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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친구들이 독서에 열을 올리고 있다.
1주만에 책을 읽고 독서 토론을 한다고 한다.
따라 가는 내가 헉헉~거린다.
그래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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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나온 책은 언규의 'the gover'다.
로이스 로리라는 분이 쓴 소설인데 미국 하와이 태생으로 37년생이다.
나에게는 한 세대 앞,친구들에게는 두세대 앞을 사시고 있는 분이다.
젊은 시절 대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결혼을 한 그녀는 네 자녀를 낳고 다시 대학에 들어가 영문학을 전공했다.
그녀는 72년(35세)년에 첫 소설을 발표했다. 'A Summer to die'라는 이 소설은 작가가 어렷을 때 경험한 언니의 죽음을 소재로 한 것이라 한다. 그 이후 89년 '병을 헤아리며'로 뉴베리상을,87년(?) '레블 스타키'로 보스톤 글로브 혼 북상을 받았다. 이로 인해 그녀는 미국의 대표적인 청소년 문학작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한다.
'the giver'작품은 93년 출간된 것으로 독자들에게 가장 논쟁적이고 사랑받는 소설이라 한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이 소설은 뉴베리 상과 보스톤 글로블 혼 북 아너상을 수상하였다고 한다.
이 소설의 주제는 인류가 선택하게 되는 미래 사회의 어느 한 유형에 대한 고찰이다. 마치 영화 '아일랜드'를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을 보장하기 위하여 '늘 같음 상태'- 통제된 -의 사회를 선택한 어느 한 공동체가 있다. 그 공동체는 국가일 수 있고 민족일 수 있겠고 타 지역과 자연 환경의 장벽때문에 고립된 미래 사회의 어느 한 지역일 수 도 있겠다. 아니면 지구가 하나의 단위로 묶여진다 하니 그 공동체는 세계 정부 그 자체 일 수 도 있겠다.
이 공동체 사회는 원로위원회가 있어 모든 사람들의 역할이 주어진다. 애기 낳는 산모도 지정되어 3년간 3명의 아이를 낳는다. 이렇게 생산된 아이의 수는 대략 50명 정도 된다. 낳은 아이는 보육사에 의해 1년간 양육되고 기초가족에 배정받는다.기초가족은 아빠,엄마,두명의 자식으로 이루어 진다. 결혼을 하고 싶으면 원로위원회에 신청을 하면 적당한 배우자를 선정해 맺어 준다. 아이들은 12년 동안 정해진 규칙과 순서에 따라 교육된다. 1살이 되어 기초가족에 아이가 배당되면 상상의 동물 형상을 띤 위안물이 부여된다.(예, 코끼리위안물),4살부터 6살까지는 등에 단추가 있는 재킷을 배당 받았고, 9살이 되어서 자전거를 받았다. 12살이 되어 성욕을 느끼기 시작하면 성욕억제제를 복용해야 했다. 아이들은 정확한 언어 사용을 교육 받았고 애매한 추상적 언어의 사용을 금지 당했다. 아이들이 12살이 되면 '직위받기 수여식'이 이루어지는데 그들이 평생 가질 직업을 위원회가 정해 주게 된다. 그리고 나이 들어 근로능력이 떨이지면 노인들은 은퇴를 하게 되고 노인회관에 머물며 안락한 삶을 살다가 임무해제 통지를 받게 된다.
이 공동체는 24시간 일거수 일투족이 위원회에 의해 감시되고 통제된다. 삶들은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들 같다. 색깔도 없고 음악도 없고 과거에 대한 기억도 없다. 지금 여기 현실의 삶에 대한 제한된 자신 만의 경험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사회는 적어도 겉으로는 차별이 없고 싸움도 없고 먹고 자는 걱정도 없고 치안과 의료가 확실히 보장받는다. 사랑이라든지,연민,슬픔,외로움,고통스러움등에 대한 자극이 없다. 그러나 늘 한결같은 평화로움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사회도 사람들이 살아 가는 사회인지라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한다. 인구를 늘려 생산인구를 증가시키는 제안에 위원회의 경험이 과거에 닿아 있지 않기 때문에 쉽게 결정하지 못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과거 인류의 감정과 지헤를 갖고 있는 지식보유자를 두어 이에게 자문을 구한다. 지식보유자는 오직 한명이고 위원회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그는 마을 사람과 교류할 수 없고 홀로 살아가야만 한다. 지식보유자는 과거 인류가 인구과잉으로 식량이 줄어 들고 전쟁을 일삼은 기억을 떠올리며 산아제한을 할 것을 위원회에 권고한다. 물론 그 이유는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유는 그렇게 말하면 규칙위반이기 때문이다. 왜 공동체의 지식을 이렇게 제한해 두는 걸까? 그것은 사람들이 과거의 지식과 감정을 갖게 되면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먼 옛날 이 공동체를 설계했을 사람들은 그들이 보장받고 싶은 '늘 한결같음'을 위해 인간의 감정과 지혜를 포기한 것이다. 다만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조언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한사람의 지식보유자를 만들어 통제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조너스는 지식보유자의 후계자로 뽑혀 전임 지식보유자(지식전달자로 역할이 바뀜)의 교육을 받게 된다. 지식전달자는 이 공동체의 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그 옛날 인류의 기억들을 하나 하나 전수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조너스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매우 비인간적임을 깨닫게 된다. 소위 임무해제라는 것이 약물로 사람을 죽이는 것임을 알고 절망하게 된다. 지식전달자도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쉽사리 행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기억은 전수되면 한쪽은 그 기억이 사라지게 된다. 또한 기억보유자가 이 공동체를 벗어 나면 마을 사람 전체에게 기억이 살아나게 되기도 한다. 이를 이용하여 조너스를 방계로 탈출시키고 기억의 회복으로 혼란을 겪는 사람들을 기억전수자가 도와줘서 공동체의 변화를 괴하고자 하는 계획을 짠다. 그러나 조너스는 가브리엘- 적응장애로 1년간 임무가 유예 되어 보육사인 아빠를 통해 집안에 같이 살게 된 신생아-이 결국 공동체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임무해제가 이루어 짐을 알게 된다. 그는 임무해제가 이루어 지는 전날 밤 탈출을 감행하게 된다.
그와 가브리엘은 수십날에 걸친 배고픔과 추위,공포을 견뎌내고 큰 산맥을 넘어 그들이 지향했던 사랑과 가족,훈훈함이 넘치는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줄거리가 길게 이야기 했지만 작가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의도는 명확한 것 같다.
인간이 인간답다는 것은 비록 불안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가족이 있고 그 안에 사랑이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 소설에서 설정한 공동체는 색깔이 없고 음악이 없는-한마디로 예술이 존재하지 않는, 상상력이라곤 눈꼽만치도 찾아 볼 수 없는-사회이다. 사람간의 차이는 없고 직능적 분업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야 할 규칙이 있고 원로위원회의 통제와 감시가 있다. 사람들과 일은 시스템대로 움직여야 하고 부적응자들은 곧바로 임무해제를 당한다. 임무해제는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기쁜 일이기도 하고 당연한 처사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정서적 에너지가 생산되지 않으며 사람간의 그러한 유대감이 없다. 과거 문명의 경험과 지혜의 전수가 없으니 고통스럽지도 않다. 다만 사회의 유지를 위해 마련한 장치인 '지식보유자'만이 그 고통을 감수하고 있을 뿐이다. 그에게는 축적된 감정-공동체 사람들은 성욕억제제를 먹고 살아야 한다-이 있고 지식의 보고인 책-공동체 사람들은 절대 책을 봐서는 안된다.-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왜 이들은 이런 선택을 했을까? 할 수 밖에 없을까? 전쟁과 범죄가 난무하고 정치,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존재하며 먹고 자는 것이 투쟁인 사회에 우리가 노출되었다고 하자. 나는 어떻게 할까? 어치피 개인의 인생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삶도 선택이다. 먹고 자는 것이 확보되고 신변의 안전이 보장되면 영혼은 팔아 버릴 수 있지 않을까? 그것 때문에 괴롭다면 영혼의 상처와 고통도 기억에서 없애버리면 되지 않을까? 약으로 바보로 만들 수 있다. 왜 아니 될까? 생존이 급박한데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이런 사회가.
또한 지식보유자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기억이 할아버지,할머니,엄마,아빠,그리고 아이가 하하하,호호호하면서 즐거운 저녁 한 때를 보내는 장면인데 한마디로 사랑의 감정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가족의 모습과 사랑함의 느낌이 얼마나 있을까? 1%? 인생은 일생이 아니고 순간이라지만 그런 사랑의 느낌-매듭-으로 99%의 고통스런 삶을 인내하라고 하는 것은 어느면에서는 이데올로기적이다. 더우기 그 가족의 사랑이 실현되는 것이 수 많은 가족들의 고통 속에 보장되는 불평등한 사회에서라면- 마치 나치가 600만명의 유태인을 학살하고 아리안민족의 자존감을 높이 세웠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 우리가 쉽게 받아드릴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우리에게 이런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이 원하는 사회는 무엇인가?
열린 사회인가? 닫힌 사회인가?
이렇듯 세상은 가치론적으로 쉽지 않다. 바둑과 같다. 한 쪽을 포위하고 공격해 들라치면 어느 순간 내가 포위 되어 있고 이 곳에 세가 밀려 고민하다 보면 저쪽 귀통이에서 살 길이 보인다. 어느 한 쪽이 반드시 옳지 않다고 보는 것이 맞다.
절대적인 기준과 가치를 들이미는 사람들은 일단 의심해야 한다. 역으로 뭣도 아닌 것을 주장하는 사람도 의심해 봐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다가 서되 중심을 잃지 말 일이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과정이 있을 뿐이고 내가 옳다는 것을 포기하고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거란 생각도 든다.
에고~ 이래 저래 어려운 세상이다.....
# 인상 깊은 글
1. "몰라 그걸 아는 사람은 없어. 위원회 사람들이나 알 거야.로베르토는 우리 모두에게 인사를 한 후 걸어갔지.모두가 그러듯이 특수 문을 통해 임무해제실 안으로 말이야.너도 그 표정을 봤어야 했는데. 난 그걸 순수한 행복감이라고 부르고 싶어"(59쪽)
2. 네살에서 여섯 살까지는 모두 등에서 잠그는 재킷을 입었다- 서로 옷 입는 것을 도움으로써 서로 도와 가면서 살아야 한다는 걸 배워야.
일곱살부터 앞단추가 달린 재킷을 입는다- 스스로 자기 일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
여덟살 때 부터 자원봉사를 시작한다- 성인이 되어 자신의 직업을 무엇을 갖을 건지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시작하는 것
아홉살때 자전거를 배당받는 것- 기초가족에서 떨어져 나와 마을 공동체로 들어갈 수 있음을 상징.
3. 처음 기억보유자로 선출되었을 때 나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였지.그리고 이 방에서 혼자 그 전부를 반복해서 다시 경험한단다. 그게 지혜가 생기는 방법이야. 우리가 미래를 만들어 가는 방법이기도 하고.(133쪽)
4. 널 기다리게 만든 걸 사과한다.
네 사과를 받아들인다.(153족)
5. 우리가 햇볕을 포기하고 차이를 없앴을 때 색깔 역시 사라져 버렸지.(163쪽)
6. 마을 사람들이 책을 접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에 접근 할 수 있는 건 너와 나뿐이지.
7. 그 당시 사람들은 기억들에 접근할 수 있었지. 아주 오랜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모든 사람이 기억을 갖게 된 거야 그 결과 엄청난 혼란이 찾아 왔어. 한동안 사람들은 정말 고통을 겪었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기억들을 회수하고 나서야 비로소 혼란이 끝났어. 그 사태가 있고 나서야 원로들은 그 모든 고통과 지식을 품고 있을 기억 보유자가 얼마나 필요한지 깨달았지.(178쪽)
8. "어째서 기억 전달자님과 제가 이 기억들을 품고 있어야 하나요?"
" 기억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기 때문이다. 지혜가 없었다면 원로 위원회에서 나를 불렀을 때 아무런 조언도 할 수 없었을게다."(190쪽)
9. " 그런 식으로 꽤 잘 돌아가는 것 같지 않으세요? 우리 마을 말이에요. 다른 방식으로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그 기억을 받아들이기 전까진"(212쪽)
10. " 절 사랑하세요"
"네가 매우 일반화된 단어를 사용했다는 거야. 그단어는 너무 무의미해서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지."
" 사람들이 정확한 언어를 쓰지 않으면 우리 마을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단다. 이렇게 이야기 해.
어머니 아버지 저와 즐거우세요?, 제 성과에 자부심을 느끼세요?"
11. "기억을 품는 게 가장 힘든 큰 이유는 고통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그러니까 기억은 함께 나눌 필요가 있어"
12. 질서 정연하고 조직적인 삶이 계속될 것이다. 아무것도 예상 밖의 일을 겪거나 불편한 일을 맞거나 이상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삶이. 색갈도,고통도,과거도 없는 삶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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