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6일 토요일 (흙날) 오늘 오전까지 비가 내린다는 예보였으나 비는 그치고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고 바람이 엄청나게 불다가 저녁 무렵에 조금 잔잔해짐.
제목 : 보물섬인 남해를 다녀오다 (이순신순국공원2)
이번에는 딸이 우리가 3월 5일 다녀온 고성 당항포 관광단지와 상족암을 간다고 섬진강휴게소까지 태워달라고 했다. 그런데 어제는 비가 내리고 일기예보에는 오늘 오전까지 비가 내린다고 해서 어제 저녁에 딸에게 다음으로 연기하면 어떻겠냐고 조언을 했으나 시간이 없다고 강행한다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침 8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밖을 보니 비는 다행히 내리지 않았다. 대신에 바람이 조금 불었다. 비만 내리지 않으면 되니까 8시 조금 넘어 출발했다. 가다가 아침 대용으로 김밥을 사서 가지고 갔다. 집사람은 어제 저녁에 밥을 들지 않았기에 차타고 가면서 다 먹고 나는 섬진강휴게소 내려 딸과 예비사위를 만나게 하고 거기에서 김밥을 먹은 다음 우리는 보물섬인 남해로 출발했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이 남해의 이순식순국공원이다. 이 공원은 1598년 11월 19일(음력-당시 양력으로 환산하면 12월 16일) 이순신장군이 노량해전에서 배 200척으로 일본군 500여척 중 450척을 격파하고 나머지 50척을 관음포로 도주케하여 거기에서 50척을 전멸시키는 과정에 왜군의 총탄을 맞고 순국하신 날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공원이라고 했다. 제일먼저 들른 곳이 영상관이었다. 마침 10시에 상영하여 입장료 3,000원을 내고 영상관에 들어갔더니 영상관은 돔형식이어서 누워서 천장에 투시된 영상을 관람할 수 있었다. 3D 영상이라고 보완경을 주길레 그걸 쓰고 누워서 영상을 감상했다. 20분짜리 단막극이었다. 이순신장군 역할을 한 이는 우리가 드라마에서 자주 얼굴을 봤던 인물이다. 그의 열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극은 노량해전을 극화한 것인데 총탄에 맞았을 때의 장면이 갑옷 차림이었다. 다른 극에서는 이순신장군이 그날 따라 갑옷을 입은 게 아니라 관복을 입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해전에서 결국 순국하셨고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해서 군사들은 전쟁이 다 끝나고 나서야 장군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이다. 노량해전을 끝으로 지긋지긋하던 7년 조일전쟁이 끝나게 된다. 그런 순국은 조선의 입장에서는 큰 별이 사라졌지만 정치권 특히 선조는 그나마 마음의 짐을 벗었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영상을 보고 나서 전시관 곳곳을 둘러보았다. 전시관에는 이순신장군의 영정, 조선 관리들의 관복과 조선 수군들이 사용한 각종 무기들, 그리고 외국의 유명한 수군 제독들이 이순신장군에 대한 평가를 써 놓은 글도 있었다. 또한 거기에는 노량해전에 사용했을 법한 수군 배를 그린 그림과 거북선 모형도 전시되어 있었다. 관람객은 우리들이 전부였다. 우리는 출구로 나오니 바람이 엄청 불어 도저히 해안가로 접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영상관을 지나 다른 건물로 가는 오솔길이 있어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보니 제일 먼저 본 게 리순신장군전적비였다. 그런데 이 비를 세운게 국어표기법이 바뀌기 전이어서인지 이순신장군이 아니라 리순신장군이라 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찾은 게 이락사다. 이락사는 이순신장군이 순국하셨다라는 뜻이라 했다. 이락사 가는 길에 양쪽에 가로수 형태로 되어 있는게 소나무였는데 그 소나무들의 가지가 여러개로 되어 있어 매우 특이했다. 이락사에 들어갔더니 거기에는 대성운해라는 또 다른 건물이 있었고 그 안에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장군의 유허비라는 비가 있었다. 그 비의 제목이 너무 길다. 그런데 그 건물 안에는 수백년 됐음직한 소나무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민족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버렸던 이순신장군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 다음 찾아간 곳이 첨망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