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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4
류인혜
* 왕들의 사냥터 퐁텐블로
2003년 10월 17일(금) 아침 식사는 6시 30분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약속된 시간이 되도록 기다렸다가 7시에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벌써 식사를 끝내고 나간 사람들이 많다. 우리보다 늦은 사람들은 별로 없는 듯했다. 알고 보니 모두 잠이 일찍 깨어서 내려왔다 한다.
바나나 한 개와 골라서 갖고 왔다는 게 어쩌면 지독히도 맛이 없는 요플레 하나… 입에 넣은 후 눈을 감고 그냥 삼켜버렸다. 달걀 반숙 두 개, 시니얼을 따뜻한 우유에 말아서 먹은 후 커피를 마셨다. 치즈와 빵, 얇게 썰어놓은 햄도 있었지만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출발 예정인 9시가 가까워지자 모두 로비로 내려왔다. 옷차림들이 간편하다. 파리에서 17년을 살았다는 가이드는 완전히 파리 사람 분위기다.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메었다. 감기에 들어 고생한다. 이정자 씨가 준비해 간 감기약을 나누어 주었다.
왕족의 사냥터였다는 퐁텐블로성은 파리에서 한 시간쯤 걸리는 거리다. 가는 길 양편에는 넓은 들이다. 프랑스는 국토의 80% 이상이 낮은 구릉 지대와 평야로 이루어졌다. 파리 근교에서 지평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우리가 달리고 있다. 호주에서 보던 평원과는 다른 느낌으로 농업 국가라는 이미지가 어울린다.
퐁텐블로는 9세기경 ‘생 루이Saint Louis’ 왕이 세운 종교적인 수도원이 있던 곳인데 사냥터 광대한 숲 가운데 샘이 있는 것을 보고 프랑스 왕들이 3헥타르의 넓은 이곳에 저택을 지었다. 그 시기를 1137년 이전으로 추측을 한다.
이곳에는 4개로 구성된 안뜰이 조성되어 있다. 정원은 그 성의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기에 각 시대의 왕들이 정원 꾸미기에 전력을 다했다.
‘백마의 뜰(꾸흐 데 슈발 블랑 Coup Du coeval blanc)’ 이라는 정원의 이름은 ‘앙리Henri 2세’의 부인 ‘카트린 드 메디치Catherine de Medicis’ 의 명령으로 로마의 고대조각품을 모방하여 세웠던 백마 석고 조각에서 유래한다. 1626년에 누군가 가져갔다.
건물 중앙 입구에 말굽 모양의 나선형 계단은 ‘뒤 세흐소Jean Androuet Du Cerceau’에 의해 1632년부터 1634년까지 만들었다. 현재 궁전의 주요 출입문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마을은 넓지 않다. 버스에서 내리자 거대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궁전이라는 이국적인 풍경에 우선 주변의 몇 곳을 사진 찍었다. 예상외의 철문(1809~1810년에 만든 나폴레옹양식)을 통하여 궁정의 안에 훤하게 들여다보인다. ㄷ 자로 지어진 건물은 여러 세기에 걸쳐서 증축되었다.
1528년에 ‘프랑스와FrancoisⅠ세’에 의해 궁전의 부속 건물로 바뀌어 건축을 시작하여 루이 16세에 이르기까지 역대 왕들에 의해 증·개축이 되어온 궁전은 중세에서 18세기 말까지의 다양한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즉 탑은 12세기, 성채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양식’ ‘로마 양식’, 18세기의 ‘신고딕 양식’이 혼재하여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곳이다.
카페 왕조(987-1328)에서 나폴레옹 3세(1870)까지 예술작품에 관심이 많던 왕들의 수집품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하고 비싼 물건이 많은 박물관이라 한다. 그래선지 군데군데 경비원들이 있다. 건물 왼편입구로 들어가서 입장권을 사서 이 층으로 올라갔다. 창으로 보이는 건물 뒤편에는 넓은 호수가 있다. 아름다운 정자도 세워져 있다.
천천히 걸어가며 만나는 방마다 시대에 따라서 모양이 다른 의자와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디자인을 배우는 사람들이라면 한곳에서 여러 시대의 천과 무늬와 모양을 볼 수 있기에 좋은 공부의 현장이 될 것이다. 문양들은 고전적이고 우아하다. 어느 벽에는 그림을 그린 접시를 세로로 붙여 놓았다.
그런데 모양은 근사한 침대의 크기가 작다. 당시의 사람들은 키가 작았나 보다, 라고 이해를 하지만 숙면에는 불편할 듯 여겨진다. 어느 방에는 모양이 다른 의자들이 둘러 놓였다. 한 가족이 모여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에 가까운 시대일수록 색상이 단조로워지고 있었다. 왕족의 방, 도서관, 성당 등이 있다. 도서관에는 양편 벽에 책장이 놓여있고 중앙에 긴 탁자가 있다. 긴 복도식의 도서관은 엄숙하고 압도적이다. 그곳에서 학문을 연구했던 왕실의 사람들은 귀족이라는 신분 외의 또 다른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곳으로 여겨질 만큼이다. 입구에 큰 지구의가 놓여있다.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곳은 비밀스럽고 고풍스럽다. 좁은 복도가 인상적이고 오래된 석물과 벽에 장식된 접시 모양의 그림들이 시선을 끈다.
루이 13세의 보좌가 있는 방은 왕의 거처답게 우아했다. 이곳은 특히 프랑스 혁명으로 스스로가 황제가 된 ‘나폴레옹Ⅰ세’가 즐겨 오던 곳이다. 황제의 방에는 제정시대를 상징하는 독수리 문장이 벽에 붙어있고 곳곳에 그의 자취가 남아있다.
나폴레옹 1세는 유배되기 전에 여기에 머물러 있어 있었다. 1814년 4월 20일 유배를 떠나면서 측근들에게 나선형 계단에서 손을 흔들어 작별하였기에 ‘작별의 뜰(꾸흐 데 자듀Cour Des Adieus)’이라고도 한다. 화분에 귤나무를 심었다고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안내자를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성당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한국에서 온 다른 일행들이 의자 위에 한 사람씩 벌렁 누워서 우리가 들어가니 민망해한다. 빡빡한 일정에 피곤한 기색이 많다. 우리도 덩달아서 등받이가 없는 긴 의자에 앉거나 누워서 잠시 쉬었다.
우리는 뜰에 나와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는데, 어느 남녀가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말발굽 모양으로 우아하게 만들어진 계단을 한 바퀴 돌아서 내려온다. 역사적인 곳에 자신들의 발자국을 남기는 모습이 보기 좋다.
기념품 가게가 있어 모두 쇼핑을 했다. 왕가의 문장이 그려진 냅킨과 자석 그림 두 개, 엽서를 세 장 샀다.
* 화가의 마을 바르비종
아름다운 왕궁을 구경한 후 왕족이 되어버린 듯 우아해진 기분으로 퐁텐블로 정원을 유유히 걸어 나왔다.
버스에 올라 10분 정도 달리자 ‘화가의 마을’이라는 이름답게 예쁘고, 아담한 마을이 나타났다. 집 하나하나가 모두 그림 속에서 그대로 옮겨진 모양으로 독특한 예술적인 감각으로 단장이 되어있다. 오래된 나무가 집들과 잘 어울려 있다. 요즘에는 돈 많은 부자의 별장이 있는 곳이라 하였다.
눈에 보이는 모든 광경을 사진으로 담아두고 싶어서 디카로도 찍고 자동으로도 찍으며 카메라를 계속 들고 설쳤더니 일행들이 철없는 아이를 보듯 웃는다. 그 사진들이 나중에 믿음직한 자료가 되었다.
화가들의 아지트였던 ‘간느의 여인숙Aubergedu pere Ganne’은 ‘바르비종 화파’의 미술관으로, 루소의 작업실은 전시장으로 사용된다고 안내서에 나와 있다. 문맹자가 되어 문패의 글씨를 해독하지 못하니 무조건 예쁘다고 감탄을 하며 볼 뿐이다.
해가 중천에 있는 데도 시간에 쫓긴 가이드가 겁을 주는 것인지 밀레의 생가는 닫을 시간이 가깝다고 해서 서둘러 입장했다. 오두막처럼 작은 집의 작은 방에 규모가 작은 그림들이 걸려 있기도 하고 벽에 기대여 놓았다. 방 입구에 서서 독사진을 찍었다. 내가 이곳에 다녀갔다는 것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것이지만 개인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사실이다.
관광객들이 연신 드나드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다리에 올라가서 무슨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밀레의 ‘만종’이 오리지널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한다. 아닌 줄 알면서도 괜히 그곳에 왔다는 벅찬 감동으로 밀레에 관하여 관심을 보이는 거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복닥거리다가 나와서 담장이 덩굴이 예쁘게 올라간 입구에서 또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고 가이드는 연신 재촉이다. 모두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쉬다가 갔으면 좋겠다고 할 만큼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한나절 일정이 아니고 하루 일정이라면 퐁텐블로의 넓은 정원을 둘러보고, 화가의 마을에서 느긋이 차도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파리로 돌아가는 길은 막히지 않아서 정해진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점심은 프랑스 정식이란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인지 종업원들이 한국말을 하며 관심을 보인다.
포도주와 달팽이 몇 마리를 먼저 주고 스파게티와 퍼석한 돼지고기를 곁들여 준다. 겨자 소스를 얹어서 섞어 먹으라고 했다. 한입 먹어보고 서로 말을 아끼며 눈치를 보고 있는데, 주영준 선생이 가방에서 슬그머니 고추장 주브를 꺼냈다. 모두 “아이고 반가워라” 하며 고기와 면을 섞어서 고추장에 비벼 먹었다. 그제야 제대로 식사를 하는 듯 만족한 표정으로 바뀐다.
후식이 빨리 나오지 않아서 일부 사람들은 먼저 일어났다. 한참 후에 케이크가 나왔다. 느긋이 음식을 먹으며 맛을 즐기는 그곳 문화에 적응하기에는 정해진 일정이 많고, 마음은 바쁘다. 파리로 오는 버스 안에서 달팽이 요리에 대해서는 가이드가 맛있다고 칭찬을 많이 해서 기대가 컸기에, 음식점을 나오면서 마주 보며 싱겁게들 웃었다.
첫댓글 몽골에서는 4박 5일을 말 소, 양고기, 매끼 질리도록 먹었답니다. 김치가 그립고 채소반찬이 그립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