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
곤히 자는 아이들을 놔 두고는 우리 부부 먼저 아침을 해결하러 식당에 갔다. 태국
휴양지의 대명사 후아힌이라서 그런지 모두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대화를 하는 이, 일찍부터
썬탠을 즐기는 이, 독서 삼매경에 빠진 이 등 이 모든 광경이 평화롭기만 하다. 무엇인가 돌아 다녀야 하고, 무엇인가 먹어야 하고, 무엇인가 놀아야 하는 우리의 여행 문화와는 다른 정적인 휴양 문화에 나도 점점 매력에 빠지는 것은 나이가 먹어가는
탓일까?
아이들을 깨우고 식사를 하게 한 다음 체크 아웃 하기 전에 수영장에서 놀고 움직이기로 했다. 어제보다는 수온이 올라 수영할 만 하다. 막내 아들은 물을 워낙
무서워해서 어릴 적 수영 강습을 받았으나 수영 실력은 별로였다. 하지만 중2가 된 지금은 몸에 근육이 붙어서인지 치고 나가는 것이 제법이다. 이젠
어린 티를 벗어나 제법 남자다움이 느껴지는 체형으로 변한 아들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 여행이다.
체크 아웃하고 새로운 숙소로 가기 전에 근처의 아울렛에 가서 잠깐 쇼핑을 즐긴다. 넓은 아울렛은 주변 조경을 깔끔하게 조성해 놓고 손님들에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 있고, 지하에 빈티지 박물관도 운영하고 있어 볼거리를 제공한다. 아울렛
내의 그 많은 진열품 중에서 딱히 사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제품은 없다. 우리의 삶은 라오스지만 눈
높이는 한국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저 인테리어를 멋스럽게 꾸민 카페에서 커피 한잔으로 사색을 즐기다
나왔다.
호텔은 어제 예약한 관계로 입실료를 지불하고 곧바로 입실하였다.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내부를 보니 기분까지 상쾌함을 느낀다.
오늘은 어제 못 가본 골목들을 돌아보고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나이트 마켓을 볼 예정이다. 재수가 좋은 걸까 시내 주차가 가능한 곳에 딱 한자리가 비어있어 그 곳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탐방하기로 했다. 조금 걸어서 큰 길에서 좌회전하니 조카 놈이 “저기 버거킹있다. 햄버거는 역시 버거킹이지” 하는 것이다. 아이들 기분 맞추는 여행이 목적인데 그들이 원하는 식단으로 정하는 것이 당연한 것을…
’이놈들 당분간 햄버거, 바다, 씨푸드 소리를 못하게 만들겠어’
왜 먹어야 되는지, 이것이 한끼 식사가 되는지도 모르는 햄버거로 식사를
마치고 바다 방향으로 걸어가니 이곳이 바로 내가 보던 익숙한 파타야의 바다를 연상하는 광경이 펼쳐진다. 하얀
백사장에 파라솔이 도배가 되어있고 그 아래는 온갖 피부색들이 모여 있으며, 백사장 여기 저기에는 돗자리를
깔고 썬텐을 하는 서양인들 그리고 호객행위를 하는 장사꾼과 바닷물에서 장난을 치는 사람들. 여기를 오니
드디어 태국에 온 느낌이 난다. 이곳 바닷가 인근에는 아주 오래되고 고풍스런 호텔과 리조트가 자리를
잡고 있다. 나의 느낌이지만 후아힌이라는 관광지의 시초가 여기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호텔 투숙객들은 정리가 잘된 호텔 정원
나무 아래 벤치에서 바다가 쪽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기고, 그 뒤로는 호텔 수영장이 쪽빛을 폼 내고 있었다. 파라솔 무리와는 너무 대조적인 모습에 약간 위압감 마저 들 정도다.
우리는 바다 쪽으로 난 호텔 입구를 통과해서 호텔 정문으로 나가려고 들어서니 영국식 수문장 옷을 입은 경비원이
다가와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한다. “멋진 사진을 찍고 싶어요”하니 모르는 척 뒤돌아 준다. 감각이 풍부한 수문장이다. 엄청난 대지를 소유한 호텔 정원은 정원사가
나무를 깔끔하게 가꾸어 놓았으나 나무 모양을 온갖 동물의 형상으로 만들어 놔서 자연미는 많이 떨어졌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멋지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정원이다.
어느덧 매주 수요일에 열린다는 나이트 마켓이 열리는 시간이 되었다. 마켓의
규모는 라오스 메콩강의 마켓보다 작았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다양했다. 옷, 토산물, 일회용 타투 스티커, 각종
음식물, 과일 등 여러 가게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고 그것을 구경하는 관광객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씨푸드 가게에 진열된 킹크랩을 보고 그냥 지나칠 녀석들이 아니다. Kg에 1,600바트이니 결코 이곳에서도 싼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 비하면 싸다. 언제
이런 음식을 먹어 보겠는가? 기분 좋게 1.5kg을 사서 4명이서 먹으니 개 눈 감추듯 없어진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편의점에 들러 맥주, 음료수 그리고 삼각 김밥(애들이 이것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을 사서 우리만의 조촐한 마지막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