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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5일 주일예배 설교내용 – 문제 앞에 믿음으로 서다. / 苦難の前で信仰によって立つ。
본문; 히브리서 11:1-7 (찬 357, 주 믿는 사람 일어나)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2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되었습니다. 3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된 것이 아닙니다.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런 제물을 드림으로써 그는 의인이라는 증언을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는 죽었지만,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직도 말하고 있습니다.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 우리는 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옮겨가기 전에 그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렸다는 증언을 받은 것입니다.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7 믿음으로 노아는, 하나님께서 아직 보이지 않는 일들에 대하여 경고하셨을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방주를 마련하여 자기 가족을 구원하였습니다. 이 믿음을 통하여 그는 세상을 단죄하고, 믿음을 따라 얻는 의를 물려받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1. 信仰とは、望んでいる事柄を確信し、見えない事実を確認することです。2. 昔の人たちは、この信仰のゆえに神に認められました。3. 信仰によって、わたしたちは、この世界が神の言葉によって創造され、従って見えるものは、目に見えているものからできたのではないことが分かるのです。4. 信仰によって、アベルはカインより優れたいけにえを神に献げ、その信仰によって、正しい者であると証明されました。神が彼の献げ物を認められたからです。アベルは死にましたが、信仰によってまだ語っています。5. 信仰によって、エノクは死を経験しないように、天に移されました。神が彼を移されたので、見えなくなったのです。移される前に、神に喜ばれていたことが証明されていたからです。6. 信仰がなければ、神に喜ばれることはできません。神に近づく者は、神が存在しておられること、また、神は御自分を求める者たちに報いてくださる方であることを、信じ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です。7. 信仰によって、ノアはまだ見ていない事柄について神のお告げを受けたとき、恐れかしこみながら、自分の家族を救うために箱舟を造り、その信仰によって世界を罪に定め、また信仰に基づく義を受け継ぐ者となりました。
지난 주일에는 추수감사주일을 지키며 다시금 자원하여 기쁨으로 주님께 감사를 고백하고 표현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다시 예수 동행시리즈 메시지를 함께 나누겠는데요. 오늘부터는 믿음에 관한 내용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한 층 더 성장하고 그 지평이 확장되는 귀하고 복된 경험을 실감나게 체감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가장 내면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예수를 믿고 어떤 유익을 누리고 계신가요? 예수님을 믿고 믿지 않고의 차이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죠?
이 질문에 대해서 각자의 삶에 자리에 따라서 이런저런 답을 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예수님께 나아오면 쉼을 얻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지 않고 그저 자신이 인생에 주인이 되려고 애쓰고 몸부림치며 노력하며 생존만을 위해 사는 것이 곧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을 믿는 유익함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어 참된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평안을 누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마음에 참된 평안과 깊은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쉬운 표현은 안심하며 사는 것인데요. 주변의 환경과 여건, 형편이 곤란해지더라도 그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지요.
엄마의 품에 안긴 아이가 아무런 두려움이나 근심과 걱정 없이 잠들 수 있는 상태가 바로 평안이고, 안심을 느끼는 상태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 이런 평안의 마음으로 살아지게 되는 것을 저는 믿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서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런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분들을 만납니다. 삶의 자리에서 안심하지 못하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채 한숨을 달고 사는 교인들이 있는 것입니다.
결국 세상의 가치와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진단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입에서 한숨이 떠나지 않는 것이지요. 물론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 심지어 부조리한 삶의 현장을 보면서도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세상을 달관한 모습으로 산신령처럼 사는 것을 평안하다고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평안한 상태나 안심하고 있는 것을 단지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거나 진단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경우에 따라서 천성적으로 외부의 환경이 행동이나 표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이들도 세상에는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하나 예를 다 들어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지만, 여러분들 주변에도 아마 천성적으로 걱정과 근심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는 이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천성적으로 성격이 좋은 것 같은 이들도 근본적으로는 삶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가 분노가 내면 깊이 잠재적으로 쌓여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떠한 나쁜 상황이나 좋지 않은 형편이 실은 우리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산처럼 우뚝 솟아 있는 문제와 어려운 형편, 그리고 고난을 어떻게 맞이하고 대응할 것인가에 따라서 우리의 믿음은 생생하게 자라서 열매를 맺기도 하고 혹은 아무런 쓸모가 없이 잘리워 버려지는 가지와 같이 메말라 버리기도 하는 것이지요.
인생에서 생겨나는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믿음으로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생명력이 있는 가지처럼 열매를 맺는 “믿음으로 사는 자”와 그저 메마른 가지처럼 딱딱히 굳어져가는 “교회만 다니는 자”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같은 문제와 곤경 앞에서 전혀 다르게 반응한 두 사람의 예시가 있습니다. 바로 골리앗이라는 거대하고 무서운 적군 장수 앞에 선 사울과 다윗입니다.
사울은 현실적인 고난의 상징인 골리앗 앞에 선 다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삼상 17:33)
그러나 동일한 골리앗을 향해 믿음으로 나아가는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삼상 17:46)
사울은 현실의 어려움만을 명확하게 판단할 뿐, 그 이상 앞으로 전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에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용기를 내고 믿음으로 한 발 전진했던 것입니다.
말씀이 증언하다시피 골리앗이라고 하는 거대한 문제를 만났을 때 사울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문제와 어려움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골리앗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이렇게 주님이 주신 용기를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그저 어떻게든 하나님이 도우시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없는 용기를 있는 것처럼 상상으로 꾸며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자연스레 용기와 담대함, 그리고 안심하는 마음이 차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먼저 하나님을 믿음으로 순종하겠다는 결심이 필요하고, 용기가 생기고 담대함과 안심이 차오를 때까지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태도가 필요하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자기의 신념에 가득 차서 만용을 부리거나, 없는 용기를 억지로 짜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신념이나 혹은 경험, 이성적인 판단력과 천부적인 재능이나 실력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관하시는 가운데 있음을 인정하고 마음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믿음인 것이지요.
간단히 말하자면, 세상에서 우리가 활용하고 사용하는 그 어떤 것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믿고 순종하며 실천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을 잘 통제해야 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선포하시는 성경의 말씀으로 눈과 마음을 채워야 우리의 믿음은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자신의 육신에 느껴지는 것만을 생각하고 눈과 마음에 담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결국 말라 죽고 마는 것이지요.
우리가 세상의 가치관에게 지지 않고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은 믿음으로 사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또한 오늘의 본문은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실력이 아닙니다. 노력도 아니고, 재물도 아니고, 성공이나 명예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고 믿는 것과 하나님께서 상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제가 어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시편을 계속 듣고 있었는데요.. 주님께서 이 말씀으로 저를 위로하셨습니다.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시 20:1,7)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요.. 열이 나서 아프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누워만 있으니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 때 주님의 말씀이 저를 위로해 주신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서 우리에게 성공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재물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때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우리의 실력이나 명예, 그리고 노력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토대로 활용할 때 진정한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런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기에 이렇게 여기서 이 예배를 집례하며 이 시간 이 장소를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형편이 얼마나 보잘 것이 없습니까? 우리의 여건이 얼마나 부족하며 불편합니까? 우리의 실력과 재력은 또 얼마나 하찮은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감히 이 자리, 이 시간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단지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 이 자리 이 시간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매력적인 누군가와의 관계를 보장하기 때문도 아니며, 우리에게 어떤 물질적인 보상을 약속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어떤 대단한 상을 바라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이 지금 살아계심을 믿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상을 주시는 분임을 믿기 때문에 이 자리, 이 시간을 지킬 수 있다고 저는 정말로 믿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꼭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무엇인가를 믿고 삽니다. 의지하고 삽니다. 소망하고 삽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이 믿는 것은 이 땅에서 살다가 사라지면 모두 의미가 없어지는 것들 뿐입니다. 육신으로 살아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살아 있을 때는 물론이고, 내 육신이 죽어서도 영원토록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을 약속하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한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롬 8:24-25)
우리가 여기서 보이지 않는 소망을 바라며 참음으로 기다릴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친히 상급을 주시는 분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어떤 대단한 자랑거리를 해 낼 수 있어야 믿음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그 어떤 믿음도 가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겨자씨처럼 작은 믿음이 있으면 산도 옮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 17:20)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믿음이 우리의 실력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그 어떤 작은 믿음이라도 하나님께 붙들리면 거대한 산도 움직이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하시는 말씀이지요.
그러니 혹시 믿음이 연약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기도하고 구하십시오. 주님 내게 믿음을 더하소서. 내 믿음을 더 강하게 자라게 하소서....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주님께 담대히 나아가 그 작은 믿음으로 어떻게 순종하며 나아갈 지를 구하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믿음으로 우리의 성과를 성취를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의 현실로 만들어 가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믿음의 열매를 찾기 어려운 시대인 것을 맞습니다. 여러가지 고난의 형편과 상황들이 우리를 둘러 싸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일 수록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선포하며 나아갈 때 주님께서 주목하시는 부흥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참음으로 기다린 자에게 상급을 주실 주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기도하며 기다리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눅 18:8b)
저와 여러분은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여 영생하는 상급의 주인공으로 아름답고, 행복하게, 풍성한 열매를 마음껏 누리며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듭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인생은 모두 수고와 고난, 그리고 산처럼 솟은 문제를 거치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 문제를 디딤돌로 삼아 더 풍요로운 일상을 삽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상급을 믿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그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다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집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그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며 상급을 주시는 분이라고 믿는 믿음으로 살 때 비로소 든든하고 넘치는 용기를 느끼는 평강과 평안으로 안심하며 살 수 있음을 약속하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수많은 능력자들과 실력자들, 그리고 재력가들과 명망가들이 있더라도, 오직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으시지만, 분명히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진리의 말씀을 믿음으로 영생의 상급이 풍성하게 넘치도록 채워지는 삶의 간증과 체험으로 놀랍도록 풍요로운 인생을 살게 될 것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금도 나와 동행하시며 사랑스럽고 든든한 눈으로 용기를 주시며 평강으로 채우시는 주님의 사랑을 넘치도록 누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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