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 심사 소감>
평범 속의 비범이 돋보이는 시
이 준 관
응모작들을 읽으면서 문득 박목월 시인의 글이 떠올랐다. 박목월 시인은 시집 『청담 (晴曇)』 후기에 ‘시의 창조 작업에는 숙련공이 없다. 편편이 설익고, 서투르고, 휘어잡을 수 없는 저항감을 느끼는 그것이야말로 시를 빚는다는 사실이다. 자획 하나 하나, 문자 한 개 한 개로 휘어잡기 위한 붓끝의 투쟁- 그것을 거침으로써 그 작품에는 어휘 하나하나에 그 시인의 지문이 박히게 될 것이다.’라고 썼다. 이 글에는 시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단어 하나하나, 표현 하나하나에 혼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 노력과 집중이 있어야 비로소 번듯한 작품이 하나 완성이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응모작들을 읽으며 박목월 시인의 글이 떠오른 것은 응모자들이 동시 쓰기를 너무 쉽고 안이하게 생각하지 않나 해서이다. ‘자획 하나 하나, 문자 한 개 한 개로 휘어잡기 위한 붓끝의 투쟁’, 그런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자신의 지문이 박힌 글이 태어난다는 것을 응모자들이 명심했으면 좋겠다. 어린이들이 읽는 시라고 해서 만만하게 보고 대충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쓰면 동시가 된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말 하나하나 갈고 다듬어야 하고, 참신한 비유를 찾기 위해 고심을 거듭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독자를 감동시킬 시가 태어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응모작들을 읽을 때마다 늘 느끼는 아쉬움은 소재가 너무 빈곤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비단 신인들뿐만 아니라 기성 시인들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소재가 비슷하다보니 내용이나 표현도 비슷하다. 새로운 소재를 찾아 새로운 시세계를 개척하는 것은 신인의 몫이다. 생활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고 아이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뭔가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것들이 있을 것이다. 우주와 자연을 관찰해 보면 눈이 번쩍 뜨이는 경이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을 것이다. 응모자들에게 좀더 넓고 깊게 세상을 바라보며 새로운 소재를 찾을 것을 부탁하고 싶다.
새로운 소재를 찾는 일이 힘들다면 낯익은 소재라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를 당부한다. 아이들 삶 속의 작은 이야기들, 자연의 풍요로움과 신비로움, 그리고 작고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에 눈을 돌려 그것들의 아름다움과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찾아내기 바란다. 시란 어쩌면 ‘평범한 것들을 평범하지 않게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평범한 일상과 자연과 사물 속에서 미처 발견하거나 깨닫지 못한 새로운 의미와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해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시인이 할 몫이다.
먼저,「감기 동창」 외 17편을 응모한 정유경은 시적 발상과 표현의 기본기를 갖추었으나, 전반적으로 참신성이 부족했다. 「자동차」 외 21편을 응모한 강지환은 의성어와 의태어를 구사하며 동요적인 리듬의 이채로움을 보여 주고 있지만, 시적 완성도가 아직 미흡했다.
양정화는 동시집 한 권 분량인 61편의 작품을 보내왔다. 우선 그 많은 분량을 써서 보낸 성실성과 열정이 미더웠다. 문학에 대한 재능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문학에 대한 열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양정화가 앞으로 좋은 동시를 쓸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 그러나 양정화는 다작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앞에서 말한 박목월의 말대로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작가의 지문이 박히게 한 편 한 편을 갈고 다듬어야 할 것이다. 양정화는 너무 가벼운 재치와 말재간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너무 안이하게 동시를 쓰고 있다. 많이 쓰려고만 하지 말고 한 편이라도 갈고 다듬어서 완성도를 높일 것을 당부한다.
「면발 뽑는 아저씨」 외 17편을 응모한 곽해룡이 다루는 소재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의 낯익은 것들이다. 그는 동시에서 흔히 다루어진 낯익은 소재들을 새롭게 보여 준다. 그는 평범한 것들을 평범하지 않게 보여주는 재능이 있다. 생활 속의 낯익은 풍경과 이야기들을 참신한 발상으로 문득 새롭게 보여 주고 말해 주고 일깨워 준다. 얼핏 보면 평범하게 보이는 짧은 시속에 번뜩이는 발견과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평범 속의 비범’, 이것이 곽해룡의 독특한 매력이다. 그리고 짧은 시 속에 깊은 뜻과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는 것 또한 미더운 매력이다. 「면발 뽑는 아저씨」에서 연변 아저씨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과 안타까움을 시로 잘 녹여낸 솜씨라든지, 「날개」에서 보여준 날렵한 상상력은 그의 능력이 만만치 않음을 잘 보여 준다. 영어에 푹 빠져 있는 요즘 세태를 익살스럽게 꼬집고 풍자한 「개 이름」, 동생과 나를 대하는 엄마의 태도를 재미있게 대비하여 표현한 「나만 미워하는 엄마」, 그리고 「매미 허물」, 「막내 고모」 등에서도 그의 시적 재능이 만만치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곽해룡의 작품을 흔쾌히 이번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곽해룡의 수상을 축하하고 애석하게 떨어진 이들은 실망하지 말고 더욱 분발하기 바란다.
*심사위원 : 이준관, 신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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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 심사 소감>
진정한 동화작가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
이 금 이
동화는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장르이다. 동화를 쓰려는 이들은 주된 독자가 어린이임을 주지해야 하며 독자에 대한 배려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배려란 어린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라는 의미이지 결코 무시하거나 얕잡아 봐도 좋은 대상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응모작들 중에는 어린이 독자에 대한 배려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 왜 굳이 동화를 쓰려고 하는지 의구심이 드는 작품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적어도 ‘동화나 청소년소설이 일반소설보다 쓰기도, 등단하기도 쉬울 것 같아서’가 창작이나 응모 이유가 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먼저 진정한 동화작가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을 스스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김대조의 「군인 아줌마」는 군인이 되고 싶어하는 여자아이의 심리를 간결하고 안정감 있는 문체로 재미있게 그렸다. 장래희망마저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요즘 어린이들의 현실과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성에 따른 직업의 차별 등,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꿈을 위한 중심인물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노력 없이 그저 울음으로 끝나는 결말이 아쉽다. 그리고 함께 응모한 작품의 수준이 예심 통과작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감점 요인이었다.
이경훈의 「영순아 영순아」, 「그 해 겨울」은 문장이나 플롯이 전반적으로 안정된 수준을 보였으나 두 편 모두 동화인지 소설인지 구분이 애매했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등장한다고 해서 동화나 청소년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아쉬운 것은 응모자가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제재와 이야기 전개 방식이 1970~80년대 소설을 보는 것처럼 식상하고 진부했다. 기왕이면 자신의 생활과 경험담이 녹아있는 청소년소설을 써서 응모했더라면 좋을 뻔 했다.
중편동화 「할아버지의 나비구두」 외 2편을 응모한 신경호의 작품들은 우선 제재나 장르가 다양한 점이 눈에 띄었다. SF동화로 100여년 뒤의 미래 세계를 그리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부활」은 컴퓨터라는 도구를 이용한 돼지들에게 지배를 당하게 된 인간들의 저항을 비교적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하지만 주제가 지금까지 이런 종류의 동화에서 흔히 보여준 기계문명에 대한 경고에 그친 점이 아쉽다. 전래동화에서 모티프를 차용한 「바우와 깨비」는 효성 깊고 힘센 바우가 도깨비를 도와 구미호를 물리치고 행복하게 산다는 줄거리로 플롯이 안정감이 있고 이야기가 재미있으나 이 작품 역시 범작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생활동화의 범주에 들어가는 「할아버지의 나비구두」는 중편이라는 분량에 비해 사건이 빈약하고 플롯 또한 허술하다. 무엇보다 중심인물인 유치원생 아영이의 캐릭터가 너무 어른스럽게 그려진 것이 단점이다. 세 편을 두고 볼 때 인물이나 사건 등을 다루는 솜씨가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갖추었으니 앞으로는 제재의 다양성보다는 그 제재에 대한 깊이 있고 새로운 시선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길 바란다.
수상작으로 결정된 김현실의 「누구 없어요?」는 부모의 이혼으로 아빠와 단둘이 살다 아빠마저 사고로 세상을 뜬 뒤 혼자가 된 아이의 이야기로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아빠의 초상을 치르고 재혼한 엄마한테 가는 대신 빈 집에 혼자 돌아온 중심인물의 막막한 상황과 심리가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문장 안에 잘 담겨 있다. 자잘하면서도 치밀한 복선들이 잘 준비돼 독자로 하여금 아무 의심 없이 이야기를 받아들이게 만든다. 기러기 아빠로 개들을 키우며 사는 앞집 아저씨와 중심인물 사이에 놓일 다리가 성급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도 탁월한 심리묘사와 밀도 높은 이야기 전개 덕분이다. 특히 청소 아줌마라든가 부녀회장 등 주변 인물들의 심리와 모습까지도 최소한의 묘사로 포착해 낼 줄 아는 역량을 지니고 있다.
또 한 편의 수상작인 조향미의 「구경만 하기 수백 번」은 태준 패거리로부터 은밀하게 따돌림과 폭력을 당하는 진우를 지켜보며 그 횟수를 머릿속에 기록하는 중심인물 시현이의 복잡한 심리를 잘 그리고 있다. 당하고만 있는 진우를 답답해하지만 그를 위해 나서지도 않는 중심인물을 통해 남의 일에 무관심한 요즘 아이들의 속성은 물론 인간의 보편적 심리까지 표현하고 있다.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에 속절없이 당하는 지렁이의 잦은 등장이 약간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점층적인 기법의 장치로 이용해 끝까지 긴장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도 이 동화의 매력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진우의 저항이 별다른 계기 없이 일어나서, 왜 진작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하는 것이다. 그 외에 작가가 직접 나서지 않고 이야기 속에서 중심인물의 자각과 성찰을 녹여낸 점도 높이 살만하다.
한꺼번에 두 명의 미더운 신인 작가를 맞이할 수 있어서 더욱 기쁘다. 앞으로 어린이들과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동화작가가 되기를 빈다.
*심사위원 : 이금이, 신형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