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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도잡지 京都雜志
해제
1. 경도잡지(京都雜志)의 서지사항
경도잡지는 동국세시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911년에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발간한 연활자본
(鉛活字本)과 그 번역본이 주로 소개되고 있다. 광문회본 경도잡지는 동국세시기나 특히 열양세시기
보다는 오자(誤字)와 탈자(脫字)가 적은 편이나 역시 엄밀한 교정이 필요하다. 원사본이라고 할 수 있는 책으
로는 현재 연세대학교 도서관 소장본과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이 있다.
□ 저자 : 柳得恭(1748~1807)
□ 간행년도 : 1800년 전후
□ 소장처 : 서울대 규장각, 연세대 도서관
□ 판본, 수량, 크기 : (규장각본) 筆寫本, 2卷1冊, 23.5×17cm(연세대본) 筆寫本, 2卷1冊, 23.3×16cm
※ 본서의 정확한 저작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본문 가운데 ‘壯勇營’이 인용되어 있으므로 적어도 1792년 이후
그의 졸년인 1807년 사이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된다.
□ 주요 내용
조선 후기에 지은 세시풍속지로 완성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내용으로 보아 정조 때 쓰여진 것으로 판단된다.
광문회본에 같이 실려 있는 세시기인 열양세시기나 동국세시기 보다 앞서 집필된 것이다.
본서에는 18세기말 서울 사람들의 의복‚ 식생활‚ 기물‚ 취미‚ 오락‚ 음악‚ 세시풍속 등 각종 생활상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 책의 구성
1권은 풍속편(風俗篇)으로 건복(巾服), 주식(酒食), 다연(茶烟), 제택(第宅),마려(馬驢), 기집(器什), 문방(文房),
화훼(花卉), 발합(鵓鴿), 유상(遊賞), 노래와 광대[聲技], 도희(賭戱), 시포(市舖), 시문(詩文), 서화(書畵),
혼의(婚儀), 유가(遊街), 가도(呵導), 과와(果瓜) 등 주로 당시의 여러 문물제도를 19항목으로 나누어 약술하고
있다. 이중 과와(果瓜)조는 맨 뒤에 적혀 있으나 제목 아래에 “당재다연하(當在茶烟下)”라 부기되어 있어 다연
(茶烟) 아래에 놓여야 할 것 같다.
풍속(風俗)조에는 당시 서울의 문물‚ 제도‚ 풍속 등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는데‚ 각각의 실상과 유래를 적고 그에
대한 비판을 덧붙였다. 노래와 광대[聲伎]조에서는 악기‚ 곡조‚ 악공‚ 연극 등에 대하여 기록하였고‚ 시문(詩文)
조에서는 아동과 유생들이 보는 책의 종류와 순서‚ 서화(書畵)에는 당시에 유행한 조송설체(趙松雪體)‚ 비백체
(飛白體) 등의 서체와 관동팔경소병(關東八景小屛)‚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등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2권은 세시편(歲時篇)으로 원일(元日), 해․자․사․일(亥子巳日), 인일(人日),입춘(立春), 상원(上元), 2월 초하루
[二月初一日], 한식(寒食), 삼짇날[重三],사월 초파일[四月八日], 단오(端午), 유월보름[六月十五日], 복(伏),
중원(中元), 중추(中秋), 중구(重九), 시월 오일(十月午日), 동지(冬至), 납평(臘平), 제석(除夕) 등 한양(漢陽)의
세시를 19항목으로 분류하여 약술하고 있다. 정월부터 세밑까지 각 세시풍속의 내용을 기술하고‚ 그것의 연원
에 대하여 여러 문헌을 인용하여 고증하였다. 또한 각 세시에 행해지는 놀이 등을 적었다.
孟元老東京夢華錄
武珪燕北雜錄
范石湖「上元吳下節物排體」
徐光啓農政全書
蘇東坡「與吳君采書」
孫思邈千金方
宋敏求春明退朝錄
沈榜宛署雜記
葉廷珪海錄碎事
溫革瑣碎錄
王錡寓圃雜記
于奕正帝京景物略
陸啓浤北京歲華記
陸放翁歲首書事詩
李睟光芝峯類說
李詡戒菴謾筆
張遠隩志
宗懍荆楚歲時記
周處風土記
周煌琉球國記略
高麗史
唐書 「高麗傳」
東京雜記
文獻備考
本草(本草綱目)
史記
44 조선대세시기 Ⅲ
三國史
說文
續漢書「禮儀志」
2. 경도잡지(京都雜志)의 저자 유득공(柳得恭)
1800년 전후에 활약했던 실학자인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이 지은 서울의 세시풍속지이다.
유득공의 자는 혜풍(惠風) 혜보(惠甫)‚ 호는 영재(泠齋) ․영암(泠庵) ․ 고운당(古芸堂) ․ 가상루(歌商樓) ․
고운거사(古芸居士) ․ 은휘당(恩暉堂) 등이고‚ 본관은 문화(文化)다.
증조부와 외조부가 모두 서자였기 때문에 서얼 신분으로 태어났다. 부친이 요절하여 모친 아래에서 자랐고,
18세에 숙부인 진사 유련(柳璉)의 영향을 받아 시짓기를 배웠으며, 20세를 지나 박지원(朴趾源)·이덕무(李德懋)·
박제가(朴齊家)와 같은 북학파 인사들과 교유하기 시작하였다. 영조 50년(1774)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생원(生員)이 되었고, 정조 3년(1779)에 규장각(奎章閣) 검서관(檢書官)에 임명됨으로써 32세에 비로소 신분
제약에서 벗어나 관직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후 포천현감(抱川縣監) · 양근군수(楊根郡守) · 광흥창주부
(廣興倉主簿) · 사도주부(司䆃主簿) · 가평군수(加平郡守) · 풍천도호부사(豊川都護府使)를 역임하였고,
그를 아끼던 정조가 돌아가자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하다가 순조 7년(1807)에 60세를 일기로 사망하여 양주
(楊州) 송산(松山: 현 의정부시 송산동)에 묻혔다.
생전에 그는 개성 ·평양 ·공주 등과 같은 국내의 옛 도읍지를 유람하였고 두 차례에 걸쳐 연행(燕行)을 하고 돌아
왔으며, 이 경험을 토대로 문학과 역사 방면에 뛰어난 저술을 남겼다. 그의 글로는 경도잡지 외에도 민족
주의사관이 두드러진 발해고(渤海考)‚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사군지(四郡志), 문집 영재집
(泠齋集)에 실린 각종 시와 산문 등이 있다. 그의 시와 산문은 회화적‚ 사실적 묘사가 뛰어나면서도 다채롭고
그 포괄하는 범위가 중국·일본·유구 등 당시 동아시아의 문화‚ 사상계에 폭넓게 걸쳐있다.
영재서종(泠齋書種)은 그가 편찬한2종의 책자 병세집(並世集)과 연대재유록(燕臺再游錄)과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일부를 일제시기에 재필사한 책이다. 이 책은 표지 서명은 ‘영재서종(泠齋書種)’‚
1책의 내제지 서명은 ‘병세집(並世集)‚ 영재서종일(泠齋書種一)’‚ 권두 서명은 ‘병세집(並世集)’‚ 2책의 내제지
서명은 ‘연대재유록(燕臺再游錄)‚ 영재서종삼(泠齋書種三)’‚ 권두 서명은 ‘연대록(燕臺錄)’이다. 마지막 면에
“昭和九年八月朝鮮總督府圖書館所藏寫本ヨリ謄寫ス”라는 사각형의 朱印이있어 1934년에 재필사한 후 제본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경도잡지는 뒤에 김매순(金邁淳)의 열양세시기,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 편찬에 큰 영향을
주었다.
3. 위암 장지연의 경도잡지(京都雜志) 서문(序文)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 1864~1920)은 경도잡지 서문을 썼는데, 위암문고(韋庵文稿) 권4 「내집
(內集)」에 실려있어 이를 소개한다.
경도잡지 서
옛 사람이 이르기를 백리(百里)의 풍습(風習)이 같지 않고 천리(千里)의 민속(民俗)이 같지 않다 하였으니 그
산천풍토의 다름과 더불어 정사(政事)를 다스리고 백성을 교화시키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풍속의
차이가 생긴 것이다. 풍속이 같지 않으므로 사랑하고 미워하는 감정이 생겨난 것이다.
마한의 상투트는 것, 진한의 거문고타며 노래하는 것, 변한에서 옷을 깨끗이 입는 풍습, 신라의 가배(嘉俳),
고구려의 밭 갈고 사냥하는 풍습, 백제의 혼례와 가야의 거문고 노래는 모두 풍속이 크게 다르다. 이것을 보면
정치의 아름다운 모습과 흉한 모습을 살필 수 있고 풍속에 나타난 민정(民情)이 세련되었는지 조야한지를 밝
힐 수 있다.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가 또한 이것과 연결되어 있다. 삼한에서는 예스럽고 질박함을 숭상
하였고, 신라에서는 근검하였고 고구려는 무예에 능하고 용맹하였으며 백제는 세련되고 우아하였으니 민속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옛 사람의 풍습과 남겨진 민속이 수없이 많으며 지금까지 전해지기도한다.
풍속은 정치와 교화에 따라야 하고, 민심은 풍토에 구애되지 않을 수 없으니 습관(習慣)의 영향으로 고향을
사랑하는 감정이 생긴 까닭으로 외세의 문화가 유혹해서 갑자기 변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고대의 습속
은 비록 거칠고 비루하고 아름답지 않아도 또한 역사의 한 부분으로 밝혀야 한다. 애국지사는 이에 흥취를
느껴 노래로 만들고 책으로 지어서 닳아 없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에 어찌 시비가 있겠는가? 옛날의 역사가들은
마을의 남녀들이 노래부르고 지은 것을 모아서 악부에 싣고 국풍(國風)으로 배열하였으니 이 또한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가 태조이래 역대 임금을 계승하고 문명을 교화하며 풍습을 노래하고 민속을 받들었는데 변하지 않음
을 좇아서 이에 천하가 태평해지고 온 나라에 인덕이 있고 장수하였다.
이에 산간과 바닷가, 궁벽한 마을이라도 해마다 좋은 시절에 농부와 나무꾼들이 닭 ․ 돼지 ․ 떡 ․ 술을 즐기고 산
에서 북치고 들에서 피리불며 놀고 즐기고 노래하며 기뻐하였다. 하물며 임금이 계신 서울은 풍속의 근본이
되며, 문물이 화려하고 또 향촌과 비할 바가 아니어서 나라가 융성할 때 서울에 사는 남녀 주민들은 놀면서 서로
어울렸다. 무릇 산사, 산골짜기 정자, 강변의 누각과 동산에서 꽃을 감상하고 단풍을 구경하였고 더위를 씻고
눈[雪]을 즐겼다. 노래부르고 피리부르는 광대, 진귀한 음식과 맛있는 술안주는 융성함이 다하였으니 태평한
기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은 풍조가 흔들려 세상이 달라져서 인심과 세태가 날로 외국의 풍속을 숭배하여
풍습을 노래하고 습속을 받들었던 옛날부터 내려오는 생각을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아! 이것은 진실로 시세에
따른 것이니 사람의 힘으로 말릴 수 없다. 나의 조국에 대한 정신은 또한 이로 말미암아 펴기도 전에 점점 없어
지니 어찌 근심하며 한탄하지 않겠는가?
내가 이를 두려워 하여 대한풍속사를 쓰고자 자료를 모았으나 아직 완성하지 못하였는데 마침 지재(止齋)
김원근(金瑗根)이 나에게 유득공이 지은 경도잡지를 보여주면서 책의 서문을 부탁하였다.
그 원고를 보니 대부분 서울의 풍속이 그 내용이고 세시기라 할 수 있었다. 내가 기뻐하며 약속에 따라 감히
느낀 바를 적는다.
서문에 일러 말하기를 이 책은 서울의 풍속으로 한정하고 있어서 비록 그 범위가 넓지 않지만 이로써 우리나라
문물의 융성함을 알 수 있다. 또한 보는 이들에게 조국에 대한 생각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이것은 후배들에게
유익할 것인데 어찌 얕다고 하겠는가? 이 책은 대한풍속사의 기초가 되는 저술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속히 인쇄하여 널리 배포하고 더해서 애국지사에게 의지를 주고 혹은 같은 뜻을 갖게하고 흥취를 일으키게
하길 바란다.
京都雜志序
古人云百里不同風千里不同俗蓋由其山川風土之區別與其政治敎化之殊異而風俗之不同生焉因風俗之不同而愛憎
之感念生焉若夫馬韓之露紒辰韓之歌瑟弁韓之潔服新羅之嘉俳高句麗之佃獵百濟之婚禮伽羅之琴曲皆其風之俗大
別而觀察乎是可以考政治之美惡可以驗風氣之文野邦國之盛衰興亡亦於是乎繫焉三韓之古朴尙矣至若新羅之勤儉
句麗之武勇百濟之文雅可以見習常之殊而其遺風餘俗閱數千載猶有遺存於至今蓋風俗雖因政敎而變遷人情不能無
風土之拘習慣之染則此所以生愛鄕之感念有難以外誘遽變者也以故古代習俗雖荒陋不雅亦可以徵一部歷史之面目
愛國之士所爲興感於此而形於歌謠著於簡冊有不忍磨滅之者豈非是歟古者太史釆閭巷男女歌謠之作陳於樂府而列
爲國風者亦爲此也我朝自太祖以來列聖繼承敎化文明風謠俗尙從以丕變於是四海昇平八域仁壽山陬海澨窮巷僻村
歲時令節農夫樵丁鷄豚餠醪山鼓野笛邀遊嬉戲謳歌歡樂而況乎京師處輦轂之地爲風俗之本其繁華文物又非鄕村之
可比則方其盛時都人士女以遊嬉相尙凡山寺溪亭江樓林園賞花玩楓浴暑飮雪歌管聲伎珍羞嘉殽極一時之盛而賁飾
太平氣像今焉風潮震盪時異世變人心世態日趨於外風之崇拜而風謠俗尙無復舊日之遺觀嗚呼此固時勢之所使有非
人力之可挽則吾祖國精神未始不由此而漸滅豈非有識之所憂歎者歟不佞爲是之懼方述大韓風俗史一通而蒐輯未完
適金止齋瑗根示不佞以其所譯柳冷齋(得恭) 京都雜誌請弁卷首一言閱其稿蓋漢城之風俗通而阻以歲時記者也不佞
欣然若有契敢爲之識所懷而告之曰是書限以京都雖若未廣因此而有以考我朝文物之盛使覽者亦足以感發祖國之觀
念其裨益後進豈淺淺乎哉此可以爲大韓風俗史之前茅願速印而廣佈之俾有志愛國之士或有同情而興感也夫
경도잡지 京都
풍속風俗
건복 巾服
사대부는 집에 있을 때 복건(幅巾)이나 방관(方冠) ․ 정자관(程子冠) ․ 동파관(東坡冠)을 쓰고, 벼슬에 나간 자는
당건(唐巾)을 쓴다. 거리 밖으로 나갈 때는 갓을 쓰고, 당혜(唐鞋)나 운혜(雲鞋)를 신는 등 의관을 갖춘다.
선비가 입는 겉옷[儒服]은 도포(道袍)다. 벼슬아치의 일상복도 같다. 그러나 무관의 일상복은 직령(直領)이다.
겨울철에 쥐고 다니는 부채는 모선(毛扇)이다. 만드는 방법은 두 쪽의 손잡이를 묶기 위해 누런 담비 턱수염
으로 대나무마디처럼 감싼 다음 검은 비단 한 폭으로 잇는다. 혹은 수달 가죽으로 손잡이를 감싸기도 한다.
손을 따듯하게 하고 찬바람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봄과 가을에는 비단을 사용하여 먼지를 막고 노루 가죽으로 손잡이를 감싼다.
옷에 지니는 소도(小刀)는 물소뿔[犀], 대모(玳瑁), 침향(沈香), 흑각(黑角), 배나무(華棃) 등을 재료로 칼자루
와 칼집을 만든다. 혹은 검은 구리[烏銅]로 칼자루를 장식하는데 왜인들의 제작법이다.
여염집 부녀자들은 웃옷으로 녹색 규의(袿衣)를 입는데, 외출할 때는 따로 옷 한 벌로 머리를 가린다.
士夫平居多戴幅巾方冠程子冠東坡冠朝士唐巾街上俱用笠子穿唐鞋雲鞋儒服道袍朝士常服亦用之武官常服直領冬
持毛扇其制兩柱裹以貂頷黃毛作竹節狀聯以黑緞一幅或用獺皮裹柱取其暖手護面也春秋用紗幅障塵獐革裹柱衣帶
小刀用犀玳瑁沈香黑角華棃爲柄鞘或有烏銅鏤柄倭制也閭巷婦女綠袿衣在街上另用一衣羃首
주식 酒食
이름난 술에는 소곡(小麴), 도화(桃花), 두견(杜鵑) 등이 있는데, 모두 봄에 빚는 좋은 술이다.
지역별로는 평양의 감홍로(甘紅露), 황해도의 이강고(棃薑膏), 호남의 죽력고(竹瀝膏) 등이 또한 권할 만한
술이다. 노구솥 이름으로 전립투(氈笠套)라는 것이 있는데, 그 모양 때문에 붙여진 이름 같다. 움푹하게 들어간
부분에 물을 넣어 채소를 데치고 그 둘레로 고기를 얹어 굽는다. 안주를 만들거나 밥 짓기에 모두 좋다.
탕평채(蕩平菜)는 녹두유(菉豆乳), 돼지고기[猪肉], 미나리싹[芹苗] 등을 실같이 썰어 초장에 묻힌 것이다.
매우 청량하여 봄철 밤에 간식으로 먹기 좋다.
여러 채소를 절일 때는 새우젓국에 무 ․ 배추 ․ 마늘 ․ 고춧가루 ․ 소라 ․ 전복 ․조기 등을 섞어 독에 넣고 담가 겨울
내내 묵히는데, 매우 맵다.
제어(鮆魚)는 속칭 위어(葦魚)라고 하는데 한강 하류 행주에서 잡힌다.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사옹원(司饔院)
관리가 그물로 잡아 임금에게 진상한다. 생선장수들은 웅어 사라고 외치며 거리를 돌아다닌다. 웅어는 횟감으로
좋다. 복숭아꽃이 다 떨어질 무렵에 복어국을 먹는다. 독 때문에 복어를 꺼리는 자들은 숭어[秃尾魚]국으로 대신
한다.
酒名小麴桃花杜鵑皆春釀之佳者浿城甘紅露海西棃薑膏湖南竹瀝膏亦有餉到者鍋名氈笠套取其形似也瀹蔬於中燒
肉於沿案酒下飯俱美蕩平菜者菉豆乳猪肉芹苗縷切用醋醬衝之極凉春晩可食雜葅煑鰕鹽汁候淸蘿葍菘蒜番椒螺鰒
石首魚用陶甕和淹經冬辛烈鮆魚俗名葦魚産於漢江下流杏1)洲春末夏初司饔院官網捕進供漁2)商遍街呌賣以爲鱠
材桃花未落亦食河豚羮憚其毒者代以秃尾魚蒸
차와 담배 茶烟
차는 토산품이 없어 연경에서 수입하지만 작설(雀舌)이나 강귤(薑橘)로 대신하기도 한다. 관청에서는 찹쌀을
볶아 물에 탄 것을 차라고 한다. 최근에는 백두산 삼나무 싹으로 차를 만든다.
평안도 삼등(三登), 성천(成川) 등지에서는 금사연(金絲烟)이란 담배가 생산된다. 속칭 서초(西草)라고 하는데
맛이 매우 좋다. 벼슬한 자들은 반드시 담배합을 지참하는데 쇠로 주조한 것이고 은동으로 매화와 대나무를
새겼으며 자색 녹피로 끈을 달아 재떨이와 함께 말 뒤에 달았다. 비천한 자는 존귀한 자 앞에서 감히 담배를
피우지 못했고, 관직자가 길을 가기 위해 벽제(辟除)3)를 할 때, 담배 피우는 자가 있으면 엄히 다스렸다.
茶無土産貿於燕市或代以雀舌薑橘官府4)熬糯米沈水亦謂之茶近俗或用白頭山杉芽關西之三登成川等地産金絲
烟俗稱西草甚珍之朝士必有烟盒鐵鑄銀銅梅竹紫鹿皮綬幷烟盃携在馬後卑賤在尊貴之前不敢吸烟朝士出街辟除
含烟者甚嚴
과일과 오이 果瓜5) 當在茶烟下
배 종류 중에 좋은 것으로 추향(秋香)이 있다. 황해도 황주(黃州), 봉산(鳳山)등지에서 나오고, 이름이 월화(月華)
인 감은 조금 둥글면서 네모난 구멍이 있다. 경기도 남양과 안산에서 생산한다. 귤, 유자, 석류 등은 모두 남쪽
지방의 산물이다. 서울에서는 화분에 석류를 기르는 것이 유행이다. 털이 없는 복숭아를 승도(僧桃)라고 하고,
털이 있으며 아주 크고 일찍 익으면서 맛도 상쾌한 복숭아를 유월도(六月桃)라고 한다.
울릉도에서는 대부분이 크고 씨는 종자를 삼는 복숭아가 나는데 이를 울릉도(鬱陵桃)라고 한다.
호박[南瓜]을 돼지고기와 한데 볶아 먹으면 맛이 좋다. 여기에다 조기 대가리를 넣으면 맛이 더 좋아져 진솔한
여름반찬으로 삼는다.
棃之佳者曰秋香自海西之黃州鳳山等地而至柹名月華小團6)長存方穴産於畿內之南陽安山橘柚石榴俱南産京城
盆養石榴亦盛桃之不毛者曰僧桃有毛以絶大早熟爽美曰六月桃鬱陵島中多大桃取核而種之曰鬱陵桃南瓜同猪肉
煑味佳亦調以乾鮸魚頭爲夏月眞率之饌
제택 第宅
사대부는 문을 높이 세울 수 있지만 서민들은 법으로 금지한다. 당(堂) 앞에 전나무로 시렁을 만들어 걸어
매고 그 남은 부분으로 호로(葫蘆), 산개(傘蓋)7),상학(翔鶴) 모양을 만드는데, 이것을 노송취병(老松翠屛)8)
이라고 부른다. 당내(堂內)에는 유황지(油黃紙)를 깔아 기름이 엉긴 듯이 미끄럽다. 그 위에 ‘壽福’ 글자를 넣은
용수초(龍鬚草) 자리를 깔며 화문석과 은낭(隱囊)을 배치해둔다. 창은 열고 닫을 수 있는 만자(卍) 무늬 이중창
을 단다. 창호지에 기름을 먹여 정결하기가 은니색[泥銀色]같다. 밖을 내다볼 수 있게 유리를 넣는다.
여항(閭巷)에서 흰 널판으로 새 문을 달 때 “庚申年庚申月庚申日庚申時姜太公造”라고 쓰는데, 오행에서 금에
해당하는 ‘庚’과 ‘申’을 써서 나무를 이기는 뜻을 취한 것이다.
士夫高大其門庶人有禁堂前結樅棚引其餘梢爲葫蘆傘蓋翔鶴之狀號老松翠屛堂內舖油黃紙滑如凝脂再舖龍鬚草
壽福字席置花紋隱囊牖設卍字複窗遊移開闔糊紙着油凈如泥銀色嵌琉璃瞰外閭巷新設白板門書庚申年庚申月庚
申日庚申時姜太公造盖取金克木之義也
마려 馬驢
붉은색 말을 절다(截多)라고 하고 밤색 말을 구랑(勾郞)이라고 하며 붉은 털과 흰털이 섞인 말을 부루(夫婁),
검정말을 가라(加羅), 누런색 말을 공골(公鶻), 검은 갈기가 있는 누런색 말을 고라(高羅), 갈기가 검고 털이 흰
말을 가리온(加里温), 볼이 줄이 나 있는 말을 간자(間者) 등으로 부른다. 이것들은 본래 만주어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경 개시(開市) 무역 때 배운 용어다.
말을 타면 말고삐를 오른쪽에 두고 당긴다. 당상관은 왼쪽에서도 당길 수 있게 하는데 고삐가 부드럽고 길다.
유생들은 당나귀를 즐겨 타고 관리들도 탈 수 있지만 무관이 타면 조롱거리가 된다.
紅馬曰截多栗色馬曰勾郞紅沙馬曰夫婁黑馬曰加羅黃馬曰公鶻黑鬃黃馬曰高羅海騮曰加里温線臉曰間者此本滿洲
語東人于開市時效之也騎馬者有右牽堂上官添左牽其轡沃若而長儒生愛跨驢朝士亦可騎武官騎者致謗議
기집 器什
세속에서는 놋그릇을 중시하여 밥, 탕, 나물, 고기 등 식탁에 오르는 모든 것들을 놋그릇에 담는다. 심지어
세숫대야나 요강까지 놋쇠로 만든 것을 쓴다.
俗重鍮器人必具飯湯蔬炙一卓之用至頮盆夜壺皆以鍮鑄
문방 文房
붓은 족제비 털로 만든 황서랑미필(黃鼠狼尾筆), 종이는 설화죽청지(雪花竹淸紙), 먹은 해주에서 만든 유매묵
(油煤墨), 벼루는 남포(藍浦)9)에서 나는 오석연(烏石硯)을 제일로 친다. 근래는 위원(渭原)10)에서 나는
자석연(紫石硯)을 많이 사용한다.
黃鼠狼尾筆雪花竹淸紙海州油煤墨藍浦烏石硯爲佳品近頗用渭原紫石硯
화훼 花卉
화초를 가꾸는 능력은 왜인들의 소철(蘇鐵)이나 종려(棕櫚)에까지 미친다. 중국 연경에서는 가을에 해당(海棠)
을 귀하게 여긴다. 매화는 녹색 꽃받침이 거꾸로 달린 채 저절로 꺾인 것을 아름답게 여긴다. 국화는 홍색, 황색,
백색, 삼학령(三鶴翎), 금원(禁苑), 황취(黃醉), 양비(楊妃) 등의 이름이 있고 또 오홍색과 대소 설백(雪白) 등의
품목이 있다.
養花卉能致倭蘇鐵棕櫚燕中秋海棠爲貴梅以綠蕚倒垂自然槎爲佳菊有紅黃白三鶴翎禁苑黃醉楊妃之號又有烏紅大
小雪白諸品
집비둘기 鵓鴿
집에서 기르는 비둘기에는 여덟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온 몸이 흰 전백(全白)이 있고, 둘째는 흰 몸에 검은
꼬리, 그리고 머리에 검은 점을 지닌 점오(點烏), 셋째는 붉은 몸에 꼬리가 흰 자단(紫丹), 넷째는 몸이 희고
머리와 목이 검은 흑허두(黑虛頭), 다섯째는 몸이 희고 머리와 목이 자색인 자허두(紫虛頭),여섯째는 몸이 희고
목이 붉으며 겹으로 된 날개 끝에 붉은 점이 있는 천앙백(天仰白), 일곱째는 몸은 검고 꼬리는 흰 흑층(黑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겹으로 된 갈색 날개 끝에 금색 점이 있는 승(僧)이다.
養鵓鴿有八目之稱其一全身白曰全白其二身白尾黑頭戴黑點曰點烏其三身赤尾白曰紫丹其四身白頭頸黑曰黑虛頭
其五身白頭頸紫曰紫虛頭其六身白頸赤翎端有二層赤點曰天仰白其七身黑尾白曰黑層其八褐色翎端有二層金色點
曰僧
유상 遊賞
필운대 행화(杏花), 북둔의 복사꽃, 흥인문밖 버들(楊柳), 천연정(天然亭) 연꽃, 삼청동 탕춘대(蕩春臺)의 수석
(水石)이 술과 노래를 즐기려는 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도성의 둘레는 40리인데 이를 하루 만에 두루 돌면서 성 내외의 꽃과 버들을 감상하는 것을 좋은 구경거리로
여겼다. 이른 새벽에 오르기 시작하면 해질 무렵에 다 마치게 되는데 산길이 험하여 포기하고 돌아오는 경우
도 있다.
弼雲臺杏花北屯桃花興仁門外楊柳天然亭荷花三淸洞蕩春臺水石觴詠者多集于此都城周四十里一日遍巡周覽城內
外花柳者爲勝凌晨始登昏鍾可畢山路絶險有委頓而返者
노래와 광대 聲伎
북, 장구, 해금, 피리, 단소, 대금 등으로 합주하는 것을 타풍류(打風流)라고한다. 선전관(宣傳官)에 적을 둔 것을
내취(內吹)라고 하고 장용영(壯勇營)11) ․훈련도감 ․ 금위영 ․ 어영청에 속한 것을 세악수(細樂手)라고 한다.
이원(梨園)12)의 속악부(俗樂部)에도 이것이 있다.
노래는 청탁(淸濁)의 두 가지 음이 있는데 이것을 변화시킨 중대엽(中大葉)13),삭대엽(數大葉)14) 등의 명칭이
있다. 엽(葉)은 강(腔)이라고 하는데, 곡조를 말한다. 춤은 반드시 대무(對舞)를 추는데 춤사위는 남자는 소매로,
여자는 손으로 한다.
내의원(內醫院)과 혜민서(惠民署)에는 의녀(醫女)를 두었고, 공조(工曹)와 상의원(尙衣院)에는 침선비(鍼線婢)
를 두었다. 모두 관동(關東)과 삼남(三南)지역에서 뽑은 기녀들이다. 잔치가 있을 때 불러서 가무를 시킨다.
내의원(內醫院)의 의녀는 검은 비단으로 만든 가리마(加里麼)를 쓰고 다른 기녀들은 감은베로 가리마를 삼는다.
가리마라는 것은 우리말로 씌우개[羃]로 서간 봉투 같은 형태여서 머리카락을 가릴 수 있다.
연극은 산희(山戱)와 야희(野戱) 양부(兩部)로 나뉘어 나례도감(儺禮都監)에 속해 있다.
산희는 시렁을 매어 장막을 친 무대에서 사자, 범, 만석중의 춤을 춘다. 야희는 당녀(唐女)와 소매(小梅)로 분장
하고 춤을 춘다. 만석은 고려 중 이름이고 당녀는 고려 때 예성강(禮成江)가에 살던 중국 창녀다.
소매는 옛날 미녀의 이름이다.
皷腰皷奚琴橫篴15)小篥合奏謂之打風流籍係宣傳官廳曰內吹壯勇營訓局禁御二營曰細樂手梨園俗樂部亦有之歌
用淸濁二音轉變有中大葉數大葉等名葉猶言腔也舞必對舞男拂袖女翻手內醫院惠民署有醫女工曹尙衣院有鍼線
婢皆關東三南選上妓也宴集招致歌舞內醫院醫女戴黑緞加里麼餘用黑布爲之加里麼者方言羃也其形如書套可以羃
䯻演劇有山戱野戱兩部屬於儺禮都監山戱結棚下帳作獅虎曼碩僧舞野戱扮唐女小梅舞曼碩高麗僧名唐女高麗時禮
成江上有中國倡女來居者小梅亦古之美女名
도희 賭戱
투전(投箋)은 지패(紙牌) 같은 것으로 사람 ․ 물고기 ․ 새 ․ 꿩 ․ 별 ․ 말 ․ 노루 ․ 토끼 등 1부터 9까지 있고 각각
에는 장(將)이 있는데 인장(人將)은 황(皇), 즉 황제이고 어장(魚將)은 용(龍), 조장(鳥將)은 봉(鳳), 치장(雉將)
은 매[鷹], 성장(星將)은 극(極), 즉 북극성, 마장(馬將)은 수레[乘], 장장(獐將)은 호(虎), 토장(兎將)은 취(鷲)다.
모두 여든 가지 패를 팔목(八目)이라고 한다. 이를 둘로 나누어 사람 ․ 물고기 ․ 새 ․ 꿩은 노(老)로, 별 ․ 말 ․ 노루 ․
토끼는 소(少)로 사용한다. 투전의 글자는 기괴하여 전서(篆書) 같기도 하고 초서 같기도 하다.
投箋者紙牌類也人魚鳥雉星馬獐兎自一至九人將曰皇魚將曰龍鳥將曰鳳雉將曰鷹星將曰極馬將曰乘獐將曰虎兎將
曰鷲凡八十葉號爲八目人魚鳥雉用老星馬獐兎用少箋字似篆似草奇恠
시포 市舖
서울에는 종가(鍾街)를 끼고 큰 점포가 있어 각기 비단, 명주, 종이, 베 등을 팔고, 그 나머지는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무릇 장을 보는 사람들은 아침 일찍 배오개[棃峴]와 소의문(昭義門) 밖으로 모였다가 정오경에 종가로
모인다. 장안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은 동부채칠패어(東部菜七牌魚)라고 하여 동부에 채소가, 칠패에 생선이
많다. 남산 아래에서는 술을 잘 빚고 북부에서는, 떡집이 많다고 하여 남주북병(南酒北餠)이라는 속담도 생겼다.
약포(藥舖)는 갈대로 만든 발을 내려뜨리고 ‘신농유업(神農遺業)’, ‘만병회춘(萬病回春)’ 등을 쓴 기를 걸어놓는다.
약을 파는 사람들은 봉사(奉事)라고 불린다.
緞紬紙布諸大舖挾鍾街而居餘皆散處凡趨市者晨集于棃峴及昭義門外午集于鍾街一城之所需者東部菜七牌魚爲盛
南山下善釀酒北部多賣餠家俗稱南酒北餠藥舖埀葦簾揭神農遺業萬病回春等號賣藥者皆稱奉事
시문 詩文
어린 아이들에게는 우선 주흥사(周興嗣)16)의 천자문(千字文)17)을 가르치고 다음으로는 원나라 사람
증선지(曾先之)가 쓴 사략(史略)을 배우게 한다. 송나라 사람 강소미(江少微)의 통감(通鑑)이나
소학(小學)을 가르치고 난 후에는 다른 책을 가르친다.
봄과 여름에는 초본당시(抄本唐詩)를 읽는데, 송지문(宋之問)의 한식시(寒食詩)가 맨 먼저 나온다.
시의 첫 구절이 “말 위에서 한식을 만나다(馬上逢寒食).”로 되어 있어 책 이름을 마상당음(馬上唐音)이
라고 속칭한다.
여항에서는 전등신화(剪燈新話)를 제일 좋아하는데, 이두문자를 익히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전등신화는 원나라 학자인 구우(瞿佑)가 편찬한 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수호자(埀胡子) 임기(林芑)가
주해를 달았다.
유생들은 여름 과제로 시부(詩賦)를 짓는데, 산의 절이나 들의 정자에 모이는 것을 접(接)이라고 한다.
시는 제목 중에 운(韻) 자로 한 자를 찍어 20개의 운을 만드는데 5운과 6운을 입제(立題)라 하고, 7운과 8운을
포두(鋪頭), 9운과 10운을 포서(鋪叙)라고 하여 조금씩 층절(層節)을 변화시키다가 회제(回題)에 이른다.
부(賦)는 30개의 운을 돌리는데, 7운과 8운을 파제(破題), 9운과 10운을 포두(鋪頭)라고 하는 것 말고는 시의
경우와 대략 동일하다.
시율(詩律)을 속칭 풍월(風月)이라고 하는 것은 음풍영월(吟風詠月)을 말하는 것이다.
잔치에 모여 운자를 집고 즐겨 청색, 황색, 홍색, 백색의 측리(側理)18), 취우(翠羽)19) 등 전지(箋紙)에 폭을
이어 베껴 나간다.
小兒先授周興嗣千文次曾先之史略少微通鑑或小學以及於他書春夏讀抄本唐詩以宋之問寒食詩爲首俗號馬上唐音
閭巷最愛剪燈新話以其有助於吏文也剪燈新話元瞿佑撰東士埀胡子林芑註解儒生夏課詩賦聚於山寺野亭曰接詩押
題中一字二十韻第五六曰立題第七八曰鋪頭第九十曰鋪叙稍變層節至於回題賦轉三十韻第七八曰破題第九十曰鋪
頭餘與詩略同詩律俗稱風月吟風詠月之謂也宴集拈韻喜用복黃紅白側理翠羽等箋聯幅而寫之
글씨와 그림 書畵
글씨에는 촉체(蜀體)가 있는데, 조송설(趙松雪)의 서체를 말한다. 고려 충선왕(忠宣王)이 원나라 성종(成宗)의
부마(駙馬)로 태위(太尉)에 진작되어 심양왕(瀋陽王)으로 연경에 머물고 있을 때 조송설이 드나들었으므로
그의 필적이 많았다. 그것이 우리나라로 들어와 지금도 그 서체를 본받는다. 촉체라고 한 것은 초체(肖體)를
잘못 말한 것이고 초(肖)자는 조(趙)자의 반쪽이다. 또한 액체(額體)라는 것이 있는데, 원나라 중 설암(雪菴)의
서체로 편액의 표제 글씨로 적당하여 이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지금도 설암이 쓴 병위삼첩(兵衛森帖)20)
이라는 서첩이 유행한다. 비백서(飛白書)라는 서체는 버드나무 가지를 깎아 그 끝을 가른 다음 먹을 묻혀 ‘효(孝) ․
제(悌) ․ 충(忠) ․ 신(信) ․ 예(禮) ․ 의(義) ․염(廉) ․ 치(耻)’ 등의 글자를 쓰는 것인데, 점찍기, 긋기, 파임, 삐침 등
을 임의로 하여 물고기, 게, 새우, 제비 등을 형상을 만들기도 한다.
벽에는 종규가 귀신을 잡는 그림(鍾馗捕鬼圖), 신선이 사슴을 탄 그림(仙人騎鹿圖)을 건다. 병풍그림으로는
금강일만이천봉(金剛一萬二千峯) 그림이나 관동팔경(關東八景) 그림이 있고, 소병(小屛)으로는 화조(花鳥)나
나비 그림을 그리며, 혼례병풍(婚屛)으로는 백자도(百子圖),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요지연도(瑤池宴圖)
등의 그림이 있다. 공식 잔치에는 제용감(濟用監)에서 제작한 모란대병(牡丹大屛)을 사용하는데, 사족들이 혼례
때 빌려 쓰기도 한다.
書有蜀體謂趙松雪也高麗忠宣王以元成宗時駙馬進爵太尉瀋陽王留燕邸松雪遊王門故筆蹟多東來至今所書兵衛
森帖行於世飛白書削柳枝歧其端蘸墨寫孝悌忠信禮義廉耻等字點畫波拂隨意效其體蜀體者肖體之訛也肖卽趙字
之半也又有額體元僧雪菴體也宜於題額故曰額體今有雪菴作魚蟹蝦燕狀壁揭鍾馗捕鬼仙人騎鹿圖屛畵金剛一萬
二千峯或關東八景小屛花鳥蛺蜨21) 婚屛百子圖郭汾陽行樂圖瑤池宴圖公讌用濟用監牡22)丹大屛士族婚禮亦借
用
혼의 婚儀
신랑은 백마를 타고 자색비단의 단령을 입고 서대(犀帶)를 띠고 겹날개가 달린 사모(紗帽)를 쓴다.
행렬 앞에는 청사등롱 네 쌍을 배치한다. 기러기애비(鴈父)는 주립(朱笠)에 흑단령(黑團領)을 입고 기러기를
받들고 천천히 앞서 걸어간다. 관청 하인들을 빌어 행차를 배호(陪護)한다.
신부는 황동(黃銅)으로 정수리를 장식한 팔인교(八人轎)를 탄다. 사면은 발을 드리고 행렬 앞에 청사등록 네
쌍과 안보(案袱) 한쌍을 배치시키는데, 대추, 포,옷상자, 경대는 머리에 이고 가고 부용향(芙蓉香)은 들고 간다.
계집종 12명은 단장을 곱게 하고 고운 옷을 입고 짝을 지어 앞에 가고 유모(乳母)는 검은 비단으로 만든 가리마
를 쓰고 말을 타고 뒤를 따르는데 또한 관청 하리들을 동원하여 배호(陪護)시킨다.
新郞跨白馬衣紫綃團領繫犀帶戴複翅紗帽前排복紗燈籠四對鴈父朱笠黑團領捧鴈徐步在前借諸司吏隸陪護籠街
新婦乘黃銅頂八人轎四面垂簾前排복紗燈籠四對案袱一對戴棗脩衣凾鏡臺擎芙蓉香十二婢靚粧麗服作雙前導乳
母戴黑繒羃羅跨馬隨後亦用吏隸陪護籠街
유가 遊街
선비가 급제했다는 방문이 걸리면 유가를 하는데, 세악수(細樂手), 광대(廣大),재인(才人)을 동원한다.
광대란 창우(倡優)를 말한다. 비단옷에 초립(草笠)을 쓰고 채화(綵花)를 꽂고 공작 깃털을 들고 난무(亂舞)를
하며 재담을 늘어놓는다. 재인은 줄을 타고 재주를 넘는 등 온갖 유희를 벌인다.
進士及第放榜遊街帶細樂手廣大才人廣大者倡優也錦衣黃草笠揷綵花孔雀羽亂舞詼調才人作踏索筋斗諸戱
가도 呵導
재상이나 시종신하의 행차를 알리는 가도(呵導) 소리는 웅장하고 맑고 거세기가 각기 다르다.
그 앞을 지나가거나 말을 타고 있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거나 혹은 소매를 저으며 꿇어앉아있지 않은 자는 우선
길가 집에 잡아 가두었다가 치죄한다 . 초헌(軺軒) 가마나 말을 타고 문을 드나들 때마다 종들이 일제히 삷우
[白右]라고 외치는데, 우(右)라고 한 것은 위를 뜻한 것이고 백(白)이란 것은 모자가 문 상방(上枋)에 부딪힐까
염려해서다. 이 때문에 이후로도 폐기되지 않은 의절(儀節)이 되었다.
卿宰侍從呵導聲雄渾淸激各殊有犯前導或騎馬含烟掉袂不坐者並拘路傍舍拿治乘軒坐馬出入門衆隸齊聲白右右
者上也白者慮其帽礙於楣也以爲不可廢之儀節
세시歲時
원일 元日
이날은 남녀가 모두 새 옷을 입는데 이를 세장(歲粧)이라고 한다. 친척 어른들을 찾아가 절하는 것은 세배(歲拜),
시절음식으로 대접하는 것은 세찬(歲饌), 그때 쓰는 술은 세주(歲酒)다. 세주는 데우지 않는데, 봄을 맞이하는
의미를 갖는다. 부녀자들끼리는 곱게 차린 어린 계집종을 보내 좋은 말로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데,
이를 문안비(問安婢)라고 한다. 관직을 가진 집에서는 대청 위에 옻칠한 상을 비치해 두어 부리는 아전들이
이름을 적은 종이를 두고 가게 하는데, 이를 세함(歲啣)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왕기(王錡)의 우포잡기(寓圃雜記)23)에“서울 풍속에 매번 설날이 되면 주인은 하례를 위해
모두 집을 나가고 단지 백지 장부와 붓과 벼루를 책상 위에 두어 하객이 와도 장부에 이름만 적고 갈 뿐 맞이
하고 보내는 일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세함의 시초인 것 같다.
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추 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을 떡국 몇 그릇
먹었냐고 할 정도다. 내가 아는 바로는 육방옹(陸放翁)의 「세수서사시(歲首書事詩)」24) 주(註)에 “시골 풍속
으로 설날 행사에 반드시 탕병(湯餠)을 사용하는데, 이를 동혼돈(冬餛飩), 연박탁(年餺飥)이라고 한다.”고 했다.
수성선녀도(壽星仙女圖)나 직일신장도(直日神將圖) 같은 것을 세화(歲畵)라고 한다. 또한 금갑(金甲)의 두
장군을 그린 그림이 있는데, 길이가 한 길이 넘으며 하나는 도끼를 들고 하나는 절월(節鉞)을 들었다.
이것을 궁궐문 양 문짝에 거는데, 이를 문배(門排)라고 한다. 또한 꿰맨 도포에 검은 모자를 쓴 상을 중합문
(重閤門)에 붙이기도 한다. 임금의 내외척 및 여항에서도 또한 이를 얻어 붙이는데, 그림은 문짝 크기에 따르고,
작은 문 상방(上枋)에는 또 귀신 머리를 그려붙인다. 세속에서는 금갑을 입은 두 장군은 울지공(尉遲恭)과
진숙보(秦叔寳)이고 꿰맨 도포에 검은 모자를 쓴 자는 당나라 학자인 위정공(魏鄭公)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송나라 학자인 송민구(宋敏求)가 쓴 춘명퇴조록(春明退朝錄)25)에 “도가(道家)에서 천문의
수위인 금갑장군을 그릴 때 갈장군(葛將軍)은 깃발을 들고 주장군(周將軍)은 절월을 들도록 주정하였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문배 그림이 갈주 두 장군과 유사한 것을 보면 세속에서 이를 전기(傳奇)26) 중에 나오는
당나라 태종 때의 일이라고 억지로 붙인 것으로 보인다.
붉은 싸리나무 두 토막을 각각 반으로 쪼개어 네 쪽으로 만든다. 길이는 세 치 가량인데 혹 콩윷이라고 하여
콩같이 작게 만들기도 한다. 이와 같이 만든 윷을 던져 내기하는 놀이를 윷놀이[柶戱]라고 한다.
윷을 던져서 네 쪽이 다 엎어지면 모(牡)27), 네 쪽이 다 잦혀지면 윷[忸]28), 세 쪽이 엎어지고 한 쪽이 잦혀
지면 도(徒), 두 쪽이 엎어지고 두 쪽이 잦혀지면 개(个)29), 한 쪽이 엎어지고 세 쪽이 잦혀지면 걸(傑)30)이
라고 한다. 윷판에는 29개의 동그라미를 그린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던지는데 각각 말 네 개씩 쓴다.
도는 한 밭씩 가고, 개는 두 밭, 걸은 세 밭, 윷은 네 밭, 모는 다섯 밭씩 각각 간다. 밭 중에는 돌아가는 길과
질러가는 길이 있어 말이 빨리 가는가 늦게 가는가에 따라 내기를 결정한다. 이 놀이는 정초에 가장 성행한다.
내 생각에는 설문(說文)31)에 사(柶)는 비(匕)라고 하였는데, 특히 네 개의 나무라는 뜻을 취하여 ‘사희
(柶戱)’라고 했다.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32)에서는 윷은 내기놀음[攤戱]이니 즉 저포
(樗蒲)33)라고 했다. 그러므로 윷놀이는 즉 저포의 일종이나 저포라고 할 수는 없다. 세속에서는 설날에 윷을
던져 얻은 괘(掛)로 새해의 길흉을 점치는데 대개 세 번을 던져 64괘 중 하나에 배정한다.
각 괘에는 다음과 같은 요사(繇辭)34)가있다.
윷점 掛(괘) 요사(繇辭)
도․도․도 乾(건) 兒見慈母아이가 어머니를 만난다.
도․도․개 履(리) 鼠入倉中쥐가 창고에 들어간다.
도․도․걸 同人(동인) 昏夜得燭어두운 밤에 불을 얻는다.
도․도․모 无妄(무망) 蒼蠅遇春파리가 봄을 만난다.
윷과 모는 같은 것으로 여긴다.
66 조선대세시기 Ⅲ
도․개․도 姤(구) 大水逆流큰 물이 거슬러 흐른다.
도․개․개 訟(송) 罪中立功죄를 짓고있는 상황에서 공을 세운다.
도․개․걸 遯(둔) 飛蛾撲燈불나방이 등불에 부딪친다.
도․개․모 否(부) 金鐵遇火금과 쇠가 불을 만난다.
도․걸․도 夬(쾌) 鶴失羽翮학이 날개를 잃는다.
도․걸․개 兌(태) 飢者得食굶주린 자가 밥을 얻는다.
도․걸․걸 革(혁) 龍入大海용이 큰 바다로 들어간다.
도․걸․모 隨(수) 龜入笱中거북이가 통발 속으로 들어간다.
도․모․도 大過(대과) 樹木無根나무에 뿌리가 없다.
도․모․개 困(곤) 死者復生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
도․모․걸 咸(함) 寒者得衣추운 자가 옷을 얻는다.
도․모․모 萃(췌) 貧人得寳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는다.
개․도․도 大有(대유) 日入雲中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간다.
개․도․개 睽(규) 霖天見日장마에 해를 보다.
개․도․걸 離(리) 弓失羽箭활이 화살을 잃는다.
개․도․모 噬嗑(서합) 鳥無羽翰새의 날개가 없다.
개․개․도 鼎(정) 弱馬駄重약한 말이 짐이 무겁다.
개․개․개 未濟(미제) 鶴登于天학이 하늘에 오르다.
개․개․걸 旅(려) 飢鷹得肉굶주린 매가 고기를 얻다.
개․개․모 晋(진) 車無兩輪수레에 양쪽 바퀴가 없다.
개․걸․도 大壯(대장) 嬰兒得乳어린아이가 젖을 물다.
개․걸․개 歸妹(귀매) 重病得藥깊은 병에 약을 얻다.
개․걸․걸 豊(풍) 蝴蝶得花나비가 꽃을 얻다.
개․걸․모 震(진) 弓得羽箭활이 화살을 얻다.
개․모․도 恒(항) 拜見踈賓오래 만나지 못한 손님과 만나다.
개․모․개 解(해) 河魚失水물고기가 물을 잃다.
개․모․걸 小過(소과) 水上生紋물 위에 무늬가 일어난다.
개․모․모 豫(예) 龍得如意용이 여의주를 얻는다.
걸․도․도 小畜(소축) 大魚入水큰 고기가 물에 들어간다.
걸․도․개 中孚(중부) 炎天贈扇더위에 부채를 얻다.
걸․도․걸 家人(가인) 鷙鷹無爪매가 발톱이 없다.
걸․도․모 益(익) 擲珠江中강에 구슬을 던지다.
걸․개․도 巽(손) 龍頭生角용의 머리에 뿔이 나다.
걸․개․개 渙(환) 貧而且賤가난하고 또 천하다.
걸․개․걸 漸(점) 貧士得祿가난한 선비가 녹을 얻다.
걸․개․모 觀(관) 猫兒逢鼠고양이가 쥐를 만나다.
걸․걸․도 需(수) 魚變成龍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다.
걸․걸․개 節(절) 牛得蒭荳소가 여물과 콩을 얻다.
걸․걸․걸 旣濟(기제) 樹花成實나무의 꽃이 열매를 이룬다.
걸․걸․모 屯(둔) 沙門還俗중이 속세로 돌아간다.
걸․모․도 井(정) 行人思家나그네가 집을 생각하다.
걸․모․개 坎(감) 馬無鞭策말에 안장과 채찍이 없다.
걸․모․걸 蹇(건) 行人得路행인이 길을 얻다.
걸․모․모 比(비) 日照草露해가 풀의 이슬을 비추다.
모․도․도 大畜(대축) 父母得子부모가 아들을 얻다.
모․도․개 損(손) 有功無賞공을 세우나 상이 없다.
모․도․걸 賁(분) 龍人深淵용이 깊은 연못에 들어간다.
모․도․모 頤(이) 盲人直門소경이 문으로 바로 들어가다.
모․개․도 蠱(고) 暗中見火어둠 속에서 불을 보다.
모․개․개 蒙(몽) 人無手臂사람이 손과 팔이 없다.
모․개․걸 艮(간) 利見大人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
모․개․모 剝(박) 角弓無弦각궁(角弓)에 활줄이 없다.
모․걸․도 泰(태) 耳邊生風귓가에서 바람이 일어난다.
모․걸․개 臨(임) 穉兒得寳어린아이가 보배를 얻는다.
모․걸․걸 明夷(명이) 得人還失사람을 얻었다가 도로 잃는다.
모․걸․모 復(복) 亂而不吉어지러워 길하지 못하다.
모․모․도 升(승) 生事茫然살 일이 아득하다.
모․모․개 師(사) 魚呑釣鉤물고기가 낚시를 삼킨다.
모․모․걸 謙(겸) 飛鳥遇人나는 새가 사람을 만난다.
모․모․모 坤(곤) 哥哥得弟형이 동생을 만난다.
男女悉著新衣曰歲粧往拜親戚長者曰歲拜饋以時食曰歲饌酒曰歲酒歲酒不温寓迎春之意婦女遣靚粧少婢以吉語相
問曰問安婢仕宦家置髹案於堂上司吏摺紙具名來置案上而去號歲啣按王錡寓圃雜記京師風俗每正朝主人皆出賀惟
置白紙簿並筆硯于几賀客至書其名無迎送也此即歲啣之始粳米餠按摩成條候硬橫截薄如錢烹調雉肉胡椒屑爲歲饌
之不可缺者至稱添齒者爲餠湯第幾椀按陸放翁歲首書事詩註鄕俗歲日必用湯餠謂之冬餛飩年餺飥壽星仙女直日神
將圖謂之歲畵又金甲二將軍像長丈餘一持斧一持節揭于宮門兩扇曰門排又綘袍烏帽像揭重閤門戚里及閭巷亦得爲
之畵隨門扇而小門楣又粘畵鬼頭俗以金甲者爲尉遲恭秦叔寳綘袍烏帽爲魏鄭公按宋敏求春明退朝錄道家奏章圖天
門守衛金甲人葛將軍掌旌周將軍掌節今之門排似卽葛周二將軍而世俗乃以傳奇中唐文皇時事傅會之爾赤荆二條剖
作四隻長可三寸許或小如半菽擲之號爲柶戱四俯曰牡四仰曰忸三俯一仰曰徒二俯二仰曰个一俯三仰曰傑局畵二十
九圈二人對擲各用四馬徒行一圈个行二圈傑行三圈忸行四圈牡行五圈圈有迂捷馬有遲疾以决輸贏元日此戱最盛按
柶說文云匕也特取四木之義謂之柶戱李睟35)光芝峯類說以爲攤戱攤卽樗蒲也柶戱者樗蒲之類也而不可便謂樗蒲也
世俗元日又擲柶占新歲休咎凡三擲配以六十四卦有繇辭徒徒徒乾兒見慈母徒徒个履鼠入倉中徒徒傑同人昏夜得燭
徒徒牡无妄忸與牡同用蒼蠅遇春徒个徒姤大水逆流徒个个訟罪中立功徒个傑遯飛蛾撲燈徒个牡否金鐵遇火徒傑徒
夬鶴失羽翮徒傑个兌飢者得食徒傑傑革36)龍入大海徒傑牡隨龜入笱37)中徒牡徒大過樹木無根徒
牡个困死者復生徒牡傑咸寒者得衣徒牡牡萃貧人得寳个徒徒大有日入雲中个徒个睽霖天見日个徒傑離弓失羽箭个
徒牡噬嗑鳥無羽翰个个徒鼎弱馬駄重个个个未濟鶴登于天个个傑旅飢鷹得肉个个牡晋車無兩輪个傑徒大壯嬰兒得
乳个傑个歸妹重病得藥个傑傑豊蝴蝶得花个傑牡震弓得羽箭个牡徒恒拜見踈賓个牡个解河魚失水个牡傑小過水上
生紋个牡牡豫龍得如意傑徒徒小畜大魚入水傑徒个中孚炎天贈扇傑徒傑家人鷙鷹無爪傑徒牡益擲珠江中傑个徒巽
龍頭生角傑个个渙貧而且賤傑个傑漸貧士得祿傑个牡觀猫兒逢鼠傑傑徒需魚變成龍傑傑个節牛得蒭荳傑傑傑旣濟
樹花成實傑傑牡屯沙門還俗傑牡徒井行人思家傑38)牡个坎馬無鞭策傑牡傑蹇行人得路傑牡牡比日照草露牡徒徒大
畜父母得子牡徒个損有功無實牡徒傑賁龍人深淵牡徒牡頤盲人直門牡个徒蠱暗中見火牡个个蒙人無手臂牡个傑艮
利見大人牡个牡剝角弓無弦牡傑徒泰耳邊生風牡傑个臨穉兒得寳牡傑傑明夷得人還失牡傑牡復亂而不吉牡牡徒升
生事茫然牡牡个師魚呑釣鉤牡牡傑謙飛鳥遇人牡牡牡坤哥哥得弟
여항의 부녀들은 맨 널빤지 짚단 위에 가로로 놓고 양쪽 끝에 마주 보고 서서 구르며 높이 뛰는데, 차고 있는
패물이 울리는 소리가 쟁쟁하고 지쳐서 떨어져 나가면 이를 보며 재미있다고 한다.
이를 초판희(超板戱), 즉 널뛰기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주황(周煌)39)이 쓴 유구국기략(琉球國記略)에 “그곳 부녀들은 널빤지 위에서 춤을 추는데
이를 판무라고 한다.”고 한 것에서 우리나라 널뛰기와 같은 종류임을 알 수 있다.
조선 초기에 유구국에서 입조(入朝)할 때 혹 누군가가 우리 것을 보고 좋아서 따라 한 것은 아닐까.
중들이 북을 지고 거리로 나와 치고 다니는 것을 법고(法皷)라고 한다. 모연문(募緣文)을 펼쳐놓고 방울을 두드
리며 염불하는 자도 있고, 쌀자루를 메고 대문 근처에서 재(齋) 올리라고 소리치기도 한다.
또한 속세의 떡 두 개를 중의 떡 한 개와 바꾸는데, 풍속에 중 떡을 얻어 이를 어린아이에게 먹이면 마마,
즉 두종(痘腫)을 잘 넘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임금 때40) 조정에서 중들을 도성(都城)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성 밖에서나 이런 풍속이 남아 있다.
남녀가 일 년 동안 머리를 빗을 때 납지대(蠟紙帒)41)를 써서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빗접 안에 넣어 두었다가
반드시 설날 해질 무렵을 기다려 문 앞에서 태운다. 내 생각에는 의약에 정통했던 당나라 사람 손사막(孫思邈)42)
이 쓴 천금방(千金方)에 “정월 인일(寅日)43)에 백발을 태우면 길하다.”고 하였는데, 설날에 머리카락을
태우는 풍속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야광이라는 이름의 귀신은 밤에 인가에 들어와 신을 훔쳐가기 좋아한다. 주인은 이를 불길하게 여기고 아이들은
겁을 먹어 신을 감추고 불을 끄고 일찍 잔다. 마루 벽 위에는 체를 걸어 두는데, 그 이유는 야광이 집에 들어왔다
가도 체 구멍을 세다가 다 세지 못하고 닭이 울면 이내 도망간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혹 어떤 사람은 야광은
여윈 귀신[癯鬼]이므로 구광(癯光)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여위었다는 구(癯)의 뜻과 야(夜)가 우리말로는 비슷하다는 것이 그 근거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것은 잘못된
것으로 야광은 즉 약왕(藥王)의 음전(音轉) 현상일 뿐이고, 약왕의 모습이 아이들이 두려워할 만큼 추해서 아이
들을 일찍 재우기 위해 만든 것이다.
閭巷婦女用白板橫駕藁枕上分立兩端激盪而跳數尺許環珮琤然以困頓爲樂號爲超板戱按周煌琉球國記略其婦女
舞於板上曰板舞與此相類國初琉球入朝抑或慕而效之者歟緇徒負大皷入街巷擂動謂之法皷或展募緣文叩鈸念佛
或荷米帒沿門唱齋又用一餠換俗二餠俗得僧餠飼小兒以爲善痘當宁朝禁僧尼不得入都門城外尙有此風男女一年
梳頭用蠟紙帒貯退髮留梳函中必待44)是日黃昏燒於門前按孫思邈千金方正月寅日燒白髮吉元日燒髮昉於是鬼名
夜光夜入人家喜偸鞋鞋主不吉小兒畏之藏鞋滅燈早宿廳壁上縣篩夜光計其孔不盡鷄鳴乃去云或言夜光者癯鬼也
當曰癯光癯與夜東語相近也按此說非也夜光卽藥王之音轉也藥王像醜故怖兒使之早宿
해일 ․ 자일 ․ 사일 亥子巳日
정월의 첫 번째 해일을 돼지날, 첫 번째 자일을 쥐날이라고 한다. 조선왕조의 오랜 행사로서 궁중에서 낮은
지위의 젊은 관리들 수백 명이 잇달아 횃불을 땅에 끌면서 “돼지 그슬리자, 쥐를 그슬리자.” 하고 외치며 돌아
다녔다. 임금은 태운 곡식을 주머니에 넣어 이것을 재상들과 근시들에게 나누어 주며 풍년을 기원하는 뜻을
표시하였는데, 이 이후로 폐지되었다가 정조 임금이 등극하자 이 옛 제도를 복구하여 주머니를 하사하였다.
주머니는 비단으로 만들었다. 돼지주머니는 둥글고 쥐주머니는 길다. 쥐날에 여항에서는 또한 콩을 볶으면서
주문을 외는데 “쥐주둥이 지진다. 쥐주둥이 지진다.”고 한다. 돼지날에 콩가루로 얼굴을 씻으면 검은 얼굴색이
점점 희어진다고 하는데 이것은 돼지 빛깔이 검기 때문에 그 반대의 뜻을 취한 것이다.
正月上亥爲豕日上子爲鼠日國朝故事宮中小宦數百聯炬曳地呼燻豕熏45)鼠燒糓種盛于囊頒賜宰執近侍以眎祈年
之意頒囊尋廢矣當宁御極復頒囊用錦製亥囊圓子囊長子日閭巷亦炒豆呪云鼠嘴焦鼠嘴焦亥日作豆屑澡面黑者漸
白豕色黑故反取其義也巳日不理髮忌蛇入宅
인일 人日
인일에 임금은 각신(閣臣)들에게 동인승(銅人勝)을 나누어 준다. 이것은 작고 둥근 거울 같은 것으로 자루가
달려있고 신선을 새겨 넣었다. 인일과 3월 삼짇날, 7월 칠석, 9월 중양절에 과거를 실시하여 인재를 취하는 것을
절제(節製)라고 한다.
頒銅人勝于閣臣如小圓鏡有柄鏤仙人是日及重三重七重九皆設科取士曰節製
입춘 立春
경기도 산골지방 여섯 고을에서는 움파[葱芽] ․ 산겨자[山芥] ․ 승검초[辛甘菜]등을 임금에게 진상한다.
산겨자는 이른 봄에 눈이 녹을 무렵 산 속에서 자생하는 겨자다. 더운물에 데쳐 초장에 무쳐 먹으면 맛이 매우
맵기 때문에 고기를 먹은 뒤에 먹어야 좋다. 승검초는 움집에서 키운 당귀(當歸)의 싹인데 은비녀가락같이
맑으며 꿀을 그 사이에 끼워 먹으면 맛이 매우 좋다.
승정원에서 초계문신과 시종대신에게 궁궐에서 쓸 춘첩자를 지어 올리게 하고, 제학에게는 운을 내고 채점
하도록 한다. 설날 연상시(延祥詩)와 단오 때의 단오첩(端午帖)도 모두 이 예에 따른다.
여항 시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련 문구를 썼다.
◦수여산(壽如山) 부여해(富如海): 수명은 산 같이 재물은 바다 같이 되라.
◦거천재(去千災) 래백복(來百福): 온작 재앙은 가고 모든 복은 오라.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입춘에 대길하고 계절따라 다경하라.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평안하니 집집마다 넉넉하다.
◦요지일월(堯之日月) 순지건곤(舜之乾坤): 요 임금 세월이고 순 임금 세상이어라.
◦애군희도태(愛君希道泰) 우국원년풍(憂國願年豊): 임금을 섬겨 큰 정치 희망하고 나라를 염려하며 풍년을
기원한다.
◦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 사방무일사(四方無一事): 천하는 태평한 봄이고 사방에 아무 일 없다.
◦국유풍운경(國有風雲慶) 가무계옥수(家無桂玉愁): 나라에 풍운의 경사 있고 집안에 땔거리 먹거리 걱정
없으라.46)
◦봉명남산월(鳳鳴南山月) 인유북악풍(麟遊北岳風): 봉황은 남산 달 아래서 울고 기린은 북악산 바람을 따라
노닌다.
◦재종춘설소(災從春雪消) 복축하운흥(福逐夏雲興): 재난은 봄눈처럼 사라지고 복은 여름구름처럼 일어나라.
◦유색황금눈(柳色黃金嫰) 이화백설향(梨花白雪香): 버드나무 빛깔은 황금처럼 곱고 배꽃은 흰눈처럼 향기롭다.
◦북당훤초록(北堂萱草綠) 남극수성명(南極壽星明): 어머님 근력 푸른 풀처럼 좋으시고 아버님 오래오래 사시라.
◦천상삼양근( 天上三陽近) 인간오복래(人間五福來): 하늘은 정월 봄이 되었으니 인간세계에 오복이 온다.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 땅을 쓸면 황금이 생기고 문을 열면 만복이 온다.
◦계호신세덕(鷄呼新歲德) 견폐구년재(犬吠舊年災): 닭 울음소리에 새해 덕이 들어오고 개 짖는 소리에 묵은해
재앙이 나간다.
◦문영춘하추동복(門迎春夏秋冬福) 호납동서남북재(戶納東西南北財): 대문으로는 사계절의 복을 맞이하고 방문
으로는 사방의 재물을 받아들인다.
◦육오배헌남산수(六鰲拜獻南山壽) 구룡재수사해진(九龍載輸四海珍): 여섯 마리의 자라는 만수를 바치고 아홉
마리 용은 사해의 재물을 실어 온다.
방문 상방에는 다음과 같은 단귀의 첩[單貼]을 붙인다.
◦춘도문전증부귀(春到門前增富貴): 봄이 문전으로 오니 부귀가 늘어난다.
◦춘광선도길인가(春光先到吉人家): 봄빛은 길한 사람 집에 먼저 온다.
◦상유호조상화명(上有好鳥相和鳴): 하늘에는 길한 새들이 서로 조화롭게 운다.
◦일춘화기만문미(一春和氣滿門楣): 봄날의 화기가 문 상방에 가득하다.
◦일진고명만제도(一振高名滿帝都): 이름을 높이 날려 장안에 가득하라.
사대부 집에서는 대부분 새로 글을 짓거나 혹은 옛 사람들의 아름다운 글을 따서 사용한다.
畿峽六邑進葱芽山芥辛甘菜山芥者初春雪消時山中自生之芥也熱水淹之調醋醬味極辛烈宜於食肉之餘辛甘菜者窨
養當歸芽也淨如銀釵股夾蜂蜜噉之甚佳承政院抄啓侍從製進殿宮春帖子牌召47)提學命韻考第元日延祥詩及端午
帖俱用是例閭巷市井通用對聯壽如山富如海去千災來百福立春大吉建陽多慶國泰民安家給人足堯之日月舜之乾坤
愛君希道泰憂國願年豊天下太平春四方無一事國有風雲慶家無桂玉48)愁鳳鳴南山月麟遊北岳風災從春雪消福逐夏
雲興柳色黃金嫰梨花白雪香北堂萱草綠南極壽星明天上三陽近人間五福來掃地黃金出開門萬福來鷄呼新歲德犬吠
舊年災門迎
春夏秋冬福戶納東西南北財六鰲拜獻南山壽九龍載輸四海珍門楣上單帖春到門前增富貴春光先到吉人家上有好鳥
相和鳴一春和氣滿門楣一振高名滿帝都士大夫多用新製或揀古人佳語
보름날 上元
찹쌀밥에 씨 발린 대추, 감떡, 그리고 찐 밤과 잣을 섞은 다음 다시 꿀 ․ 기름 ․간장 등으로 조리한 것을 약밥
[藥飯]이라고 하여 보름날의 좋은 음식으로 오래된 신라 풍속이다. 내 생각에는 동경잡기(東京雜記)49)에
“신라 소지왕 10년 정월15일에 왕이 천주사(天柱寺)에 행차했을 때 까마귀가 날아와 왕을 일깨워주어 반역을
꾀한 중을 사살한 일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풍속에 보름날 찰밥을 만들어 까마귀에게 먹임으로써 그 은혜를
보답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정월 14일 밤에 짚을 엮어 인형을 만들고 이를 ‘제웅’[處容]이라고 부른다. 제웅 머릿속에 동전을 감추어 둔다.
아이들이 밤새 남의 집 문을 두드리고 다니다가 주인이 문을 열고 제웅을 던져주면 이것을 잡아당기며 끌고
하다가 제웅 머리를 깨고 다투어 그 속에 둔 동전을 꺼내간다. 내 생각에는 문헌비고(文獻備考)50)에
“신라 때 헌강왕(憲康王)이 학성(鶴城)51)에서 유람할 때 동해바다 용이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임금 행렬 앞
에서 노래를 하고 춤을 추었다. 그중 한 아들이 행렬을 따라 서울로 들어왔는데, 그 이름이 처용으로 지금
장악원(掌樂院) 향악부(鄕樂部)에서 공연하는 처용무(處容舞)가 이것이다. 풍속에 맹인의 점을 믿어 그가
일월성과 수성(水星)이 명궁(命宮)52)에 든 사람은 모두 재액(災厄)이 있다고 하면 해당자는 종이를 잘라 해와
달 형상을 만들어 나무에 물려 지붕 용마루에 꽂기도 하고, 종이에 밥을 싸서 밤중에 우물 속으로 던져 액땜을
한다. 제일 꺼리는 것은 처용으로 이것이 명궁에 들면 짚으로 제웅을 만들어 길에 버려 액을 제거한다.
여자아이들은 나무를 깎아 청색, 홍색, 황색 등 색별로 칠한 후 채색실로 끈을 단 작은 호로병을 차고 다니다가
보름밤에 몰래 버림으로써 액땜을 한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밤이나 무를 깨물면서 일년 열두달 무사태평하게 해달라고 비는데, 이것을 부럼[嚼癤
(작절)]이라고 한다. 또 소주 한 잔을 마시면서 귀를 밝게 해달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섭정규(葉廷珪)53)가 쓴 해록쇄사(海錄碎事)에 “사일(社日)에 치롱주(治聾酒)를 마신다.”고
했는데, 지금 이 풍속이 보름으로 옮겨진 것 같다.
이날은 꼭두새벽부터 갑자기 상대방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라.”고 한다. 그래서 온갖 꾀를 내어 불러도
응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육방옹(陸放翁)의 시에 “정원에서 주사위 놀고 떠들며 새해맞이가 한창인데 춘곤
(春困) 파는 아이들은 새벽같이 일어난다.”54)고 하였는데, 그 시의 주석에 “입춘날 새벽에 서로 불러 춘곤을
판다.”고 한 것을 볼 때, 지금 풍속인 정월 보름날의 더위팔기도 이런 종류인 것 같다.
서울 도성의 북문을 숙청문(肅淸門)이라고 하는데 문은 항상 닫아두고 사용하지 않는다. 그곳은 물과 계곡이
무척 맑고 그윽하여 정월 보름 전에 여염집 부녀들이 이곳에서 세 번 놀고 가면 액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무명실을 자아 옷을 지으면 길한 징조가 있다고 하여 부녀자들은 보름날 자은 실을 선물로 서로 보낸다.
새벽에 종각 네거리에서 흙을 파다가 집 네 귀퉁이에 뿌려 묻거나 부뚜막에 바르는데, 부자 되기를 구하는 것
이다.55)
나물을 먹을 때 대개는 외꼭지나 말린 가지, 무 잎 등 버릴 것을 버리지 않고 모두 천천히 말려 두었다가 보름날
삶아 먹는데, 이렇게 하면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 날은 개에게 밥을 먹이지 않는다. 개에게 밥을 먹이면 파리가 많이 끓어 야위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속담에 우스갯소리로 굶는 것을 “개 보름 쇠듯 한다.”고 한다.
봄을 타느라 얼굴빛이 검어지고 야위는 아이는 정월 보름날 남의 집 밥을 백군데에서 빌어다가 절구를 타고
개와 마주앉아 개에게 한 술 먹이고 자기도 한술 번갈아 먹으면 다시는 그런 병을 앓지 않는다고 한다.
짚을 군대깃발인 둑기[纛旗] 모양으로 묶고 장대 끝에 매달아 집 곁에 세우고 새끼를 사방으로 벌려 고정
시킨다. 이것을 벼 낟가리[禾積]라고 한다. 조선시대 옛 행사 중에 시경(詩經) 「빈풍(豳風)」칠월(七月)56)
에 나오는 내용인 경작하고 수확하는 형상을 본 따 정월 보름날 대궐 안에서 좌우로 나누어 승부를 겨루었다.
이것도 아마 풍년을 기원하는 뜻으로 여항의 볏가릿대[禾竿]도 바로 이와 같은 행사인 것이다.
과일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두면 과일이 많이 열리는데 이것을 과일나무 시집보내기[嫁樹]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명나라 사람 서광계(徐光啓)가 쓴 농정전서(農政全書)57)에는 오얏나무에만 이 방법을 쓴다고
하였다. 삼문(三門)58) 밖의 주민들과 아현(阿峴) 주민들이 만리동 고개에서 돌을 던지며 서로 싸웠는데,
속설에 삼문 밖 편이 이기면 경기 일대에 풍년이 들고 아현편이 이기면 팔도에 풍년이 든다고 한다.
용산과 마포에 사는 불량소년들 중에는 패를 지어 와서 아현 편을 돕는다. 바야흐로 싸움이 한창 심해지면
고함소리가 땅을 흔들 정도가 되며 이마가 터지고 팔이 부러져도 후회하지 않는다. 관에서 가끔 이를 금하는
조치를 취한다. 성안의 아이들도 이를 본받아 하므로 행인들이 모두 돌에 맞을까 무서워 피해 돌아간다.
내 생각에는 당서(唐書) 「고려전(高麗傳)」59)에 “매년 정초에 군중들이 패수(浿水) 가로 모여 노는데 물과
돌을 서로 끼얹고 던지며 밀고 밀리기를 두세 번 하다가 그친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우리의 돌싸움[石戰]
풍속이 시작된 것 같다.
아이들은 액(厄) 자를 종이연에 써서 해가 질 때 줄을 끊어 날려 보낸다. 연은 댓가지를 뼈대로 하고 종이를
풀로 발라 마치 작은 키처럼 만든다. 연의 종류로는 오색연(五色鳶), 기반연(碁斑鳶), 묘안연(猫眼鳶), 작령연
(鵲翎鳶), 어린연(魚鱗鳶), 용미연(龍尾鳶) 등 이름이 특이하고 색이 번성하다.
중국에서는 연[風箏]60) 날리기를 늦은 봄의 놀이인데 우리나라는 동천(冬天), 즉 겨울철부터 정월보름까지만
즐긴다. 연 날리는 법은 한 곳으로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종횡으로 쓸고 흔들어 다른 연과 교차하여 줄을
많이 끊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연줄이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개 실을 합치고 아교를 문질러 백말꼬리
같이 매끈하게 만든다. 혹은 누런 차자로 물을 들인다. 바람을 거슬러 쨍쨍 울리는 줄이 남의 줄을 잘 끊는다.
심한 경우는 연줄에 사금파리 가루나 구리 가루를 바르기도 한다. 그러나 연줄 싸움은 교차시키는 능력이 중요
하다. 장안 소년 중에 연싸움을 잘 하기로 소문이 나면 왕왕 지체 높은 부자 집에 불려가기도 한다. 매년 정월
13일이나 14일에는 수표교(水標橋) 주변 위아래로 연싸움을 보러온 구경꾼들이 담을 쌓은 듯 모인다.
아이들은 연줄싸움을 하다가 혹 끊어진 연을 쫓아 담을 넘고 지붕에 올라서므로 사람들이 몹시 두려워하고
놀란다. 보름이 지나면 다시는 연날리는 일이 없다.
아이들은 명주실 한 가닥에 거위 솜털을 매어 바람에 날리는데, 이것을 고고매(苦苦妹)라고 부른다.
고고매란 몽고말로 봉황(鳳凰)이다.
해가 지면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오르는데, 이것을 달맞이[迎月]라고 한다. 달을 먼저 보는 사람이 길하다고
한다. 달이 뜨면 장안 사람들은 모두 종가로 나와 종소리를 듣고 각기 흩어져 여러 다리를 밟고 다닌다.
그러면 각병(脚病)이 낫는다고 한다. 대소 광통교(廣通橋)및 수표교 인기가 제일 좋다. 이날 저녁은 야금(夜禁)을
푸는 관례가 있다. 그래서 인산인해를 이루어 피리를 불고 북을 치고 노느라 떠들썩하다.
내 생각에는 육계굉(陸啓浤)의 북경세화기(北京歲華記)61)에 “정월 보름날 밤 부녀자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다리로 달려간다.”고 했다. 또 명나라 사람 우혁정(于奕正)이 쓴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62)에는 “정월 보름
날 밤에 부녀자들이 서로 이끌고 나와 돌아다니면서 질병을 없앤다고 하는데 이것을 백병쫓기[走百病]이라고
한다.”고 했다. 심방(沈榜)의 완서잡기(宛署雜記)63)에는 “정월 16일 밤에 부녀자들이 떼를 지어 놀았으며
대개 다리가 있는 곳에서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리를 건너갔는데, 이것을 ‘액을 건넜다.[度厄]’고 한다.”고 했다.
내 생각에는 이런것들이 우리나라 다리밟기 풍속의 유래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정월 보름날 밤 다리
밟기는 고려 때부터 내려오는 풍속인데 매우 성행하여 남녀들이 길거리를 메워 밤새도록 왕래가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법관이 이를 금지하고 체포하는데 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하였다. 지금 풍속에는 부녀자들이 다시는
다리밟기하는 일이 없어졌다.
糯米飯揉以棗肉杮餠蒸栗海松子更調蜂蜜芝麻油陳醬號藥飯爲上元佳饌新羅舊俗也按東京雜記新羅炤智王十年
正月十五日幸天柱寺有飛烏警告于王射殺謀逆僧國俗以上元作糯米飯飼烏報賽十四日夜結草偶號處容顱中藏銅
錢羣兒終夜打門喚處容主人開門擲之羣兒得便捶曳破顱爭錢按文獻備考新羅憲康王遊鶴城東海龍率七子歌舞於
駕前其一子隨駕入京名曰處容今掌樂院鄕樂部有處容舞是也俗信盲卜盲言日月及水星直命宮俱有災厄剪紙象日
月鉗以木揷屋脊以紙裹飯夜半投井中禳之最忌處容直星作草偶棄于道可禳童女珮旋木小葫蘆복紅黃各一用綵絲
爲綬上元夜半潜捐于道消厄淸晨嚼栗或蘿葍祝曰一年十二朔無事太平謂之嚼癤又飮燒酒一盞令人耳聰按葉廷珪
海錄碎事社日飮治聾酒今俗移於上元士女凌晨猝然相呼諾之則曰賣吾暑百計呼之不肯( 按陸放翁詩呼盧院落譁
新歲買困兒童起五更註立春未明相呼賣春困今俗賣暑亦此類也都城北門曰肅淸恒閉而不用澗壑淸幽上元前閭巷
婦女三遊此門謂之度厄繅木綿絲製衣吉祥婦女以上元絲相贈遺曉掘鍾閣十字街土傅竈財聚食菜者凡瓜顱茄皮蘿
葍之葉皆不棄徐徐曬乾以待上元烹食不病暑不飼犬飼之則多蠅而瘦俗戱餓者爲上元犬小兒春病黧瘠者上元乞百
家飯騎臼對犬而坐與犬一匙自噉一匙不復病束藁如纛狀冒竿首建屋傍張索把定稱禾積國朝故事正月望日大內象
豳風七月耕狀分左右角勝盖亦祈豊之意而閭巷禾竿亦其一事爾果樹歧枝閣石子則果繁謂之嫁樹按徐光啓農政全
書唯李樹用此法也三門外阿峴人飛石相鬪於萬里峴上俗云三門外勝則畿內豊阿峴勝則諸路豊龍山麻湖惡少結黨
救阿峴方其酣鬭64)時喊聲動地破額折臂亦不悔也當部往往禁斷城中羣兒亦效而爲之行人皆畏石回避按唐書高麗
傳每年初聚戱浿水之上以水石相濺擲馳逐再三而止此爲東俗石戰之始童子書厄字於紙鳶日暮斷送鳶制竹骨糊紙
微似箕狀五色或碁斑猫眼鵲翎魚鱗龍尾名色特繁中國風箏爲晩春之戱東俗自冬天至于上元且其飛法不住定一處
縱橫掃盪與他相交以多割爲快合絲淬膠淨如白馬尾或染梔65)黃凌風而呌者最善割甚者傅以磁末銅屑然在交法之
能否都下少年有以善交鳶噪名者豪貴家往往延致每上元前一兩日水標橋沿河上下觀交鳶者簇如堵墻羣童候斷搶
絲或追敗鳶踰墻越屋人多怖駭過上元後不
復飛鳶小兒用獨繭絲繫鵝毳順風而颺之號苦苦妹蒙古語鳳凰也黃昏持炬登高謂之迎月以先見月者爲吉月出後都
人悉出鍾街聽鍾散踏諸橋云已脚病大小廣通橋及水標橋最盛是夕例弛夜禁人海人城66)簫皷喧轟按陸啓浤北京歲
華記正月十五夜婦女俱出門走橋于奕正帝京景物略元夕婦女相率宵行以消疾病曰走百病沈榜宛署雜記十六夜女
羣遊凡有橋處三五相率以過謂之度厄此卽東俗踏橋所沿也芝峯類說云上元踏橋之戱始自前朝在平時甚盛士女騈
闐達夜不止法官至於禁捕今俗婦女無復踏橋者矣
2월 초하루 二月初一日
우리 임금(正祖)이 병진년(1796)에 재상들과 옆에서 모시는 시종(侍從)들에게 중화척(中和尺)이라고 부르는
자를 내렸다. 이 자는 반죽(斑竹) 및 붉은 물을 들인 향나무로 만들었다. 이제도는 중국의 중화절(中和節)
고사를 고쳐 시행한 것이다.
정월 보름날 세운 볏가릿대[禾竿]를 풀어내려 솔잎을 깔아 찐 떡을 나이 수대로 노비들에게 먹인다.
세속에서는 이 날을 노비일이라고 하는데 농사일이 이날부터 시작되므로 먹이는 것이라고 한다.
집안을 청소하고 자른 종이에 “향락각시속거천리(香娘閣氏速去千里)”67) 여덟자를 써서 서까래 위에 붙인다.
각시(閣氏)란 우리말로 여자라는 뜻으로 향랑각시는 노래기[馬陸]를 지칭한다.
노래기가 싫어 물리치려고 쓴 말이다.
當宁丙辰頒中和尺于宰執侍從尺用斑竹及紅染木制修中和節故事也卸下上元禾竿作松葉夾餠饋奴婢如其齒數俗
稱奴婢日東作伊始故饗此屬云灑掃堂宇剪紙書香娘閣氏速去千里八字粘椽上閣氏者東語女子也香娘閣氏蓋指馬
陸也惡而辟之之辭也
한식 寒食
서울 사람들이 묘를 찾는 날은 설날, 한식, 단오, 중추의 사명절(四名節)로 이 중 한식과 중추가 제일 성하여
사방 교외에서 성묘객으로 줄이 끊이지 않는다.
都人上冢用正朝寒食端午中秋四名節寒食中秋最盛四郊士女綿絡不絶
삼짇날 重三
진달래꽃을 따다 찹쌀가루와 섞어 둥근 떡을 만든 다음 참기름에 지진 것을 화전(花煎)이라고 한다.
采杜鵑花揉糯米粉作團糕煎以芝麻油號花煎
4월 초파일 四月八日
이날 손님을 초청하여 음식을 차릴 때 느릅잎 떡, 볶은 콩, 삶은 미나리 등을 내놓는다. 이것을 부처탄신일에
먹는 소찬이라고 한다. 또한 어린아이들은 동이에 물을 떠다가 등간(燈竿) 아래에 놓고 바가지를 물 위에 띄
우고 빗자루로 바가지 등을 두드리면 진솔한 소리를 내는데, 이것을 수고(水皷)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장원(張遠)의 오지(隩志)68)에 “서울 중들의 풍속 중에 염불하는 자들은 언제나 콩으로 그
횟수를 세었다가 사월 초파일 부처탄신일이 되면 그 콩을 볶고 소금을 살짝 뿌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먹기를 권하여 인연을 맺는다.”69)고 하였는데, 지금 콩 볶는 풍속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 같다.
또 생각에는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에 “정월 보름밤에 아이들이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될 때까지 북을
친다. 이것을 태평고(太平皷)라고 한다.”고 하였는데, 지금 풍속의 수고(水皷)는 태평고와 유사한 것으로
부처탄신일에 등석(燈夕) 행사가 있으므로 이 때로 옮겨온 것이다.
인가에서는 자녀의 수대로 등을 다는데 밝을수록 길하게 여긴다. 등을 다는 대는 대나무 큰 것 열 개를 겹쳐
묶어 완성한다. 이보다 더 사치스럽게 치장하는 경우는 오강(五江)에서 말 짐으로 실어온 돛대를 사용한다.
돛대 머리는 꿩 깃을 꽂아 장식하고 각색 깃발을 매달기도 하며 일월권(日月圈)을 꽂아 바람에 어지럽게 돌아
가게 만들기도 한다. 종가에 늘어선 시전들은 항상 크고 높은 것을 좋아하여 등 대에 새끼줄 수 십 개를 매달아
쓰러지지 않도록 일으켜 세운다. 왜소한 등 대를 세웠다가는 남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이날 밤은 관례에 따라
야간통금이 해제된다. 등 구경을 나온 사람들은 남산이나 북악산 같은 남쪽과 북쪽의 산록으로 올라가거나
혹은 퉁소와 북을 들고 시가를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내 생각에는 고려사(高麗史)에 “왕궁이 있는 수도에서 시골 읍에 이르기까지 정월보름의 연등행사는
이틀간 열려왔다. 그러나 최이(崔怡)에 의해 이 행사가 사월 초파일로 옮겨졌다.70)”고 한 데서 그 기원을 알 수
있다. 또 내 생각에는 고려사에 “우리풍속에 사월 초파일을 석가의 탄일로 여겨 집집마다 등을 밝히며,
행사 수십일 전부터 아이들은 자른 종이를 등 대에 달아 깃발을 만들고 그 비용은 장안 거리를 두루 누비면서
얻은 쌀과 베로 마련하였다. 이를 호기(呼旗)라고 한다.”고 하였는데 지금 풍속에 등 대에 깃발을 다는 것도
고려의 호기 풍속과 같은 종류다.
등의 종류에는 마늘등 ․ 연꽃등 ․ 수박등 ․ 학등 ․ 잉어등 ․ 자라등 ․ 병등 ․ 항아리등 ․ 배등 ․ 북등 ․ 칠성등 ․
수자등(壽字燈)이 있는데, 모두가 그 형상을 따른 이름이다. 종이를 바를 때 혹 푸른색 비단을 이용하여 운모
(雲母)를 새겨 넣기도 하고 비선(飛仙)이나 화조(花鳥) 그림으로 장식한다. 북등에는 삼국지 이야기를 그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림자등[影燈] 안에 등을 돌아가게 하는 선기(旋機)를 넣고 종이를 잘라 말을 타고 매와
개를 데리고 범, 사슴, 꿩, 토끼 등을 사냥하는 모양을 만들어 선기에 붙인 다음 뜨거운 바람을 일으켜 돌게
하면 등 밖으로 움직이는 그림자를 볼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소동파(蘇東坡)의 「여오군채서(與吳君采書)」71)
라는 글에서 “그림자등을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본다고 한들 삼국지를 한 번 더 보는 것만 같을까.”라고
한 것을 보면 그림자등의 그림이 삼국지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범석호(范石湖)72)가 「상원오하절물배체
(上元吳下節物排體)」시에서 “그림자가 돌아가니 말을 타고 종횡으로 달린다.”라고 한 주석에 이것이 마기등
(馬騎燈)이라고 했는데, 아마도 송나라 때부터 이러한 등이 있었던 것 같다.
延客設饌楡葉餠煑豆烹芹云是佛辰茹素又童子設盆水于燈竿下泛瓢用帚柄叩其背爲眞率之音號爲水皷按張遠隩
志京師俗念佛號者輒以豆識其數至四月八日佛誕生之辰煑豆微撤以鹽邀人于路請食之以爲結緣也73) 今俗煑豆
盖昉於此又按帝京景物略元夕童子撾皷旁夕向曉曰太平皷今俗水皷似卽太平皷而佛日爲燈夕故移用之也人家點
燈依子女多少以明亮爲吉燈竿縛大竹累十而成侈者駄致五江檣桅頭揷雉羽繫色幟或揷日月圈隨風眩轉鍾街列廛
務尙高大張數十索邪許引起矮小者人皆嗤之是夕例弛夜禁觀燈者遍於南北麓或擕簫皷沿街縱觀按高麗史王宮國
都以及鄕邑正月望燃燈二夜崔怡於四月八日燃燈又按高麗史國俗以四月八日是釋迦生日家家燃燈前期數旬羣童
剪紙注竿爲旗周呼城中街里求米布爲其費謂之呼旗今俗燈竿揷幟者呼旗之類74)也燈名蒜蓮西瓜鶴鯉黿鼈甁缸船
皷七星壽字類皆象形紙塗或用碧紗嵌雲母飾飛仙花鳥皷燈多畵三國故事又有影燈裏設旋機剪紙作獵騎鷹犬虎鹿
雉兎狀傅於機爲風炎所轉外看其影75) 按東坡與吳君采書云影燈未甞見與其見此何如一閱三國志耶此必以三國
故事作影也又范石湖上元吳下節物排體詩轉影騎縱橫註云馬騎燈盖自宋時已有此制
단오 端午
이날 임금은 애호(艾虎) 쑥을 각신(閣臣)에게 내리는데, 짧은 볏짚 새끼줄로 채화(綵花)76)와 함께 묶은 모양이
여뀌 이삭처럼 무성하다. 또한 새로 만든 부채를 나누어 주는데 이것을 단오선(端午扇)이라고 한다. 제일 큰
것은 대나무가 거의 쉰 마디나 되어 이를 백첩(白帖)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얻게 되면 대부분 금강일만이천봉
(金剛一萬二千峰) 그림을 그려 넣는다. 최근 풍속은 버들가지 ․복숭아꽃 ․ 나비 ․ 연꽃 ․ 은붕어 ․ 해오라기 ․
가마우지 등의 그림을 즐겨 넣는다.
내 생각에는 계암만필(戒菴謾筆)77)에 단오 때 임금이 서울에 거주하는 내관직들에게 궁선(宮扇)을 내리
는데 대나무살에 붙인 종이에 새와 짐승을 그리고 오색실로 애호를 묶었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날 영 ․ 호남의 병사와 수사들은 조정 대신이나 친구에게 부채를 보내는데, 전주와 남평에서 만든 것을 가장
좋게 여기는데 부채머리 모양이 중처럼 생긴 것, 뱀 대가리 모양인 것, 고리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뿔이 밖으로
난 것과 안으로 굽은 것, 너비가 넓어지는 모양과 좁아지는 모양 등 제각각이다. 대개는 흑 백 두색을 좋아하며
부인과 어린아이는 홍색과 황색, 신랑은 청색 부채를 쥐고 다닌다.
근자에는 검푸른 색의 부채도 생겼는데, 세속에서 자못 고급스럽게 여긴다. 단선(團扇)은 기름이나 검은 칠을
칠하는데 오동나무잎과 비슷한 모양도 있다. 남자들은 단선을 집에서만 사용하고 외출할 때는 두고 나간다.
부인들은 여러 가지색의 단선을 가지고 다닌다.
단오를 민간에서는 수릿날[戌衣日]이라고 한다. 술의(戌衣)는 우리말로 수레[車]다. 이날 쑥으로 떡을 만들어
먹는데 모양이 수레바퀴 같다고 하여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쑥잎 중에 작고 둥글고 뒷면이 흰 것을 햇볕에 말린
다음 곱게 비벼서 불똥으로 불을 일으키는 부싯깃[火絨]을 만든다. 또 쑥을 문드러지게 찧어 떡에 넣으면 녹색
을 낸다. 이것으로 수레바퀴 모양의 떡을 만들기 때문에 쑥을 수리치[戌衣翠]라고도 한다. 본초강목에
“천년 묵은 쑥을 중국인들은 구설초(狗舌草)라고 부른다.”고 한 것이 바로 이 쑥이다. 내 생각에는 무규(武珪)의
연북잡록(燕北雜錄)78)에 “요나라 풍속에 5월 5일에 발해의 주방에서 쑥떡을 올린다.”고 한 것을 보면 우리
나라 풍속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 같다.
여자아이들은 홍색과 녹색의 새옷을 입고 창포탕으로 세수를 한다. 또한 창포뿌리를 깎아 비녀를 만들고 주사
(朱砂)를 발라서 머리에 꽂는다. 이를 단오 치장[端午粧]이라고 부른다. 여항에서는 부녀자들이 곳곳에서 그네
뛰기[秋千戱]79)를한다. 내 생각에는 완서잡기에 “연경에서는 오월 초하루부터 5일까지 작은 규방아씨들
을 갖은 모양으로 곱게 꾸며주며, 출가한 여자들도 각기 친정에 근친을 가기 때문에 이 날을 여아절(女兒節)
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는데 연경과 우리나라가 그리 멀지 않으므로 왕왕 풍속이 서로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장안의 소년들은 남산 기슭에 모여 어울려 씨름을 하는데, 그 방식은 두 사람이 무릎을 꿇은 자세로 마주 본
다음 각자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허리를 잡고 왼손으로 상대의 오른쪽 정강이를 잡은 다음 동시에 일어나면서
상대를 들어 메어친다. 그 기술로는 안다리걸기[內句], 밭다리걸기[外句], 배지기[輪起]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중국인들이 이를 따라 하므로 씨름을 고려기(高麗技)라고도 하고, 요교(撩跤)라고도 한다.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옥추단(玉樞丹)을 제조한다. 이것을 차고 다니면 재액이 물러난다.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주사(朱砂)로 벽사문(辟邪文)을 찍는다. 이것을 문 상
방에 붙이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5월 5일 천중지절(天中之節)에 위로 천록(天祿)을 얻고 아래로 지복(地福)을 얻어 치우(蚩尤) 신의 동두(銅頭)
와 철액(鐵額), 적구적설(赤口赤舌)로 404가지 병이 일시에 없어져라. 빨리 시행하라.”
또한 다른 벽사문에는 다음과 같이 썼다.
“갑작(甲作)은 흉직한 것을 잡아먹고, 필위(胇胃)는 호랑이를 잡아먹고, 웅백(雄伯)은 도깨비를 잡아먹고,
등간(騰簡)은 상서롭지 못한 것을 잡아먹고, 남저(攬諸)는 허물을 잡아먹고, 백기(伯寄)는 환상을 잡아먹고,
강량(强梁)과 조명(祖明)은 둘이 함께 책사(磔死)80)에 기생하는 귀신을 잡아먹고, 위수(委隨)는 관(觀)을
잡아먹고, 착단(錯斷)은 거(巨)를 잡아먹고, 궁기(窮奇)와 등근(騰根)은 둘이 함께 벌레를 잡아먹는다.
무릇 이 열 두 신을 시켜 흉악한 것들을 내쫓기 위해 네놈들을 위협하여 몸뚱이를 잡아다가 허리뼈를 부러
뜨리고 네놈들의 살을 찢고 내장을 뽑으려 한다. 네놈들 중 빨리 서두르지 않고 뒤에 가는 놈들은 열 두 귀신의
밥이 될 것이다.” 이것은 즉 속한서(續漢書)81) 「예의지(禮儀志)」에 있는 내용으로 납일(臘日) 전날 큰
나례(儺禮)82) 행사 때 역질 귀신을 쫒을 때 초라니가 화답하며 부르던 가사다.
頒艾虎于閣臣用小桿纏束綵花簌簌如蓼穗又83)頒新扇號端午扇絶大者竹幅滿五十名白帖得此者多畫金剛一萬二
千峰近俗喜寫折枝桃花蝴蝶芙蓉銀鯽鷺鶿按戒菴謾筆端午賜京官宮扇竹骨紙面俱畫翎毛五色線纏繞艾虎者是也
湖嶺藩閫雄府致扇于朝列朋舊以全州南平縣制爲佳僧頭蛇頭有環無環外角內角濶沿狹沿制樣各殊俗喜白黑二色
紅黃與婦人小兒복者新郞把之近有
一種鴉복色扇俗頗尙之團扇着油或黑漆有似桐葉樣者男子在家則搖出門便捨婦人持諸色團扇端午俗名戌衣日戌
衣者東語車也是日作艾糕象車輪形食之故謂之戌衣日艾葉微圓背白曝乾可碎作火絨又可爛搗入糕發綠色以其作
車輪糕故號戌衣翠本草千年艾華人呼作狗舌草者是也按武珪燕北雜錄84)遼俗五月五日渤海85)廚子進艾糕此東
俗之所沿也小兒女著紅綠新衣菖蒲湯頮面又削菖蒲根作簪點朱砂揷䯻號端午粧閭巷婦女盛爲秋千戱按宛署雜記
燕都自五月一日至五日飾小閨女盡態極姸已出嫁之女亦各歸寧號是日爲女兒節我東與燕中不甚遠故風俗往往相
襲都下少年會于南山之麓與之角力其法兩人對跪各用右手拿86)對者之腰又各用左手挐對者之右股一時起立互擧
而抨之有內句外句輪起諸勢中國人效之號爲高麗技又曰撩跤內醫院製87)玉樞丹佩之禳災觀象監朱砂搨辟邪文俗
粘門楣曰五月五日天中之節上得天祿下得地福蚩尤之神銅頭鐵額赤口赤舌四百四病一時消滅急急如律令又一本
曰甲作食胸88)胇胃食虎雄伯食魅騰簡食不祥攬諸食咎伯起食夢强梁祖明共食磔死寄生委隨食觀錯斷食巨窮奇騰
根共食蠱凡使十二神追惡凶赫女軀拉女幹節解女肉抽女肺膓女不急去後者爲糧此卽續漢書禮儀志臘一日大儺逐疫
侲子所和之詞也
6월 보름 六月十五日
이날은 속칭 유두절(流頭節)이라고 한다. 분단(粉團)을 만들어 꿀물에 넣어 먹으므로 수단(水團)이라고도 한다.
내 생각에는 고려사(高麗史)에 “희종(熙宗) 즉위년(1204) 6월에 시어사(侍御史)89) 두 사람과 관리 최동수
(崔東秀)가 광진사(廣眞寺)에 모여 유두음(流頭飮)을 가졌다.”고 하였는데, 나라풍속에 이달15일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으면서 상서롭지 못한 것들을 떨쳐버리고 모여 술을 마시는 풍속을 유두음(流頭飮)이
라고 한다.
俗稱流頭節作粉團澆以蜜水食之號水團按高麗史熙宗卽位六月丙寅有侍御史二人與宦官90)崔東秀會于廣眞寺作流
頭飮國俗以是月十五日浴髮東流水祓除不祥因會飮號流頭飮
복 伏
이날 개고기를 삶을 때 파뿌리를 같이 넣으며 닭고기나 죽순을 추가하면 맛이 더 좋아지는데, 이것을 개장
[狗醬]이라고 한다. 혹은 국으로 끓이는데 후추를 넣어 조리한다. 여기에 밥을 말아 먹으며 땀을 흘리면 더위를
물리치고 허한 몸을 보신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사기(史記)에 “진덕공 2년에 처음으로 복사(伏祠)를 짓고
사문(四門)에서 책구(磔狗), 즉 개를 찢어 죽여 충재(蟲災)을 막았다.”91)고 하였는데,
책구란 복날과 관련된 고사(故事)로 지금 풍속에서도 이것을 따라 개를 잡아먹는다.
狗肉和葱白爛蒸入鷄笋更佳號狗醬或作羮調以番椒屑澆白飯食之發汗可以祛暑補虛按史記秦德公二年初作伏祠磔
狗四門以御蟲災磔狗卽伏日故事而今俗遂食之
중원 中元
중원을 속칭 백중절[百種節]이라고 한다. 서울 장안 사람들은 먹을 것을 성대하게 차려 산에 올라 가무를 하며
놀았다. 내 생각에는 우란분경(盂蘭盆經)에 “비구 목련(目連)92)이 7월 15일에 백미(百味)와 오과(五果)를
갖추어 쟁반에 쌓아두고 시방대덕(十方大德)93)에게 공양하였다.”고 하였는데 지금 백종(百種)이라고 하는 것
은 이 백미를 말하는 것이다. 고려 때는 불교를 숭상하여 우란분회(盂蘭盆會)를 열었는데 지금 풍속은 단지 맘
껏 마시고 배불리 먹을 뿐이다.
혹자는 이날 옛 풍속에 백가지 곡식의 씨를 진열하였기 때문에 백종(百種)이라고 하였다는데 이는 황당무계한
설이다.
俗稱百種節都人盛設饌登山歌舞爲樂按盂蘭盆經目連比邱七月十五日具百味五果以著盆中供養十方大德今所云百
種卽百味之謂也高麗崇佛爲盂蘭盆會今俗只醉飽而已或云是日舊俗陳列百糓之種故曰百種無稽之說也
중추 中秋
이날은 속칭 추석(秋夕)이라고 하기도 하고 가위[嘉排]라고도 한다. 내 생각에 삼국사(三國史)에 “신라의
유리이사금이 왕녀(王女) 두 사람을 시켜 6부의 여자를 반으로 나누어 거느리고 7월 보름부터 대부(大部)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여 을야(乙夜: 밤 9시~11시)가 되어 파했다. 이렇게 8월 보름까지 하여 그 간의 길쌈한
공의 많고 적음을 보아 진 편에서는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했다. 이 때 노래와 춤 등 온갖
놀이를 다하였는데, 이를 일컬어 가위라고 했다. 이 때 진편에서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 회소.”하니 그 소리가 애처롭고 우아하였다.”고 하였다.
俗稱秋夕又曰嘉排按三國史新羅儒理尼斯今使王女二人分率六部女子自七月望集大部之庭績麻乙夜而罷至八月
望考其功之多少負者置酒食以謝勝者於是歌舞百戱皆作謂之嘉排是時負家一女子起舞歎曰會蘇會蘇其音哀雅
중구 重九
이날은 국화를 따다가 떡을 해먹는데 삼월 삼짇날의 진달래떡과 같은 것으로 이 역시 화전(花煎)이라고 한다.
采菊花爲糕與重三之鵑花糕同亦稱花煎94)
10월 오일 十月午日
시월 중에 간지에 오(午)가 들은 이날은 속칭 말날[馬日]이라고 하여 팥을 쪄서 떡을 만들어 외양간에 놓고
말의 건강을 축원한다. 그런데 병오일(丙午日)에는 이 행사를 하지 않는데, 병(丙)과 병(病)의 음이 서로
유사하여 말에 병이 날까 꺼리기 때문이다.
俗稱馬日蒸赤豆餠設廐中祝馬健丙午日則否丙與病音相類忌馬病也
동지 冬至
이날 임금은 새 책력을 하사하는데 황장력(黃粧曆)과 백장력(白粧曆)이 있으며, 책에는 어새(御璽) 중에
「동문지보(同文之寳)」를 찍었다.
대대로 벼슬을 해온 사환가(仕宦家) 집안에서는 각기 구관전리(句管銓吏) 한 사람씩 있어 벼슬에 나가는
집안사람이 있으면 고신(告身), 즉 사령장 교지를 써주고, 군현(郡縣)의 수령으로 나가는 경우는 전리에게
특별히 당참전(堂叅錢)을 지급한다. 당참(堂叅)이란 새로 수령에 제수(除授)되면 도당(都堂), 즉 의정부를 찾아
가 인사하는 것을 말하며 당참전의 전(錢)이란 전리가 이때 쓰게 될 비용인 것이다. 매년 동지가 되면 전리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청장력 한 권을 주인집에 바친다. 또한 서울 옛 풍속에 단오 부채는 벼슬아치가 아전에게
나누어주고 동지 책력은 아전이 벼슬아치에게 주는데 이를 가리켜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고 하며, 이러한
선물교환 풍속이 시골의 친지, 묘지기, 그리고 소작인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이날 팥죽을 쑬 때 찹쌀가루로 새알 모양을 만들어 죽에 넣고 먹을 때 꿀을 탄다. 팥죽을 문짝에 뿌려 나쁜 기운
을 물리친다. 내 생각에는 종름(宗懍)의 형초세시기(荆楚歲時記)95)에 “공공씨(共工氏)에게 모자란 아들이
있었는데 동짓날 죽어 역질 귀신이 되었다.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했으므로 동짓날 팥죽을 쑤어 역질
귀신을 물리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頒新曆黃粧白粧安同文之寳仕宦家各有句管銓吏一人掌寫告身出宰郡縣給堂叅錢堂叅者守令新除叅謁都堂之謂
也錢爲銓吏所資每於冬至獻복粧曆一卷又都下舊俗端午之扇官分于吏冬至之曆吏獻于官是爲夏扇冬曆波及鄕曲
親知墓奴庄客赤豆粥用糯米粉爲鳥卵狀投其中和蜜食之是日潑豆粥於門板以辟惡按宗懍荆楚歲時記共工氏有不
才子96)以冬至死爲疫鬼畏赤小豆故冬至日作赤豆粥以禳之
납평 臘平
본조(本朝), 즉 조선은 간지에 미(未)가 들어가는 날이 납일(臘日)이다. 내 생각에는 지봉유설에서 중국
후한 사람인 채옹(蔡邕)의 설을 인용하여 “청제(복帝)는 미일(未日)로 납일을 정하고, 적제(赤帝)는 술일(戌日)
로, 백제(白帝)는 축일(丑日)로, 흑제(黑帝)는 진일(辰日)로 각각 납일을 정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 납일을
미일로 한 것은 대개 동방이 목(木)에 속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 날 임금은 납약(臘藥)을 내리는데 내국(內局)97)에서 만든 것이다. 청심원(淸心元)은 근심이 많고 소화가
안 될 때 잘 듣고, 안신환(安神丸)은 신열을 다스리는 데 효과가 있으며, 소합원(蘇合元)은 곽란을 치료하는
데 주효하여 이 세가지 환약을 가장 요긴하게 여긴다. 우리 임금(정조) 때 새로 두 종의 약을 제조 하였는데
이미 있던 두 약을 등분하고 가감한 것으로 실로 백성에 대한 임금의 깊은 배려에서 나오게 되었으며 소합원
보다 효력이 더욱 빠르다. 그 이름은 제중단(濟衆丹)과 광제환(廣濟丸)이다. 경기도 내에 산간 고을에서는
예로부터 납일 제사에 쓰는 돼지를 바치기 위해 그 지방 백성들을 동원하여 멧돼지를 수색하여 잡았으나,
임금(정조)께서 특명을 내려 이를 폐지하고 장용영(壯勇營) 장교들로 하여금 포수를 데리고 용문산(龍門山)
과 축령산(祝靈山)으로 가서 사냥하여 바치도록 하였다. 참새를 잡아 어린아이를 먹이면 마마를 잘 넘길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장안에서는 사사롭게 새총을 쏘지 못하게 금하였는데 이날만은 참새 잡는 것을 허락
하였다.
本朝以未臘按芝峯類說引蔡邕之說복帝以未臘赤帝以戌臘白帝以丑臘黑帝以辰臘我國臘用未葢以東方屬木云頒
臘藥內局所制也淸心元主閔塞安神丸主熱蘇合元主癨三種爲最要當宁朝新劑二種等分加減寔出睿思比蘇合元效
尤速賜名濟衆丹廣濟丸畿內山郡舊貢臘猪發民搜獵當宁朝特罷之壯勇營將官領礮98)手獵于龍門祝靈諸山以進捕
黃雀飼小兒善痘都城中不得私放鳥槍是日許令捕雀
섣달그믐날밤 除夕
이날 궁궐에서는 대포를 쏘는데 이를 한 해를 마감하여 쏘는 포라고 하여 연종방포(年終放礮)라고 불렀다.
지방의 병사와 수사, 그리고 각 군에서는 제석 전에 서울로 선물을 보내며 안부를 묻는 서신을 보낸다.
서신 안에는 꿩 ․ 닭 ․ 포 ․ 물고기 ․ 연초 ․ 술 등 각자가 보내는 토산물의 물목을 적어 작게 접은 쪽지를 함께
넣는데, 이것을 총명지(聦明紙)라고 부른다. 내 생각에는 주처(周處)99)의 풍토기(風土記)에 “촉나라
풍속에 연말이 되어 서로 선물하고 문안하는 것을 궤세(餽歲)라고 한다.” 고 한 것을 보면 이러한 풍속은 옛날
부터 내려온 것 같다.
이날 집 전체에 등을 켜놓고 외양간과 뒷간에까지 등잔을 놓은 채 밤새 잠을 자지 않으며 수세(守歲)한다.
세속에서는 제야에 잠을 자면 두 눈썹이 센다고 하여 어린아이들은 이렇게 될까 심히 두려워 잠을 자지 않는다.
혹 잠을 자는 아이가 있으면 다른 아이들이 쌀가루로 눈썹을 어지럽게 바른 다음 거울을 대면서 놀리며 웃는다.
내 생각에는 온혁(溫革)100)의 쇄쇄록(瑣碎錄)에 “제야에 신불(神佛) 앞과 마루, 방, 뒷간 등 모든 곳에 등
밝히기를 새벽까지 하는 것은 집안에 광명이 들기를 주장하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맹원로(孟元老)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101)에 “제석에는 선비집안이나 서민집안이나 화롯가에 둘러 앉아 아침이 되도록
자지 않는데, 이것을 수세(守歲)라고 한다.”고 하였다.
禁中發大礮號年終放礮藩閫列郡歲除前餽問都下書緘中另具小摺列錄土産雉鷄脯魚烟酒諸種謂之聦明紙按周處
風土記蜀俗晩歲相餽問謂之餽歲此風自古而然矣渾舍張燈以至廐溷各點一盞達夜不睡以守歲俗云除夜睡雙眉白
小兒甚憚之或睡他兒以米粉抹之擾使對鏡以爲戱笑按溫革瑣碎錄102)除夜神佛前及廳堂房溷皆明燈至曉主家室
光明又孟元老東京夢華錄除夕士庶之家圍爐團坐達朝不寐謂之守歲
1) 광문회본(1911년에 조선광문회에서 발간한 연활자본이다.)에는 “杏”이 “幸”으로 되어 있다.
2) 광문회본에는 “魚”로 되어 있다.
3) 벽제(辟除)는 지위 높은 사람이 지나갈 때 구종별배(驅從別陪)란 수행 임무를 맡은 사람
이 잡인의 통행을 통제하는 것이다.
4) 광문회본에는 “附”로 되어 있다.
5) 과와(果瓜) 항목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앞으로 ‘규장각본’이라고 함)에는 1권 맨 뒤에 있으나
세주 “當在茶烟下에 의해 이동하였다.
6) 광문회본에는 “圓”으로 되어 있다.
7) 산개(傘蓋)는 우산 같이 생긴 의장물(儀仗物)로 자루는 길고 꼭대기는 둥글며 유소(流蘇)를 달았다.
8) 노송취병(老松翠屛)이란 늙은 소나무 가지를 이리저리 틀어서 만든 병풍이란 뜻이다.
9) 남포(藍浦)는 충청남도 보령에 위치한 지명이름이다.
10) 위원(渭原)은 평안북도에 위치한 지명이름이다.
11) 장용영(壯勇營)은 조선 정조 15년(1791)에 서울과 수원(水原)에 설치한 군영(軍營)으로, 순조 2년(1802)에
총리영(總理營)으로 고쳤다.
12) 이원(梨園)은 교방(敎坊)의 다른 말로 장악원(掌樂院)의 좌방(左坊)과 우방(右坊)을 아울러 이르는 이름
이다. 좌방은 아악(雅樂)을 우방은 속악(俗樂)을 맡았다.
13) 중대엽(中大葉)이란 만대엽(慢大葉)보다 빠르고 삭대엽(數大葉) 보다 느린 곡조다. 시조시로 사설을 얹어
불렀다.
14) 삭대엽(數大葉)이란 빠른 곡조의 가곡이다. 우조와 계면조 두 음계가 있다.
15) 광문회본에는 “笛”으로 되어 있다.
16) 주흥사(周興嗣)는 중국 남조시대 양(梁) 나라 사람으로 왕희지 글자를 모아 천자문의 글을 만들었다.
17) 광문회본 외에는 “千文”으로 되어 있으나 번역은 “千字文”으로 하였다.
18) 측리(側理)는 종이의 일종으로 태지(苔紙)다.
19) 취우(翠羽)는 취조의 깃털로 시축이나 책의 겉장 장식으로 많이 사용한다.
20) 고려말에 전해진 설암의 글씨는 이것 외에 춘종첩(春種帖), 동명(東銘) 등이 있다. 설암은 원나라 승려로
법명은 부광(傅光), 호는 현휘(玄暉)다.
21) 광문회본에는 “蝶”으로 되어 있다.
22) 규장각, 광문회본에는 “牧”으로 되어 있다.
23) 우포잡기는 모두 10권으로 중국 명나라 홍무(洪武)에서 정통(正統) 간의 조야(朝野) 사적을 실었다.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 참조.) 왕기는 중국 명나라 장주(長州)사람으로 자는 원우(元禹),
별호는 몽소도인(夢蘇道人)이다.
24) 「세수서사시」는 검남시고(劒南詩稿) 권38에 있다. 저자 육방옹(陸放翁)은 중국 송나라 산음(山陰)
사람으로, 이름은 유(游)이며, 방옹은 호다. 보장각(寶章閣)의 대제(待制)를 지냈고 85세를 살면서 많은
시를 지었다.
25) 송민구(宋敏求)는 중국 송나라 때 학자로 자는 차도(次道)이다. 당의 무종(武宗) 이후의 실록을 사찬
(私撰)하였고 직학사(直學士)를 지냈다. 춘명퇴조록(春明退朝錄), 당대조령집(唐大詔令集),
장안지(長安志) 등이 있다. 춘명퇴조록은 상중하 3권으로 구성 되어 있다.
26) 전기(傳奇)란 괴담소설로 일반적으로는 중국 당나라 사람들과 송나라 사람들이 전해오는 이야기를 글로
쓴 단편소설을 말한다.
27)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모(牟)’라고 표기하였다.
28)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류(流)’로 표기하였다.
29)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개(開)’로 표기하였다.
30)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걸(杰)’로 표기하였다.
31) 설문(說文)은 중국 후한시대 허신(許愼)이 지은 설문해자(說文解字)다.
32) 지봉유설은 이수광의 학문세계가 집약된 저술로서 20권 10책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기사일문집(奇事逸聞集)이면서 동시에 유서(類書)의 성격을 지녔다. 수록내용은 모두 25분야에 이른다.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문학자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峯)이다.
33) 저포(樗蒲)는 백제 때 나무로 주사위를 만들어 놀던 놀이다.
34) 요사(繇辭)란 앞으로의 조짐에 대한 예언적인 점사(占詞)다.
35) 규장각본은 “睟”가 “粹”, 광문회본은 “晬”로 되어 있다.
36) 연세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앞으로 ‘연대본’이라고 함)은 “革”으로, 규장각본은 “葦”, 혹은“茸”으로 되어 있다.
37) 광문회본에는 “筍”으로 되어 있다.
38) 규장각본은 “个”로 되어있는데 “傑”로 바로잡았다.
39) 주황(周煌)은 중국 청나라 부주(涪州) 사람으로 자는 경원(景垣), 호는 해산(海山)이다. 유구부사(琉球副使)
를 지낸 바 있다.
40) 정조(正祖)를 말한다.
41) 납지대(蠟紙帒)는 빗질할 때 바닥에 까는 밀랍한 종이포대를 말한다.
42) 손사막(孫思邈)은 중국 당나라 화원(華原) 사람으로 백가(百家)의 설에 통했으며 특히 의약에 정통했다.
천금요방(千金要方)을 비롯하여 복록론(福祿論), 섭생진록(攝生眞籙), 은해정미(銀海精微)
등의 저술이 있다.
43) 인일(寅日)은 간지에 ‘寅’이 들어있는 날이다.
44) 광문회본에는 “待”가 “徒”로 되어 있다.
45) 광문회본에는 “熏”이 “燻”으로 되어 있다.
46) 계옥(桂玉)은 계수나무보다 비싼 장작과 옥보다 귀한 밥이라는 뜻으로, 생활고를 비유한 말이다.
47) 규장각본에는 “召”가 “名”으로 되어 있다.
48) 규장각본에는 “玉”이 “王”으로 되어 있다.
49) 동경잡기는 경상도 경주부(慶州府)의 지지(地誌)다. 작자미상으로 전해오던 동경지(東京誌)
를 1669년 민주면(閔周冕) 등이 향중인사와 함께 편집, 보완하여 동경잡기(東京雜記)라고 개칭,
간행하였고, 1711년에 보완하여 재간하였다.
50) 문헌비고(文獻備考)는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로 장고(掌故: 전례(典禮)와 고사(故事))에
관한 유서(類書)로서, 조선 후기에 이르러 우리 것의 편찬이 요청되어 영조46년(1770)에 처음으로 편찬,
간행되었다. 왕명으로 시작된 편찬 사업은 서명응(徐命膺) 등이 주도해 반년여 만에 상위(象緯)·여지(輿地)·
예(禮)·악(樂)·병(兵)·형(刑)·전부(田賦)·시사(市蛇)·선거(選擧)·재용(財用)·호구(戶口)·학교(學校)·직관(職官)
등 총 13고 100권으로 완성되어 1770년 8월에 인쇄되었다.
51) 학성(鶴城)은 현재 울산(蔚山)이다.
52) 사람의 사주 방위로 성명술사(星命術士)들은 사람의 생시(生時)에서 태양궁(太陽宮) 방향으로 돌다가
묘(卯)에서 만나는 것이 그 사람의 명궁(命宮)이라고 한다.
53) 섭정규(葉廷珪)는 중국 송나라 때 사람으로 자는 사충(嗣忠)이다.
54) 여기서 육방옹(陸放翁)의 시는 「세수서사시(歲首書事詩)」를 말한다.
55) 이것은 재력가들이 밟고 다니는 시전거리 흙을 옮겨옴으로써 재복도 함께 옮겨지기를 바라는 주술적인 뜻이
담겨 있다.
56) 시경 「빈풍」은 8권에 있으며 7월편은 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천시(天時)를 따라 민사(民事)가 주어
진다는 내용이다.
57) 농정전서는 1639년에 간행된 전 60권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한나라 이후로 발달해 온 농가의 설을 총괄
하고 수력학과 지리학을 참조한 중국 최고의 농정서(農政書)다. 이 책을 쓴 서광계(徐光啓)는 중국 명나라
때의 학자로 자는 자선(子先), 호는 현호(玄扈)다. 마테오릿치로부터 천체에 관한 지식을 배웠으며 역법에
정통하였다. 대표적인 저서로 1639년에 간행된 이 농정전서가 있다.
58) 삼문(三門)이란 숭례문(崇禮門: 남대문), 돈의문(敦義門: 서대문) 및 그 중간의 소의문(昭義門: 서소문)을
말한다.
59) 신당서는 전체 225권으로 송나라 구양수(歐陽修), 송기(宋祁) 등이 편찬한 것이다. 이중 권210
열전(列傳)145에 「고려전(高麗傳)」이 있다.
60) 중국에서는 연을 풍쟁(風箏)이라고 한다.
61) 북경세화기(北京歲華記)는 중국 청대에 우씨(尤氏)가 서문을 쓴 예문지(藝文志) 안에 수록되어
있으나 작자와 출처는 미상이다.
62) 우혁정은 초명은 계로(繼魯), 자는 사직(司直)이다. 효심과 우애가 있어 부모님이 돌아 가시자 형제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고 시골에 거하면서 종일 독서하고 시 짓고 명산을 유람하였다.
남긴 책으로는 금석지(金石志), 경물략(景物畧) 등이 있다.
63) 심방은 중국 명나라 때 사람이다. 완서잡기는 20권으로 된 책이다.
64) 규장각본에는 “鬪”로 되어 있다.
65) 규장각본에는 “梔”가 “桅”로 되어 있다.
66) 규장각본에는 “城”이 “夜”로 되어 있다.
67) “향랑각시야 속히 천리 밖으로 가거라.”라는 뜻이다.
68) 오지(隩志)는 중국 명나라 때 나온 책이나 발간 시기는 알려진 바 없다. 책을 쓴 장원은 중국 송나라 때
사람으로 자는 행지(行之)이며 벼슬을 하지 않고 산에 은거하였다고 한다.
69) 이것은 과거 북경에서 유행했던 사두결연(舍豆结缘)의 풍속을 말하는 것이다.
70) 최이(崔怡)는 고려 무신정권 집권자인 최우(崔瑀, ? ~1249)로 본관은 우봉(牛峯)이다. 뒤에 이(怡)로 개명
하였다. 아버지는 충헌(忠獻)이다.
71) 「여오군채서(與吳君采書)」는 소동파의 시 제목이나 출처는 미상이다.
72) 범석호는 범성대(范成大)다. 범성대의 자는 치능(致能), 호는 석호거사(石湖居士)다. 석호집(石湖集),
남비록(攬轡錄) 등의 저서가 있다
73) 오지(隩志) 원문에는 “京師僧俗”이라고 하였다.
74) 광문회본에는 “遺”로 되어 있다.
75) 광문회본에는 “影”이 “形”으로 되어 있다.
76) 채화(綵花)란 비단을 떠다가 염색을 하고 꽃잎으로 재단한 후 밀랍을 씌워 인두질을 한가화(假花)의 하나다.
77) 계암만필은 8권으로 되어 있으며, 저자는 이후다. 그의 자는 후덕(厚徳), 호는 계암노인(戒菴老人)이다.
강음사람으로 생활이 어려워 과거에 나가지 못하고 80여 세를살다가 죽었다.
78) 연북잡록은 사경(思卿) 무규(武珪)의 기록이다. 송나라 인종 때인 1061년에 무규가 거란에서 도망하여
돌아온 사실이 있어 이 책을 지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79) 원문에서는 추천(鞦韆)을 추천(秋千)으로 표기하였다.
80) 책사(磔死)는 시체를 길거리에 버리는 무거운 형벌인 책형(磔刑)을 당한 시체다.
81) 속한서는 사마표(司馬彪)가 편찬한 것이다. 사마표의 자는 소통(紹統)이며 진(晉)나라종실(宗室) 집안
에서 태어났다. 그는 기전체로 광무(光武)에서 헌제(獻帝)까지 200년간12세를 80권으로 엮어 속한서(續漢書)
를 편찬하였다. 책 중 「십지(十志)」는 「팔지(八志)」만 남았다. 그중 두 번째가 「예의지」다.
82) 나례(儺禮)는 섣달 그믐밤 귀신을 쫓는 제의다.
83) 연대본과 규장각본 모두 “頒” 앞에 띄어 쓰지 않았다.
84) 규장각본에는 연북잡지(燕北雜志)로 되어 있으나 연북잡록(燕北雜錄)이 맞다.
85) 규장각본에는 “勃海”로 되어 있다.
86) 광문회본에는 “拿”이 “拏”으로 되어 있다.
87) 연대본, 규장각본에는 “制”로 되어 있다.
88) 광문회본에는 이체자인 “ ”으로, 규장각본 ․ 연대본에는 “ ” 으로 되어 있다.
89) 시어사(侍御史)는 어사대(御史臺)와 감찰사의 종5품 벼슬이다.
90) 광문회본에는 “者”로 되어 있다.
91) 이것은 사기(史記) 권28에 나오는 내용으로 원문은 “磔狗邑四門以禦蠱菑”로 묵힌 밭의 해충인 고치
(蠱菑)를 예방하였다고 하였다. 사기는 중국 한나라 태사령(太史令) 사마천(司馬遷)이 찬(撰)하였다.
92) 목련(目連)은 석가의 제자로 그의 어머니가 죄를 짓고 죽어 아귀도에 떨어져 있을 때 석가의 도움을 요청
하고 시방대덕에게 공양을 올려 어머니 영혼을 구제한 인물이다.
93) 시방대덕이란 각 방위의 높은 덕을 가진 중들을 말한다.
94) 규장각본에는 “糕”로 되어 있다.
95)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는 초나라 풍속 36종을 수록한 세시기(歲時記)다. 중국 육조시대 후베이(湖北)
지방과 후난(湖南) 지방의 연중행사와 풍속을 기록한 책으로, 6세기중엽에 양나라 종름(宗懍)이 편찬하였다.
현존하는 중국 세시기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초나라 특유의 세시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풍속도 기술 되어
있다.
96) 규장각본에는 “才”와 “子” 사이에 “之”가 있다.
97) 내국은 내의원(內醫院)을 말한다. 내의원은 조선조 때 궁중 의약을 맡아보던 관청이다.삼의원(三醫院)의
하나로 태조 원년에 전의감(典醫監)을 이렇게 고쳤다. 26대 고종 32년(1895)에 전의사(典醫司)로 고쳤다.
관원으로 도제조(都提調)ㆍ제조(提調)ㆍ부제조(副提調) 각 1명씩 두었는데 부제조는 승지(承旨)가 겸임하였다.
내국(內局), 상약(尙藥) 등의 이칭이 있다.
98) “礮”는 “砲”의 이체자이다.
99) 주처(周處)는 중국 진나라 때 사람으로 자는 자은(子隱)이다. 오나라에서 벼슬을 하고진나라에 다시 와서
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되어 공을 세웠다.
100) 온혁(溫革)은 중국 송나라 혜안(惠安) 사람으로 자는 숙피(叔皮)다. 쇄쇄록은 그의저서다.
101) 동경몽화록의 작자 유란거사(幽蘭居士) 맹원로는 중국 송나라 때 사람이다. 금의 침입으로 남송으로
온 후 북송의 수도인 변경(汴京)의 문물과 풍속을 기록한 책으로 10권으로 구성되었다.
102) 규장각본에는 쇄쇄록(碎瑣錄)으로 쓰고 있으나 문헌통고(文獻通考)에 쇄쇄록(瑣碎錄)으로
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