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뮬레이션 우주가 주제로 올라왔습니다. 지인이 하는 말이 A라는 가상세계에서 깨어났다고 생각 했는데, 알고 보니 A라는 가상세계에서 깨어나 도달한 곳은 진짜 세계가 아니라 B라는 또다른 가상세계일 뿐일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깨어남’이라는 것이 이렇게 가상세계에서 또다른 가상세계로의 이동에 불과하고 이 과정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이라면 ‘깨어남’을 주장하는 도인이나 성인 또한 또다른 가상세계로의 이동을 스스로 진짜세계라 여기고 깨쳤다 여길 수도 있지 않느냐는 논지였습니다. 즉 착각이라는 것이지요.
이 놈은 바로 답했습니다. 어떤 각자를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나 붓다의 깨침은 그런 것이 아니며, 가상세계에서 가상세계로 옮겨간 것을 두고 깨어남이라 말하지 않으며, 가상세계 안에서도 ‘깨어남’을 선언할 수 있으며, 그것은 ‘지금 여기’ 바로 A라는 가상세계 안에서도 선언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물리적이든 가상이든 공간상의 좌표이동을 가지고 ‘깨어남’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아마도 전달이 잘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어 지금 우리 현실이 꿈과 같은 가상임을 알려면 중도(팔정도)를 깨달아 걸어야 하고, 삼학(계정혜)를 깨달아 닦아야 하고, 궁극적으로 사성제(고집멸도)를 깨달아 보아야 한다고 첨언하였으나 이것 또한 번거로운 일로 들렸을 것 같습니다. 돌아온 답이 그런 것 말고 즉각적으로 바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없느냐는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차제성을 이야기하는 이 놈에게 즉각성을 요구하는 장면은 화두선이 나오게 되는 계기를 보는 듯 하지 않습니까? ㅎㅎㅎㅎㅎㅎ
그러나 말이죠. 화두라는 것이 단박에 터진다라는 특성 때문에 빠르게 깨친다 라고 오해하시는 것이지 실상은 빠르지도 않고 적중률이 높은 방법도 아닙니다. 단박의 한순간을 맛보기 위해 얼마간의 하세월을 선방에서 보내는지를 알면 일반인들은 혀를 내두를텐데요. 그리고 그렇게 화두에만 몰입하는 세월이 반드시 단박의 순간을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화두선을 까내리려는 의도는 아니고 약간은 자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지적입니다. ‘화두’라는 것을 옛 조사스님네들의 말글로 특정짓고 한계지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진정 ‘화두’라는 단어의 의미를 되살려낼 때, 화두선은 새롭게 부활할 것입니다. 화두선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구요.
다시 시뮬레이션 우주 이야기로 돌아와서, 가상세계임을 알기 위해서는 자신이 진짜세계에 있다는 확인이 필요한데 그 진짜세계마저 가상세계인 것 아니냐는 의문은 ‘구운몽’을 보는 것도 같고, 장자의 ‘호접몽’을 보는 듯도 합니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비슷한 질문을 해왔나 봅니다. 지금은 여건이 많이 달라져서 그 의문의 신뢰도가 상당히 올라가 있는 점은 다르지만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시뮬레이션 우주론을 인정하는 부류가 꽤 있는 것으로 압니다. 아님 말고 ㅋ. 시뮬레이션 우주론이 다루는 주제는 단순히 ‘가상이냐? 현실이냐?’ 로 국한되지 않고 ‘양자얽힘’과 관련해서 빛보다 빠른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정보’라는 대체개념이 들어가면서 더욱더 비트(0과 1)로 이루어진 컴퓨터 프로그램과의 유사점을 확인하고 있는 듯 합니다. 탁목님께서 과학 메뉴에 가져다 놓으신 ‘국소성/비국소성’ 이슈와도 연관된 개념인 것 같은데.... 물리학적 접근은 이쯤하겠습니다. 전공도 아니고~ ㅎㅎ 이 놈은 어쨌든 비국소성에 가까운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물리학의 개념에 대한 오해를 제가 하고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항상 열어 놓구요.
불교에서는 ‘삼계’를 이야기합니다. 욕계, 색계, 무색계인데요. 욕계는 다시 여섯으로 나뉘고 그 중에 다섯번째가 ‘인간계’이고 여섯번째가 ‘천상계’라고 합니다. 색계와 무색계는 각각 ‘색계 선정’과 ‘무색계 선정’이 배치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욕계보다는 수승한 존재들의 세계라는 짐작이 가능하겠지요? 그래봤자 明이 없는 한 중생이긴 매한가지 입니다만. 저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삼계’와 ‘시뮬레이션 우주론’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욕계라는 가상세계에서 열심히 수행해서 색계라는 가상세계로 가고, 또다시 열심히 수행해서 무색계로 가고, 하지만 그 곳도 가상세계일 수 있다는 지적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진짜세계는 어딨느냐? 따져 물으면, 계는 오직 삼계만이 설해지는데 삼계 모두가 가상이나 허상이라면 진짜는 삼계 이외에서 찾아야 하는데 그런 것이 있느냐? 라는 건전한 질문 아니겠습니까? 없습니다! 삼계 이외에 또다른 어떤 계를 상정한들 그 곳이 진짜라는 확증은 또 어찌할 것인가라는 말. ‘계’라는 계는 모두 ‘삼계’에 포섭되는 것이며 그 이외의 계를 상정하는 것은 거북이 등딱지에 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세계가 ‘허상’이라면 도대체 각자들이 말하는 ‘깨어남’은 무엇이란 말일까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잠깐 다른 생각을 해 봅시다. 과연 우리가 던지는 ‘진짜는 어디에?’라는 질문이 제대로 된 질문일까요? ‘이것은 진짜고 이것은 가짜다’ 라고 하는 판단은 어디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그 판단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맡을 수 있고 맛볼 수 있고 감촉할 수 있으면 진짜이고 아니면 가짜일까요?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우리의 오감의 경계를 완전히 똑같이 구현가능하다는 전제로 시뮬레이션 우주론이 등장한 것이니 이것 또한 제자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상당히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지만 답은 오리무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혹자는 이 이론을 접하고 어차피 가짜인지 진짜인지 구분도 못하는데 즐기며 살자라는 결론을 쉽게 내리던데요. 뭐 이 놈은 동의합니다. 본인이 행복하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괴롭지 않느냐는 것.... 정말로......
불법은 계라는 문제에 대한 답을 삼사화합 ‘觸’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저는 봅니다. 이 觸이 있으면 유정들은 현실이라 여기고, 이 觸이 없으면 유정들은 가상이라 여깁니다. 볼을 꼬집어서 ‘아야!!’하는 감촉과 완전 다르지는 않지만 보다 큰 觸 개념임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꿈 속에서 그 꿈이 현실이라고 여길 때에도 이 삼사화합 觸은 이미 성립된 것이라는 것이 이 놈의 견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꿈은 觸이 없고 현실은 觸이 있다’라고 일도양단해 버리면 곤란합니다. 물론 믿지는 마십시오. 각자 자증하셔서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觸이라는 놈은 생겨나고 사라지는 놈이거든요. 즉 觸도 ‘法’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있음/없음>, <진짜/가짜> 의 개념이 뭉개집니다. ‘진짜는 어디에?’라는 질문이 이 맥락에서 가능한 것일까요? 그런데 觸이 法인 줄 모르면, 즉 법안이 없으면 ‘진짜는 어디에?’라는 질문은 당연히 따라 나오게 되는 겁니다. 여기서 문제의식의 전환이 보이시는지요? 문제는 ‘진짜냐 가짜냐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진짜냐 가짜냐 있느냐 없느냐’는 질문이 생겨나게 하는 <원인과 조건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관점이 제시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의 뜻을 한번 되새겨 보십시오. 어디에 있든 주인이고 어디에 있든 모두가 진짜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인의 의문에 즉답으로 바로 지금 여기 A라는 가상세계, 즉 가짜에서 진짜를 선언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거든요. 진짜와 가짜가 둘이 아니라는 경지거든요. 뭐 그렇다구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사실 ‘계’의 문제를 더 파고 들어가 보면 결국은 ‘나’에 대한 문제로 회귀합니다. 이렇게 되면 ‘삼계’라는 것에 ‘나’라라는 것을 설정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과정을 설명해야 하는데, 이 지점에서 ‘사유수’님이 궁금해 하시는 ‘行’의 구체적인 모습이 밝혀져야 할 겁니다. 말이 너무 길어졌네요. 못다 한 얘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만-
첫댓글 幻空妄想 사두 사두 사두
네~깨달음은 공간의 이동이 아니지요. 바로지금,여기에서,여야합니다. 꿈속에서 알아야하고 그자리에서 깨달아야합니다. '유신'의 조건이 눈에보이는 공간이든 눈에보이지 않는 공간이든 공간점유를 전제로 하는것같습니다. '행'의 행위중에 하나가 '존재'의 공간점유에 대한 집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