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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23세의 회칙 '지상의 평화'(1963)
<본문>
성좌와 더불어 평화와 일치를 누리는 경애하올 형제들인
총주교, 수석 주교, 대주교, 주교들에게,
전 세계의 성직자와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그리고 모든 선의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진리, 정의, 사랑, 자유에 의거한 모든 국민의 평화에 대한 회칙
경애하는 형제들과 사랑하는 아들들이여, 건강과 교황 강복을!
머리말
1. 우주의 질서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은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를 갈망해 왔지만,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질서를 준수하지 않고서는 확고하게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물론 과학이 발달하고 새로운 기술이 발명됨에 따라서 인류가 생물과 자연의 힘을 지배하는 놀라운 질서가 생겨났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는 자연의 질서를 발견하기도 하고 자연의 힘을 지배하는가 하면 자신의 편의를 도모하기에 적합한 도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인간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과 기술의 발명은 우선, 우주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무한한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무(無)에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혜와 선을 풍부하게 부여하셨으니, 이런 사실에 대하여 시편 기자는 이런 말씀으로 찬미하였다. "하느님 내 주시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시편 8,10) "주님이 하신 일이 많고도 많건마는, 그 모두를 지혜로써 이룩하시었으니 온 땅에 당신 조물 가득 차 있나이다."(시편 103,24) "천사들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삼라만상을 그의 발 아래 두신"(시편 8,5-6)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닮도록"(창세 1,26) 지성과 자유를 주시어 우주 만물의 주인으로 세우셨다.
2. 인간 사회의 질서
그런데 지금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우주의 훌륭한 질서에 비하여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사람들 사이에서는 무질서한 혼란이 있음은 이 얼마나 기막힌 모순인가! 이 흔한 현상이 말해주는 바는 사람들의 상호 관계를 물리적인 힘으로만 다스릴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창조주께서는 우주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 속에 질서를 새기셨다. 양심이야마라로 그 증거가 아닌가! 사람은 누구나 양심을 따라야 한다. "이방인들의 마음 속에는 율법이 새겨져 있고 그것이 작용하고 있다. ... 복음이 말하는 대로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의 비밀을 심판하시는 그 날에 그들의 양심이 증인이 되고 그들의 이성이 서로 고발도 하며 변호도 할 것이다."(로마 2,15-16) 양심이 아니고서는 세상의 질서가 형성될 수 없다. 이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이 그분의 무한한 지혜를 반영하며, 피조물이 하느님의 지혜를 더 명확하게 반영할수록 그만큼 숭고한 완전성을 누리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시편 18,8-11 참조)
그러나 그릇된 의견이 종종 오류를 제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각 개인이나 정치 공동체의 관계들을 자연의 물리적인 힘이나, 지성이 없는 우주의 사물들을 다스리는 것과 같은 법칙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점이 바로 그렇다. 이러한 법칙들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며 오히려 인간 사회를 다스릴 수 있는 법칙은 만물의 창조주께서 직접 창조하신 곳, 즉 사람의 본성 질서 안에서만 찾아야 한다. 사실 본성의 법칙에 의해서도 사람들이 명철하게 생각한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첫째로, 어떤 방법으로 각 개인들이 사회 생활에 있어서 질서 있게 상호 통공을 이루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어떤 방법으로 정치 공동체의 시민들과 공권력이 맺는 관계를 조정하느냐 하는 것이다. 셋째로는, 어떤 방법으로 각 개인들과 정치 공동체들 사이에 또 모든 민족들의 공동 사회가 상호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인데, 이러한 공동체가 성립되어야 한다는 것은 만민의 공익상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제1부 개인 상호 간의 질서
3. 권리와 의무의 주체인 개인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들 개인 간에 있어야 하는 질서에 대해서 언급할 필요가 있다. 무릇 인간 사회가 질서정연하게 번영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이미 인격자로서의 특성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이는 사람의 본성이 지성과 자유 의지를 갖추었다는 것이며, 또한 직접적이기고도 또한 동시에 유래되는 권리와 의무를 가졌음을 의미한다.
인격이란 사람이 인간이 될 수 있도록 주어진 품격이다. 모든 사람은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본성이라는 창조 질서가 주어져 있는데 그 본성은 지성과 자유 의지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부터 모든 사람에게 인간이 되기 위한 권리와 의무는 직접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유래되는 것이다. 권리 없이 의무 없고 의무 없이 권리 없다. 그러므로 그 권리와 의무는 보편적이고 불가침적이며, 어떠한 이유에서든 빼앗길 수 없는 것이다.(비오 12세, 라디어 방송 연설, 1942년 성탄절; 요한 23세, 강론, 1963.1.4. 참조) 모든 사람에게 각자가 인간이 되기 위한 권리와 의무가 보장될 때 사람의 본성인 지성과 자유 의지가 인격에로 고양될 수 있으며 이렇듯 인간화의 방향으로 본성이 충족될 때 인격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야 인간 사회가 질서정연하게 번영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계시된 진리에 의해 인간의 존엄성을 고찰한다면, 훨씬 월등하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것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구원되었고 숭고한 은총으로 하느님의 아드님과 벗이 되었으며 영원한 영광의 상속자가 되었기 때문이다.(비오 11세, 회칙 Divini Redemtoris; 비오 12세, 성령강림대축일 라디오 방송 연설, 1941.6.1. 참조)
인간이 되어야 할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기준이시다. 그분이 인간이 하느님을 닮은 존재임을 알려주셨다. 십자가 희생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의 벗'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닮은 아들이 되는 것이며, 사람은 인간이 됨으로써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영광을 상속한다. 이것이 인간의 존엄성이다.
제1장 권리
4. 생존의 권리, 품위있는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
사람이 인간이 되려면, 그리고 지성과 자유 의지의 본성을 인격으로 고양시키려면, 개인들에게 어떤 권리가 필요한가? 우리는 먼저 사람이 생존할 수 있고, 육체를 보존하며, 생활 향상에 필요하고 적합한 수단과 자원을 획득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권리들은 우선 의식주의 권리와, 휴식과 의료의 권리, 그리고 사회 봉사의 권리 등이다. 여기에 자연히 따라오는 권리들은, 사람이 병고로 건강을 잃는 경우, 노동력을 상실하는 경우, 과부의 신분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경우, 노쇠하고 실직하는 경우, 기타 불가항력적인 환경에서 생활 유지에 필요한 수단을 얻을 수 있는 권리들이다.
5. 도덕적, 문화적 가치에 관한 권리
그밖에도 자연법에 의하여 사람은 이미 인격을 갖춘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하며, 명예를 누리고, 자유로이 진리를 탐구하며, 도덕적 질서와 모든 이의 공동선을 위한 범위 내에서 자기 의사를 발표하거나 전파하고, 예술을 추구하며, 공공 사건 등에 관한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또한 자연법에 의하여 사람은 문화의 혜택을 공유해야 함이 당연하므로 각자 자기 나라의 과학 발전을 위하여 기초적인 공동 학문이나 전문 기술이나 직업을 배울 권리가 있다는 것도 당연하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러한 일들을 가능케 하려면 모든 노력을 다 하여 자신의 지적 능력이 허락하는 대로 고도로 발달된 연구를 진행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가능하면 그들이 사회에서 자기 본연의 능력과 습득한 기술에 적합한 직책과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비오 12세, 라디오 방송 연설, 1942년 성탄절 참조)
6. 옳은 양심에 의거한 종교의 권리
사람은 누구인가? 모든 피조물 가운데 오직 사람만이 양심의 옳은 기준에 의하여 하느님을 숭배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사람들에게 주어진 자연적 권리들 가운데 특기해야 할 것은 개인적으로나 공적으로 종교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락탄시오(Lactantius)가 명철하게 가르친 대로, "우리가 창조된 목적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마땅히 흠숭하고, 그분만을 알고 그분께만 순명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이러한 효경의 의무로 하느님께 결합되어 있다는 데에서부터 '종교'라는 말이 생겨났다."(Divinae Institutiones, lib. IV, c, 28, PL. 6, 535) 이 점에 대하여 레오 13세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 "종교의 자유야말로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참되고 정당한 자유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숭고하게 옹호하는 자유이다. 이는 어떠한 폭력이나 불의보다도 위대하므로 교회에서는 항상 이를 추구하고 특별히 소중하게 보전해 왔다. 일찍이 사도들도 종교의 자유를 줄곧 선포하고 호교론자들은 저술로써 이를 옹호하였으며 수많은 치명자들이 자신들의 피로써 이를 축성하였다."(레오 13세, 회칙 Libertas prestantissimum)
7. 신분 선택의 자유에 관한 권리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더 좋아하는 신분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니, 남녀가 혼인하여 동등한 권리와 의무로 가정을 이룰 수도 있고, 혹은 혼인을 포기하고 사제직이나 수도 생활의 성소를 따를 수도 있다.(비오 12세, 라디오 방송 연설, 1942년 성탄절)
일부일처제로써 자유롭고 서로 갈릴 수 없는 혼인에 의하여 성립된 가정은 인간 사회의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핵심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가정을 안정시키고 가정이 고유한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이며 도덕적인 모든 배려를 진지하게 베풀어야 한다. 또한 자녀들을 양육하고 교육해야 할 우선권은 부모들에게 있다.
8. 경제에 관한 권리
경제 분야를 살펴본다면, 자연법에 의하여 기업체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고 또 기업에서 활동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비오 12세, 성령강림대축일 라디오 방송 연설, 1941.6.1.) 이러한 권리와 더불어 뗄 수 없이 요구되는 것은, 노동에 헌신하는 사람의 육체적 건강이나 윤리 도덕이 보호되어야 하고, 청소년들의 정상적인 발육에 지장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여성들도 아내로서 또 어머니로서 요구되는 책임과 의무를 참작하여 적합한 조건 하에서 노동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레오 13세, 회칙 '새로운 사태', 60항)
인간의 존엄성으로부터 각자가 짊어질 수 있는 책임의 정도에 따라서 경제적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겨난다.(요한 23세, 회칙 '어머니요 스승', 71항) 이 점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시되어야 할 권리는 노동의 보수가 정의의 기준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니, 따라서 노동자의 임금은 소요되는 생활비에 충분하고 인간의 존엄성에 적합하며 노동자와 그 가족이 품위 있는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하여 비오 12세는, "사람의 본성상 노동을 해야 하는 의무는 각자 자신과 자녀들의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으로서 노동을 해야 한다는 자연법에 호응하는 것이니, 이는 숭고하게도 자연이 사람의 존속을 명령한 것"(비오 12세, 성령강림대축일 라디오 방송 연설, 1941.6.1.)이라고 가르쳤다. 역시 사람의 본성에서부터 사유재산권이 유래된다고 이미 선언한 바와 같이 "그 권리는 각자의 인격을 보장하고 다방면의 책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최적의 수단을 마련해 주는 것으로서, 견실하고 안정된 가정 생활과 평화롭고 질서 있는 사회 발전의 요소가 된다."(비오 11세, 회칙 '어머니요 스승', 112항) 그러나 사유재산 소유권에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의무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것이 무척 필요하다.(119항)
9. 집회와 결사의 권리
사람은 본성상 사회적 존재이므로 다른 사람들과 집회와 결사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조직한 단체들의 공동 목적을 달성하기에 더 적합한 기구를 갖출 수 있으며, 주도권과 책임을 가지고 활동할 권리가 있다.(레오 13세, 회칙 '새로운 사태', 70-72항; 비오 11세, 회칙 '사십주년', 36항 참조) 우리는 회칙 '어머니요 스승'에서,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각 개인으로서는 불가능하고 다양한 중간 집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사람의 자유와 책임을 충분하게 보장하려면, 이러한 중간 집단들이 반드시 구성될 필요가 있다.(요한 23세, 회칙 '어머니요 스승', 65항 참조)
10. 거주 이전의 권리
모든 사람은 자기 국내에서는 자유로이 이주하거나 거주할 권리가 있으며, 특히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다른 도시로 이주하여 거처를 정할 수 있다.(비오 12세, 라디오 방송 연설, 1952년 성탄절 참조) 또한 특정한 정치 공동체의 시민이라는 사실로서도 전체 인류 가정의 일원이라는 자격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므로 다른 나라에로 자유로이 이주하여 거주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11. 정치 활동에 참여할 권리
인간의 존엄성은 사회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시민들의 공동선을 위하여 헌신하는 데 있다. 비오 12세도, "'인간'을 사회 생활의 대상처럼 생각해서는 안 되며 도리어 사회 생활의 주체요 토대이며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라디오 방송 연설, 1944년 성탄절 참조)고 가르쳤다. 이러한 참정권은 사회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공동선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모든 권리들을 법적으로 보호해 주는 기본적 권리이다. 이는 효과적이고 공평하며 올바른 정의의 기준에 의하여 성립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정하신 법적 질서는 사람에게 고유하고 영구한 권리이며, 이로써 각자에게 법적 보호가 긍정되며, 법적 지위가 확정되고, 모든 횡포한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된다."(라디오 방송 연설, 1942년 성탄절 참조)
제2장 의무
12. 권리와 의무의 관계
지금까지 고찰한 자연법상의 권리들은 그 주체인 개인에게 있어서 다른 수많은 의무들과 뗄 수 없이 맞물려 있다. 즉, 자연법에 의하여 부과되는 의무들은 역시 자연법에 의하여 보장되는 권리들과 똑같은 기원과 발전 과정, 그리고 그 효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의무 없이는 권리도 없고 책임 없이는 자유도 없다. 예를 들면, 사람의 생존권은 생명을 보종해야 할 의무와 맞물려 있고, 윤택한 생활 수준을 누릴 수 있는 권리는 품위 있는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의무와 맞물려 있는가 하면, 진리를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는 권리는 그 진리를 더욱 완전하고 광범하게 연구할 의무와 맞물려 있다.
13. 개인과 개인 사이의 권리와 의무의 상관 관계
이제까지 말한 바를 인정한다면, 인간 사회에 있어서, 한 개인의 자연적 권리는 하느님께는 물론 적어도 수많은 타인들에게 해당되는 의무가 있음이 확실하다. 즉, 의무란 그와 맞물리는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다. 실상 사람의 모든 근본적 권리는 그런 권리를 보장하고 그와 맞물리는 의무를 부과하는 자연법에서부터 효력과 권위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허용된 권리를 주장하면서 자신에게 부과된 의무를 망각하거나 소홀히 하는 사람들은 한 손으로는 건설하고 다른 손으로는 파괴하는 자들이다.
14. 상호 협조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사회적인 존재이므로 이웃과 함께 살며, 상호 간에 선익을 도모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질서 있는 인간 사회에서는 권리와 의무를 균등하게 인정하고 이행할 것을 요청한다. 나아가서는 각자가 권리와 의무를 더욱 진지하고 효과적으로 인정하고 수행할 수 있는 공공 질서를 확립하는 데 인색함이 없이 공헌할 것을 요구한다. 예컨대 사람들이 생계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도로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다고 할 수 없으며, 자기 능력에 비례해서 생활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 사회에는 질서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풍부한 자산이 필요하다. 이는 확실히 상호 간의 권리와 의무를 인정하고 수행할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현대 문명이 용인하고 있거나 요구하고 있는 수많은 기업들 안에서 서로 협조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15. 책임의 자세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은 각 개인으로 하여금 자기 책임과 자유를 가지고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요청한다. 그 이유로서는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만 개인은 자기 권리를 행사하고 자기 의무를 이행하며, 또한 수많은 협조의 형식 하에서 주로 자기 책임과 결정으로 사업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즉, 각자는 자기 결정과 판단 그리고 의무의 책임감에서 활동하고, 특히 외부에서 오는 폭력이나 압력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 만일 인간 사회가 폭력으로 성립된다면 인간적이라고 볼 것은 하나도 없으니, 사람들은 자유를 잃어버리고 노예처럼 속박되어 버릴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사람들은 자기 생활을 발전시키고 자신들의 인격을 완성시킬 수 있도록 격려받아야 마땅하다.
16. 진리, 정의, 사랑과 자유의 사회 생활
그러므로 사람들이 이루는 정치 사회가 진리에 뿌리를 두고 성립되면 질서정연하고 자선적이며 인간의 존엄성에 합치될 수 있을 것이다. 사도 바오로도, "여러분은 거짓말을 하지 말고 이웃에게 진실을 말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에페 4,25) 하고 충고하였다. 이는 누구든지 상호 간의 권리와 의무를 성실하게 실천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에 지금 제시한 인간 사회는 시민들이 정의에 의하여 타인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자기 의무들을 이행하며, 열성적인 사랑에 의하여 타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마치 자신들에게 해당되는 것 같이 생각하고 자기 재물들을 분배해 줌으로써 정신 질서에 있어서도 마음과 정신이 훌륭하게 상통해야 한다.
이러한 원리 원칙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 사회는 자유 의지로 성립되므로, 본성상 지성을 갖춘 존재로서 자기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는 시민들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적합한 방법과 수단이 마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 사회는 영적인 실재(實在)로 보아야 한다. 사람 자신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사회 생활을 통해서 사람들은 진리의 빛에 따라 지식을 교환하고, 자기 권리들을 행사하고 의무들을 이행하며, 또한 도덕적 선익을 추구함으로써 격려를 받는다. 그리고 사회는 각 사람들이 가능한 모든 표현들을 통하여 공통적으로 아름다움을 향유하고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영적인 가치들이 서로 완성될 수 있도록 성실하게 관심을 가지는 가운데 자기들의 최선을 이웃에게 전달하도록 항구한 마음으로 격려해 주어야 하낟.
영적인 가치의 역할은 무엇인가? 진리와 선익과 아름다움 같은 영적인 가치들은 문화적 활동, 경제 질서, 사회 단체, 정치적 운동과 제도, 법률 등 인간 사회가 성립되고 발전하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계속하여 살피는 근본적인 지도 역할을 하고 있다.
17. 하느님과 도덕 질서
사회 생활에는 질서가 있다.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 작용하는 질서는 도덕적 성질의 것이다. 이 질서는 진리에 의거한 것이고, 정의의 기준대로 실천되며, 서로 사랑함으로써 유지되고 완성되기를 요구하는 동시에 완전한 자유와 더불어 날로 새롭고 더 새로운 균형 하에 조정되기를 요구한다.
이러한 종류의 도덕적 질서는 원칙적으로 보편적이고 절대적이며 불변하는 질서이다. 그리고 그 객관적 기원은 사람의 본성을 초월하여 인격적이신 하느님께 있다. 하느님께서는 만사의 첫째 진리이시요 최고선이시며 가장 숭고한 근원이시므로, 오직 그분에게서 인간 사회가 생명력을 얻을 수 있으며, 그러한 사회야말로 질서 있고 효율적이며 인간의 존엄성에 적합한 사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비오 12세, 라디오 방송 연설, 1942년 성탄절 참조) 이에 대하여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람의 지성이 의지의 기준이라는 말은 의지의 선이 지성에 의하여 평가된다는 것인데, 사람의 지성은 하느님의 지성 자체인 영원법에 기인하는 것이므로 결국 사람이 가진 의지의 선은 근본적으로 영원법에 달렸다는 것이 확실하다."(신학대전, Ia-II,q 19,a.4; a9 참조) 고 명확하게 갈파하였다.
18. 현대 사회의 특징
우리 시대는 다음 세 가지 특징으로 구별된다. 첫째로 노동자 계급이 점차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공공 분야에 진출하는 움직임을 들 수 있다. 이 움직임은 특히 사회 경제 분야에 있어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시작되었고, 정치적 활동을 주장하는 데에로 확대되었으며, 더 향상된 문화의 혜택을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와서는 세계 모든 분야의 노동자들은 지성과 자유가 없는 존재처럼 취급되거나 타인의 의사만으로 이용되는 것을 강력히 거부한다. 이들은 인간 사회의 모든 부문에 즉, 사회적이고 경제적이며 문화적인 공공 생활에서 자격이 있는 존재로서 대우받기를 강조하고 있다.
둘째로 여성들도 공공 생활에 진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그리스도교 문명국들에 있어서는 더 급속히 나타나고 있으며, 그리스도교와는 다른 전통들의 상속을 받아 다른 문명을 지닌 민족들에게 있어서는 좀더 서서히 그러나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여성들이 그들 자신의 인간적 존엄성을 더욱 분명하게 의식하면 할수록 영혼 없는 사물이나 도구처럼 취급되는 것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고, 도리어 가정과 공공 생활에 있어서 인격자로서 대우하라고 요구하게 될 것이다.
셋째로 인류 공동체 안에서 민족들이 자주적으로 상호 관계를 가지려는 움직임을 들 수 있다. 인간 사회가 가까운 과거에 비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인 면에서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민족이 독립을 성취하였거나 혹은 성취하는 과정에 있으므로, 가까운 장래에는 지배하는 민족도 지배를 받는 민족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계 도처에서 자주적인 독립 국가의 국민이 이미 되었거나 또는 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누구도 외부 정치 세력이 지배하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다. 그러므로 인류 공동체 안에서 지금껏 억압당해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수백 수천 년 동안 지속된 민족적 열등감이 해소되고 있고, 정치 공동체 안에서도 사회경제적 특전이나 성별, 또는 정치적 지위에서 유래하는 우월감은 완화되고 소멸되고 있다.
반대로 모든 사람들은 자연적 존엄성으로 보아서 동등하다는 확신이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므로 인종 차별은 적어도 학리상으로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위에서 논술한 원칙에 의거한 인간 사회의 형성을 위하여 중대한 뜻을 가지고 있다. 사실 사람이 자기 권리를 의식할 때는 그 권리 속에 자기 의무가 들어 있음을 역시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권리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존엄성의 표시로 그 권리를 요구할 의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존중할 의무가 있다.
사회의 인간 관계가 권리와 의무로 표현된다면, 사람들은 정신적이고 영적인 가치들도 의식하게 될 것이다. 진리, 정의, 사랑, 자유가 무엇인지 그 의미를 파악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가치들로 이루어진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데 이르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이치로 따져보면, 사람들은 본성을 초월하여 인격적이신 참 하느님을 한층 더 분명하게 깨닫는 데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하느님과 유대 관계를 맺고 이 유대 관계를 인생을 살아 나가는 데 있어서 확고한 기반과 최고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부적으로는 깊이 있게 자신의 영혼을 찾을 수 있으며 외부적으로는 넓게 사회의 이웃들과 일치하여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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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해설>
1. '지상의 평화' 회칙의 영성 : 창조 질서에서 사회 질서에로!
회칙 '지상의 평화'에 담긴 영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요한 23세 교황의 사회적인 균형 감각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창조주 하느님께서 지으신 창조 질서를 본받아 사회 질서를 이룩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 창조 질서의 균형과 조화(1-3항)
요한 교황은 회칙 '어머니요 스승'을 1961년에 반포한 데 이어서 2년 만에 더 보편적인 사회 질서를 규정하는 회칙 '지상의 평화'를 반포하였다. 이 두 번째 회칙에는 첫 번째 회칙의 가르침을 영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 심화시킨 가르침이 담겨 있다. 그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우주의 질서에서 근본적인 영감을 받고 있다. 그에 따르면, 우주의 질서가 보여 주는 하느님의 손길은 균형과 조화이다. 이것이야말로 창조주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보여 주는 징표이다. 인류가 건설하는 사회의 질서도 우주의 질서와 마찬가지로 균형과 조화로써 창조 질서를 회복하여야 한다. 이것이 인간의 과제이다.
나. 사회 질서의 불균형과 부조화(4-5항)
회칙 '어머니요 스승'에서도 나타났던 요한 교황의 탁월한 균형 감각은 우주의 창조 질서로부터 배워온 것이다. 그는 사회 질서를 재건함에 있어서 우주의 창조 질서를 닮아야 할 뿐 아니라 사회의 구성 요소인 개인들 역시 창조적 균형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은 책임과 자유요, 의무와 권리이다. 그리고 그 균형의 중심은 하느님이시다. 사랑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진리와 정의와 자유라는 중심이 생겨난다. 중심 잡힌 균형이 사회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적인 사회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에 있어서 잡혀야 할 것은 개인들의 창의성과 도덕성의 균형이다. 폭력은 이 균형을 깨뜨리는 악이다. 중심이 잡혀 있는 균형을 이루고 있는 공동체를 사회 질서 안에 건설하는 과제는 모든 사람들의 공동선을 위해서나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나 시급히 요청되는 과제라 할 것이다. 이것이 회칙 '어머니요 스승'에서는 '사회화'라는 개념으로 정리된 바 있다. 회칙 '지상의 평화'는 이 사회화 현상을 정치적으로 적용하는 한편 국제적으로도 확대시킨 내용이다.
다. 좌익에 대한 개방과 우익으로부터의 이탈
이러한 균형과 조화의 이치에 따라 사회 질서를 관찰할 때, 요한 교황은 국가의 정부 공권력이 균형을 깨뜨리고 있다고 보았다. 정부 공권력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부유한 자본가들과 유착하여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악 현상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많은 정부들이 그들의 불의한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서 가톨릭 사회 교리의 가르침을 편파적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가 강조하고 있는 사유재산의 거룩함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사유재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거론된 것이지만, 그 정부들은 부유한 자본가들의 사유재산을 교회가 옹호하고 있다는 식으로 정반대로 악용하였다. 그런데 사실은 가톨릭 교회 안에서도 많은 성직자와 신자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말하자면 가톨릭 사회 교리는 사악한 우익 세력에게 둘러 싸여 이용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본의아니게 우경화된 형편에서 요한 교황은 교회가 균형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사회악 현상으로 엄청난 숫자의 가난한 이들이 생겨나고 또 이 현상을 개선하려 하지 않는 자본가들과 공권력이 존재하는 한, 균형과 조화를 이룬 사회 질서의 중심에 교회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좌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요한 교황의 공헌은, 교회를 좌익에 대한 개방적 태도로 전환한 데 있다기보다는 전통적으로 밀착되어 있었던 우익으로부터 결정적으로 이탈시켰다는 데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가톨릭 교회는 사회 교리를 통해 가난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옹호해 왔지만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반공 세력으로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단지 알려져 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전임 교황 비오 12세는 공산주의 소련을 반대하기 위해 극우적인 히틀러 정권을 묵인하고, 히틀러와 연합한 뭇솔리니와 협약을 맺기도 했던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에 따른 공동선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톨릭 교회가 더 이상 우익에게 가까이 붙어 있어서는 뜻한 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요한 교황은 좌익에게 개방하는 한편 무엇보다도 우익으로부터의 이탈을 분명하게 선언할 필요가 있었다.
이로써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초점이 선명하지는 못해도 이를 위한 의미 있는 전환을 그는 마련한 것이었다. 이러한 전환이 가톨릭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이라는 복음적 중심 목표를 회복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은 사실이다. 이로 인해 가톨릭 교회는 인간 사회의 질서를 창조 질서의 균형과 조화를 닮은 사회 질서로 변화시킬 수 있는 추진력을 얻게 되었다.
2. 개인 상호 간의 질서
이는 인간 존엄성을 지켜야 할 책임에서 나오는 의무와 권리에 관한 질서를 말한다.
가. 의무와 권리의 근거 : 인간 존엄성
우리가 인간의 존엄을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는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달리 존엄한 근거를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이 존엄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 누구나 이 인간 존엄성을 지켜야 할 책임이 주어져 있고 이를 인격이라 한다. 개인들 상호 간의 질서는 이 책임에서 나오는 의무와 권리에 관한 질서이다. 그리고 이 질서가 창조 질서를 반영하기 위해 균형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사회 질서의 바탕을 이룬다.(6-7항)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은 인간 존엄성을 지켜야 할 책임이 주어져 있고 이 책임에서부터 존엄한 존재로서의 자유를 누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책임을 이행하기 위한 의무에서부터 모든 인간의 권리가 생겨난다.(21-23항) 의무 없이는 권리도 없고, 책임 없이는 자유도 없다.
인격에 관한 요한 교황의 이러한 가르침은 개인주의적 질서와는 반대되는 것으로서, 인간의 존재 자체가 처음부터 공동체적인 질서를 지향하고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삶에서 공동체를 이룩하는 것은 인격적인 존재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이렇듯 공동체적인 인격의 본질을 전제하고, 요한 교황은 인간의 권리(8-20항)와 의무(21-34항)에 관해 관찰한다.
나. 인격적 의무에서 나오는 권리들
자연법상의 모든 권리는 그 주체인 개인에게 있어서 다른 여러 의무들과 뗄 수 없이 맞물려 있다. 의무를 이행해야 할 책임 때문에 이를 이행할 수 있는 자유에 관한 권리가 나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요한 교황은, "자연법에 의하여 부과되는 의무들은 역시 자연법에 의하여 보장되는 권리들과 똑같은 기원과 발전 과정 그리고 그 효력을 가지고 있다."(21항)고 설명한다. 그래서 한 개인의 권리는 다른 이들에게 해당되는 의무를 발생시킨다. 따라서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부과된 자기 의무는 소홀히 하는 사람들은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13항)
예를 들면,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보존할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존할 권리도 지니고 있고, 생명 보존을 넘어서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누리는 생활을 영위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이를 이행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하여 윤택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를 지닌다.
그러나 생명 보존의 의무가 내포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인간의 존엄성을 이룩해야 하는 책임이다. 육신 생명을 보존해야 하는 책임도 이에 종속되어 있다. 본시 사람은 서로 사랑함으로써 인간이 되어 하느님을 닮도록 창조되었으므로 존엄한 존재이다. 인간 존엄성의 근거가 하느님께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사람 누구나 부여받고 있는 천부적인 인격적 책임이다.
이것이 사회 생활에 있어서 각 사람으로 하여금 책임과 자유를 가지고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요청한다."(26항) 그러니까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인간의 존엄성 책임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질서를 이룩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질서를 일컬어 '공공 질서'라 한다.
그 권리들은 첫째, 도덕적이고 문화적 가치에 관한 권리로서, 자유로이 진리를 탐구하고 도덕적 질서와 모든 이의 공동선을 위한 범위 내에서 자기 의사를 발표하거나 전파하고 예술을 추구하며 공공 사건 등에 관한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5항) 여기서 진리를 더욱 완전하고 광범하게 연구할 의무가 주어져 있기 때문에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 권리가 나온다.(12항)
둘째, 옳은 양심에 의거한 종교의 권리는 하느님을 숭배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6항) 셋재, 신분 선택의 자유에 대한 권리는 혼인과 사제 및 수도 성소의 선택에 관한 자유와 더불어 혼인한 사람듫이 가정에서 그 고유한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도덕적인 배려를 받을 권리가 있고 부모들에게는 자녀들을 양육하고 교육해야 할 우선적인 권리가 있다.(7항)
넷째, 경제 질서에 관한 권리는 기업을 설립하여 경영할 수 있는 자유와 기업 활동에 참여하여 노동할 수 있는 자유에 관한 권리를 말하는데, 각자가 짊어질 수 있는 책임의 정도에 따라서 경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권리도 여기서 파생된다.(8항) 여기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기업을 설립하고 경영하는 이들에게는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와 함께 이 사유재산의 사회적 의무가 있다는 점, 그리고 기업 활동에 참여하여 노동하는 이들에게는 정당한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이다.(9항) 그밖에도 집회 결사의 자유에 관한 권리(9항), 거주 이전의 자유에 관한 권리(10항) 등이 있으며, 이 모든 권리들을 보장받기 위하여 정치 활동에 참여할 자유에 관한 권리(11항)가 있다.
요컨대, 인간 존엄성을 위한 권리들이 보장된 공공 질서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시민 각자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인격적 책임을 자각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다. 인격적 책임에 의한 도덕적 질서(27-30항)
이렇듯이 사회의 구성원인 각 개인들이 자신의 인격적 책임인 인간 존엄성을 이룩해야 할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사회의 질서가 건설되는 이치가 진리이다. 이에 입각할 때 사람들은 누누가 다른 이들의 책임과 자유, 의무와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규범이 생겨난다. 이것이 정의이다. 정의는 또한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나눔으로써 일치하는 사랑에로 나아가야 한다. 이 사랑이 각자 자신들의 책임을 다 하기 위하여 주어진 자유이다. 이렇게 진리와 정의와 사랑과 자유에 의해 세워진 사회 질서가 본연의 공공 질서요,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반영하는 조화로운 질서이다.
라. 현대 사회의 특징(31-34항)
요한 교황은 조화로운 사회 질서가 세워져야 할 현대 사회의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하였다.
첫째, 노동자들의 사회 참여 활동이 늘어났다. 이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개선하기 위하여 노동 조합을 결성하는 경제적 활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다음에는 이 노동 조합을 중심으로 연대하여 정치적인 권리를 획득하는 활동으로 전개되다가, 끝으로는 더 향상된 문화적 혜택을 누리기 위한 활동으로 나아갔다. 이리하여 현대 사회의 노동자들은 사회 생활에 있어서 필수적인 공동선을 공권력이나 자본가들에게 기대하기보다 그들 자신의 힘으로 성취하고자 한 것이다.
둘째, 여성들도 사회 활동에 두드러지게 참여하게 되었다. 여성들 역시 과거처럼 남성들에게 종속된 처지로 남아있기를 거부한다.
셋째, 식민통치로 지배받던 약소 민족들이 대거 독립하여 자주적인 국가들을 형성하였다. 이로써 국가를 단위로 한 지배와 피지배의 불평등한 억압적 관계는 청산되게 되었다.
이러한 세 가지 경향의 공통적 특징은 억압을 받아 권리와 자유를 누리지 못하던 계급(노동자), 계층(여성) 그리고 민족(피지배민족)들이 스스로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게 되었고, 권력과 억압 세력의 시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힘으로 성취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빼앗긴 권리와 자유를 되찾는 것은 하느님의 뜻과 역사의 진보 방향에도 부합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간의 존엄성 책임에 있어서 동등하다. 노동자, 여성, 피지배민족 등이 당했던 모든 사회적 차별은 부당한 것이므로 개혁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현대 사회의 뚜렷한 변화인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징표에 담겨 있는 역사적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역사적 진보 현상이 권력으로써 억압하던 세력의 양보와 회개가 담긴 노력으로써가 아니라 노동자, 여성, 피지배민족 등 모든 피억압 세력이 스스로 자각하고 노력함으로써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를 겪고 있는 모든 기득권 세력, 즉 자본가와 남성과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을 대오 각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마땅하다.
교회는 모든 기득권 세력에 속한 신자들에게,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을 완수함으로써 신앙을 증거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또한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사도직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일차적으로 요청되는 교회의 사회적 역할이다.
한편 사회적 권리와 자유는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다 하기 위하여 주어지는 것이므로 노동자들이나 여성들이나 피지배 민족들도 어렵사리 성취한 권리와 자유를 올바로 사용해야 한다. 개인들은 인간 존엄성을 이룩하기 위한 인격적 책임을 다해야 함은 물론 사회 질서에 있어서도 창조 질서를 반영한 조화와 균형을 이룩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아직도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얻지 못한 모든 피억압 세력들이 자유와 권리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또 얻은 자유와 권리를 책임을 다 하는 데 쓰도록 하는 여기에 교회가 해야 할 이차적 역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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