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물리·천문분과 · 신성철
21C로 진입하면서 국가의 생존과 안보와 번영이 과학기술 경쟁력에 좌우되는 기술 패권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단적인 사례가 지난 2019년 일본이 우 리 나 라 를 백 색 국 가 에 서 제 외 하 면 서 국 가 적 으 로 큰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동안 일본에 의존하던 소재, 부품, 장비(소부장) 관련 1200여 개 품목 수입에 큰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100년 전 일본이 무력으로 한국을 지배하였는데, 이제 기술력으로 우리나라를 지배하려는 것이다. 최근 미국이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반도체와 과학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지난해 입법하면서 첨단산업 분야에서 미·중 간의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반도체의 40%를 중국에 수출하고, 첨단산업 핵심 광물의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커다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기술 패권 시대 큰 특징은 ‘승자독식’이다. D램 반도체의 경우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의 74%를, 시스템 반도체의 경우 미국이 70%를 각각 차지하며 세계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기술 패권 시대 또 다른 특징은 첨단 산업이 글로벌 분업 구조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반도체의 경우 20여 국이 참여하는 글로벌 분업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고로 글로벌 가치사슬(GVC: Global Value Chain)을 극대화하기 위한 글로벌 공급망 관리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이런 21C 기술 패권 시대, 우리나라가 국가적 위기 상황을 타개하고 글로벌 중추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
첫째, 글로벌 선도 연구를 통해 초격차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지난 반세기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양적 측면에서 경제성장 못지않은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연구 성과의 질적 우수성은 아직 부족하다. 세계를 선도하는 연구 분야가 거의 없으며, 세계 4위의 특허 강국이지만 기술 무역수지 적자국이다. 이런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연구자들이 지금까지 새로운 지식이나 경제적 가치 창출 효과가 별로 없는 추격형 연구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적으로 최고(Best), 최초(First), 유일한(Only) 연구를 지향하는 글로벌 선도형 ‘BFO’ 연구로 전환해야 한다. 연구비 투자도 ‘BFO’를 지향하는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
둘째, 기술 기반 글로벌 스타트업을 육성해야 한다.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대기업에 매우 편중되어 있다. 0.8%의 대기업이 수출의 67%를 차지하는 반면, 97%의 중소기업은 단지 17%를 담당하고 있다. 지난 반세기 우리나라는 대기업 주도 성장 전략을 펼쳤지만, 향후 산업구조의 안정성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기술기반의 글로벌 중소기업 소위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 육성이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을 견고히하기 위해 소재, 부품, 장비 분야에서 히든챔피언 육성이 중요하다. 이를 가속하기 위해서는 산학연 협업과 대학에서 기업가정신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셋째, 과학기술 선도국과 글로벌 협업을 확대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미국, 중국의 연구개발비와 연구 인력의 20% 수준이다. 이런 열악한 연구 환경으로 세계적 경쟁력의 연구 결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선도국과 협업적 상생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특히, 국가적으로 중요한 미래 첨단과학기술 분야로서 거대 연구비가 요구되는 뇌과학, 양자기술, 가속기, 핵융합, 항공우주 등 초대형 프로젝트의 경우 양자 간 혹은 다자 간 국제 공동 연구개발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필자소개
대한민국 과학기술협력대사
미국물리학회 석학회원
前 KAIST 총장(16대)
前 DGIST 총장(1대 및 2대)
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