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쑨 도르마(Nessun Dorma)
큰 무대는 웅장해서 좋고, 홈 콘서트는 소담해서 좋다. 오선지 한 장이 완성되기까지 작곡 여정은 대하소설이 되기도 하고 참신한 수필이 되기도 한다.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무대에 올리기에는 오페라가 으뜸이다. 오페라 거장 쟈코모 푸치니는 본인의 극중 주인공들 만큼이나 다사다난한 삶을 살았다.
그의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는 중국전설이 배경이다. 푸치니는 투란도트를 통하여 니체가 주창한 플라토닉러브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내 엘비라는 친구 부인이었지만 불륜 끝에 결혼을 하게 된다. 엘비라는 결국 질투의 화신이 되어 푸치니가 만나는 모든 여자가 남편과 바람을 피우는 대상으로 여긴다. 교통사고 후유증과 후두암 치료를 돕는 하녀 도리아 만프레디 마저 의심하고 질투하여 자살하게 만든다.
그즈음 완성한 오페라가 『투란도트』다. 주인공 투란도트 공주는 결혼기피증에 가까운 결벽증으로 자신이 제시하는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청혼자를 죽이겠다는 조건으로 이웃왕자들의 청혼을 거절 한다. 얼음보다 차갑고 사형집행관 같은 공주가 마침내 사랑을 알아가는 이야기다.
이웃나라 타타르국 칼라프 왕자가 투란도트를 만난다. 공주는 수수께끼 세 가지를 제시하고 칼라프는 수수께끼를 거뜬히 풀어낸다. 칼라프는 결혼을 혐오하는 투란도트에게 역제안을 한다. 내일 아침까지 자신의 이름을 알아맞히면 결혼을 취소 해주겠노라고. 공주는 대신들에게 “잠들지 말고(네쑨 도르마 ; nessun dorma) 왕자의 이름을 알아오도록 하라. 그렇게 못하면 모두 참할 것이니라.”며 추상같은 명령을 내린다.
칼라프의 아버지는 전장에서 눈을 잃어 시녀 류가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낸 투란도트의 신하들이 류를 붙잡아 왕자의 이름을 대라며 고문을 해댄다. 류는 끝까지 말을 하지 않고 자결로써 자신의 입을 지킨다. 왕자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 투란도트는 투항하는 심정으로 결혼을 결심한다.
류가 자결했다는 소식을 접한 투란도트는 류가 얼마나 칼라프를 사랑하였는지 생각한다. 칼라프는 투란도트에게 말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에 내 이름을 가르쳐 드리렵니다. 내 이름은 칼라프입니다. 아버지는 딸에게 청혼자 이름을 알아냈느냐고 묻는다. “녜, 아버지 그의 이름은 사랑입니다.”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날. 쟈코모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중에서 아리아 「네쑨 도르마(Nassun Dorma)」가 합창과 오케스트라로 울려 퍼졌다. 푸치니가 살아왔던 예술가로서의 여정이 명멸했다. 인간 윤석열이 클래식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곡 선정에 직접 간여했으리라 직감했다. 취임식 배경음악은 대부분 행진곡 이었던 상식을 뛰어넘어 “잠들지 말고 지켜봐 주십시오.” 라며 외치고 있었다.
이태리 말 ‘네쑨 도르마’는 잠들지 말라(None shall Sleep)는 뜻이다. 광복 이후 부침을 거듭해온 우리나라 정치사에 진정 각성하는 시대가 도래 하고 있음에 전율한다. 자신을 위한 팡파르가 아니라 국민을 향해 외치는 호소여서 더욱 가슴 저민다. 푸치니가 사랑을 대변하여 읊은 아리아를 윤석열이 취임사로써 호소한 셈이다.
아리아는 「사라져라 밤이여! 자거라 별들이여 ! 해가 뜨면 승리하리라 ! 승리하리라 ! 」며 끝을 맺는다. 실로 우리는 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다. 투란도트가 사랑에 눈을 뜨듯 악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념논쟁은 국민을 찌들게 만들었다. 국론은 백인백론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땀이 소득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복지는 포퓰리즘 이라는 득표수단으로 전락하였다. 국방은 무혈투항 하였고, 외교는 굴종과 고립으로 치달았다. 경제는 누적된 채무에 짓눌렸다.
윤석열은 말로만 외친 것이 아니다. 구중궁궐을 열고 길거리로 빠져나와 보통사람들을 만난다. 보통국수를 먹고 보통사람처럼 출퇴근한다. 수당 없는 야근을 하고 거리낌 없이 언론을 만난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행보에 어리둥절하면서도 “맞아! 이것이야!” 를 거듭하게 한다. 체격에 걸맞지 않은 순발력이 돋보인다.
대통령 이전에 인간이기를 바란다. 지배자로서보다 통솔력을 가진 국민으로 살기를 바란다. 있는 법이나마 잘 지키며 살고자 하는 필부이기를 원한다. 선택해준 국민 앞에 다소곳한 지도자이기를 원한다. 국민이 궁금해 하기보다 대통령으로서 궁금한 것이 더 많았으면 한다. 그를 크게 보는 것은 XXL 사이즈 셔츠를 입어서가 아니다, 민의를 크게 수용하리라 믿어서다.
과거에 매달리기보다 미래에 집중해주면 좋겠다. 누군가를 쓰러뜨리지 않고 거두는 승리가 멋진 승리다. 충녕대군이 세종대왕으로 기억되듯 아름다운 이름으로 길이 남기 바란다. 그러자면 국부國父라는 큰 이름도 필요치 않다. 그냥 20대 대통령 아무개면 족하다. 대통령 이름이 빛나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백성이 대통령 이름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
돌이켜보면 어퍼컷 세레모니가 복싱제스쳐가 아니었다. 카라얀이 『투란도트』에서 휘두른 지휘봉이었다. 루치아노 파발로티가 목청을 다해 뿜어낸 ‘승리’였다. 자신이 품은 외침을 아리아로써 토해냈다. 그래서 연설문은 짧아도 여운은 길게 남았다. 정치란 교언영색으로서가 아니라 이렇듯 감동으로 교감하는 일이었다.
통일이라는 염원 앞에 민족 정서는 희망 고문을 당했다. 남북통일이 목적일지언정 득표수단이어서는 안 된다. 통일 이전에 외교가 먼저다. 이웃 나라들과 과거라는 걸림돌을 디딤돌로 전환 시키는 지혜가 절실하다.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자유에 미숙하다. 자유는 맘대로가 아닌 철저한 의무이행에 따른 결실임을 뼛속깊이 각인해야 할 때가 되었다.
내가 내 조상의 후손으로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 내 2세 3세들이 이 땅에서 살아갈 것이라는 안도감이 나를 태평스럽게 한다. 금수강산은 본래부터 낙원이었다. 푸치니가 외친 ‘네쑨 도르마’가 여의도 하늘을 뚫고 올라 민초들로 하여금 환호하게 한다. 승리하리라, 빈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