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날을 지나 바야흐로 이제 축복같은 계절, 등화가친지절(燈火可親之節) 이다. 한달 남짓 여름방학을 보내고 가을의 첫 여행지로 여주를 선택하였다. 여주는 서울에서 가깝고도 먼곳으로 느껴지지만 경강선 철길이 뚫려 접근하기가 한층 수월하여 자주 찾게 된다.
성동고 16회 바이콜릭스(Bikeholics)들이 말갈데 소갈데 다 다녔지만, 여주는 발씨가 익은 코스중 하나이다. 여주는 남한강을 품고있는 도시로 자연 경관이 아름다울 뿐만아니라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깃든 매력있는 고장이기도 하다.
여주(驪州)의 지명은 삼국시대부터 명칭을 달리 사용하다가 조선조 제8대 예종원년(1469년)에 여주로 개명된 이후로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여주의 려(驪)는 '털빛이 검은 말려' 뜻을 나타내는 말마(馬)와 음(音)을 나타내는 려(驪)가 합하여 이루어진 합성 글자이다.
이번 라이딩에 모델 한이 묵연양구(默然良久)에 모처럼 동참하여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모델 한은 언제든지 라이딩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 베테랑이지만, 건강상 피치못할 사정으로 자주 동행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라이딩 코스는 여주역에서 섬강을 건너 원주시 부론면 손곡 저수지를 반환점으로 하는 대략 70km로, 쉬는 시간과 식사시간을 고려한 7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콘닥 임종국은 이동 코스에 대한 지형을 세밀히 연구하여 역사 유적지를 포함시킨 것이 오늘 라이딩의 백미다.
가볍게 몸을 푼 다음 상쾌한 기분으로 페달을 밟고 가을 바람을 가르며 출발하였다. 하늘은 잿빛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안개가 자욱하여 시계가 제한되었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운동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 영월 근린공원이다.
영월 근린공원에는 여주 8경중 제2경인 마암(馬巖)이 자리하고 있다. 여주의 지명유래가 마암에서 비롯됬다고 하지만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증명 된것은 없다. 마암 절벽위에 세워진 영월루는 고풍스런 누각으로 남한강 물줄기와 여주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남한강 자전거길을 따라가면 강변유원지와 금은 모래공원을 만난다. 강변 유원지는 캠핑도 즐기고 황포돛배와 오리배도 타고, 수상레저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금은 모래공원에는 젊은 부부 가족단위 캠핑족들이 가득하였으며, 아이들과 함께 뛰놀며 즐기는 모습이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느낌이다.
이호대교를 지나면 황포돗배 모양의 강천보가 한눈에 들어온다. 강천보에서 인증샷을 하고 계단길로 내려가면 좌측에 자전거 쉼터가 있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하면서 카보로딩(Carbo hydrate loading)을 축적하였다. 남한강 자전거길은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아늑하여 마음이 한결 평온하였다.
영동고속도로가 통과하는 남한강교를 지나면 울창하게 우거진 강천섬이 보인다. 강천섬은 여의도처럼 남한강의 퇴적활동으로 생긴 자연섬이다. 강천섬 유원지로 들어서면 드넒은 잔디광장이 눈에 들어오고 그 주위에 텐트로 둘러싸여 있으며, 섬 중앙에는 은행나무 가로수 길이 조성되어 있다.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따라 가다가 강천교를 지나 강천리로 접어들면 창넘이고개(일명 여우고개)를 만나고 이어서 섬강교를 지나게 된다. 창넘이 고개는 2,5km로 경사는 10도 정도 되는 지루하고 힘든 코스중 하나이다.
섬강으로 진입하고 좁은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가면 남한강과 섬강이 합류하는 지점인 흥원창(興元倉)이 나온다. 흥원창은 고려, 조선시대 설치한 조창(물류창고)으로 강원 지방의 세곡을 수납, 보관하였다가 한강의 수로를 따라 개경, 한양으로 운송하였다.
흥원창 위치는 원주시 부론면 흥호2리 창말지역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흥원창이 있던 일대를 은섬포라고도 한다. 다산 정약용이 충주 처가에 다니러 오다가 본 이곳의 경치가 기가막혀 은섬포(銀蟾浦)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흥원창 쉼터에는 1796년에 그려진 정수영의 <한,암강 명승도감>에 보면 뒤로는 산이 솟아있고 강가에 집이 들어선 그림이다. 우측에는 흥원창이라고 쓰여있다. 그림 우측에 보이는 기와집이 창고였을 것이고 남은 초가는 흥원창을 지키는 군사들이 머물던 군막정도로 여겨진다.
남한강 대교에서 쇄도우수 김명수가 추천한 원주시 부론면 '희락맛집'에 들려서 얼큰한 두부 낚지찌개와 모두부로 점심식사를 즐겼다. 맛이 기가막힐 정도로 별식이었으며, 술을 들이켜도 취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쇄도우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부론면(富論面)은 조선말에 3대 판서가 있어 정치에 식견이 많아 나라에서 정사에 풍부한 식견을 가진 사람이 많고 이 사람들과 의논하고 고을원이나 감사가 정치를 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농협 주유소를 지나 문막방향으로 전환하면 천년고찰 법천사지 입구를 거쳐 붉은 고개와 손곡리 고개를 넘으면 손곡저수지에 당도한다.
붉은 고개는 2km로 고개같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지루하고 피로감을 준다. 그리고 손곡리 고개도 비교적 긴 고개로 힘을 지치게 만들었다. 손곡리는 손곡 이달 시인이 오랫동안 살았던 마을이다. 손곡 이달은 양반인 아버지 이수함(李秀咸)과 홍주(홍성) 관기 사이에서 태어난 서출이다.
손곡은 당나라 시인을 이어받은 3명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삼당시인의 한 사람 이었다. 재능은 뛰어났지만 당시의 사회적 신분의 한계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많은 시를 벗삼아 설움과 울분을 달래면서 자유분방하게 전국을 돌며 방랑생활을 하였다.
손곡 이달은 허난설헌의 오빠인 하곡 허봉의 친구이자 허균과 허난설헌의 스승으로, 허난설헌의 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허균은 스승을 생각하며 지은 '홍길동전'은 사회 모순을 비판한 것으로 그 때 당시 서출의 한을 알 수 있다.
허균은 스승의 시를 모은 '손곡집(孫谷集)'과 스승의 삶을 그린 '손곡 신인전'을 펴냄으로서 스승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허균이라는 훌륭한 제자가 없었다면 손곡 이달도 역사의 뒤안으로 소리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손곡 이달의 시는 손곡저수지 입구에 돌에 새겨져 있으며, 그의 시를 음미하면 그 당시 그의 사상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손곡 저수지를 빠져나와 왔던 길로 돌아서 문막 방향으로 접어들면 손곡 초등학교 옆에 손곡 시비(詩碑)와 임경업 장군의 추모비가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몸은 비록 비천하지만 그의 시는 썩지않고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리고 손곡리 손위실(遜位室) 마을은 고려말 비운의 왕 '공양왕'이 은둔했던 곳이다.
공양왕이 마지막 왕위를 이성계에게 내주고 피거한 마을이라 해서 불러진 이름이다. '손위'는 임금이 혁명군에게 자리를 내주었다는 뜻이고 '실'은 역사의 산실이 있는 마을 이라는 뜻이다. 법후로(문막방향)를 따라가면 부문재(문막읍 후용리)를 만난다.
부문재는 약 3km로 비교적 길며, 경사는 10도 정도로 가파른 코스중 하나이다. 대원들은 모두 지쳐서 마치 낙오자처럼 기진맥진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오벨로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다. 부문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후용리와 궁촌리 경계에 견훤산성이 위치해 있다.
후용리 견훤산성에는 돌무덤이 아직 까지 남아 있으며, 궁촌리는 견훤이 토성을 쌓아 궁성을 짓고 성곽을 구축한 곳이다. 문막읍 노림리 진골은 견훤이 견훤산성에서 왕건에게 패하고 도주하여 온 곳이다. 진골은 견훤산성에서 영원산성을 지키기 위해 문막으로 들어오는 주요 길목 이었다.
왕건은 초전에 견훤에게 연전연패 하였지만 문막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후삼국 통일과 고려 건국의 초석을 다진 곳이다. 원주 문막지역과 여주 지역은 넓은 들판을 형성하여 곡창지대를 이루었고, 남한강과 연결돼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보니 이 지역은 항상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경동대학교 메디컬 캠퍼스 입구에서 견훤로를 따라가다가 영동고속도로 밑을 통과하여 들녘을 지나 섬강 자전거길로 접어들었다. 들녘은 초록빛에서 황금 물결로 점차 변해가고 있었다. 섬강은 녹초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초원으로 착각할 정도로 태고의 신비를 갖추고 있었다.
섬강 자전거길을 따라가다가 뜻하지 않은 장벽에 부딪쳤다. 채석장이 나오고 길은 끊어졌으며, 암벽을 만나 자전거를 들고 내려가야 하는 인내를 감당해야 했다. 밑에서 자전거를 받아주지 않으면 내려가기가 무척 힘들 정도였다.
한 고비를 넘기고 한적한 흙길을 따라가다 보면 정자가 보이고 정자 옆에 돌 조각상 두꺼비가 모습을 드러낸다. 섬강(蟾江)은 하류인 간현유원지 부근에 두꺼비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는 상징의 표시 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1,7km 가면 섬강교를 만나고 오전에 왔던길로 다시 가게 된다.
섬강에서 섬강교에 이르는 급경사 오르막은 약 100m 이지만 경사는 15도로 만만하게 보다간 큰 코 닥친다. 온 힘을 다하여 올라오는 모습들 이었다. 섬강교를 건너면 창넘이고개가 또 기다리고 있다. 하나같이 지친 표정이 역력하였다.
고개 정상에서 만난 여주교회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은 여주 남한강 자전거길이 최고라고 하면서, 수중보도 3개나 되지만 녹조현상을 한번도 보이지 않았다고 자랑한다. 강천섬 유원지와 금은모래 캠핑장은 오전에 캠핑족들이 가득하였는데 모두 철수하여 허전헌 분위기 였다.
오후 6시 30분이 다가오자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으며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여주 시내 청진동 해장국 식당에서 선지해장국에 전병을 안주 삼아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여주역으로 향하였다. 콘닥 임종국은 여주역 측문으로 진입하던 차에 철사 차단줄에 순간적으로 넘어져 손등과 손가락에 상처를 입었다.
다행이도 큰 사고로 이어지않아 천만 다행이었다. 야간에는 눈에 뛸 수 있도록 야간 표시를 하든가 아니면 차단줄을 치우는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여주역 직원들이 이 글을 읽고 현명한 판단을 하기를 바란다. 저녁 7시 33분행 전철을 타고 이매역에서 내려 각자 집으로 향하였다.
오늘 라이딩은 속도보다는 유유자적하면서 다양한 코스와 역사 문화유적지를 탐방하며 라이딩 풍류를 즐겼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밤 늦도록 라이딩하기는 처음이지만 보람 있는 하루였다. 모처럼 동참한 모델 한(한영성)은 죽지않고 살아있었다.
역시 노병다운 노병으로 녹슬지않고 기량을 마음껏 펼쳐 보였다. 병을 치유하여 계속 동행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다. 오늘 라이딩 사자성어(四字成語)는 여인동락(與人同樂), 강호지락(江湖之樂)이다.
성동고 바이콜릭스(Bikeholics) 브라보!
여주역
강천보
강천섬
여시고개(여우고개)
섬강교에서 만난 외국인
흥원참쉼터의 (정수영:1976년 ) 흥원참그림
섬강, 남한강 합수 지점
남한강대교
두부 낙지찌게로 점심
손곡 이달의 시 (손곡저수지)
임경업장군 생가터
부문고개 정상
섬강 강변
길이 끊긴 섬강변길
두꺼비상이 있는 섬강변 정자
귀로의 여우고개
강천섬
저녁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