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연중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이 피어 봄이 오고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거친 비바람과 꽃샘추위, 주위의 여러 가지 난제로 봄을 제대로 반겨주지 못했다. 올 해도 봄을 제대로 반기지 못했다는 생각에 섭섭한 마음을 가누기가 어렵다.
이렇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다른 계절이 봄 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긴 추운 겨울을 보내며 봄에 알맞고 적절한 기대와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추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며 연두색 파릇파릇하니 생기 있게 돋는 새싹을 보며 행복한 시간을 누군가와 함께할 거라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봄은 잠시 인사만 하고 어느새 그 자리엔 푸른 잎새가 드리워지기 시작하고 있다.
‘이웃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라고 했던가. 따뜻한 봄을 맞이했던 기쁨도 잠시 우리 사회는 청년 일자리뿐만 아니라 조선과 상선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가 귓가에 맴돈다. 이러한 무거운 소식을 접할 때면 두 손을 들고 들판을 달리고 싶은 마음이 움츠려 들게 된다. 구조조정의 앞에서 어느 한 노동자의 외침은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고, 이 난제를 풀어나갈 상황은 더 침체의 늪으로 빠지는 상황이 매스컴에서 들려올 때면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해결방안은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헤치고 나아가야 할 길에 있다’고 했던가. 어려움이 태산 같다고 한들 헤쳐나 갈 수 있는 방법은 있을 것이다. 지난날 우리는 IMF를 겪었으나 한마음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잘 극복하였다. 서로가 힘을 합치고 해결의 방안을 지혜롭게 모색한다면 이 문제 또한 잘 해결 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가끔씩 우리는 과거의 고난을 잊어버리고 그 수레바퀴의 자취를 다시 좇아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비슷한 문제를 만나 겪게 되고 문제해결은 더 어려워진다. ‘왜’ 이 힘든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겪으며 힘들어 하는지, 우리에게 결여된 것이 무엇일까, 라고 생각해본다.
최근에 서울 강남 남여공용화장실에서 발생한 여대생 살인사건도 이런 종류의 사건이 발생 할 것이라고 예측을 하지만 무방비로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뒷수습을 하려고 한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발상의 전환이 ‘왜’라는 질문에서 발생하였다고 한다. 뉴턴의 ‘만유인력법칙’ 갈릴레오의 ‘지동설’처럼 ‘왜’라는 질문에 원인을 밝히고 진실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다. 우리가 자주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경제의 문제라기보다는 실질적인 문제를 짚지 못하는데에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가 경제에 몰두하다가 잊어버리고 챙기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찾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찾기 위해 주위를 돌아보고 다시 한 번 찬란한 봄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하고 기대해본다. 희망을 기다리는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시가 생각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모란이 피기 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여름의 여왕, 가정의 달도 뒤로하고 유월을 맞이하면서 다시 올 봄을 기다린다. ‘절망 가운데 희망과 기다림’을 노래한다. 엘리어트가 속삭인 ‘잔인한 달’ 사월을 보내고, 오월 어느 날 모란이 떨어져 시들어 사라진 자리에서, 다시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내어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찬란한 그날을 염원한다. 기사입력: 2016/06/02 [16:28] 최종편집: ⓒ 광역매일 http://www.kyilbo.com/sub_read.html?uid=178981§ion=sc30§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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