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김만중 문학상
막사발 속 섬에 사는 이에게 / 이병철
막사발에 달 떴다 노릇노릇한 달이 무인도처럼 탁주
위에 혼곤하다 술잔에 달빛 섬 띄워 놓고 자암*의
외로움도 꽃 지듯 붉었겠다 쌀독에 얄팍하게 쌓인
쌀을 불러 술 담근 게 지난 여름의 일이다 누룩이 별을
흉내 내며 허연 쌀물 위에 어리비치더니 귀뚜라미 울음
먹고 달짝지근한 빛으로 찰랑였다 술맛에 마음이 좋아
부엌을 함부로 구르던 개다리소반 절름발에 못을
박았다 반짇고리를 얻어 와 구멍 난 속곳들을 기웠다
탁주 한 사발에 고인 소낙비와 우레와 폭설이 대견하여
눈시울이 젖었다 다 지나간 일이다
얄궂은 두견새 밤 새워 노래하는 부리 끝에 어스름이
몰려 있다 뒤란 새숲을 흔드는 바람 무성해지니 잠
설친 고양이가 마당을 어슬렁거린다 고양이는 수염을
반짝이다가 막사발 내려놓는 소리에 놀라 지붕 위로
오른다 그 기척에 두견새 날아가 버린다 내 마음에도
텅 빈 마당이 있어 작은 발소리에도 반가움이
소스라치는 것일까 막사발 속 달빛 섬에 유배된 이가
누구인지 짐짓 궁금하다
술잔 속에 나를 보는 눈빛이여 막사발에 놋수저
부딪는 소리 쨍쨍 울리면 뒤란에 진 작약으로 화전을
구워 오시게 지상에서 가장 외로운 노을도 같이 이끌고
오시게나 나도 한껏 취하여 젖은 마음을 내어 말리고픈
것이리나 맑은 취기로 헹궈진 머릿속에 홍매화가
피어도 꽃술 죽어 벌 나비 부를 수 없는 내 처지를 읽어
주오 그대가 띄워 보낸 웃음 휘휘 저어 단숨에 술잔을
비우고 보니 그대가 없구나 탁주의 출렁임 따라왔다가
가시는 이 누구인가
* 자암 : 김구(1488~1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