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여행/왕궁리유적]유네스코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익산의 역사유적지구, 왕궁리유적지를 찾아서
낙엽마저도 모두 떨어져 황량한 벌판위에 서있는 5층석탑은
융성했던 옛 영화를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쓸쓸함을 담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서히 과거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노력들에 위안을 받으며
늠름한 자태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구릉지를 깎아 내리고 흙으로 평지를 조성한 후 건물을 배치한 것으로 추측한다는 " 왕궁리평성" "왕궁리토성" ...
백제 무왕의 천도 또는 별도지로서 운영된 궁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보덕국, 안승의 궁성, 후백제 견훤이 잠시 궁성으로 이용했던
백제의 궁궐지로 알려진 곳, 왕궁리유적을 찾았습니다.
5층석탑으로 들어서는 진입로에서
오른쪽으로 바라보면 왕궁리전시관이 있어서 일정을 고려하여 돌아보면 좋을듯 합니다.
울 일행은 해가 저물기 직전이어서 석탑으로 발길을 향하였답니다.
익산 왕궁리 5층석탑(국보 : 제289호)
높이 약 9.3m의 백제계 석탑으로 미륵사지 석탑을 모방하여
단층기단과 얇고 넓은 옥개석, 3단의 옥개받침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옥개양식에서 백제계 석탑양식을 따르고. 탑신부의 돌 결구수법과 옥개받침 수법에서 신라계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고
탑 주변에서 "왕궁사" "관궁사" "대관관사" 명문와가 출토 되었다고 합니다.
왕궁평성내에는
1997년에 국보 제289호로 지정된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과 주춧돌,
백제 시대의 정원석으로 보이는 관상석들이 산재해 있었습니다.
왕궁리 유적에는 다양한 건물터가 남아 있었는데
가장 큰 규모의 건물로는 정면 약 7칸, 측면 4칸의 크기로 왕궁의 남북 중심축에 있구요,
왕궁의 행정업무를 보던 건물터,
석축을 넘나들기 위한 출입시설로 추정되는 건물터,
금당터 뒤에는 승려들이 설법과 강연을 하던 건물터,
내부를 기이한 형태의 정원석, 강자갈돌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소량의 물을 일시적으로 가둬 둔 소규모의 정원 흔적도 남아 있는 곳입니다.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왕궁리의 풍경을 담아내려고 애쓰는 지인의 모습을 한장 찰칵~!!
2008년 개관한 왕궁리 전시관에는
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을 소개하고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 중 300여점을 선정 전시하고 있으며
백제왕궁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금제품, 유리제품, 수부명 인장와, 전달린토기 등과 함께
연화문 수막새, 각종 인장기와, 토기류, 금과 유리 등을 생산하던 도가니도 전시되어 있는 등
문화교육장으로 활용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 화장실 사용 모습을 볼 수 도 있었는데
신기한 것은
통에 담겨 길쭉하게 보이는 나무로 마무리를 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ㅋ
왕궁리유적의 발굴조사 내용을 영상과 축소 모형으로 제작하고
중요 출토유물을 전시하여 왕궁리유적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왕궁리유적전시관에서는
관람객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전통놀이로 제기차기등을 할수있도록 전시관 입구에 마련되어 있었고
왕궁리 유적에서 출토된 백제 기와 만져보면서 기와 제작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외에도
중요 출토유물의 이미지를 도장으로 만들어 도장찍기 체험을 할 수 도 있고,
서동과 선화공주가 되어보는 포토존도 설치되어 있어서 예쁜 사진을 담아갈수도 있으며,
궁성쌓기 게임, 유물 이미지 스탬프 찍기,
관세음응험기 목판찍기 등의 프로그램을 만나볼 수 도 있었습니다.
--- 관세음응험기 목판찍기 ---
준비되어 있는 목판위에 붓에 먹을 묻혀 살짝 바른 후
한지를 덮어 가볍게 두드려 줍니다.
활자 밖의 가장자리 선까지 꼼꼼히 두두린후 한지를 떼어내고
낙관을 찍으면 완성이 됩니다.
한자가 한가득 써있는 관세음응험기를 해석한 종이도 한장 같이 주셨는데요
백제 무왕이 익산으로 천도 했다는 유일한 기록이라고 합니다.
무슨 뜻인지 겨우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ㅎ
첫댓글 추운 날씨에 구석구석 자세히 담으셨네요.^^
감사합니다~~ ^^
자세히 담으셨어요~ 역시...남다르세요~ ^^
별말씀을요~
많이 가르쳐 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