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3일 촬영
(太宗武烈王陵)
태종무열왕릉 (太宗武烈王陵) 사적 제20호. 통일의 기반을 닦은 김춘추 신라 29대(재위 654~661) 태종무열왕릉이다. 경주 북서쪽의 선도산(仙桃山)에서 남쪽으로 뻗은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해 있다. 능은 밑둘레 114m, 높이 8.7m로 비교적 큰 편이며, 능 아래쪽은 자연석을 쌓고 드문드문 큰 돌로 받쳤다고 하나, 지금은 흙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동쪽에 비석을 세웠던 돌거북과 머릿돌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王陵之碑)'란 명문이 남아있어, 무열왕릉임을 알 수 있다. 국보 25호인 태동무열대왕비의 비신(碑身)은 없어지고 현재는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 받침돌은 거북 모양을 하고 있고, 비신 위의 머릿돌에는 용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태종무열왕릉비는 이러한 양식이 나타난 최초의 예이다. 받침돌은 완전한 거북모양으로 네 발과 목을 길게 앞으로 뺀 거북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고, 그 위 아래에는 보상화(寶相華) 무늬를 조각하였다. 등에는 큼직한 6각의 거북 등껍질(龜甲)을 새겼으며, 테두리에는 구름 무늬를 조각하였다. 머릿돌에는 좌우에 3룡식(三龍式) 6룡이 뒤엉켜 여의주를 받들고 있다. 그러나 비의 몸체가 없어져 비에 남긴 내용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남아있는 받침돌과 머릿돌 만으로도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릉의 주변에 소나무가 울창하게 둘러싸여 있다. 왕릉 입구의 국도 4호선은 무열왕릉과 도로 건너 형산강 쪽에 있는 후손들의 무덤을 나누고 있다. 이렇게 경주 지역은 일제강점기 그리고 근대화를 거치면서 생긴 도로나 철도들이 경주의 본모습을 상실케 하는 형태로 건설된 경우가 많다.(출처:백과사전)
기념사진 좌측으로부터 정승진, 이태희국장님, 김성호교수님, 최청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