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와 웅어 그리고 꽃게탕
작은 음식 하나로 신하 마음 감동시킨 정조의 리더십
물고기 하사품으로 부하 다독이고 왕의 요리 뒤엎은 부하 포용하고
백성에게 인심을 잃는 것은 누룽지 한 덩어리 때문(民之失德 乾후以愆)이라는 말이 있다. 동양 고전인 시경(詩經)에 나오는 구절로 아랫사람들에게 누룽지조차 나눠주기를 아까워하다 인심을 잃는다는 소리다. 사소한 것을 아끼다 남들에게 원망을 듣는다는 의미다. 뒤집어 말하면 별것 아닌 일 가지고도 얼마든지 상대방을 감동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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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어구이 |
조선 후기 정조는 그걸 아는 임금이었다. 작은 배려와 칭찬으로 신하를 감동시켰고 부하들의 충성을 이끌어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음식 하나를 가지고 만들어낸 리더십이다.
정조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인문학적 군주였지만 무예에도 조예가 깊었다. 틈만 나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이 있는 지금의 수원, 화성 행궁으로 내려가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호위군관과 함께 무예를 겨루곤 했다. 어느 날 행궁 활터에서 조선군의 전투용 화살인 유엽전(柳葉箭)을 쐈다. 화성 행궁 활터의 크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 시대의 각종 제도를 수록한 ‘속대전(續大典)’에 표적까지의 거리가 120보라고 했으니 대략 계산하면 100~120m쯤 된다. 작은 과녁을 화살로 쏘아 명중시키기에는 만만하게 볼거리가 아니다.
조기 한 마리와 웅어 한 두름 하사한 정조
정조가 50발을 쏴서 48발을 맞혔다. 기분이 너무 좋았던 모양이다. 함께 활을 쏜 장용영(壯勇營: 왕의 호위부대)의 군관 오의상에게 기념으로 상을 내렸다. 조기 한 마리와 웅어 한 두름을 하사했다고 적힌 문서가 현재 경기도 수원시 화성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지방에 따라 우어라고도 하는 웅어는 청어목 멸칫과의 생선으로 맛은 있지만 그다지 크지 않은 물고기다. 소갈머리 없다는 밴댕이와 함께 옛날에는 봄철 한강에서 엄청나게 많이 잡혔다. 물론 임금님 수라상에도 오르고 궁중의 각종 잔치나 제사에도 빠지지 않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고급 어종은 아니었다.
임금님이 기념품으로 하사한 조기 한 마리와 웅어 한 두름(스무 마리)을 받은 장용영 군관 오의상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일국의 국왕이 하사품으로 쫀쫀하게 생선 몇 마리를 주었다고 불만을 품었을까, 아니면 임금님 하사품이니 가문의 영광이라며 감격했을까?
그의 반응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만 정조 임금은 오의상이라는 군관뿐만 아니라 조정의 관리들에게도 수시로 생선을 상으로 하사했다. 규장각 검사관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이덕무 역시 정조로부터 자주 웅어를 받았다고 문집인 ‘청장관전서’에 적었다.
이덕무가 마흔한 살 되던 해 4월의 일기에만 20일에 웅어 한 두름, 23일에 웅어 두 두름, 그리고 5월에는 11일에 웅어 두 두름, 27일에 웅어 한 두름을 받았다고 기록했으니 조정의 관리가 임금님이 내려주신 물고기를 받아 들고 퇴근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재미있다. 값이 싸고 비싸고를 떠나, 물건이 귀하고 아니하고를 떠나 하사품을 받아 들고 퇴근하는 발걸음이 가벼웠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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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탕 |
왕에게 바칠 요리 뒤엎은 신하
정조는 웅어를 좋아했기에 신하들에게 상품으로 자주 선물했지만, 꽃게도 좋아했던 모양이다. 정조가 아낀 인재 중에 정민시라는 인물이 있었다. 정조를 최측근에서 보필하며 개혁을 추진했던 홍국영과 함께 발탁돼 권세가 막강했지만, 권력을 휘두르다 결국 몰락한 홍국영과는 달리 분수를 지킬 줄 알았기에 끝까지 정조의 사랑을 받았다.
정민시의 처가에서 꽃게탕을 맛있게 끓인다는 소문이 한양에 널리 퍼져 정조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정조가 어느 날 정민시에게 처가에 부탁해 꽃게탕을 끓여 달라고 했다. 임금의 명을 받은 정민시가 거역하지 못하고 장모에게 청해 꽃게탕을 끓이고 있는데 마침 외출했다가 돌아온 장인 이창중이 이 모습을 봤다.
사연을 들은 이창중이 “사사롭게 음식을 만들어 임금에게 바치는 것은 감히 신하가 해서는 안 될 일”이라며 부인이 끓이고 있던 꽃게탕을 엎어 땅에다 묻었다.
아무리 조선의 르네상스를 연 성군 정조일지라도 자신이 어쩌다 부탁한 꽃게탕을 엎었다는 소리에 기분이 좋았을 리 없지만 이창중을 문책하지는 않았다. 다만 골려 줄 생각에 불러다 시험을 했는데 오히려 그 능력을 보고 크게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의 문집 ‘임하필기(林下筆記)’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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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장용영 군관 오의상에게 조기 한 마리와 웅어 한 두름을 상으로 내린다는 기록. 출처=수원 화성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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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이 수원으로 행차하는 모습(청계천 벽화에 그려진 정조대왕 능행 행차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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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촉이 버들잎을 닮은 조선의 전투용 화살 유엽전. |
이런 부하를 중용한 왕
꽃게탕을 얼마나 맛있게 끓였기에 임금이, 그것도 성군으로 유명한 정조가 한번 먹어보자며 청했는지도 궁금하지만, 임금에게 사사로이 음식을 바쳐서는 안 된다며 꽃게탕을 엎어버린 이창중이나 이런 신하를 품은 정조 임금이나 모두 대단한 인물임이 틀림없다.
작은 생선 웅어로 부하를 격려할 줄 알고, 자신이 부탁한 꽃게탕을 엎어버린 신하를 오히려 중용하는 리더십이 있었기에 정조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