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독서: 에세 S01E51 - 말의 공허함에 관하여
말의 공허함이라는 것은 대부분의(과장해서) 말은 진실을 담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우리가 동시에 목격한 어떤 사실을 나열하는 대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화자가 누구냐에 따라 인식의 토대가 바뀌기도 하고, 누군가는 어떤 목적성을 띄고 이야기를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온전하게 발생한 진짜 사실을 이야기한다고 보기 어렵다.
소년탐정 김전일 만화를 좋아해서 아직도 종종 찾아보는데, 케로베로스라는 상상의 괴물개를 이용한 에피소드가 있다. 거기서 범인은 어떤 인물의 사망 시점을 조작하기 위해서 이미 지난 밤에 살해했음에도 그가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꾸미는데, 거기서 이용한 트릭이 아침에 그 사람이 화장실에서 면도하고 있다는 걸 봤다고 사람들에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제로 아침에 그 사람을 보지 못했음에도 아침까지는 살아있었다고 믿게 된다.
이렇게 말로써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람을 이끌고자 하는 것을 보통 '선전'이라고 하는데, 수사학을 비판적으로 바라 본 사람들은 수사학을 설득보다는 선전의 관점에서 바라봤던 것 같다.
(아리스톤은 수사학을 대중을 설득하는 학문이라고 무난하게 정의한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은 수사학을 속이고 아첨하는 기술이라고 했고, 일반적 정의에서는 그 점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실제 가르침에서는 늘 그 점이 사실임을 보여 준다. 534p)
이러한 수사가 많이 쓰이는 분야가 아무래도 '정치'쪽 일 터인데, 그 말의 실체적 진실(정치인들이 많이 쓰는 말이죠..ㅎ)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란 많이 어려운 것 같다.
잔뜩 꾸며낸 허황된 수사로 사실을 부풀리거나 감추고, 실제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인냥 사람을 현혹시키는 말에 주의해야 한다. 이런 말은 사물의 본질이나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되며 진실을 흐리게 만든다.
말재주에 능한 사람들은 교묘하게 반론을 피해가고, 또다시 새롭게 꾸며낸 말로 우리를 속이려 드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챕터의 마지막 장은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어서 재밌게 읽었다. 아래 한 단락을 가져와 본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건축가들이 장식 벽 기둥이니 평방이니 처마돌림띠니 코린트, 도리아 양식이니 하는 그 비슷한 자기들 전문 용어로 스스로를 잔뜩 부풀리고 있으면 내 상상력은 즉각 아플리돈 궁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것이 우리 집 부엌문의 하잖은 부분들을 가르키는 것임을 알게 된다. 537p)
첫댓글 바쁜 와중에도 글을 올리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어요~. 김전일을 좋아하시는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추리물에 트릭이 남아 있다는게 신기합니다^^ 개인적으로, 인간에 대한 기대를 크게 안해서 그런지 더 이상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진실과 거짓을 따지는 것도 피곤해지고...그냥 이렇게 저렇게 살다 가는거죠.
김전일은 어렸을 때 부터 반복해서 많이 봤더니 정들었네요. ㅎㅎ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어도 그래도 사람때문에 살아갈 힘도 나니, 그래도 작은 희망이라도 갖게 되는 거 같아요. 김전일도 이런 비슷한 말 했었다는~ ㅋㅋ (오타쿠같네요 ㅋㅋ)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얼마나 공허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인지, 말이나 언어가 얼마나 쉽게 실제 의미나 진실과 어긋날 수 있는지를 몽테뉴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느낍니다.
"말은 조작되기 쉽다. 말은 듣는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꾸밀 수 있고, 진심이 없어도 감동적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