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임채수
근무처에서 같이 생활하는 지적장애 친구가 내게 묻는다. "시설장님 제가 착하게 사는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지요?" 나는 "그래 할머니, 할아버지가 하늘에서도 너를 위해 기도해 준단다." 말해 주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은 죽어서도 나의 수호신이 된다는 생각에서이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한순간에도 저세상에 있는 어머니는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 놓고, 장인. 장모님은 고상 앞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나를 위하여 기도한다던 친구도 그러할 것이다.
기도의 힘은 강력하다. 기도는 상상을 현실로 창조해 내는 엄청난 힘이 있다. 기도의 파장은 우주의 양자 에너지를 움직인다고 한다. 우주 양자 질량 불변의 법칙으로 영혼과 삶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조상의 덕행은 후손에 영향을 준다는 것도 이러한 생각에서이다. 운명의 에너지도 기도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굿으로 죽은 자의 음성을 교환하는 것도 영혼의 에너지가 우주 공간에 있다는 말일 것이다.
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네 댓살 정도였을까. 마산 어시장에 가는 어머니 손을 잡고 따라다녔다. 마산 어시장을 가려면 붉은 벽돌이 돋보이는 남성동 성당 앞을 지나야 했다. 남성동 성당 앞을 지나가면 고층 건물 위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예수상이 나를 보고 ‘이리 오너라’며 팔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그분이 겁이 났다. 나는 그분이 볼 수 없도록 담벼락에 몸을 숨기며 피해 다녔다. 그때 그분이 내 슬픈 운명을 알고 내 품으로 오라는 것을 피해 다닌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분을 피해다니다 그분을 찾기 시작한 것은 고 1때 건강을 잃고부터였다. 나는 위장장애로 소화불량의 발에 짓밟히고, 두통의 모진 매를 맞으며, 쓰러진 마른 잡초처럼 살아야 했다. 나는 이 아픔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나는 왜 이렇게 잡초처럼 밟히고 찟기고 일어서면 살아야 할까. 이름 불리어 지는 대로 산다는데 이름을 잘 못 지었을까. 나물 채(菜), 같은 목숨(壽)이라 그런가.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총각 때 아픈 사람이 결혼하면 낫는다고 했던가. 상남 성당에서 결혼식을 하였다. 결혼하고 처갓집에 갔을 때였다. 장인에게 인사를 올리고 앉았는데 첫마디가 “가난하게 살아도 좋으니 오래 살아야된다.”라고 했다. 나는 대침에 가슴을 찔린 것 같았다. 알고 보니 나는 3남 3년인 처갓집에서 셋째 딸의 귀한 사위가 되어있었다.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나는 살아야 했다.
결혼은 하였지만 약한 몸으로 홀로 일어서는 힘이 없었다. 몸이 야위니 생각도 야위어 밴댕이 속 같았다. 장인은 대범해야 한다고 하였지만 성숙하지 못한 야윈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내는 깡마르고 속 좁은 남편을 보면서 기도하며 참아내는 것 같았다.
아내는 나를 남성동 성당에 데리고 갔다. 나는 몸이 아파 다리를 떨면서 일어서고 앉으면서 고상 앞에서 기도했다. “전생에 죄가 있었다면 용서하시고 제발 살려주십시오.” 눈을 적시었다. 기도만 하면 이루어진다고 아는 아내는 나를 “마태오”라는 세례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였다. 놀랍게도 어릴 때 피해 다녔던 남성동 성당에서 그 분의 품에 안기어 새로운 이름으로 태어난 것이었다.
아내는 알고 지내는 언니 남편이 단식하고 두통이 나았다고 나를 단식원으로 데리고 갔다. 아내는 단식원 원장에게 남편이 이렇게 야윈데 단식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원장은 “야윈 몸은 단식하면 너구리처럼 오동통 살이 붙는다.” 라고 했다. 나는 아픈 몸으로 사는 것보다 단식을 하다 죽겠다고 단식을 하였다. 단식을 하고 나서 건강을 찾게 되었다. 단식의 효과를 알고 난 나는 매년 단식을 하게 되었다. 단식수련을 하면서 영성이 맑아지면 염원이 잘 듣는다는 것을 알고 매일 기도하며 살게 되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나를 위해 기도해 준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았나 싶다. 장모님은 윤 마리아라 불리었는데 구암성당 건립에 계를 모아 1억을 기탁할 정도 신앙심이 깊었다. 장모님 기도의 힘은 얼마나 강했을까. 아내는 세 딸 중 장모님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한다. 아내는 항상 촛불을 켜놓고 기도서를 펴놓고 기도한다. 아내는 기도하면서 “나일론 같은 신앙이라도 없으면 살기도 힘들 것 같다”라고 말한다. 아내는 하느님이 나를 구하기 위해 보낸 천사이지 싶다. 나는 그러한 기돗빨로 죽었던 사람이 살고 있다, 절실하면 하늘도 감응한다고 했다. 나는 요즘 매일 어머니나 장모님이 나를 위해 기도했듯이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 가족이 조금만 아파도 내 죄는 내가 다 가지고 가겠다고, 내 죄를 용서하고 가족의 건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가족을 위해 기도를 하면서 나와 같이 생활하고 있는 장애를 가진 친구를 둔 보모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생각해보는 것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속세에 살면서 때 묻은 마음이나. 더러운 생각이 맑은 물에 씻기는 것 같다. 기도는 칠흑 같은 어두운 진흙에서 피는 연꽃과 같다. 연꽃은 두 손 모두고 기도하는 모양으로 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뻘밭에 뿌리를 묻고 수면에 얼굴을 내미는 연꽃은 얼마나 화려한가. 어둡고 고통스러운 흙에서 핀 연분홍 연꽃은 눈부시다. 힘든 시간도, 어려움이 있는 시간도 기도하면 나의 운명이 연꽃처럼 세상을 향하여 활짝 열리리라 믿는다.
하느님은 하늘같이 맑게 살라고 남성동 성당에서 나를 불렀다. 아무 생각 없는 육체에 고통을 가하면서 정신적인 눈을 뜨게 하였다. 고통 곁에 신이 있다고 했던가. 고통을 통하여 기도를 알게 하였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기도하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