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3:1~6 어리석은 자 2021. 5. 26
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 그들이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항하여 진 친 그들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으므로 네가 그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였도다 6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표제어는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마할랏에 맞춘 노래’입니다. 마스길은 교훈입니다. 마할렛은 어떤 곡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편 53편은 시편 14편과 거의 같지만 다른 부분은 표제어가 다릅니다. 53편의 5절과 14편의 5~6절이 다릅니다. 그리고 중요한 차이점은 시편 14편은 엘로힘이 세 번 여호와가 네 번 나오는데 53편은 엘로힘만 일곱 번 나옵니다. 엘로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호칭이지만 여호와는 언약의 하나님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시편 14편은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여호와도 모르고 엘로힘도 모른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엘로힘만 말하기에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로마서 3:9~12절입니다. “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1)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바 ㄴ)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언약을 받은 유대인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이방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몰라도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른다는 겁니다. 물론 추상적인 신개념은 있기에 신을 섬긴다고 하지만 그 신들이 다 우상이 됩니다.
로마서 1:18~23절입니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4)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오늘 본문에서 어리석은 자라는 특징이 여기서 다 드러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언약을 받은 백성들이지만 여호와를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이방인들은 만물을 통하여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분명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라는 말은 자기들 나름대로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오히려 자기 확장이라는 탐심의 우상숭배를 하는 겁니다. 오늘 우리도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개념을 가지고 교회당에 와서 수십 년간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여도 하나님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리석은 자입니까? 지혜로운 자입니까? 수요일까지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니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는 자로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심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며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하다고 합니다(고후4:18). 그러면 우리는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까?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지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구하는 삶이 마음이 부패한 것이며 가증한 악을 행하는 것이며 선을 행하지 않는 겁니다. 이런 모습은 언약을 받은 유대인들이나 받지 못한 이방인이나 다 같습니다(롬3:9~12). 그러면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에 대한 히브리서 11장의 내용을 봅니다.
히브리서 11:1~3절입니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어떤 물리학자는 원자의 세계가 보이지 않는 세계라고 하면서 이 말씀을 인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지만 그 하나님께서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심을 말씀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믿습니까?
히브리서 11:6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으라고 합니다. 그 상이란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상입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을 아벨과 에녹과 노아와 아브라함을 통하여 말씀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으로 나오는 히브리서 11장의 사람들은 세상의 지혜로 볼 때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로 보입니다. 나그네와 외국인처럼 살면서 보이지 않는 나라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2~4절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이미 앞에서 본 대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자들도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찾는 자가 한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세상의 보이는 것으로만 살아가는 자들이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다고 하지만 어리석은 자가 되었다는 말은 떡 먹듯이 하나님의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라는 자들의 모습을 봅니다.
미가서 3:1~3절입니다. “1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2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3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이스라엘, 그 지도자들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런 나라를 심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어떤 모습인지 봅니다.
민수기 12장을 보면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한 것을 나무란 아론과 미리암을 하나님께서 책망하십니다. 그래서 미리암이 나병이 걸리는데 이때 아론이 하는 말이 모세에게 내 주여,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죄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벌을 우리에게 돌리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이며 미리암은 모세와 아론의 누이입니다. 이런 자들이지만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한 것을 보고 나무란 것은 아직도 혈통적인 선민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게 어리석은 자라는 말입니다.
사무엘상 26장을 보면 사울이 다윗에게 자신이 범죄 하였다고 합니다. 자기를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다윗은 살려주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자기의 어리석음을 알게 되지만, 그러나 순간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어리석은 자라는 말은 모세와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는데 그들을 거역함이 어리석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어리석음은 세상과 전혀 다릅니다.
욥기 2장을 보면 욥이 그의 아내에게 어리석은 여자의 말과 같다고 합니다. 남편을 아내보다 잘 아는 자가 없습니다. 욥의 아내가 욥을 보니 정말로 경건하게 산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재산 다 잃어버리고 자식이 다 죽었는데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주를 찬송하기를 주신이도 하나님이시며 취하시는 이도 하나님이고 합니다. 이런 욥을 욕하는 아내가 정상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욥은 이런 아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화를 받아도 마땅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욥의 아내라면 욥의 말을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작은 손해만 나도 펄펄 뛰지 않겠습니까?
시편 49편에서도 어리석은 자에 대하여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가 어리석은 이유는 그런 재물로 속전을 마련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세상의 돈이나 권세나 그 무엇이라도 자기의 생명을 구원할 수 없는데 그런 것들을 든든하게 여기고 의지하기 위하여 자기 이름으로 등기하여 두는 자들이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그런데 동산과 부동산이 많아서 자기 이름으로 등기하여 둔 자를 누가 어리석은 자라고 하겠습니까? 그런 자들을 부러워하는 자들이 이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다 멸망하는 짐승처럼 어리석습니다.
구약에서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마음에 불의를 품고 간사하게 행합니다.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 주린 자의 속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에게서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합니다(사32:6). 어리석은 자는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합니다(렘4:22). 어리석은 자는 불의로 치부하지만, 그것들은 자고새가 낳지 않은 알을 품음같이 중년에 날아가 버립니다(렘17:11). 여호와의 말씀을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자가 어리석은 선지자입니다(겔13:3). 애굽을 향하여 도와달라고 부르짖는 에브라임이 어리석은 비둘기 같다고 합니다(호7:11).
신약에서 어리석은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합니다(마7:26). 부자가 농사가 잘 되어 창고를 늘려서 짓고 이제 평안히 먹고살자고 하지만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십니다(눅12:20). 세상의 지혜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는 어리석은 겁니다.
오늘 본문 5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니다. “하나님이 경건하지 못한 자들의 뼈를 흩으셨기에, 그들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도 크게 두려워할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물리치셨으니, 그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경건하지 못한 자들, 어리석은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그 심판은 뼈를 흩어 버리시는 것이기에 완전한 심판을 말씀합니다. 영원하지 않은 헛된 것들을 자기의 든든함으로 삼고 있는 자들이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자신들은 권력이 있기에, 돈이 있기에, 윤리 도덕적인 의로움이 있기에, 종교적인 공적이 있기에, 복음을 알고 있기에 든든하게 여긴다면 이것을 하나님께서 치십니다. 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자신의 든든함이 다 무너져 내리는 수치 속에 구원이 있습니다.
본문 6절입니다.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가 누구입니까? 이미 구약과 신약에서 어리석음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 어리석음이 시온이라는 예루살렘에서 다 드러났습니다. 영원한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않고 온갖 세상의 것으로 자기를 든든하게 여긴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이러한 어리석음이 나타나는 이유는 이 세상의 신에게 포로로 잡혀있는 겁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그 옛 뱀이 사람들의 눈과 귀와 마음을 가려서 어리석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든든한 것으로 여기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하나님께서 돌이켜 주시면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돌이켜 주십니까?
고린도전서 1:18~21절입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바 ㄱ)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어리석은 자를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거리끼고 미련한 십자가입니다.
이어지는 22~25절입니다. “22 유대인은 2)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세상의 지혜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동양의 지혜도 있습니다만 성경에서 두 가지로 말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로 결코 알 수 없는 지혜가 십자가입니다.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저주받아 죽은 죽음인 십자가의 예수님을 거리끼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혜를 찾는 이방인에게 십자가는 미련한 겁니다. 그런데 그런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로 돌이키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의 교회 현실은 어떻습니까? 교회당의 규모와 목사의 능력과 그곳에 모인 자들의 대단함을 자랑하지 않습니까? 이런 모습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입니다.
이어지는 26~31절을 봅니다.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ㄴ)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어리석은 자가 무엇인지 참 지혜가 무언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고린도전서 3:18~19절입니다. “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바 하나님은 ㄱ)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 또 ㄴ)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세상 지혜로 보기에 가장 거리끼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지혜임을 믿고 살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