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에 벤 듯이 아픕니다. 한 달 전, 친정 집안엔 슬픔의 바람이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32세 자식뻘 되는 제 사촌동생이 사고로 운명한 겁니다. 화목한 가족, 우애 깊은 형제, 착한 젊은이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떠난 영혼, 귀하게 공들여서 하느님께 보낼 일만 남은 겁니다. 고통의 목소리, 골고타 언덕이 '지금 여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고인의 어머니는 십자가 아래에 선 통고의 성모였습니다. 저는 천주교식 장례를 권했습니다. 하지만 삼촌은 조용히 빨리 치르기를 바랐습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중재기도를 청했습니다. 기도의 힘이었을까요. 삼촌이 어렵게 마음을 바꿔주었습니다.
(신명 28,8)‘주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당신의 그 풍요로운 곳집 하늘을 여시어, 너희 땅에 때맞추어 비를 주시고 너희 손이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실 것이다.’
곳집 하늘이 열려 때맞추어 내리는 비, 즉 하늘의 복이 쏟아진 겁니다. 고인은 작은삼촌의 큰아들인데 온 가족이 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고모, 다른 삼촌까지 약속이나 한 듯이 모조리, 죄다, 깡그리 냉담을 했던 겁니다. 사촌 동생네 교적이 교구에 귀속되어 한참을 찾았습니다. 성당 사무장님이 연령회장님을 연결해주었습니다. 통사정을 했습니다.
“저희 집안에 순교자가 두 분이나 계셔서 시복을 위한 기도를 바치는 중인데, 쉬는 교우가 많으니 이 기회에 구원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마침내 연령회에서 방문해주셨고, 유가족과 함께 첫 연도를 바쳤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통고의 성모 마리아, 딱 그 모습이었습니다. 다 키워놓은 아들의 죽음 앞에서 통곡하던 어머니, 연도소리가 시간마다 울려 퍼지자 피멍든 가슴이 녹아내린 듯합니다. 입관할 때엔 관에 덮은 십자가 포를 보고 편안해하며, “우리 아들 좋은데 간 거 맞죠?” 라고 묻자, 연령회 어르신, "사순 땐 하늘 문이 열린다니 당연히 천당 갔을 거요." 라며 믿음직한 답변을 하십니다. 우리 손이 하는 일들이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순탄하게 흘러갔습니다. 그뿐인가요. 나이 드신 연령회원들이 충청남도 순성에 있는 고인의 선산 꼭대기까지 걸어올라 가서 하관예절 연도까지 해주시는걸 보고, 다들 경악에 가까운 감탄을 합니다. 이에 쉬는 교우 8명이 고해성사를 하고 하느님께 돌아섰습니다. 놀라운 선교입니다.
안타깝게 죽어간 32세 청년의 희생이, 주님의 자비가 흘러들어오는 통로가 되어 여럿을 구원했으니, 죽음을 어찌 죽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우리 손이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어, 청년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축복으로 되돌려 주신 겁니다. 곧, 부고가 올 겁니다. 빈소는 골고타의 초라한 언덕, 상주는 성모 마리아와 요한과 여인들, 망자는 33세의 착한 청년, 예수입니다. 여럿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는 복된 죽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상복을 입고 함께 울어주며, 상주이신 성모님을 위로해야겠습니다. 마침내 부활하겠지요. 예수님과 함께 제 사촌동생 요셉이 말입니다. 짙푸른 성지(聖枝) 가지가 그것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첫댓글 박지현 요셉피나님
소식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