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치료에 대한 현대의학과 대체의학의 관점과 미래
요즘의 많은 사람들은 현대의학(주류의학)이 오랜 역사를 통해서 발전해왔으리라 생각하겠지만, 불과 100여 년 정도의 짧은 역사밖에 아니라고 한다면?
물론 완전한 무(無)에서 유(有)는 존재할 수 없기에 현 메디컬의 기원을 굳이 찾는다면 메디컬에서 의성(醫聖)이니,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기원전 5세기의 히포크라테스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현대의학과 대체의학의 관점
서구의 의료체계인 현 주류의학은 19세기 말을 기점으로 근대의학과 근대이전의학(premodern medicine)으로 분류된다. 즉 인체를 과학에 의해 복제가 가능하며 수리가 가능한 기계로 인식한 기계론(mechanism)의 입장과 생명에는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특별한 뭔가가 존재하며, 인체를 기계의 부속품으로 보지 않고 전체론적 관점에서 본 생기론 입장의 분류이다. 기계론적 입장은 현 메디컬의 주장이며, 생기론적 입장은 요즘의 대체의학이나 한의학의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에 현 주류의학의 관점인 기계론과 홀리스틱 관점인 생기론의 싸움은 기계론이 승리함으로써 자연치유력이나 생기론이라는 단어는 이단시되고,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단지 20세기에 대체의학이라는 분출구가 생기기 전까지(아직도 미약하지만).
질병치료는 자연치유력에 의해 가능
그러나 지금의 주류의학으로부터 이단시 되어왔던 근대이전의학은 19세기부터 히포크라테스까지 거슬러 2400년 동안 서구의 유일한 의학체계였다.
근대이전의학은 인체를 기계로 보거나, 질병을 기계 고장의 관점이 아닌, 4체액, 즉 피(blood), 점액(phlegm), 황담즙(bile), 흑담즙(melancholia)의 균형에 두었다. 따라서 질병이란 이들의 불균형이며, 질병치료를 위해서는 그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며, 히포크라테스는 자연치유력에 의해 질병치료가 된다고 했다.
국내 메디컬의 카이로프랙틱에 대한 인식변화
그런데 인체의 전체론적 관점인 생기론과 자연치유력의 주장은 히포크라테스 이후 2400년 동안 주류를 이루었던 의학이었으며, 이 관점을 계승 발전시킨 대체의학은 국내의 법테두리에서 인정받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서구에서는 이미 인정한 자연의학이나 카이로프랙틱이지만.
특히나 몇 년 전만해도 국내 메디컬의 입장은 카이로프락틱은 효과가 없다고 무시했던 차원에서, 이후에는 효과는 있는데 위험하다는 차원으로 바뀌었으며, 지금에는 안전하고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서는 10년~20년 체계적으로 카이로프락틱을 공부하고 연구해온 이들보다는, 몇 주나 몇 개월만 아주 속성으로 공부할지언정 의사들이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기론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어떻든지 간에 지금까지 터부시 해왔지만, 국내의 메디컬에서 대체의학의 수기요법 중의 하나인 카이로프랙틱의 효과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근대이전의학은 도제식교육과 겸업으로 큐어보다는 캐어가 중심
근대이전의학의 기술은 가문을 통한 도제식으로 전수되거나 교수, 농부, 약초상, 이발사 등의 직업을 겸하면서 발전하여왔다. 그리고 현대의 병원형태의 시작은 아프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았던 중세의 기독교 수도원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 시절 수도승 간병인은 ‘큐어(cure)’를 담당하는 의사와 ‘케어(care)’를 담당하는 간호사로 분류되었으며, 누가 병원을 지휘할 할 것이냐에 따라 대결을 했었다. 그러나 파리시립병원의 경우 1000년 동안 치료가 필요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녀들의 간호 중심으로 이루어졌었다.
생활습관병, 만성질환은 캐어를 선호한다
현대의 주류의학은 응급을 요하는 질환에 대한 치료효과를 높임으로써 건강한 삶을 이루는데 크나큰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인체를 기계론적이 입장에서 보아왔던 현 주류의학은 고혈압이나 만성질환, 생활습관병에 대해 고스란히 그 한계를 들어내기도 한다. 하여, 전체적인 관점, 즉 고혈압, 당뇨병 등의 생활습관병이나 만성질환 등은 치료 우선보다는 관리의 차원인 간호의 관점으로 역할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이들 만성질환이나 생활습관병 등의 불치병에 관해 현대인들은 식생활 개선이나 운동, 자연의 삶, 건강식품 등을 통한 자연치유력에 의지하는 캐어(care) 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만성질환에 대한 큐어와 캐어의 기로
요즘 만성질환의 질병치료에 대해 국가의 의료시스템을 어느 관점에 둘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고 의료정책담당자에게 들은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병원 안의 의사, 간호사, 행정실 사이의 주도권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의사인 진료부가 우위를 점할 경우 환자들의 과도한 진료가 이루어지게 되며, 행정실의 경우에는 진료가 축소될 가능성, 간호부의 경우에는 간호에 치중하여 의학적으로 소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응급을 요하는 환자의 경우 당연히 cure가 먼저이지만, 만성질환의 경우를 어떻게 할 것인가?
cure인가? care인가?
- 빅토리아 스위트의 “신의 호텔”을 읽고
첫댓글 의료소비자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시대가 과연 우리나라에도 올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