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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이익을 우선하는 지도자
삼하15:13〜18 유장춘 목사(법학박사 ‧ 철학박사)
〇 하나님께서는 나라와 교회등 큰 것을 위해서 희생한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므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으신 것입니다.
세상의 이치는 작고 큰 차이는 있지만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바둑을 통해서 세상에 살아가는 이치를 설명한 『위기십결』이라는 책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지도자들과 우리가 작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큰 이익을 선택하는 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〇 본문말씀
- 맏형을 죽이고 도망간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재판하는 사람들과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위선적인 행동으로 마음을 도둑질해서 반역을 준비했습니다.
- 아버지 왕에게 헤브론에 가는 것을 허락받은 압살롬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게 두루 첩자들을 보내 “나팔 소리가 들리면 너희는 곧바로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됐다고 하라”고 하였습니다. 200명을 데리고 헤브론에 가서 군략가인 아히도벨, 군사령관 아마시아 등을 포섭하여 반역세력을 확대하였습니다.
=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하자 다윗은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하고 예루셀렘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〇 다윗왕의 전략 ① 예루살렘성을 중심으로 아들 군대와 전쟁을 하면 예루살렘이 파괴되기 때문에 피난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실제로 압살롬 군대를 무기로 죽인 것보다 숲을 이용하여 더 많이 죽게 했습니다. ② 피난길에 오른 다윗왕에서 왕권과 승리의 보증수표인 법궤를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메고 나왔습니다. 다윗왕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법궤가 있는 곳에 돌아오게 될 것이라 하면서 법궤를 다윗의 장막에 도로 가져다 두도록 하였습니다. 법궤를 모시고 다니는 것보다 법궤있는 곳으로 돌아올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③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함께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는 첩보를 받고 아히도벨의 책략이 실패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히도벨은 압살롬이 자신의 전략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자 낙향하여 죽었고, 다윗군대의 승리로 반란은 진압되었습니다.
〇 도망가는 다윗에게 시므이처럼 저주할 수도 있고, 시바처럼 모함해서 개인적으로 이익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긍정적인 역활로 훗새는 사람은 위장으로 압살롬의 진영에 들어갔고, 잇대는 이방사람이지만 피난가는 다윗왕에게 힘이 되었고, 바르실래도 다윗에게 힘이 되었음에도 늙은 자신이 피해를 주지 아니하기 위해서 낙향하기도 했습니다.
〇 위기의 대한민국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지도자들이 다윗에게 배우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 역시 위기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기도하고, 행동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누리고 있는 복을 감사하시고, 기회가 있을 때 방종하지 마시고 지키시기를 축복합니다. 필리핀이나 베네수엘라처럼 되지 아니하도록 깨어 있으시기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부국에서 빈국이 된 필리핀
- 20세기에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는 없었고, 대한민국이 유일하게 21세기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키지 못하면 빈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 필리핀은 풍부한 광물과 연중 온화한 기후에 비옥한 토지로 농작물 생산도 풍부하고, 1946년 미국에서 독립한 뒤 1950년대 미국의 경제 원조를 바탕으로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성장을 이룩했다.
= 마르코스는 1965년 국민당 공천으로 제10대 대통령에 당선된 뒤 21년간 장기집권했다. 물론 마르코스 역시 집권 초기에는 농공업 정책을 시행하고, 토지 개혁 등을 시도하는 등 개혁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정권 유지를 위해 본인을 비롯 친인척과 수구 엘리트 세력의 재산 수호에 급급하는 등 전형적인 독재자가 된다.
○ 필리핀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은 해외에 나가서 일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가사도우미로 나가 세계 곳곳에서 일한다. 필리핀은 이제 '가정부의 나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필리핀인들이 가사도우미 등 해외로 나가 일을 하는 건 국가 입장에서도 장려된다. 필리핀 노동자가 해외에서 돈을 벌어 모국으로 송금한 돈이 필리핀 경제의 생명줄처럼 기능하는, '송금 경제'가 나라 살림의 주축이라서다. 필리핀은 수출주도형 발전전략 혹은 자본집약적 서비스산업 등 뚜렷한 경제발전산업이 없기 때문에 해외로 나간 자국민 노동자가 가족들에게 보내온 돈으로 내수 증진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이익을 우선하는 지도자
삼하15:13〜18 유장춘 목사(법학박사 ‧ 철학박사)
〇 하나님께서는 나라와 교회등 큰 것을 위해서 희생한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므로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으신 것입니다. 세상의 이치는 작고 큰 차이는 있지만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사례로 바둑을 할 때 10가지 비책 『위기십결』을 소개한 책을 소개하겠습니다.
① 불득탐승(不得貪勝), 바둑에는 승부가 나게 마련이지만, 너무 승부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그르치기 쉬우므로 마음을 비우고 최선의 수를 찾아야 한다. ② 입계의완(入界宜緩), 적진으로 공격해 들어갈 때는 신중히 해야 하듯, 무슨 일이든 결정적 시기가 있고, 결정적인 순간에 너무 서두르지 말고 참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③ 공피고아(攻彼顧我), 상대방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자기의 허점을 잘 살펴야 한다. ④ 기자쟁선(棄子爭先), 부분에 집착하지 말고 대세를 좌우해야 하므로, 바둑알 몇 개를 버리더라도 기선을 제압하고 있어야 한다.
⑤ 사소취대(捨小取大), 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는 뜻이다. 원시안적으로 보고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덜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⑥ 봉위수기(逢危須棄), 위험을 만나면 비상조치로 버릴 줄 알아야 한다. ⑦ 신물경속(愼勿輕速), 다급할 때 우왕좌왕하면 일을 더 망친다. 다급할수록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⑧ 동수상응(動須相應), 모든 바둑알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므로 한 알의 바둑이 전체 판을 결정하는 수가 있다. 모두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 ⑨ 피강자보(彼强自保), 무모하게 달려드는 것보다는 장래의 발전을 위해서 힘을 비축하는 시기가 필요하다. ⑩ 세고취화(勢孤取和), 살아있어야 재기 할 수 있다.
= 공피고아(攻彼顧我)
서한 문제 때, 장석지 형 장중은 많은 동생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정석지가 형에게 “형님께서 저를 살뜰히 챙겨 주고 계시지만 저는 정작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냅니다. 이제는 저도 자립하려 합니다. 조정 관리로 일하고 싶습니다.” 고 하자 공부하도록 지원하여 조정의 말단 소관이 되었다. 십 년이 넘도록 재직했지만 승진을 못하고 인정도 받지 못했서 사직하고 낙향하겠다고 마음을 굳혔을 때 학식이 많은 원앙을 만나서 고민을 이야기 하고, 지혜를 구했다.
원앙은 여기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환경을 바꿔도 다시 문제는 들어날 것이라고 하면서 “한마디로 말해 자네는 좀 더 공부해야 하네. 풍부한 지식을 갖추면 남들에게 없는 견문을 지닐 터이니, 그러면 쉽게 중용될 수 있다네. 자신의 지식을 늘리는 노력 없이 그저 주어진 일만 열심히 했기 때문에 승진하지 못한 걸세. 어떻게 해서든 부족한 점을 채울 수만 있다면 결코 늦었다고 할 수 없다네.” 는 충고하였다.
평범한 사람은 현실에 매달리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상황속에 숨은 의미를 찾아서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곳에서 교훈을 찾는다. 그 후 장석지는 원앙의 가르침대로 학문을 닦는 일에 매진했고, 그 결과 실력이 향상되어서 중요되었다.
위대한 다윗왕이 위기 앞에서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는 모습을 보시고 지도자들이 이런 모습을 닮고, 우리 자신도 희생적으로 사는 것이 더 유익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고 힘들어도 실천하시기를 축복합니다.
〇 본문말씀
= 다윗의 장자 암논입니다. 압살롬은 다윗이 헤브론에 있을 때 그술의 왕 달매의 딸 마아가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압살롬에게는 다말이라는 아름다운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이복형인 암논이 자신의 누이 다말을 강간하자 이에 대한 복수를 2년 동안 준비하여 에브라임 근처 바알하솔에서 자신이 주최한 연회에서 부하들을 시켜 암논을 살해했습니다.
- 탈출하여 2년 동안 외가댁인 그술에서 지내다가 요압의 권유로 다시 궁전에 돌아 왔지만, 요압조차 2년간 압살롬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은 요압의 밭에 불을 질러서 요압을 만나서 아버지를 보고싶다 청하여 4년이 지나서야 다윗에게 인사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회개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 아버지 왕을 만난 압살롬은 50명의 군사들을 앞세워 성문에서 재판을 받으려고 들어가는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보아라 네 상소가 옳고 타당하지만 네 말을 들어줄 만한 사람이 왕에게 없구나” 라고 말하여 좌절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 상소나 재판할 문제를 가지고 내게 오면 내가 정당한 판결을 내려 줄 텐데”라고 말하여 마음을 훔쳤습니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자기에게 절을 하면 압살롬은 언제든 손을 뻗어 붙들고 입을 맞추면서 마음을 훔치고, 전국적으로 자신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을 조직하였습니다. 압살롬이 다윗왕에게 “제가 아람의 그술에서 살 때 예루살렘에 다시 가게해 주시면 제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했으니 헤브론에 가서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이룰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 헤브론에 가는 것을 허락받은 압살롬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게 두루 첩자들을 보내 “나팔 소리가 들리면 너희는 곧바로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됐다고 하라”고 하였습니다. 200명을 데리고 헤브론에 가서 군략가인 아히도벨, 군사령관 아마시아 등을 포섭하며,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등 민심을 장악하고, 반란세력을 조직하였습니다.
=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하자 다윗은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하고 예루셀렘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 너무나 쉽게 예루살렘성을 점령한 압살롬은 전략회의를 주재하였습니다. 아히도벨은 도피한 다윗을 신속하게 기습 공격할 것을 제안하였고, 후새는 이미 승기를 잡았으니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모아 그들을 앞세워서 다윗을 압도하면 왕이 되어 통치하는 것이 쉽다는 취지의 전략을 제시하였습니다. 결국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작전을 물리치고 후새의 계략을 선택하여 전쟁에서 패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〇 다윗왕의 전략
① 예루살렘성을 중심으로 아들 군재와 전쟁을 하면 예루살렘이 파괴되기 때문에 피난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실제로 압살롬 군대를 무기로 죽인 것보다 숲을 이용하여 더 많이 죽게 했습니다. ② 피난길에 오른 다윗왕에서 왕권과 승리의 보증수표인 법궤를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나왔습니다. 다윗왕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법궤가 있는 곳에 돌아오게 될것이라 하면서 법궤를 다윗의 장막에 도로 가져다 두도록 하였습니다. 법궤를 모시고 다는 것보다 법궤있는 곳으로 돌아올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③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함께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는 첩보를 받고 아히도벨의 책략이 실패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고, 실제로 받아들여지지 아니하자 고향에 가서 죽었고, 다윗군대의 승리로 발란은 진압되었습니다.
〇 여러 종류의 대응
하나님은 뜻이 있고, 그 뜻을 거역하는 사람도 있고, 손해를 보더라도 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① 도망가는 다윗 일행에게 사울의 친족 중 한 사람인 시므이가 『삼하 16:7)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8)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고 저주하였습니다. 힘이 있을 때는 잠잠하다가 힘이 없을 때 가장 아프게 저주하였습니다.
② 사울의 손자이며 요나단의 아들은 므비보셋을 섬기는 시바는 다윗왕에게 므비보셋이 “그는 지금 예루셀렘에 남이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할아버비의 왕국을 자신에게 되돌려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고 거짓말을 해서 재산을 모두 차지하였습니다. 결국 거짓말이었던 것이 드러났지만 위기에 거짓으로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③ 후새같은 사람은 위장으로 압살롬의 진영에 들어갔고, 잇대는 이방사람이지만 피난가는 다윗왕에게 힘이 되었고, 바르실래도 다윗에게 힘이 되었음에도 늙은 자신이 피해를 주지 아니하기 위해서 낙향했습니다.
〇 적용
- 조선말기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신무기를 소유한 일본놈들을 앞세워서 우금치에서 동학농민군을 학살했습니다.
- 1949년 봄, 4‧19가 일어났습니다. 집권 자유당의 장기 집권 획책에 대한 시민, 학생, 지식인들의 저항이었습니다. 그해 3월15일 선거에서 이기붕이 노골적인 부정을 저지르며 부통령에 뽑인 것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입니다.
4월 26일 김정렬 국무총리에게 상황을 보고 받은 이승만은 침통한 표정으로 “그래, 오늘은 한 사람도 다치게 해서는 안 되네.” / “내가 그만두면 한 사람도 안 다치겠지?”라고 서너번 되뇌이고 “나는 해방 후 본국에 돌아와서 우리 애국 애족하는 동포들과 더불어 잘 지냈으니, 이제는 세상을 떠나도 여한이 없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구술하고 하야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 뿐만 아니라 자신은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1953년 6월 18일 유엔군이 관리하던 포로수용서 문을 열어서 반공포로들을 석방하여 한미상호방위조역 체결, 장기 경제원조 및 첫 조치로 2억 달러 공여 등을 얻어낸 것이나,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했습니다. 설교자는 이러한 모습에서 다윗왕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안병훈,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생애』, 기파랑)
- 대한민국은 북한의 핵무기 때문에 위기입니다. 추운바람이 옷을 벗지 못하고 따뜻한 햇빛이 옷을 벗낀다는 이론은 충분히 일리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과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습니다. 이동하면서 또는 물속에서 발사할 경우 100% 방어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지도자들이 말도 엉뚱한 주장으로 국력을 허비하고 있는지를 살피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 정치지도자들이 국가를 우선하는 지도자들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언론이 균형있게 보도하는지를 살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부국에서 빈국이 된 필리핀
1. 들어가는 말
20세기에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는 없었고, 대한민국이 유일하게 21세기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분당 탄천에서 심야에도 젊은 여성이 운동하는 모습을 볼 때와 장애우와 기초 생활자분들이 여러 가지 복지 혜택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도 대한민국이 부자인 것을 실감합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세금을 거둬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을 돕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공짜로 인기를 얻으려는 지도자와 공짜에 맛들여지는 국민이 되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지성인은 막연하게 진보가 좋다거나 보수가 좋다고 할 것이 아니라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판단해야 합니다. 판단의 기준을 제공하기 위해서 부자이었다가 지금은 빈국이 된 나라들을 필리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본 글은 머니투데이, [이재은의 그 나라, 필리핀 그리고 빈국 ①∼④ ]를 요약하여 편집한 것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2. 부자 필리핀
○ 필리핀은 또 7000여개의 섬으로 구성된 국토는 강력한 국가권력 체계가 발동하기 힘들게 만든 구조이고, 스페인(1571~1898년)과 미국(1898~1946년)의 식민지, 그리고 그 사이 잠시 일본의 필리핀 점령기(1942~1945년)까지 거치면서 경제뿐 아니라 사회·정치·문화에 식민지의 잔재가 남아 있다.
풍부한 광물과 연중 온화한 기후에 비옥한 토지로 농작물 생산도 풍부하고, 1946년 미국에서 독립한 뒤 1950년대 미국의 경제 원조를 바탕으로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성장을 이룩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1966년 기준 필리핀의 GDP(국내총생산)은 63억7100만 달러로 동남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높았다. 당시 한국의 GDP는 39억2800만 달러에 불과했다.
○ 필리핀에는 '태평양의 아이젠하워'라 불리는 막사이사이가 있었다. 막사이사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게릴라를 이끌고 일본과 싸웠으며 2차 대전 종전 후에는 국방 장관을 거쳐 1953년 제7대 대통령이자 필리핀 공화국 제3대 대통령에 된 이후 공산주의자들의 후크발라합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내란을 수습하면서 전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대통령 재직 중 가족와 측근에게 어떠한 혜택도 부여하지 않았고, 자신을 우상화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파격적으로 대통령 의전 특권을 반납했다.
○ 이후 필리핀의 마르코스는 1965년 국민당 공천으로 제10대 대통령에 당선된 뒤 21년간 장기집권했다. 물론 마르코스 역시 집권 초기에는 농공업 정책을 시행하고, 토지 개혁 등을 시도하는 등 개혁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정권 유지를 위해 본인을 비롯 친인척과 수구 엘리트 세력의 재산 수호에 급급하는 등 전형적인 독재자가 된다.
○ 마르코스 대통령이 물러난 사건을 '피플파워' 혁명이라고 부른다. 당시 한국을 비롯 주변 국가들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이룩하지 못했던 때였기에 코라손 아키노는 아시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기에 그 의미가 더욱 컸다.
○ 이처럼 필리핀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를 선도하는 국가 이미지였고 1970년대까지 마닐라는 해외 다른 유명 도시에 밀리지 않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1980년대엔 민주주의 측면에서 앞서가는 정치문화적 리더의 면모도 보였다. 지금은 어떠한가. 필리핀은 이제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불린다. 필리핀 통계청의 2009년 자료에 의하면, 5인 기준 가구당 월 소득이 134달러 이하인 빈곤층이 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3. 빈국 필리핀
○ 필리핀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은 해외에 나가서 일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가사도우미로 나가 세계 곳곳에서 일한다. 필리핀은 이제 '가정부의 나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3년 필리핀해외위원회(CFO)에 따르면 필리핀 인구의 11% 수준인 약 1020만명의 필리핀 노동자들이 해외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 대부분은 젊은이들이다. 2011년 실시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필리핀 출신 해외 노동자의 24%를 24~29세가, 23%를 30~34세가 차지했다.
홍콩에서는 일주일에 하루는 휴식하도록 하고 있고. 집값이 너무 비싸서 평수가 작기 때문에 공휴일에는 필리핀 식모들이 자리를 피해 주기 위해서 센트럴 모여서 거대한 여가를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홍콩에서는 35만2000명(2016년 기준)의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일하며 대부분은 필리핀·인도네시아인이다. 이들은 '입주' 가사도우미로 일하는데, 홍콩의 집이 작다 보니 제대로 된 방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라 부엌에서 쪼그려 자면서 숙식을 해결한다.
= 쿠웨이트에서 레바논-시리아인 부부가 학대 끝에 필리핀 가사도우미 조애너 데마펠리스를 살해한 뒤 1년 동안 냉동고에 시신을 보관하고 있던 게 발각됐다. 쿠웨이트에는 약 25만명의 필리핀인이 일하고 있고, 이중 75%에 달하는 이들이 가사도우미다.
필리핀인들이 가사도우미 등 해외로 나가 일을 하는 건 국가 입장에서도 장려된다. 필리핀 노동자가 해외에서 돈을 벌어 모국으로 송금한 돈이 필리핀 경제의 생명줄처럼 기능하는, '송금 경제'가 나라 살림의 주축이라서다. 필리핀은 수출주도형 발전전략 혹은 자본집약적 서비스산업 등 뚜렷한 경제발전산업이 없기 때문에 해외로 나간 자국민 노동자가 가족들에게 보내온 돈으로 내수 증진을 하고 있다.
○ 흥미로운 건 앙헬레스를 즐겨 찾던 서양인들 사이에서 최근 볼멘소리가 나온다는 점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호주 등 서구권 남성들이 즐겨찾던 앙헬레스는 이제 주고객이 한국인으로 바뀌었다. 앙헬레스 곳곳에는 이제 'OO바' 등 한국어로 써진 간판이 즐비하다. 영국 가디언은 한국을 비롯 각국 남성이 필리핀에서 '섹스 투어'(성매매 관광)를 한 뒤 낳고 간 필리핀 아이들에 대해 다뤘다. 이 아이들이 자라나 자신의 아버지를 찾고 있다는 내용이다.
4. 부국에서 빈국이 된 요인
○ 장소영은 논문 정권이 교체되었음에도 '필리핀의 토지개혁'(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동남아학과, 2000년)을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과거 식민지배기간에 만들어진 지주와 소작인 관계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때 구축한 경제적 사회적 기반을 중심으로 지주계급이 국가의 정책까지도 방해하거나 왜곡했다
○ 필리핀은 식민지 시절을 거치며 통치계급을 공고화했고, 탈식민지에 이르러서도 이들을 제거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이들은 지속적인 사회 개혁 방해 요인으로 작용했다.
= 필리핀은 식민지의 유산인 플랜테이션 위주의 농업형태를 띠고 있다. 스페인은 18세기 말 식민지 경영비용을 현지에서 조달하기 위해 사탕수수와 코코넛을 비롯해 차·고무·바나나 등 열대작물을 중심으로 플랜테이션을 도입했다. 이 플랜테이션 체제가 스페인 식민지 기간 지주 계급에게 '부의 쏠림'이라는 선물을 줬다. 지주 계급은 스페인 식민지 기간 동안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체제(아시엔다· Hacidenda)를 강화해 부를 축적했다.
= 마르코스 전 대통령(재임 1966~1986년) 정권의 20여년 독재정치 기간에도 지주계급을 통제하지 못했다. 오히려 마르코스 정권에 충성을 다한 지주 출신 엘리트와 크로니들은 온갖 특혜를 보장받았다.
= 1987년 피플파워 혁명을 통해 21년간 필리핀을 철권통치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재임 1966~1986년)을 몰아낸 뒤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재임 1986~1992년)을 대통령에 올려놓고도, 필리핀 국민은 1987년 5월 선거를 통한 의회 구성에서 대부분의 의원을 지주계급으로 채워 토지개혁 등 일련의 개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런 아이러니한 국민의 선택 역시 후견주의로 풀이된다. 물론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나 아키노 전 대통령 역시 본인과 가족이 지주 계급인 만큼 애초에 개혁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말이다.
필리핀이 독립하면서 외세의 힘을 막기위해 도입한 60·40법도 성장을 발목잡았다. 대부분의 필리핀 사업에서는 외국인 지분이 40%를 넘을 수 없다. 이 같이 외국인 투자에도 제한을 걸면서, 필리핀의 발전을 위한 투자에도 늘 제동이 걸렸다.
5. 나가는 말
필자도 필리핀이 부국에서 빈국이 된 요인을 지금까지는 정책의 실패로만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정책 실패 요인이 토지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기득권층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1950년 6월 농지개혁을 실시, 지주를 거세하고 자작농 체제를 성립한 한국과 극단적 대비를 이루었습니다. 성공적인 토지개혁을 통해 농업의 생산력과 농업잉여를 증가시켜 그 잉여를 제조업이나 기타 공업 등 기본설비시설에 투자함으로써 저발전에서 벗어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필리핀,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등과 같이 부국에서 빈국이 되면 여가생활을 고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쓰레기 더미 속에서 먹거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의식을 가지고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https://youtu.be/37Bki7Huq9I?re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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