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오늘처럼 봄비가 촉촉히 내린 이맘때였을겁니다 집사람과 난 결혼한지 얼마안된 신혼때였고 산에서 만난 커플들답게 주말을 맞아 일박이일로 월악산 산행을 갔읍니다..
첫날은 수안보에서 여장을 풀고 온천욕을 하고나서 길거리 카페에서 홍합 한사라에 소주 한잔을 마시니 세상이 다 내것처럼 행복했읍니다..
어찌됐던 이렇게 여행지에 들뜬 기분에 젖어 일배 부일배 하다보니 상당히 과음을 하게됐고 필연적으로 다음날 늦잠을 자게 됐읍니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산행을 떠났읍니다 ..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당시에는 까르르 웃으며 얘기하는 마누라의 목소리도 정말 듣기 좋았읍니다 (지금은 소 듣는 목소리와 맨날 나 잘못했던 얘기를 해서 괴로워요 ㅎㅎ)
천만 다행으로 날씨도 더할 나위없이 쾌청 했읍니다..
뿌옇게 흐려지며 한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가랑비에 속옷까지 젖는다고 옷이 젖으니 점점 산행은 힘들어지고 주위는 어두워 지고 있었읍니다
정말 고민이 되더라구요 그때가 정상을 앞두고 구부 능선쯤 되었는데 월악산 가본분은 아시겠지만
팔부능선에서 다시 내려갔다 다시 오르면 철제 쇠난간 있는 그부분 이었습니다
"" 어떻게 포기할까 상황이 안 좋은데! "" 내가 물으니
"" "" 아냐! 끝까지 가고 싶어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가면 너무 억울 할것 같아 "" 라며
대답하는 집사람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읍니다 저도 힘들었던 게지요..
그렇습니다 우린 그렇게 울며 서로 격려하며 산을 올랐습니다 ..
다행히 비는 가랑비에서 더오지 않았고 무엇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법
한참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착 했읍니다
와!!!!!!!....정상에서 본 산의 운치란...
발밑에는 심해처럼 끝도 보이지 않는 운무가 가득하고 선계에 든것처럼 몽환적인 분위기란 정말
"" 별유천지 비인간 "" 같은 탈속적인 분위기가 넘쳐나고 있었읍니다 ..
사위가 촉촉이 젖어 어쩔수 없이 쪼그려 앉아 주린배를 채우고 커피 한잔을 하는 짧은여유도 가졌읍니다
그때의 커피맛은 평생을 통해서 잊을수 없는 감미로움이었습니다..
헤이즐럿의 은은한 향과 어우러져 따뜻하게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커피에 짧으나마 행복한 나른함에 젖었습니다...
어쨌든 우리앞에 선객은 일곱명 정도 밖에 없었고 우리뒤에 오는 등산객은 없었읍니다
날씨가 궂은 관계로 다들 중도에서 포기하고 돌아간 모양이었습니다..
우린 총총이 하산길에 올랐읍니다
아까 고민했던 구부능선쯤 왔을까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번개가 그야말로 십여초간격으로 치는데
번개칠때 감전으로 몸이 찌릿찌릿 해지는 경험은 그때 처음 느껴 보았읍니다
설상가상으로 날이 어두어져 길도 잘보이지 않고 체력은 떨어지고 꼼짝없이 산속에서 조난 당하는줄 알았읍니다..
우린 서로 격려 했읍니다
""이게 세상에 끝인지 몰라도 네가 있어서 좋았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왜 그때 미안하다고 생각 했는진 몰라도 사랑이란 감정엔 ""미안"" 이란 단어가 있다는걸 그때 처음 알았읍니다..
우린 엎어지고 구르면서 또 길도 잃어버려 헤매면서 그렇게 산을 내려 왔읍니다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이없는 그 길을 살아야한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걸었습니다..
한참 지났을까......
절망속에서 희망을 본다고 모퉁이를 돌아서 갑자기 불빛이 나타났습니다..
그때서야 휴!! 이제 살았구나 하고 한숨이 나오는데 나도 모르게 눈에서는 눈물이 .......
그후 십수년이 지났읍니다 이제는 집사람과 난 서로의 신비감도 많이 사라지고 "" 사랑 "" 이란 말은 개 풀 뜯어먹는 소리로 아는 적당히 낡은 아니면 적당히 서로에 타협하는 그런 나이가 되었읍니다..
그리고 살다가 집사람이 조금 미워지면 그때를 가끔 회상해 보곤 합니다.....
못다한 이야기..
참 그때 안타까운 일이 있었는데 다음날 뉴스보고 알았지만 우리뒤에 남겨진분들 일곱분중에 두분이
낙뢰와 조난으로 죽었다는 사고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산행을 하고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 귀로에 올랐읍니다 고속도로가 막힌다는 라디오 방송이 있길래
충주를 경유하여 조치원쪽으로 방향을 잡았읍니다 ..
배는 고팠지만 원체 지친데다 온몸이 다젖어 물에 빠진 생쥐가 따로 없어 한참을 가다가
이천쯤 와서 굉장히 늦은 저녁을 먹었읍니다
글쎄! 지금 기억으로는 국밥이었던것 같은데 그렇게 맛있는 국밥은 처음이었던것 같습니다
워낙 지치고 허기져서 허겁지겁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우고 또 길을 재촉 했읍니다
곤지암쯤 지나 광주가 얼마 안남은 지점쯤 오자 멀리서 ""모텔"" 간판들이 반짝거렸습니다
아무래도 불륜족들이 자주 이용하는 모텔촌 같았지만 뭐좀 먹은데다 긴장이 풀려 무지하게 졸음이 오던때라
잘됐다 싶어 모텔로 들어가 샤워도 하고 젖은옷도 말리고 잠도 한 두어시간 자고 나왔읍니다..
개운한 기분으로 나와서 집으로 길을 재촉하다보니
"" 어라!....."""" 왠차가 따라 붙는다는 느낌이 오더군요
""' 수연아 아까 우리가 모톌에서 나올때 부터 따라오는차가 있는것 같은데 한번 잘봐봐""" 라고 말하고
속도를 올렸읍니다
"" 어때?""
""" 응 계속 따라 오는데!"""
"""" 저놈들 아무래도 불륜들 협박해서 돈 뜯어내는놈들 같지?""
""" 글쎄! 뭔진 몰라도 속도 올려도 따라오고 차선 바꿔도 따라 오는거 보면 이상 하긴해"""
그렇습니다 차파랏치+카파라치 였던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재밌는 생각이 나더군요
"" 우리 쟤네들 집까지 달고 갈까?""
마누라도 웃으며.....
""" 재네들도 먹고 살자고 하는짓인데 그렇면 어떡하라고"" 하며 싫지 않은 표정 이더라구요
우린 악동들 처럼 키득키득 웃으며 앞으로 벌어질일에 대하여 많은 애기를 했읍니다
귀로가 지겹지 않았습니다
요리조리 차선을 변경해도 기를쓰고 따라오고 또 못 따라 올것 같으면 기다려주는 쎈스도 발휘하며 그 긴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아파트 입구를 들어서니 더이상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아파트 안에 차를 주차해놓고 밖을 나가보니 멀리 세워놓은 그놈들 차안에서 담배불만 깜박깜박 하며
그놈들의 허탈해하는 표정들이 손바닥 보이듯 보이는데 어찌나 미안하던지.... ㅎㅎ..
그놈들 생각으로는 교외에 한적한 모텔에서 나오면 분명 불륜일테고
또 불륜이면 누구 하나가 먼저 내릴텐데 아파트 안으로 차가 들어가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곤지암에서 그당시 내가 살던데까지는 못잡아도 두시간인데... 또 거리는 얼만데.....
그냥 마누라만 먼저 내리게 하고 동네 몇바퀴돌아 헛된 희망이나마 희망을 갖게 하는게 나았을까 싶기도 하고...
나도 양심이 있는놈인데 허탕을 치게 했으니 내가 미안해 해야하나?.....
아님 말고......ㅎㅎㅎ......
짧은듯 긴 일박삼일동안 생사를 넘나드는 일을 겪으면서 그 당시 까지 평생을 살아온일과
내 안사람에 대한 내 마음를 확연히 알게 되었고 자연에 대한 겸허함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친구들 내가 한 마디 할테니 단디 들어라..
""""모텔갈때 웬만하면 차 놓고가""""".....ㅎㅎ
첫댓글 넌 참~ 잘나가다 웬 모텔, 아직도 그런 청춘이 남았니? ㅋㅋ 옛이야기를 하는걸 보니 너도 철이 드는 거같구나. 남편 50고개넘으니까 좀 변하는 게 느껴지더라. 세월의 순리앞에서는 어쩔수 없지.^^ 아무튼 철들어가는 성수, 화이팅!!!ㅋㅋ 늙어서 할이야기 없을때, 연애이야기, 자식키운이야기, 젊은날 힘들었던 이야기 꺼집어 내서 안주삼아 이야기하며 늙어도 좋을듯하다. 난 아직 좋았던 기억들보다 속상하게 했던 기억들이 더 많이 남으니..... 찾아야겠다 좋은 쪽으로 ^^
늙으면 술집가서도 인기없으니 철드는건 당연하겠지.... 그나마 날 구박 안하는건 조강지처 마누라밖에....
남편 너무 구박하지마 늙으면 바람 피라해도 못펴...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