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거나 말거나 / 조미숙
큰애를 낳고 병원에 있는 동안 남편이 아이 이름을 받아왔다. 평소 가게에 자주 다니던 분이 사주를 볼 줄 안다고 했다. 당시 유행하던 ‘수빈’이라는 이름이었다. 일단 촌스럽지 않고 좋은 운명을 바라고 지은 거라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생년월일이 잘못 들어갔다. 다시 알려줬더니 이번에는 ‘정숙’이를 가져왔다. 요즘 시대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딱 잘라버렸다. 집에서 한자 사전을 펼쳐 놓고 ‘정연(正姸)’을 골랐다. 바르고 곱게 자라라고 지은 것이다. 그 뒤로 둘째와 셋째는 둘이 머리 맞대고 큰 뜻을 품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바람을 넣어 지었다. 기본은 바르게 살라는 뜻으로 ‘정’ 자를 돌림자로 하고 둘째는 ‘물 깊고 넓을 윤(奫)’, 셋째는 ‘빛날 혁(赫)’ 자를 넣었다.
둘째가 어릴 적에 야뇨증이 있었다. 용하다는 한의원에서 약이나 한 첩 지어 먹이려고 진료를 받으러 갔더니 대뜸 “애가 아주 똑똑하니 오줌 싼다고 너무 뭐라 하지 마씨요.”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동생은 더 똑똑하니 하나 더 낳으라고 한다. “이미 있는디요.” 했더니 그러면 됐다고 한다. ‘뭐 이런 단골네 같은 소리를 하고 있나? 의사 맞아?’ 하면서도 기분은 좋았다. 예언(?)대로 둘은 그런대로 공부를 잘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 동생이 타로와 사주를 공부했다. 그래서 가끔 궁금한 일이 생기면 보기도 한다. 몇 년 전에 아는 집에서 연말 모임을 했다. 파자마 파티였다. 각자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와서 푸짐하게 저녁을 먹고 나서 이야기꽃을 피우다 타로를 보기 시작했다. 궁금한 점은 구체적인 문장으로 말해야 하고, 카드를 고를 땐 온 정신을 집중해서 그것만 생각해야 한다. 결혼 적령기의 아이들을 둔 사람부터 아이들 결혼 운명을 점치거나 각자 고민거리를 드러내며 점괘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마치 내 일인 양 탄성과 탄식이 오갔다. 결국에는 남편들이 나를 사랑하는(또는 행복한)지까지 이어졌다. 재미 삼아 본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맞은 확률이 꽤 높았다. 카드 뽑을 때 온 마음을 집중하지 않았나? 내 점괘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난 팔랑귀다. 다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늘 경계하고 비판해야 하는데 거르지 못하고 받아들인다. 결혼하고 큰애만 있을 때 왜 그랬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타향인 이곳에서 점 보러 간 적이 있다. 남편이 다른 방에 신발을 벗는다나. 아무튼 결혼 전에 아는 동생이 관상에 관심이 많았는데 사진을 보고선 바람피울 상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 찜찜했다. 그 뒤로 철학관에 가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내 사주에 아들이 없으니, 남편이 다른 곳에서라도 낳아 온다고 했다. 아들 욕심도 없었고 남편이 바람피울 시간도 없이 새벽 별 보고 출근해 오밤중에 퇴근하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뻔한 생활이 그런 여유를 만들 수도 없을 거란 믿음도 있었다. 난 별거 아니라고 흘러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무의식 속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결론은 난 아들을 낳았고, 남편도 내가 아는(?) 한 옆길로 새지 않았다.
살기가 고되고 팍팍해서 가끔 운명을 점쳐 보고 싶은 욕구가 인다. 그때마다 사실 무서운 소리를 들을까 봐 용기를 못 낸다. 내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점 본 내력이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각종 금기 사항이 생활 전반에 따라다닌 덕에 동티나지 않게 조심했고, 조상님네 뿐만 아니라 ‘조왕신’ ‘성주신’을 위해 차례상을 차리는 엄마를 보고 자라 미신이라고 치부하는 일들을 아주 무시하지는 못한다. 물론 누구처럼 손에 ‘왕’자를 새기거나 굿을 하거나 기도하러 가지는 않는다. 한때 유행했던 ‘우주의 기운이 모여’처럼 간절하게 기원하기는 했다. 아이들 대학 입시와 취업을 앞두고 간절하게 천지신명에게 마음으로 기도했다. 정말 좋은 기운이 모여 그들의 앞날을 밝혀 주라고.
종교가 없는 나는 마음이 약해 뭔가에 의지하려는 속성이 강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런 말들을 들을 때면 혹했다가도 잊어버리기 일쑤다. 세상에 신경 쓸 일도 많은데 말이다. 재미로 보는 관상, 손금, 사주팔자 등에 내겐 복이 없다고 한다. 거짓으로라도 위로가 될 말을 해주면 좋을 텐데 아쉽다. 대신에 복을 나누어 주는 일을 하며 살면 어떨까? 대가를 바란 건 아니지만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정성 들인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면 복 받을 거란 덕담을 듣는다.
이름 따라간다고 했던가? 아이들은 잘 자랐다. 큰애는 너무 소소한 운명을 바라고 이름을 지었나 싶게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제 소신껏 삶을 즐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아쉽게도 수재나 영재로 이름을 날리지는 않았지만 둘째와 셋째는 사회 초년생으로서 멋지게 영예로운 첫발을 내딛었다.
세상일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미신, 믿거나 말거나 생각하기 나름이다.
첫댓글 재미로 봤다지만 괜히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나봐요.
그니까요. 참 묘해요.
첫 손자 이름을 밤새워 지었더니 지네 부모가 작명가에게 거금을 주고 받아오더라고요.
내가 포기했네요. 자제분들이 잘 돼서 마음이 놓이시겠어요. 부업으로 작명가로 나서 보시죠. 하하.
하하! 직업을 바꿔야 할까요?
자녀분 둘 다 대기업에 취업하여 탄탄대로를 걷게되어 얼마나 기쁘실까요?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전 둘째가 선생님이 되길 바랐는데요. 선생님도 따님도 부러워요.
참, 멋지네요 선생님. 생각하시는 데로 이루어지니 좋으시겠습니다. 자녀분들 모두 축하합니다. 저도 요즘 간절히 마음속 기도 하고 있거든요.
팔랑귀는 저도 만만치 않습니다. 하하하.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일단 선생님의 아이들이 잘 성장한 이유는 엄마 닮은 유전자가 훌륭했고 두분이서 함께 지은 이름이 근사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정윤, 정혁 뛰어나지 않을 수 없는 이름입니다. 매사에 단단하실 선생님이 느껴집니다.
글도 잘 쓰시는 선생님, 이름 짓는 데도 남다른 재능이 있으시군요. 부럽습니다. 하하.
정말 이름만 들어도 믿음직하고 단단한 느낌이 듭니다. 작명가로 제2의 인생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