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 없이 산다는 게 무슨 뜻인가 따져 보려 하니 자연스럽게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하는가의 질문이 생겨난다. ‘무엇을’에 대해서는 흔히들 자신이 좋아하는,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네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라’라는 그럴듯한 구호가 그걸 대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답은 헛구호에 가깝다.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잘 알 수 없으며, 어쩌다 그게 뭔지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런저런 내적·외적 제약 때문에 그걸 온전히 실행하며 살아간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고 싶은 일의 범주를 감각적 쾌락의 차원—먹고 마시고 연애하고 등등—으로 끌어내리면 무분별한 쾌락주의로 흐를 위험성이 따른다. 지인들 중 감각적 쾌락주의를 신념으로 가진 이들이 몇몇 있는데, 그들은 ‘인생 뭐 있어, 하고 싶은 것 실컷 하고 사는 거지’라고 말하며, 짜릿한 쾌감을 만끽하며 살아간다. 나는 삶에 대한 그들의 신념과 삶의 방식을 반박할 능력이 없다. 그렇다고 내 자신이 쾌락주의를 실천할 의향도 체력도 없다. 그래서 나는 사회적 순응과 주체적 개성 사이에서 어중간하게 타협하여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결정하게 되었다.
한편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는 개인의 의지와 태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통제하고 실천할 여지가 ‘무엇을’보다 더 커 보인다. 운명적 조건—주어진 환경과 유전과 우연에 의한 사태—들 자체를 나라는 개인이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것들에 나 자신이 어떤 의지를 갖고 어떤 태도로 대하는가는 어느 정도 조정할 수는 있지 않을까? 결정론자들이 그 의지와 태도마저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초월적 권능에 의해 결정되어진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할 말을 잃고 만다. 어쨌든 나는 그런 사태들에 ‘마지못해’ 수동적으로, 한탄하며 응하는 건 ‘여한 있이’ 사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결정하고 행한 일의 결과로서 초래된 고난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고, 나 자신의 의지에 무관하게 맞닥뜨린 역경도 적극적으로 포용하려는 태도가 더 나은 ‘어떻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방식으로 나의 삶의 에너지를 완전연소시킬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겠지만, 그건 이상적인 바람이고, 실제로는 불완전연소와 그 결과 생겨나는 여한의 숯덩이가 꽤 많이 남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지금 뼈저리게 후회하는 과거사의 한 토막이 있다. 나는 군대생활을 시작하면서 논산 훈련소에서 개인 주특기로 운 좋게 정훈 병과를 부여 받았다. 정훈 병과는 ‘군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 이념 교육 및 군사 선전, 대외 보도 따위에 관한 임무를 수행하는’ 직무 분야이다. 그리고 육군통신학교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고 졸업할 때 또 다시 운 좋게 일등상인, 통신학교장(장군) 상과 금메달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최전방사단으로 배속 받은 다른 동기들과는 달리 비교적 후방에 위치한 군단사령부로 배속 받아서 부러워하는 동기들의 시선을 받으며, ‘따블빽’ 속에 금메달을 소중히 간직하고 군단사령부로 가면서 발걸음이 우쭐했다. 흠, 내가 제일 잘 나가. 그러나 나의 행운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후 나는 졸지에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군단사령부 정훈실에 나를 받아줄 티오가 없어 한 번 미끄러지고, 다시 여단 본부 정훈실에도 자리가 없어 또 미끄러지고, 그리고 야전공병대대에서도 본부중대에 자리가 없어 또다시 미끄러져 말단 작업 중대 작업병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공병대 혹은 ‘골병대’에서 날마다 온종일 삽질과 곡괭이질을 했다. 정훈병, 아나 떡이다. 나는 억울했다. 그 질곡이 내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기간이 지옥 같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낭비했고 여한으로 남겼다. 지금 나는 크게 후회한다. 그때 내가 그 상황을 왜 적극적으로 내 자신의 삶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마치 남의 삶을 마지못해 사는 것처럼 괴로워했던가.
세상에는 타고난 능력과 재능과 에너지를 활활 태워서 공공에 유익한 가치를 추구하고, 해당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루는 대가들이 각각의 분야에 있다. 하지만 그건 나와 같은 범인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내가 그들의 삶을 흉내 내려 한다면 나의 삶이 블랙 코미디가 되고 만다. 나의 삶의 과정에는 눈물 나게 하는 연기煙氣도 많이 나고, 타다 남은 숯덩이도 적지 않다. 그때 더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그때 그렇게 행동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때 다른 길을 택해야 했었는데, 그때 거기에 부동산을 샀어야 했는데, “내가 바보야.” 나의 삶의 과정은 고苦의 씨줄과 쾌快의 날줄이 촘촘히 짜이는 진행이고, 그 결과 나의 삶은 높은 가치를 지닌 명품이라기보다는 방직공장에서 대량생산된 평범한 직물이 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아쉬움의 연기와 후회의 그을음, 여한의 숯덩이들도 기꺼이 나의 삶의 소중한 부분들로 수용하고 싶다.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노랗게 단풍든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고,
나는 두 길을 모두 갈 수 없는 걸
그리고 한쪽 길로만 가게 되는 걸 아쉬워하며, 오랫동안 서서
눈길이 닿는 데까지 다른 쪽 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길이 관목 숲속으로 구부러져 사라지는 곳까지
그리고 다른 쪽 길을 택했습니다, 첫 번째 길도 못지않게 아름다웠지만
아마도 다른 길이 내 마음을 더 끌었던 것 같습니다
그 길이 풀이 무성하고 발길이 더 드물었으니까요
비록 지나가는 발걸음들이
실제로는 그 두 길을 똑같이 닳게 했었겠지만
그리고 그날 아침에 그 두 길은 똑같이
밟히지 않은 낙엽들로 덮여 있었지만.
오, 나는 첫 번째 길을 훗날을 위해 남겨 두었습니다!
하지만 길이 어떤 식으로 이어지는지 알기에
나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 먼 훗날에
나는 한숨지으며 말하겠지요,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고, 나는—
인적이 더 드문 한쪽 길을 택했고,
그리고 그게 이 모든 차이를 만들었다고
첫댓글 기왕의 상황이 주어졌을 때, 쭈뼛거리며 주변을 맴도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이제는 듭니다. ^^
어느 길을 택하더라도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 있을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