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암을 고칠 길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내겐 중입자 치료가 마지막인 것 같았는데 전이된 췌장암은 그마저도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하니 더는 의학적인 가능성마저 굳게 닫힌 셈이었다.
물론 이 당시 이롬 생식은 먹고 있었지만 생식으로 암을 고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게 느껴졌다. 그래도 밥맛이 없고 몸은 말라가는데 궁여지책으로 생식이라도 먹어야 했다.
하지만 늘 죽음의 늪에 빠져서 살았던 나로서는하루하루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건강한 사람과는 생각이 달랐고 행동이 달랐다. 내가 언제 웃었는지 생각이 안 날 정도였다.
그리고 몇 개월째 TV도 시청하지 않고 있었다. 어느 날 기독교 방송에서 목사님 한 분이 설교를 하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문득 저분은 건강하게 말씀을 전하시건만 나는 병이 들어 설교도 못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한심하기가 짝이 없었다. 담임목사의 설교를 듣지 못하는 성도들 역시 불쌍하게 생각되었으나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주일 오전 예배는 부목사님이 설교를 하시고 주일 오후 예배는 명설교로 유명하신 목사님들의 영상 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게 했다. 그러나 얼마나 답답하고 허전했으랴.
목사가 죽음을 앞두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절망에 빠지게 된다. 결국 가정도 놓고 가야 하고 이에 더해 교회마저 손을 떼고 영원히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죽으면 그만인데 우습게도 나는 내가 세상을 떠나면 가족과 성도들은 어떻게 될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내게 너무 믿음이 없었을까? 하지만 이 심정은 죽음의 실존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조금도 짐작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죽음은 이러니저러니를 논할 수 있는 감상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끌어가시겠지만 실제로 목사가 사망한 후 어려움을 겪는 교회를 적지 않게 보아오기도 했었다. 특히 목사의 청빙 문제가 그렇다.
우선 난 아내와 함께 사진관에 가서 장례식에 사용할 영정사진부터 찍어놓았다. 이때 마지막 사진을 담고 있는 야윈 얼굴의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쓰라렸을까. -계속-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마태복음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