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온 세월은 모진 가난과 무지로 여러 형제가
헐벗으며 유년기를 6.25 전쟁 참화속에서 자랐다.
해방되는해(47.12.7(음)에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으나
6.25 전쟁으로 전북 익산으로 피난을 떠나 가난과
추위속에 동상에 걸려 고생하였고 , 학교에서 끓여주는
꿀꿀이 죽을 얻어먹으며 국민(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가난했기에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 부모를 도와
농사를 짓다가 2년뒤 시골 중학교에 1등으로 합격해
전핵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후 고등학교도 특별장학생
으로 입학했으나 대학교는 장학금을 받지 못해 포기하고
68.5.1부터 공무원의 길을 걸으며 새마을 운동을 했다.
군대생활을 할때는 월남 파병이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서해안 경비부대로 자원해서 파견을 나가기도 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는 공무원 생활을 재 정비하기에 바빳다.
당시 공무원 제도는 지금처럼 세련되지를 못했었다.
세련되지 못한 공무원제도에 따라 전라남북도,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경기도 서울등을 떠돌아 다녀야 했다.
타향살이를 하며 하숙생활에 질린 나는 73년도(만25세)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였고 4명의 자녀를 낳아 기르며
내 집하나 마련할 때까지 세를 살았고, 자식들 공부시키려고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24번을 이사해야 하는 그 풍진 세상을
어렵게 살아야 했다.
4자녀들은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녔고 모두가 소위 알아주는
대기업에 다니며 다 독립하여 자기 갈길을 가고 있다.
그러는 동안 세월은 흘러 마침내 40년의 공직생활을
2008년도에 대통령 홍조훈장을 받으며 은퇴하게 되었다.
(차관급 표창:3번,장관급 :2번,모범공무원(총리):1 번
대통령포장 및 홍조근정훈장 각1번을 받았다)
보통 우리들이 말하는 노년기(61세)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괜찮았다. 나라는 잘사는 나라가 되었고 우리 부부도
나라에서 보내주는 해외 여행도 하게 되었고 생활도 안정되었다.
서울의 잠실땅 한구석에서 그 모든 세월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돌아보면 우리 세대는 기구하고 암울하며, 파란만장한 격동의
시대에 산전수전, 공중전, 육박전, 게릴라전, 화생방전,상륙전을
겪다 보니 가는 줄 모르게 세월이 갔고 오는 줄 모르게 노년이 왔다.
그래도 60대에는 손자들 키워주는 재미로 세월 가는줄 몰랐고
고생만하던 아내와 함께 중국, 태국 ,베트남등 해외 여행도 즐겼다.
손자들도 커서 중고등학교에 다니니 할아버지 보려 오지 않는다.
학교다닐라, 학원다일라, 영재교육 받을라... . 이리저리 바쁘다 보니
할아버지 댁에 올 시간이 없단다. 초등학교 때는 피아노 경진대회.
글짓기 대회, 연구실적등으로 장관표창과 포상금도 받았고 지금은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제 할일을 다한 것 같아서 서울 집을 정리하여 시골에
가 전원주택 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아내가 절대 반대했다.
그 반대 주요이유는
첫째 : 늙어갈수록 병원이 가까이 있어야 혈압,당뇨등 기저질환을
,나 스스로 병원에 다니며 치료해야 하는데 병원과 약국이 멀고
더구나 우리는 운전을 할줄도 모르고,
둘째 : 식당이 가까워야 몸이 불편할 때는 사 먹을 수 있는데 어렵고,
셋째 : 은행이 가까워야 나오는 연금등을 찾아 쓰는등 관리하기 좋고,
넷째 :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소가 가까워야 이를 이용하여 여행이나
먼 거리라도 자유스럽게 오 갈 수 있고,
다섯째 : 자식들이 다 서울에 사는데 이왕이면 자식도 가까이 있어야
위급할 때 단 한 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생각해 보니 전원주택과 별장이 좋다지만,그것도 50~60대 초 이야기
이지 65세 넘어가면 모두헛소리이고,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별장, 전원주택이 있다 하면 남들이 부러워하지만 관리하기만
어려워 질뿐 욕심낼것이 못된다.
더구나 늙으면 외로움 속에서 살아야 한다. 고독의 고통은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 서울에 살면서 교회에도 나가고 가끔은 친구들 만나 차라도 나누면
서 고독을 달래며 사는게 훨씬 좋을것 같았기에 아매말을 들었다.
더구나 70대가 되니 난데 없는 코로나 19가 만연하여 방안에 묶어 놓으니
창살없는 감옥살이를 하면서 3년을 살았다. 교회집사,권사도 은퇴했다.
그러다 보니 하는것 없이 70대 중반이 되어 버렸다.
그 와중에서도 아내는 70대에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하였고 지금은
대학교에 다니면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다.
덕분에 내 생활이 바삐지게 되었다. 가정에서 할일이 많아졌다.
나이가 들어 노년이 되니 정말 배워도 헷갈리고 갈수록 기억력도
쇠잔해 가는데 아내는 그래도 배움에 길을 선택한 것이다.
영어도 배우고 일본어도 배우고, 컴퓨터도 배우고 ,노인복지학도
배우며 열심히 학교에 다니고 있다. 뒷바라지 하기에 바쁘다.
아내는 손자들같은 젊은 청년들과 함께 하니 사고 방식이 젊어지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통 오는 문자와 카톡을 보며 공부하고 지우고 인터넷으로
영상강의도 듣고 컴퓨터로 리폿트도 작성하여 제출하기도 한다.
늙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운동이나 하던지, 교회에다니며 살며 되지만,
조금더 알려고 욕심을 내는 아내를 보며 느끼는게 참 많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주판알을 튕기면서도 문명 세대라고 꽤나 알아주는
지식인에 속했는데,컴퓨터 문명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배워도 끝이 없다.
왕 초보자 영역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아내가 참 부럽다.
나이가 들어 늙어갈수록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고통이다.
결국은 늙고 병들어서 세상을 마감하게 되지만 열심히 배워가며 살자.
명은 하늘에 맡기고 사는날 까지 미련없이 살다가자.
우리부부는 사는날까지 서로가 보살펴주며 재밋게 살다가련다,
이제 첫째는 내 건강, 둘째는 아내 건강, 셋째는 쪼들리지 않게 살기
넷째는 소일거리 를 찾아 즐기기, 다섯째는 무엇이든 열심히 배우기다.
그래도 우리는 가난한 나라를 세계 10위권의 경제선진국 대열로 이끈
산업전사들이었다. 고생도 많았고, 참 수고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은 생애도 즐겁고 건강하게 잘 살아 젊었던 시대의 애환을 추억하며,
웃으면서 열심히 열심히 천수를 다하며 잘 살다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