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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채봉 색소폰 원문보기 글쓴이: Sarah
재즈의 종류 Jazz Ragtime 랙타임이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미국에서 유행하고, 1910~1915년에 그 절정을 이루었던 미국의 대중음악 양식을 지칭한다. 이 음악 형태는 이름 자체만 들었을 때는 매우 낯설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우리들이 많이 들어본 친숙한 음악이다. 1973년에 스팅(sting)이란 영화에 쓰여 매우 유명해진 곡인 ‘The Entertainer’가 대표적인 예이다. 랙타임은 피아노 독주곡으로 재즈가 자리 잡기 전의 초기 스타일을 지칭하나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그러나 랙타임이 재즈이건 아니건 재즈의 발생에 많은 영향을 준 것만은 사실이다. Ragtime'이라는 이름은 'Ragged Time'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여기서 Ragged이란 말은 단어 자체로는 'Uneven(정확히 들어맞지 않은)'이라는 의미로 사실 서양적인 싱코페이션(syncopation:당김음)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음표들을 정확히 박자와 박자 사이에 놓는 것을 서양적 싱코페이션이라고 한다면 이들을 박자보다 조금 앞이나 뒤에 놓는 것이 바로 랙타임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Ragged의 일반적인 효과는 멜로디를 정규 박자에서 벗어나게 하여 마치 그것이 박자와 박자 사이에 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는 복합 리듬적인 아프리카의 드러밍에서 기원된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날 랙타임의 전형이라고 보이는 것들은 사실 오랫동안 발전된 여러 가지 형태의 음악들 중 하나이다. 후대 사람들은 고전적인 피아노 랙타임만을 기억하는데 이는 고전적 피아노 랙타임이 재즈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반면에 랙타임 노래들은 이후 대중음악의 전통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랙타임은 피아노의 측면에서 볼 때 19세기 유럽음악을 흑인들의 리듬 감각과 역동적인 연주방법을 반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백인 연주인들도 흑인 연주인 못지않게 뛰어난 ragtime 연주인들이 많아서 음악만 들어보아서는 누가 흑인이고 누가 백인인지 구분하기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Ragtime이 널리 퍼지게 된 때는 '랙타임의 황금기(Golden Age of Ragtime)'였던 1900년대부터 세계 제1차 대전 전까지로, 오늘날 랙타임의 아버지(King of Ragtime Writers)로 불려지는 Scott Joplin, James Scott, Joseph Lamb에 의해 그 고전적인 형태가 확립되게 된다. Joplin은 'AABBACCDD'로 표현되는 랙타임의 구조와 형태를 확립하여 대다수의 랙타임 작곡가들이 그 형태를 따르고 있다. Swing 1935∼1945년의 약 10년에 걸친 기간 동안, 재즈는 미국의 최신 유행 음악이었다. 색소폰 섹션과 트럼펫, 트럼본 등으로 구성된 관악 섹션,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 등으로 구성된 리듬 섹션 등 최소 10명 이상의 앙상블로 이루어진 형태로서 미국에서 가장 유행한 형태였다. 1930년대 중반 스윙(swing)의 시대가 도래 하면서 글렌 밀러(Gleen Miller), 베니 굿맨(Benny Goodman), 토미 도르시(Tommy Dorsey), 아티 쇼우(Artie Shaw),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과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의 밴드와 같은 빅밴드들이 나타난다. 대부분의 다른 재즈와 달리 빅 밴드 재즈의 중요한 특징 하나는 그러한 밴드들은 종종 그 성원들에게 복잡한 편곡들을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또한 1930년대에서 1940년대 동안에는 몇몇 중요한 소규모 밴드의 스윙 레코딩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밴드들은 그 규모 면에서 확연하게 차이나며 주로 악보로 쓰여진 편곡들에 의존하지 않고 연주한다는 사실에서도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또한 이들 스윙 그룹들은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즉흥연주를 극히 제한하는 대신 개별 솔로 연주자들을 강조한다는 특징에서도 초기의 소규모 그룹들과도 다르다. 이 시기의 중요한 색소폰 연주자로는 자니 호지스(Jonny Hodges), 폴 곤잘베스 (Paul Gonsalves), 레스터 영(Lester Young), 콜맨 호킨스(Coleman Hawkins), 벤 웹스터(Ben Webster) 등이 있으며 트럼펫 연주자로는 로이 엘드리지(Roy Eldridge), 해리 "스위트" 에디슨(Harry "Sweets" Edison)등을 들 수 있다. 피아니스트에는 엘링턴과 베이시를 비롯해 테디 윌슨(Teddy Wilson), 에롤 가너(Erroll Garner),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기타에는 찰리 크리스찬(Charlie Christian), 배니 케셀(Barney Kessell),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ainhart), 비브라폰에는 라이오넬 햄프턴(Lionel Hampton), 베이스에는 지미 블랜턴(Jimmy Blanton), 월터 페이지(Walter Page), 슬램 스튜어트(Slam Stewart), 드럼에는 조 존스(Jo Jones), 샘 우드야드(Sam Woodyard) 등을 꼽을 수 있다.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디나 워싱턴(Dinah Washington), 엘라 피츠제랄드(Ella Fitzgerald)는 이 시기의 중요한 가수들이다. 이들 음악가들의 스타일은 스윙 감각(swing feel)에 근거한 멜로디에 중점을 둔 연주와 개별적인 사운드의 개발에 주로 집중했다는 말로 가장 적절하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Bebop 1940년대 비밥(bebop)의 탄생은 종종 모던 재즈(modern jazz)의 출발을 기록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비밥 스타일은 소규모 스윙 그룹들에서 직접적으로 발전했지만 노래로 부를 수 있는 멜로디들에 비해 테크닉과 보다 복잡한 하모니들에 더욱 높은 비중을 두었다. 대부분의 이론가들은 이러한 스타일 측면의 혁신으로부터 비밥이 직접적으로 출현했음을 논하고 있다. 알토 색소폰 연주자인 찰리 "버드" 파커(Charlie "Bird" Parker)는 이러한 운동의 아버지였으며 트럼펫 주자인 디지 길 레스피(Dizzy Gillespie;"Diz")는 파커의 최상의 협력자였다. 길레스피 역시 빅 밴드를 리드했으며 쿠바 출신 타악기 연주자들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맘보와 같은 리듬들을 포함한 아프로-쿠바 음악 (Afro-cuban music)을 미국 관중들에게 소개하는데 기여한다. 하지만 길레스피와 파커가 비밥과 모던 재즈의 기초를 형성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5인조 혹은 다른 소규모 그룹들에서의 레코딩들 때문이다. 앞선 스타일의 음악들과 마찬가지로 블루스나 조지 거쉰(Georgy Gershwin)과 콜 포터(Cole Porter)가 작곡한 노래들과 같은 당시의 대중음악들이 주로 연주되었지만 비밥 연주자들의 오리지널 작품들은 처음으로 그러한 대중음악들에서 갈라져 나오기 시작했으며 특히 비밥은 비밥에서 흔히 이용된 4인조와 5인조구성은 1940년대 이 후 조금씩 변화해 간다. 앞선 세대의 많은 연주자들이 비밥의 길을 여는데 기여했다. 이러한 음악가들 중에는 레스터 영, 콜맨 호킨스, 로이 엘드리지, 찰리 크리 스찬, 지미 블랜턴, 조 존스 등이 있다. 특히 영과 호킨스는 이러한 결실에 가장 중요한 두 명의 음악가로 손꼽힌다. 비밥에서 주목할 만 한 다른 연주자로는 색소폰에 소니 스티트(Sonny Stitt), 럭키 톰슨(Lucky Thompson), 트럼펫에 패츠 나바로(Fats Navarro), 캐니 도램(Kenny Dorham), 마일즈 데이비즈(Miles Davis), 피아노에 버드 파웰(Bud Powell), 듀크 조단(Duke Jordan), 알 해이그(Al Haig), 텔로니우스 뭉크(Thelonious Monk), 비브라폰에 밀트 잭슨(Milt Jackson), 베이스에 오스카 페티포드(Oscar Pettiford), 토미 포터(Tommy Potter), 찰스 밍거스(Charles Mingus), 그리고 드럼에 막스 로치(Max Roach), 케니 클라크(Kenny Clarke), 로이 하인즈(Roy Haynes) 등이 있다. 마일즈, 뭉크, 밍거스는 이후 포스트-비밥(post-bebop)이라는 보다 진전된 영역으로 발전하게 된다. Cool Cool Jazz라는 표현은 1950년대에 나타난 절제되고 차분한 스타일의 모던 재즈 형태를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처음 모습을 보인 것은 찰리 파커의 비밥 레코딩들을 통해서였지만 리더로서의 그의 첫 번째 중요한 세션은 [The Birth of Cool]로 명명된 것이다. 이 그룹의 레코딩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이 앨범은 쉽게(우리나라의 경우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쿨 재즈 스타일은 빠른 템포와 복잡한 멜로디, 하모니, 리듬 등이 강조되는 비밥의 발상들에 대한 반작용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러한 생각들은 웨스트 코스트(west coast) 음악가들에 의해 수용되었으며, 따라서 이러한 스타일을 웨스트 코스트 재즈라고 부른다. 이 음악은 일반적으로 비밥보다 이완된(relaxed) 형태를 띄고 있다. 쿨 스타일의 다른 음악가들로는 색소폰에 스탄 게츠(Stan Getz), 게리 멀리건(Gerry Mulligan), 그리고 트럼펫에 쳇 베이커(Chat Bker)를 꼽을 수 있다. 스탄 게츠는 또한 보사노바(bosa nova)와 삼바(samba)와 같은 브라질 스타일을 대중화시킨 사람으로 꼽힌다. 이러한 유형과 몇몇 라틴 아메리카 스타일들을 한대 묶어 라틴 재즈(Latin Jazz)라고 알려졌다. 쿨 스타일의 많은 그룹들은 코드 진행의 개요를 나타내기 위해 피아노를 이용하지 않는 대신 호른 악기들(일반적으로 색소폰과 트럼펫)을 이용한 대위법(counterpoint)과 화성(harmonization)에 의존한다. 이러한 유파에서 발전하여 피아노가 리드하는 그룹들로 데이브 부르벡(Dave Brubeck; with Paul Desmond on saxophone), 레니 트리스타노(Lenni Tristano; with Lee Kenitz and Warne Marsh on saxophone)의 그룹들과 모던 재즈 쿼텟(Modern Jazz Quartet or MJQ; featuring John Lewis on Piano and Milt Jackson on vibraphone)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클래식 음악의 요소들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 재즈에 클래식 음악을 도입한 시도를 흔히 제3의 조류(the third stream)이라고 부른다. Free
프리재즈의 본격적인 출발은 1950년대 말 경에 젊은 흑인 재즈 큐지션들인 오넷 콜맨(Ornette Coieman)과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에 의해서라고 보지만, 이런 움직임은 이미 10년 전인 1949년에 쿨 피아니스트인 레니 트리스타노(Lennie Tristano)와 그의 6중주 일행에서 나타나므로 프리재즈의 출현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트리스타노와 그의 일행은 여러 개의 독립된 멜로디선이 만드는 불협화 음으로 이루어진 음악을 캐피틀(Capital)레코드사에서 레코딩함으로써 처음으로 조성의 기틀을 벗어난 혁신적인 음악을 발표하였던 것이다. 60년대에 들어서면서도 계속 악화되고 있는 흑백문제는 젊은 흑인들을 더욱 자극시키고 있었는데, 이런 불만이 젊은 흑인 음악가들에 의해서 격하고 공격적인 음악으로 표현되었다. 즉 매우 높은 음역이나 매우 낮은 음역으로 악기소리를 냄으로써 귀청이 찢어지는 듯 한 날카로운 음향을 내기도 하고, 음악에서 사용하는 음 뿐만 아니라 소음까지 포용하며, 서양 세계 밖에서 온 이국적인 악기를 사용하고, 즉흥적이며 도취적인 야성미를 지닌 아프리카 음악의 요소를 받아들인 여지껏 들어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연주기법과 음향이 나타난 것이다. 프리재즈의 음악적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하면 모든 전통규칙과 원칙이 파괴된, 단어 그대로 매우 자유롭고 우연적인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주가들은 개별적인 표현 욕구를 구속 없이 주관적으로 즉흥연주를 함으로써 이루어지므로 조성도, 박자 도, 형식도 없다. 여기서 무조성이란 뜻은 서양의 음열을 기초로 하는 12음 기법 이라든가 하는 무조성을 뜻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아무런 내부적인 규칙이 없는 것을 뜻하는데 흑인노예의 노동요와 같은 아프리카적인 무조성에 접근한다. 프리재즈는 연주 중에 연주자가 각자가 차례로 듣고 연주하는 새로운 연주 방법을 도입하였는데, 이 잇달아 나오는 내부적인 반응도를 보는 것이 프리재즈의 묘미다. 프리재즈의 전성기는 1960년대 이후라고 보며,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레니 트리 스타노(Lennie Tristano,피아노), 오넷 콜맨(Ornette Coieman,색소폰), 존 콜트 레인(John Coltrane,색소폰), 에릭 돌피(Eric Dolphy,플룻, 바리톤 색소폰), 돈 체리(Don Cherry,트럼펫), 챨리 밍거스(Charlie Mingus,베이스), 아키 세프(Arc hic Shepp,색소폰) 등이 있다. 프리재즈는 유럽에서도 유행하였는데, 이들은 미국재즈보다 유럽 예술음악의 갈래인 전위음악과 가깝다. Bossanova 전통적으로 브라질의 노동자ㆍ빈민계층은 타악기 반주가 특색 있는 삼바를 즐겼고 중산층을 위한 음악으로는 전통적인 발라드 형식의 노래가 있었다. 전통적인 노래들의 작곡가들은 기본적인 화음을 가지고 단순하고 외우기 쉬운 음악을 만들었고 가수들의 음성은 강렬했으며 가사는 신파조의 멜로드라마와 같은 내용이었다. 당시의 상류층들은 삼바에 매력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신분적인 격차로 인해 그것을 그대로 즐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자신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기에 이르렀는데 그것이 바로 보사노바였다. 삼바의 주수용 층이 흑인 빈민층이라면 보사노바는 백인 상류층의 음악으로 시작되었고 나중에 가서 전 계층으로 확대 수용되게 된다. 보사노바는 전통적인 삼바를 대신하지는 않았지만 중ㆍ상류층들에게 음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삼바와 재즈의 혼합은 브라질 기타리스트 Laurindo Almeida가 1953년 색소포니스트 Bud Shank과 함께 낸 음반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합작은 고립적이고 개인적인 활동으로 1950년대에 계속되었다. 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작곡가 Antonio Carlos JobimㆍLouis Bonfa와 시인 Viniciu de Moraes, 기타리스트 Joao Gilberto 등은 전 세계가 주목하게 되는 삼바의 변형을 개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새로운 경향’, Bossa Nova였다. 그들은 쇼팽, 드뷔시와 같은 유럽 음악가들의 미묘한 분위기와 쿨 포터, 프랭크 시나트라와 같은 미국 음악가들의 세련미를 갖추게 되었고 그 결과 보사노바는 매우 독보적인 ‘조화’로서 단순한 즐거움의 음악에서부터 농염한 심오함에 이르기까지를 두루 포괄하고 있었다. 1958년 Jobim은 《Chega de Saudade》라는 앨범으로, 1959년 Louis Bonfa는 영화 《Orfeu Negro》 O.S.T.에 “Manha de Carnaval”라는 곡으로 보사노바를 선보이게 되었다. 당대 브라질 최고의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하여 수준 높은 곡들을 담아냈던 이 O.S.T.는 보사노바의 본격적인 등장이라는 점에서 보사노바史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한다. JoaoㆍAstrud Gilberto 부부는 보사노바 보컬로 두각을 나타내었다. 1961년 Stan Getz는 Charlie Byrd의 소개로 브라질의 조빙, 봉파, 질베르뚜를 찾아가 보사노바에 매료되었다. 그는 1962년 찰리 버드와 함께 《Jazz Samba》라는 앨범을 발표하면서 미국인들에게 이 리듬을 소개하였고 1964년 조빙, 질베르뚜 부부와 함께 레코딩한 “Garota de Ipanema”로 폭발적인 보사노바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보사노바의 인기는 70년대 말의 디스코나 90년대의 랩ㆍ힙합의 열기와 비교될 정도로 대단했다고 한다. Fusion 재즈의 요소 자체가 다양한 음악 스타일들과 쉽게 결합하지만, 'Fusion'은 아방가르드의 실험이 재즈 청취자들로부터 멀어지게 된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에 매우 큰 인기를 누린 하이브리드 스타일인, 재즈와 락, soul의 결합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된다. 1960년대 중반, 마일즈 데이비즈는 여러 앨범들을 통해 재즈와 록의 융합(=퓨전; fusion)을 예고한다. 이 시기 그의 밴드에는 전자 피아노에 허비 행콕, 칙 코리아, 조 쟈위 눌(Joe Zawinul), 베이스에 론 카터(Ron Carter), 대이브 홀란드(Dave Holland), 기타에 존 매크러클린(John McLaughlin), 드럼에 토니 윌리 암스(Tony Williams), 잭 드조네트(Jack DeJohnette) 등이 참여했다. 토니 윌리암스는 록에 뿌리를 둔 라이프타임(Lifetime)이라는 그룹을 존 매클러클린과 함께 결성했었는데, 매클러클린은 이전에 이미 마하 비슈누 오케스트라(Mahavishnu Orchestra)라는 정력 넘치는 자신의 그룹을 결성한 적이 있었다. 1970년대에 마일즈는 [Pangea]와 [Agharta]와 같은 앨범을 리드하면서 전자 악기의 사용이라든지 자신의 음악에 펑크나 록의 요소들을 결합시키는 등 새로운 경향들을 향한 탐사를 계속한다. 스파이로 자이라(Spyro Gyra)와 척 맨지온(Chuck Mangione)의 크로스 오버 탑 40에서 조금은 보다 신비적인 기타리스트 팻 메쓰니(Pat Metheny)에 이르기까지, 다른 그룹들 또한 재즈와 록을 보다 대중적인 방식으로 결합하였다. 이 외의 다른 대중적인 퓨전 밴드로는 웨인 쇼터(Wayne Shorter), 조 자위눌(Joe Zawinul) 베이스 연주자 자코 파스 토리우스(Jaco Pastorius)와 미로스라브 비투스(Miroslav Vitous)가 참여했던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 허비 행콕의 해드헌터스(Headhunters), 칙 코리아와 베이스 연주자 스탠리 클라크(Stanley Clarke)가 참여한 리턴 투 포에버(Return To Forever), 색소폰 연주자 윌튼 펠더(Wilton Felder)와 키보드 주자 조 샘플(Joe Sample)이 참여 한 크루샌더즈(Crusanders), 키보드에 러셀 페런트(Russell Ferrante)가 참여한 엘로우자킷스(Yellowjackets), 초기에 케니 지(Kenny G)가 색소폰으로 참여했던 제프 로버 퓨전(Jeff Lorber Fusion) 등을 들 수 있다. 최근에는 팻 메쓰니와 케니 지와 같이, 몇몇 퓨전 아티스트들은 많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ROCK JAZZ 1)록재즈의 발생 록재즈는 가장 최근에 출현한 재즈로서(70년대) 프리재즈와 함께 현재까지도 연주되고 있는 형태이다. 록(ROCK)이란 유럽에서 대중적인 댄스 음악으로 출발한 것으로 블루스의 특징을 많이 지니고 있으며, 로큰 롤(Rock,n Roll)의 준말이다. 록은 1960년도 중반에 나타나 가사의 예술적 표현에 보다 치중하여 즉흥연주 등은 그리 강하게 다루지 않았다. 비틀즈(Beatles)를 위시한 많은 그룹들은 조곡형식(Suite)의 대편성 심포니 곡을 만들기도 하였고, 또 어떤 부류들은 종래의 록을 고수하여 하드 록(Hard Rock)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초기의 록 그룹들은 블루스를 기초로 하였으나, 재즈와 록이 완전히 융합된 상태가 아니라 서로 엮어 놓은 상태에 불과하였고, 예술적인 면의 추구보다는 상업적인 냄새가 짙은 느낌을 준다. 재즈와 록이 참으로 융화되어(Fusion) 예술적인 형태를 띠면서 재즈의 발전에 기여하게 되는 것은 1960년대 말부터이다. 체이스(Chase),블러드(Blood),스위트 앤 티얼스(Sweat & Tears) 등의 그룹활동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들의 음악을 스윙 록(Swing Rock)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70년대 초기에는 재즈의 대가인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가 록과 전자악기에 관심을 두어 < 비취스 부르(Bitches Brew) >란 음반을 내놓음으로써 본격적인 록재즈의 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혁신적인 점은 전자악기를 일반 재즈악기와 함께 섞거나, 전체를 전자악기로 대체하고 연주하여 음향을 더욱 강하게 확대시킨면과 예술적인 즉흥성을 강조한 점이다. (전기기타,전기콘트라베이스,잔자피아노,신디사이저 등을 사용) 2)록재즈의 음악적 특징 위에서 일컬은 바와 같이 록재즈는 전자악기 연주로 인한 강한 음향을 특징으로 하며, 음악적인 기법을 프리재즈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리하여 매우 지적이고 전문적인 형태를 띠고 있으나, 리듬에 있어서는 모던 재즈(비밥,쿨,프리재즈)에 비하여 단순한 형태를 보여 스윙(Swing)과 비슷하나 약간 더 강하고 (예를 들면 동양에서 온 순환하는 박자사용), 음향에 있어서는 전위적인 불협화음보다는 특정한 음계를 바탕으로 연주하므로 전통적인 협화음 쪽으로 흐른다. 그리고 어법에 있어서 옛 두박자 재즈부터 프리 재즈까지의 요소들은 도입하므로 연주자 모두가 각자 멋대로 즉흥연주를 하는 것보다 부드럽다고 할 수 있다. 록재즈의 대표자로는 마일즈 데이비스(트럼펫), 죤 멕로린(John Mclaughlin,전기기타)과 그의 오케스트라, 칙 코리아(Chick Corea), 허비 행콕(Herbie Hancock)과 죠 자비눌(Joe Zawinul), 웨더 리포트와 유나이티드 재즈 록 앙상블(Weather Report &United Jazz Rock Ensemble)등이 있다. 록재즈는 일렉트릭 재즈(Electic Jazz), 퓨전 재즈(Fusion Jazz), 크로스오버뮤직(Crossover Music)등의 다른 이름들로 불리기도 하지만 독창적인 명칭은 "록 재즈" 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