람이 새로운 성찬 테이블을 기증해서 떡과 포도주를 회중을 보면서 들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장로들은 오래 된 성찬 테이블을 그대로 두고 이제까지 하던 대로 하기를 원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그는 결국 이런 무서운 일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잘못된 성만찬과 관련된 극단적인 예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어떤 부분에서 성만찬을 잘못했는지 살펴봅시다.
첫째, 분쟁(다툼)이 있었습니다. 18절입니다.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고린도교회는 교회 안에 분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다툼으로 인하여 성만찬의 참 의미를 상실한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하나 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하나 됨, 이웃과 하나 됨이 십자가 정신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십자가 정신과 반대되는 생활을 하면서 성만찬을 했기 때문에 잘못된 성만찬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파당이 있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고린도교회는 주장과 이해를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파를 만들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 등으로 나뉘었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무서운 것 중에 하나가 파벌 문제다. 파벌 문제는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겔 11:29에 보면 성령이 역사하시면 일치한 마음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셋째, 차별이 있었습니다. 21, 22절입니다.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고린도 교회는 자유자와 종의 차별,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별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차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극복해야 합니다. 골 3:23에 보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든지 주님을 대하듯 해야 합니다.
행 13장에 보면 안디옥교회가 나오는데 이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였습니다. 왕족도 있는가하면 사울처럼 많이 공부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는 차별이 없었습니다. 행 13:1에 보면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 5명이 나오는데 그 중에 2명이 흑인일 정도로 차별이 없었습니다.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돌아가면 차별은 철폐사라집니다.
넷째, 방탕함이 있었습니다. 21절을 보면 많이 먹고 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술취함과 방탕은 항상 하나입니다. 엡 5:18에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총기소지 금지라든지 마약척결 등은 아주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성애 금지도 잘하고 있는 일인데 1l월에 국회에서 동성애차별금지법이 통과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가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사금지나 술을 금하는 것은 아주 잘하는 일입니다.
아무리 점잖은 사람도 술에 취하면 부끄러운 짓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타종교인들이 술에 취하여 부끄러운 짓을 하는 것을 보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타종교 성직자가 “술에 취하니 개나 다름없더라”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방탕한 생활은 성만찬을 망치는 중요한 원인입니다. 그러므로 술 취하면 안 됩니다. 방탕하면 안 됩니다.
훌륭한 강해 설교자로 알려진 존 맥아더(John MacArthur)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목사님께서 이렇게 광고를 하셨습니다. “다음 주일에는 세례 교인 이상의 성도들은 모두 성찬에 참여하시게 됩니다. 그러나 저기 두 자매는 성찬에 참여할 수 없음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공포합니다.” 왜 이렇게 냉정한 광고를 하셨을까요? 첫 번째 자매는 남편과 별거하고 아직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남자와 사귀면서 계속 성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교회가 수차례 경고하였지만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자매는 혼인도 하기 전에 애인과 동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방탕함은 성찬식을 망치는 것입니다.
3. 올바른 성찬
본문에서 말하는 올바른 성만찬은 어떤 것인지 살펴봅시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주님과 동행하면서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셨더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신들의 앞에 계신 분이 주님이신 줄을 알아봤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성찬식을 잘 하셔서 영적인 눈이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성만찬은 주께서 세우신 예식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23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성만찬을 누가 세웠느냐를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단지 교회의 행사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주님이 세우신 예식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 성만찬은 주님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24, 25절입니다.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두 번이나 “나를 기념하라”하셨습니다.
성만찬은 주님을 기념하는 것이 초점입니다. 먹는 것이 초점이 아닙니다. 34절에서 시장한 사람은 집에서 먹으라는 말은 먹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말라는 말입니다.
루터의 [교회의 바벨론 감금]이라는 논문에 보면 로마 교회가 가르치는 성찬과 관련된 세 가지 과오를 말합니다. 첫째, 성찬식을 거행할 때 사제들은 떡과 포도주를 다 먹지만 평신도들에게는 떡만 주고 포도주는 주지 않는 당시의 성찬 제도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합니다. 둘째, 성찬예식을 거행할 때 집례자가 기도를 하고 나면 성찬상 위에 있는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化體說)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합니다. 셋째, 성찬예식을 매번 행할 때 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진다고 믿는 성찬을 ‘희생’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합니다.
제가 가진 신학은 화채설이 아닙니다. 기념설이고 영적 임재설입니다. 떡이 주님의 살로 변하고 포도주가 주님의 피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주님이 성령으로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성만찬을 통해서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26절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우리가 합당한 성찬식을 하려면 주님의 죽으심과 그 의미를 전해야 합니다. 전도자의 생활을 하며 성만찬을 하라는 말입니다.
주님의 고난은 우리를 대신한 고난이었습니다. 사 53:5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넷째, 성만찬은 자기를 살피고 해야 합니다. 28절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죄를 범한 것이 생각나거든 회개 기도를 하고,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먼저 용서하고, 잘못된 습관, 악한 습관이 있다면 끊을 것을 결단하고 주님의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이 있다면 순종을 결단하고 성만찬을 하십시오.
다섯째, 성만찬은 주의 몸과 피를 분별하고 해야 합니다. 29절입니다.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 말씀은 젖이 아니라 단단한 식물입니다. 잘 들어야 합니다.
29절에서 주의 피에 대한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고린도교인들이 주의 피에 대해서는 이해했고 분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의 몸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입니다.
여러분! 유월절 어린양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우리 주님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대인들이 어린양을 어떻게 처리했는가를 보며 영적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어린양을 잡아 피는 문설주와 문인방에 발랐습니다. 그리고 어린양의 살은 먹었습니다.
어린양의 피는 그들의 생명을 지켜주었습니다. 죽음의 천사가 애굽 전역을 돌 때 문설주에 발라져있는 어린양의 피를 보면 그 집을 넘어갔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는 사람은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린양의 살은 먹었습니다. 어린양의 살을 먹은 사람들은 건강의 복을 받았습니다. 29절에서는 몸을 분별하고 먹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30절에서는 주님의 몸 즉 주님의 살을 분별하고 먹지 못한 결과로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다고 했는데 이 말씀을 반대로 생각하면 주님의 몸, 주님의 살을 분별하고 먹으면 강해집니다. 건강해 진다는 말입니다.
시 105:37을 보면 유월절 어린양의 살을 먹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장정들만 603,55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아픈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들에게 그런 기적이 일어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어린양의 살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양의 피가 유대인들의 생명을 지켜준 것 같이 어린양의 살은 그들의 건강을 지켜주었던 것입니다.
오늘 성찬식을 믿음으로 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범한 죄는 회개하시고,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 부분은 말씀대로 살기를 결단하십시오. 그리고 주의 임재를 느끼며 주님을 기념하기 위하여 성만찬을 한다면 여러분에게 있는 질병은 떠나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건강한 육체를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패트 노벡은 보스턴의 교외에 위치한 병원의 목사로 봉사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찾아와서 한 환자를 보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환자는 60대의 존이라는 사람인데 병원에 어떤 검사를 해도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로 쇠약해지며 2주 동안이나 전혀 음식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않고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패트 목사님이 존이라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 중에 갑자기 마음속에 성령께서 강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 성찬을 받고 싶은지 묻고 성찬을 받게 하라” 그래서 목사님이 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밥도 안 먹고 물도 안마시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인 성찬을 받겠습니까?” 그러자 존은 “그럴 수 없어요! 나는 죄가 너무 많아서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거룩한 성찬에 참여 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을 만날 자격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서 몸 찢고 피 흘렸으니! 감사함으로 성찬을 받아들이면 살아계신 예수님이 당신에게 들어 와서 당신이 살아날 것입니다”라고 권면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존은 죄를 회개하고 다음에 목사님이 주시는 성찬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시고 난 다음에 갑자기 그리스도의 영광이 그 몸속에 들어온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는 모든 마음에 고통과 육신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해방되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 이후로 밥도 먹고 물도 마시고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고 병원에서 퇴원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여섯째, 성만찬은 하나 되어 해야 합니다. 33절입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분열되었던 고린도교인들에게 하나 되도록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하나 됨은 주님의 소원입니다. 자식들이 서로 싸우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좋아할 부모는 없습니다. 자식들의 분열은 부모에게 아픔이듯이 성도의 분열은 주님의 아픔입니다. 주님은 하나 됨을 원하십니다.
하나 됨의 비결은 성령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고전12:13을 보면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월남전에서 월맹군의 포로가 됐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미 해군 준장 제임스 스톡턴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포로가 된 후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 밤에 잠을 재우지 않고 고문을 하는데 그 고통은 이루 말할 길이 없어 죽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고통 중에도 살 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습니다. 그 고통 중에 자기 옆을 지나던 다른 포로 병사들이 발로 소리를 내고 지나가는데 “똑, 똑똑똑, 똑”입니다. 한사람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지날 때 마다 발로 이와 같은 소리를 내고 지나가는데 이 소리 “똑, 똑똑똑, 똑”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갓 브레스 유!” 하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는 축복의 말이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래, 하나님이 나와 지금 함께 계신다. 요셉에게 함께 하신 것처럼, 매를 맞고 빌립보 감옥에 갇혔던 바울과 실라처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나를 도우신다!’ 라고 생각을 하고 믿으니까 힘이 나서 그 고통을 이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성만찬 시간은 주님이 영적으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고 우리들에게 새힘을 주시는 시간입니다. 오늘 성만찬을 통해서 새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