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남명렬은 “연극은 내가 해본 일 중에 가장 즐겁고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고 돌아봤다./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아시아투데이 전혜원 기자 = ‘나의 밀실’.
연극계에서 ‘명배우’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몇 안 되는 배우 중 한 명인 남명렬(55)의 카카오톡에 적힌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책이 펼쳐져 있는, 그만의 밀실인 서재 사진이 있다.
남명렬은 책을 사랑하는 배우다. 그는 “배우란 깊진 않아도 넓은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며 “작품을 분석하고 연기를 할 때 책이 가장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여가 시간의 많은 부분을 책과 함께 보낸다. 본인의 서재와 거리의 카페에 앉아 주로 책을 읽는다.
최근에 읽은 책은 ‘멸치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와 ‘종교는 왜 과학이 되려 하는가’다. 그리고 가방 속에는 함께 단편영화를 찍자고 한 영화감독이 건넨 책 ‘은밀한 생’이 들어있었다.
요즘 서울 삼성동 안똔체홉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숲귀신’과 KBS2TV 수목드라마 ‘조선 총잡이’에 출연 중인 남명렬은 연기력으로는 자타공인 인정을 받은 배우다.
올초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로 제50회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을 거머쥐었고, 지난해에는 제6회 대한민국 연극대상에서 남자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연극 ‘햄릿’ ‘에쿠우스’ ‘갈매기’ ‘보이체크’ ‘프루프’ ‘그을린 사랑’ ‘나는 나의 아내다’ ‘라긴’ ‘코펜하겐’ 등 수많은 무대에서 지적인 연기를 펼쳐왔다. 무대 뿐 아니라 드라마 ‘닥터 이방인’ ‘여왕의 교실’ ‘백년의 유산’, 영화 ‘도가니’ ‘내 아내의 모든 것’ 등 전방위적으로 활동 중이다.
동아연극상 수상 당시 심사위원들은 그의 연기에 관해 “도드라지지 않으면서도 든든하고 뚜렷하게 작용하는 존재감을 보여준다”고 평한 바 있다.
그의 연기를 무대에서 보면 이 말이 참 와 닿는다. ‘스타’는 아니지만, 그가 무대에 서면 일단 그 작품에 신뢰가 간다.
남명렬은 비슷한 연령대 배우들에서 보기 드문 이미지다. 키가 179cm인데 실제로는 비율이 좋아 더 커 보인다. 힘 있는 중저음의 목소리와 뚜렷한 이목구비에서 지성미가 넘친다. 때문에 그를 가리켜 ‘한국의 제레미 아이언스’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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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남명렬 인터뷰 15일 오후 사내 조준원 기자 wizard333@
젊은날 그는 평범한 제약회사 영업사원이었다. 그런데 연극에 대한 열정 때문에 6년만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연극계로 뛰어들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연극 바닥에서 버티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을 때 경제적 어려움보다 내가 위치할 곳이 없다는 것, 언제 나에게 작업이 주어질 거라고 기약할 수 없다는 게 제일 큰 스트레스였다”며 “이미 나이가 든 상태였고 다른 일로 전환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또한 연극은 내가 해본 일 중에 가장 즐겁고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그냥 버틴” 탓에 그는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이제는 그가 다녔던 제약회사의 광고모델이다. 인생 참 아이러니하다.
“연극은 내 존재를 확인하는 작업”이라는 그는 “만약에 연기 말고 나를 더 잘 확인시켜줄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면 가차 없이 연기를 관둘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는 11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트라이브즈’에 출연한다.
“청각장애가 있는 아들을 가진 한 가족의 이야기”인 이 작품에 관해 그는 “장애라는 것이 정말 장애인가, 정상인의 시각만으로 장애를 바라본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영국 작품인데 상당히 괜찮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파우스트’를 한번 해보고 싶다”며 “이 나이가 아니면 (젊은 파우스트와 나이 든 파우스트를 오가는 연기를)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했다.
또한 “건강이 허락 돼서 내가 좋아하는 연기를 오래오래, 나날이 발전하면서, 매번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나가면서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