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베유(Simone Adolphine Weil, 1909~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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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력과 은총’ 사이에서 고통을 사유하기
“두 가지 힘이 우주를 지배한다. 빛과 중력” - 시몬 베유
-중력이란 무엇일까? 지구인은 누구나 중력을 받으며 살아간다. 생존 조건에 따르는 배고픔, 졸음 등 결핍에서 오는 욕망과 고통, 서로 싸우고 갈등하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시몬 베유에 의하면 중력과 빛, 두 힘은 물리적 차원에서 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에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 베유는 유럽에서 인간의 황폐화를 목도한다. 중력의 법칙은 사람들로 하여금 살기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역설적으로 삶을 훼손하도록 작용한다.
특히 중력은 언어를 기만의 도구로 만들고 사고를 마비시킨다. 베유는 생각하기를 포기하는 대신, 인간의 생존 조건인 중력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삶과 고통을 철저히 사유하기로 선택한다.
2. 시몬 베유의 생애, -출생과 성장
-1909년 프랑스 파리의 유대계 부르주아 가정 출생
-알사스 출신 의사인 아버지 베르나르 베유, 러시아 이주민 출신 어머니 살로메..
-학문적 소양. 과학적 발견에 관심. 시몬 베유, 라틴어, 그리스어 외에 독어와 영어에도 능통. 평생 현대 물리학과 수학에도 관심, /오빠 앙드레 베유 역시 수론과 대수기하학으로 현대 수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수학자
-집안에 종교적 분위기 전무(全無).
-1925년 앙리4세 고등중학교. 철학자 에밀 샤르티에를 스승으로 만나 영향.
->“자유롭지 않은 의지란 없으며 행동 없는 의지는 존재할 수 없다”며 실천 강조.
-1928년 고등사범 입학. ->철학교수 시험 합격.
3. 자발적으로 ‘뿌리 뽑힘’을 체험하는 삶
시몬 베유는 1931년에 르퓌 국립여자고등학교에 철학교사로 발령, 그리스어와 철학을 가르치게 되지만, 그의 관심은 늘 가난하고 권력이 적은 이들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매주 노동자들을 만나러 르퓌에서 생테티엔까지 여행을 했고, 월급을 받으면 책을 사서 노동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는 자신이 다른 노동자들보다 나은 조건에서 지내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했다. 당시 유럽은 파시즘의 분위기가 만연했고 노동자와 소수자 탄압이 거세져가고 있었다.
결국 베유는 1934년, 25세 되던 해에 스스로 노동자가 되기로 선택한다. 전기 공장에 취업했다가 다시 느로 자동차 공장에서 금속 절단공으로, 박봉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당대 노동자들의 수고와 절망, 공허를 실제로 함께 겪는다.
“몸은 축 늘어지고 머리는 사고를 잃게 된다. 가슴에는 서글픔과 분노와 무력감, 그리고 굴욕감이 고인다. 유일한 희망은 내일도 이렇게나마 일할 수 있게 해주십사 하는 것이다.” <노동일지> 中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자신을 소진하는 인간의 현실을 그는 ‘뿌리 뽑힘’이라 표현했다.
시몬 베유는 노동자의 삶이 노예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건강과 젊음을 잃으면서 온몸으로 깨닫는다. 그러면서도 베유는 육체노동에 찬사를 보냈다. ‘육체노동을 가치로 삼는 문명이 가장 인간적인 문명‘이라 여겼다. ’노동의 위계‘와 그로 인한 착취와 차별의 구조를 비판했다.
베유의 노동운동은 특정한 정치 이데올로기를 따르지 않았다. 계급, 민족, 이데올로기를 넘어 (고통당하는) 인간 그 자체에 닿으려는 그녀의 실천은 1936년 ‘스페인 내전’ 참전으로 이어진다.
노동자 연맹의 국민군에 합류하여 포탄 세례를 받으며 참전하던 중, 취사실에서 큰 화상을 입게 되어 귀환한 베유는 유럽의 전쟁 분위기에 반대하며 <제 2의 트로이 전쟁은 피하자>라는 글을 기고하는 등 ‘반전운동’에 나선다. 베유는 공장 노동, 스폐인 내전 참전 등의 체험을 통해, 이 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뿌리 없는 자들의 문제’라 진단한다. 공허한 상실감, 무료한 권태감 속에 생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베유는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새로 뿌리 내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여겼다. 인간은 오직 영혼에 새로운 뿌리를 내림으로 최악의 곤경 속에서도 살아갈 수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이 부여한 가치를 재평가하는 작업이 필요. 돈을 숭배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근본적 문제로부터 탈출해야 하는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제국주의의 무자비한 폭력과 인간성의 상실에 대항하여 ‘새로운 삶의 거주방식’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4. 중력 속에서 은총에 도달하는 삶
시몬 베유의 글과 삶에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이해와 공감만큼이나, 혹독하고도 명철한 자기 성찰의 인식이 담겨 있다.
체슬라브 밀로즈가 지적하듯, ‘고전적이고 메마르고 집약적인 그의 삶과 글은 우리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는 우리를 죄책감에 빠뜨리고 징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선에 대한 우리의 갈망과 어떤 가치에 대해서도 철저히 무관심한 차가운 우주 사이에는 인과의 필연성에 따른 모순’이 존재하는데, 그 가운데서 베유는 자기 자신의 삶을 재창조하는 ‘인간의 위대함’을 신뢰할 힘을 우리에게 준다.
결국,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평화를 다지기 보다는 또 다른 희생자를 찾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나치가 집권. -시몬 베유가 늘 우려해왔던 중력의 법칙. ‘인간이 생존만을 위해 행위하도록 할 뿐 아니라 타인을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여기게’ 되고, 특히 고통에 시달리는 인간은 타인에게 고통을 전가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고통은 덜어지지 않고 더욱 커진다. 고통은 악순환한다.
베유는 ‘고통을 서로에게 넘기는 사회’라는 속성이, 사회가 안정되고 권력이 유지되는 조건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고통의 악순환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는가?
베유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 존재’를 믿고자 했다. 중력 속의 삶이라는 상황를 폄하하는 대신, 중력을 통해 은총에 대해 생각했다. 은총은 빛을 받아 자라나는 엽록소와 같다. 은총은 누군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엽록소를 만들어 생장하는 삶이다. 정신의 삶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것은 인간을 중력에서 가벼워지도록, 즉 ‘높아지는 상태로 향하게 한다. 은총에 다다르는 활동은 결코 중력에서 벗어난 무엇이 아니다. 매일의 현실에서 기꺼이 중력 속에 머물려고 하면서, 영혼에서 일어나는 초중력적인 상태를 경험하는 일이다.
“심판하지 말 것. 어떤 잘못이든 마찬가지다. 오직 단 하나의 잘못이 있을 뿐이다. 빛을 받아 자라나는 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중력장의 삶을 은총에 깃든 삶으로 변환시키려고 노력한 시몬 베유는, 이후 이 신비를 예수에 대한 굳은 종교적 믿음으로 전환하게 된다. 1947~8년 신비 체험.
베유가 통찰한 영성은 신과의 일치와 그 밝음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 아니라, 어둠과 고통이 깎아낸 파임과 거기에서 드러나는 빛이다. 인간은 처참한 불행의 상황 속에서, 절규에 대답 없는 신의 침묵, 허무에 도달할 뿐이지만, 베유는 이 공포 앞에서 삶을 사랑하기를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베유는 ‘십자가를 통해 희망을 건져내려고 허무 속으로 투신’한 예수에 탄복한다. 영혼의 어두운 밤에도 사랑하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하느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 혹은 우리의 세계를 궁극적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이 사랑으로 절망과 황폐한 세계를 다시 살리고, 정의를 세울 씨앗을 뿌릴 수 있을 것이다.
1939년 6월 독일군이 파리에 입성한 뒤, 베유 가족은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로 피난하고 베유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한다. 상황 악화로 다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가지만 베유는 프랑스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결국 영국으로 돌아온 베유는 프랑스 망명전부에서 일했는데, 결핵진단을 받았음에도 특별대우를 거부하고, 1943년, 서른 네 살의 나이로 영국의 요양소에서 사망한다.
* 덧
-그녀의 책들, <중력과 은총>, <노동일지>... /<신을 기다리며> -> 편지글/
<뿌리내림, -인간에 대한 의무 선언의 서곡>(농부, 노동자, 프랑스 등 뿌리 뽑힌 이들을 위한 구상...)
-단독자로 오직 그리스도, 하느님께만 속했던 시몬 베유.
“신부님께서는 제가 그리스도교인이라는 이름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시죠... 가시적인 그리스도교 밖에 있는 것들을 향한 사랑이 저를 교회 밖에 붙잡아 놓습니다.”
(신비체험을 한 후에도 세례를 주저하며 쓴 편지)
“그리스도의 빛이 삶 전체를 비출 수 있는 그리스도교 문명은 교회가 정신들을 예속화하는 로마식 사고가 제거된 후에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낮아지기. 정신적 중력에서 그것은 올라가기이다. 정신적 중력은 우리를 높은 쪽으로 떨어뜨린다.”
-“꿈에서 벗어나려면 불가능과 접촉해야 한다.”
-“악 보다 ‘선의 대용품’이 더 위험하다”
-체험과 일치의 길
* 개인적 상념
-한 발 늦게 베유인 걸 알고, 피하고 싶었던 발제 @@;;, 유일하게 십대? 이십대 때 탐독했던(?) 인물이고, 이즈음 나는 지난 生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중이기 때문.
그러나. ^^;;
-베유는 주체적으로 비체 선택 /나는 태어나 보니 비체로 취급... 자리매김 되어 있어
(-> 나를 학대하는 세력= 기득권 권력 아닌 육체 노동하는 홀엄마 비체, 나는 그의 시다바리...-> 나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살아남음...=나의 엉터리성? 다시 깨달음 ;;)
-나 역시, 우리 인간 모두에게 중력과 반대되는, 초월 본능? 광합성력(力)? 향심(向心) 있고, 연결 기다리는 신, 은총 있다 믿는다.
- T.S 엘리엇의 서문
-유럽 여인, 타인-인류에의 향심, 치열한 씨름 / 한국의 어머니들, ‘아들’ ‘신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