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눈 내리는 밤
-강경순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밤
자취방에 앉아
책 제목을 휘이 눈으로 읽는다
시집을 고르며 생각한다
흰 눈이 사박사박 날리는 밤
불빛일랑 거두어 재우자
그리고
달빛 같기도 하고
쌀가루 같기도 한 희디흰 눈발
벗 삼아 시를 읽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색의 시를 읽는다
눈이 풀풀 날린다
나는 시집을 펼쳐 놓고
시집을 고르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의 손을 생각한다
하얀 나비가 날아다닌다
연수원 뒤쪽에 복숭아꽃
봉오리로 맺히는 삼월이면, 나,
도화 꽃봉오리 툭툭터지는
장호원에 살러 간다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밤
입춘대길, 건양다경
봄, 배추밭에 흰 나비 날아다니는 듯
봄보다 먼저 와 기다리는
하얀 나비, 나비, 나비,
흰 눈 펄펄 날리는
입춘, 밤 창가에
가득히 날아와 오르락 내리락
부서지는 하얀 나비 되어
날아다니는 밤
복숭아빛 도는 꿈을
김 서린 창에 손가락으로 그린다
금세, 물 되어 흘러내리는
입춘, 봄밤 눈 내리네
* <해설> 이인평
입춘에 눈 내리는 풍경 속에서 백석의 시집을 읽었으니, 흰 눈의 여백으
로 감도는 정취가 일품입니다요. 그것도 자취방에서 「나와 나타샤와 흰당
나귀」를 읽는 맛은 그야말로 이 시가 탄생하기에 좋은 상황이 아니었을까
짐작되네요. 입춘은 봄을 알리는 절기인데 흰 눈을 꽃 삼아 즐기면서 아직
오지 않은 봄날의 정경을 미리 당겨다 그리는 솜씨 또한, 직장이 있는 장
호원의 봄날에 피어난 복숭아꽃이며 흰 나비를 날아다니게 하면서 겨울
을 희롱한다고나 할까요, 왠지 겨울을 밀쳐내면서 기쁨을 채워나가는 필
치가 멋지네요. 입춘이니까 그럴듯하게 봄을 모셔다 놓고 입춘대길 건양
다경을 경전의 제목처럼 차용하여 이미 자취방을 온통 봄으로 꾸며버린
순수한 정취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눈이 내리는 것을 빌미로 차라도 한 잔
나누면서 봄소식에 귀 기울이고 싶은데, 때는 아직 겨울이라 눈이 내리는
동안 백석의 시를 음미하면서 카톡이라도 나눌 수 있었다면 슬쩍이라도
입춘대길의 기운을 받을 수 있으련만, 흰 눈이 나비처럼 날아오르는 입춘
을 멀리서나마 음미하게 하시니 시인의 고운 정취가 마음 깊이 눈처럼 쌓
입니다요. 더구나 삼월이 오면 복숭아꽃이 툭툭 터지는 장호원으로 가서
살 사람이 바로 화자 였으니 누가 그 뒤를 따라 다시 입춘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까요. 복사꽃이 화사하게 피는 삼월이 오기 전에 벌써 이 시는 꽃이
며 나비를 피고 날게 하여 건양다경에 이르고 있는데, '부서지는 하얀 나
비되어/ 날아다니는 밤/ 복숭아빛 도는 꿈을' 멀리서나마 바라보게 하시
니 시인이 아니고서야 이처럼 꿈속 같은 입춘을 어이 맞아 봄을 노닐겠습
니까마는, 지금은 다만 겨울 속에 피언난 시를 보며 복사꽃이 분분한 장호
원을 그릴 밖에요.
첫댓글 감사합니다
시 해설이 더욱 아름다운 시 같습니다
춘설 날리는 봄밤이 그림처럼 그려지는 해설을 해 주신 이인평시인님!
감사합니다.
글 올려주신 최윤경시인님
감사합니다
시인님 ! 감사드립니다
한 번도 뵌적은 없어도 마음이 따스한 분 같아서 행복합니다
댓글로 만나는 기쁨을 주셨으니 다음 낭송회에서는 뵐수있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