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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 44살,「무종 황제께 티베트의 활불을 맞아오지 마시라고 올린 상소문(諫迎佛疏)」,『王陽明全集』,卷九
--- 중국 통치에 유가를 채택하고 불교를 버려야하는 이유
2018년 11월 18일
* 왕양명은 44살(1515) 7월에 무종 황제가 티베트에서 살아있는 활불(活佛)을 모셔오겠다는 소식을 듣고 상소문을 지어 올리려고 하였으나 짓기만 하고 올리지는 못하였습니다. 왕양명은 상소문에서 중국 통치를 불교에 의지하지 말고 유가에 의지하여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왕양명이 불교를 숭상하여 유불도 삼교의 성인이 동일한 경지이며 본체도 동일하다(同根, 同體)고 주장하여 줄곧 담약수(湛若水, 1466-1560)과 유가와 불교를 변별하는 논쟁(儒釋之辯)을 벌였습니다. 그렇지만 왕양명은 국가 통치에서 불교를 버리고 유가를 채택해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단순히 중국의 것이냐? 외국의 것이냐? 요즘 말로 민족문제를 떠나서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불교보다는 유가를 채택할 것을 건의하였습니다.
왕양명이 불교를 반대한 관점은 불교의 단점을 비판한 것이 아니고 불교의 장점을 유가 성인의 장점과 비교하여 설명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양명의 불교를 반대하는 상소문을 한유(韓愈, 768-824)가 51살(819년)에 지어올린 「논불골표(論佛骨表)」보다 설득력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무종 황제(제10대 武宗 朱厚照, 생졸 1491-1521, 연호 正德 1506-1521)가 어려서는 똑똑하였고 말타고 활쏘는 것을 좋아하였다고 합니다. 즉위한 뒤에는 환관 유근(劉瑾)을 주살하고 안화왕(安化王)의 반란(1510)과 영왕(寧王)의 반란(1519)도 진압하였고 각종 진휼정책을 썼다고 좋게 평가하기도 합니다.
무종 황제는 서역의 티베트 불교를 좋아하였고 불경을 잘 알고 산스크리트어까지 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역(西域)、이슬람(回回)、몽고(蒙古)、오사장(烏斯藏, 티베트(西藏)、조선(朝鲜)에서 스님과 기인들을 불러와서 함께 지냈다고 합니다. 또한 돼지해에 태어났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조서를 내렸고 정작 자신은 돼지고기를 먹었다고 합니다.
오사장(烏思藏)은 현재 티베트 지역이며 명나라가 원나라의 관할지역을 계승한 지역인데 명태조 초기에 오사(烏思)와 장(藏)을 합하여 군사조직(衛, 병사 5,600명)을 설치하였고 뒤에는 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를 설치하였습니다.
무종 황제는 정덕 10년(1515) 11월에 환관 유윤(劉允)을 티베트 오사장에 파견하여 삼생(三生)을 아는 살아있는 부처(活佛)을 모셔오라고 조서를 내렸습니다. 계획은 10년이었고, 막대한 선물 비용은 국가의 재정이 고갈될 정도였고, 오고가는 비용도 은 20만량이 넘어 13만량으로 줄였고, 싣고 가는 배가 200리에 걸쳐 늘어섰고, 수행 군대도 수천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티베트에 도착하였지만 활불은 자신을 유인하여 죽일 것이라고 의심하고 나오지 않았으며, 티베트 사람들이 밤에 습격하여 모든 선물을 빼앗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환관 유유은 말을 타고 사천성 성도(成都)로 도망쳐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실패하였다는 말을 못하게 하였는데 무종 황제가 곧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흐지부지되었다고 합니다.
끝으로 우리나라는 어떤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을 갖고 사람들의 도덕심을 기르고 나라를 다스리며 인류사회에 공헌해야할까요? 중국의 유학 또는 인도의 불교를 받아들였고 고려 말기에는 중국의 사회과학적인 주자학을 받아들여 살아왔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천주교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나아가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의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받아들여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외국의 문물을 배척할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오면서 겪고 개발한 것을 더욱 발전시켜야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임진왜란시기에 학술주권을 지키기 위하여 양명학의 직접 수입을 금지하였습니다. 그래서 하곡학은 서경덕과 남언경 선생 등의 본체론과 수양공부론을 계승하고 또한 양명학을 참고하여 조선 심학을 세웠습니다. 이런 점을 깊이 생각해봐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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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무종 황제께 티베트의 활불을 맞아오지 마시라고 올린 상소문(諫迎佛疏)」,
『王陽明全集』,卷九
저(왕양명)는 지난 7월(44살,1515)부터 길에서 떠도는 말을 들어보니, 황제께서 사신을 중국 지역 밖의 티베트 오랑캐에게 보내 멀리서 불교(티베트의 살아있는 부처 活佛을 맞이하여 중국에 모시고 오는 것)를 맞이하시겠다고 하셨는데 많은 신하들이 들고 일어나서 간언을 올렸으나 모두 물리치시기고 받아들이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저는 처음에 듣고 믿지 않았으나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마음속으로 기쁘고 다행이라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황제께서 불교를 맞이하시겠다는 것은 황제께서 성스러운 지혜가 열리시고 착한 마음의 실마리가 싹트셨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하들의 간언이 비록 황제께 충성하고 아끼는 지극한 마음에서 나왔으나, 황제께서 이런 마음을 일으키신 것이 착한 정치를 하시려는 실마리이고 성인이 되시려는 뿌리이므로 마땅히 황제의 마음을 이해하여 확충시켜드리고 황제 마음의 본뜻을 살폈어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중요한 유학자들은 유가 정통을 지켜야한다는 주장에 묻혀서 쓸데없이 일어나서 애써 막았기 때문에, 당연히 황제께서는 물리치시고 받아들이시지 않고 다시 살펴보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저의 생각은 여러 신하들이 반대하는 간언과 다릅니다. 다만 황제께서 불교를 좋아하시는 마음이 지극하시지 못할까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황제께서 불교를 좋아하시는 마음이 진실하고 절실하셔서, 불교를 좋아하신다는 명분에 그치지 않으시고 불교의 실제를 얻으시려고 힘쓰시고 또한 불교의 겉(불교의 각종 의식)을 좋아하시지 않고 불교의 뿌리(근본 취지)를 얻으시려고 힘쓰시겠고 하신다면, 황제께서는 요임금과 순임금이 되실 것이며 하은주 삼대의 왕도정치를 회복하실 수 있습니다. 어찌 아니 천하 사람들의 행복과 국가의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황제께 불교를 좋아하는 실제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황제께서 총명하시고 성스러운 지혜를 가지셨다는 것은 옛날 황태자 시절에 분명히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황제위에 오르신 뒤에는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오제와 삼왕의 신성한 도리를 연구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비록 때때로 경연(經筵)에 나오셨으나 유가 신하들이 올린 경연은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반복하거나 글들을 조금 풀어낸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서서 이야기하는 잠깐 동안에 신하들이 어찌 황제의 생각을 새롭게 깨우쳐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황제께서 들어보시고 다만 유가 성현의 도리가 이렇다고 여기셨으니 성현의 도리를 즐겁게 여기셨겠습니까? 그래서 황제께서는 점차로 말 타고 활 쏘는 것에 취미를 붙이시고 마음이 가는 오락을 즐기셨습니다. 대체로 황제께서 총명함과 타고난 재주를 쓰실 곳을 찾지 못하셨기 때문에 이런 것에 마음을 쓰셨습니다. 황제께서 총명함을 어찌 이런 일들에 쓰시면서 만족하시고 이런 일들이 무익할 뿐만 하니라 손해라는 것을 모르셨겠습니까? 사냥과 오락에 지치셨더라도 가끔 한밤중에 마음이 맑아지셨을 때에는 분명히 이런 일들이 점점 싫어지시고 더욱 후회하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황제 곁에서 유가의 신성한 도리를 말씀드리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황제께서 서쪽 인도의 불교를 떠올리셨습니다. 불교가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하여 욕심을 없애주고, 타고난 올바른 성명(性命)을 온전하게 해주어, 죽고 사는 생사(生死)을 벗어나게 해줄 것이라고 여기셨습니다. 또한 불교가 자비심으로 세상의 많은 중생을 구제하여 그들의 고통을 없애주고 즐거운 쾌락으로 건네줄 것이라고 여기셨습니다.
오늘날 자연재해는 날마다 일어나고 도적들도 날마다 심해져서, 이런 일들을 처리하느라고 국가의 재정은 날로 고갈되고, 무거운 세금을 납부하는 백성들의 어려움은 벌써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황제께서 불교의 도리를 깨달으셔서 세상을 구제하시겠다고 결심하셨는데, 어찌 황제 한 분의 체력을 강화시켜서 목숨을 연장하시려는 것이겠습니까? 어찌 황제 한 분만이 즐거워하시려는 것이겠습니까? 천하 만민의 고통을 불교로 소생시키시려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특별히 조서를 내리셔서 국가의 많은 재정을 써서 사신을 파견시키고 있으십니다. 수만 리 먼 길을 마다 않으시고, 수만 금 비용을 아끼시지 않고, 수만 명 백성들의 고통을 참으시고, 몇 년이 걸리는 왕복 시간을 꺼리시지 않으시면서 멀리서라도 불교를 배운 살아있는 부처(活佛)을 모셔오려고 하십니다. 이것은 대체로 황제께서 지금까지 옳지 못한 구습을 깨끗하게 씻어내서 개혁하시고 높고 밝고 넓고 커다란 사업을 펼치시려는 것입니다.
황제께서는 제가 올리는 말씀을 다시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황제께서 생각하신 것이 어찌 저보다 못하겠습니까? 제가 “황제께서 성스러운 지혜가 열리시고 착한 마음의 실마리가 싹트셨다.”고 올린 말씀이 어찌 아첨하는 말로 황제께 잘 보이려고 드린 것이겠습니까! 황제께서 불교를 좋아하시는 마음이 정말로 지극하시다면 저는 불교의 명분보다는 불교의 실제를 깨달으시길 바라며 불교의 겉(의식)보다는 불교의 뿌리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황제께서 불교의 실제와 뿌리를 찾으시겠다면, 저는 불교에서 찾지 마시고 유가의 성인에게서 찾으시고, 중국 밖의 오랑캐에서 찾지 마시고 중국에서 찾으시길 바랍니다. 이런 말씀은 제가 황제를 설득시키려고 황제를 속이는 것이 켤코 아닙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자세한 까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불교의 부처는 다른 민족 오랑캐의 성인이고 유가의 성인은 중국의 부처입니다. 저들의 오랑캐에서는 불교의 가르침으로 어리석은 백성들을 교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중국에서는 마땅히 유가 성인의 도리로 백성을 교화시키고 천지가 만물을 길어내는 사업(位育功化)에 동참하셔야합니다. 마치 땅 위를 가는 사람은 반드시 수레와 말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사람은 반드시 배를 타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현재 중국에 살면서 불교를 모시려는 것은 마치 수레와 말을 타고 바다를 건너려는 것과 같아 조부(造父, 『史記』에 따르면 기원전 960년에 周나라 穆王이 서쪽으로 가서 서왕모를 만날 때와 서언왕(徐偃王)이 반란을 일으키자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말을 타고 되돌아와서 진압하였는데 모두 조부가 말몰이를 맡았답니다.)가 말몰이를 맡거나 왕량(王良, 『孟子、滕文公下』에서 말몰이를 잘하였던 사람)를 수레 모는 것에 시키더라도 바다를 건널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바닷물에 빠질 위험도 있습니다. 수레와 말은 멀리 타고 가는 도구이니 어찌 좋은 도구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올바른 곳에 사용하지 않는다면 좋은 도구의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한 발 물러나서 황제께서 불교의 도리로 천하를 다스릴 수 없더라도 혹시 나 하나 죽고 사는 생사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며, 불교의 도리로 천지가 만물을 길러내는 사업에 동참할 수 없더라도 때로는 많은 백성들의 어리석은 완고함을 잘 이끌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이 두 가지 모두 우리 유가 성인들의 작은 솜씨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황제께서 믿지 않으시겠다면 제가 다시 비유를 들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저도 일찍이 불교를 열심히 배웠으며 가장 신봉하였고 스스로 깊은 뜻을 깨달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뒤에 유가 성인의 도리가 크다는 것을 안 뒤에는 불교를 버렸습니다. 저는 불교의 단점을 비판하기보다는 불교의 장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쪽지역 인도의 부처 가운데 석가모니가 가장 뛰어나며 중국의 성인 가운데 요임금과 순임금이 가장 뛰어납니다. 저는 석가모니와 요순임금을 비교하여 장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세상에서 석가모니를 가장 신봉하는 사람들은 죽고 사는 생사를 벗어나고 속세를 넘어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현재 불교의 서적에는 석가모니의 행적이 실려 있는데, 석가모니는 살아계실 때 40년 넘게 설법하셨고 82살에 입적하셨으니 정말로 오래 장수하셨습니다. 그런데 순임금은 110살까지 요임금은 120살까지 살았으니 석가모니보다 더 오래 장수하셨습니다.
둘째, 석가모니 부처는 자비심을 갖고 온갖 보시를 베푸셔서 목숨과 골수까지도 내놓으셔서 사람들의 위험을 구해주셨으니 만물을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것은 정말로 지극합니다. 그런데 반드시 먼저 설산(雪山)에서 고행을 하시고 다시 내려오셔서 많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배우신 뒤에야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셨습니다. 그러나 요순임금은 얌전히 가만히 있으면서도 천하 사람들이 잘살도록 잘 다스렸습니다. 『상서、요전(尚書、堯典)』에는 요임금이 오직 “타고난 재능과 덕성을 밝히셔서 가족(九族)을 화목하게 하시니” 가족이 화목하게 되었고, “백관(각기 종족의 우두머리)들의 선악을 가려서 표창하시니” “백관들의 선악이 밝아지고”, “수많은 나라들을 화목하고 협력하도록 하시니” “수많은 백성들이 점차 화목하게 바뀌었고”, 『상서、고도모(尚書、皋陶謨)』에서 순임금은 요임금이 하늘과 땅 그리고 초목과 짐승까지도 모두 이와 같이 화목하도록 하셨다고 찬양하셨습니다. 요순임금이 만물을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것은 석가모니보다도 더욱 지극하셨습니다.
셋째, 석가모니 부처는 듣는 사람들에게 맞도록 적절하게 설법하셔서 많은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셨는데, 사람들에게 술을 조심하고 죽이는 것을 멈추고 탐심을 버리고 화내는 것을 끊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신통스럽게 알아보시고 고치도록 신묘하게 가르치신 것은 정말로 커다랗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사람들의 귀를 붙잡고 얼굴을 맞대고 가르치셔야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순임금은 덕행이 사방 천지에 밝혀지고 하늘과 땅까지 이르렀는데, 모두가 지극한 정성 때문에 이룬 것입니다. 자연히 가르치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셔도 세상 사람들이 믿었고, 직접 움직이지 않으셔도 세상 사람들이 착하게 바뀌었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셔도 이루어졌습니다. 대체로 요순임금은 “덕행이 하늘과 땅처럼 크고, 밝음이 해와 달처럼 밝고, 행동이 봄여름가을겨울 사철처럼 질서 있고, 길흉을 귀신처럼 예견하셨다.”고 합니다. 요순임금의 신통한 교화는 구체적인 방법에 매달린 것이 아니고 신묘한 통치 효과도 구체적인 체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석가모니에 비교하면 더욱 커다랗습니다.
이밖에도 주문을 사용하여 환상적으로 바꾸거나 신기한 것으로 요괴들을 눌러서 어리석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은 부처가 아주 싫어하고 배척하여 외도(外道)의 사악한 짓이라고 비난하셨으니까 불교와는 아주 상반된 것입니다. 불교를 좋아하되 부처가 배척한 것을 좋아해서는 마땅히 안 되며, 부처를 찾더라도 부처가 비난한 것을 찾아서는 마땅히 안 됩니다.
황제께서 만약에 요순임금이 옛날에 죽었기 때문에 다른 것에서 찾으시려고 한다면, 석가모니 부처도 죽은지 오래 되었습니다. 저쪽 티베트 불교 신도들 가운데 석가모니의 도리를 전수할 수 있다고 여기셨다면, 우리 중국이 넓고 넓은데 어찌 요순임금의 도리를 전수할 사람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황제께서 찾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황제께서 대신들 가운데 요순임금의 도리를 전해줄 수 있는 신하를 찾아 날마다 그들과 함께 연구하신다면 반드시 요순임금의 도리를 밝히는 신하가 나와서 황제께서 요순임금의 경지에 이르도록 도울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황제께서 불교를 좋아하시는 마음이 지극하시다면 불교의 명분을 좋아하지 마시고 불교의 실제를 얻으셔야 하며, 불교의 겉(의식)을 좋아하지 마시고 불교의 뿌리를 찾으셔야 합니다. 불교의 실제를 얻으시고 뿌리를 찾으시겠다면, 불교의 부처에서 찾지 마시고 유가 성인에서 찾으셔야 하며, 저들 오랑캐에서 찾지 마시고 우리 중국에서 찾으셔야합니다. 이런 말씀은 제가 황제를 설득하려는 거짓말로 황제를 속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황제께서 참으로 불교를 좋아하시는 마음으로 유가 성인을 좋아하시고 석가모니를 찾으시려는 정성으로 요순임금의 도리를 찾으신다면, 수만 리 먼 길을 가시지 않아도 서방의 극락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수만 금의 비용을 낭비하실 필요도 없고, 수만 명 사람목숨을 죽이실 필요도 없고, 몇 해 동안 걸리지 않고 먼지도 일으키지 않는 짧은 순간에 요순임금의 성역(聖域)에 오르셔서 요순임금처럼 신통한 능력과 신묘한 방법을 항상 지니시고 발휘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은 제가 억지로 커다란 말들을 엮어서 황제를 속이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드린 말씀을 살펴보시면 모두 확실하게 증거를 찾아낼 수 있는 말씀입니다. 공자는 “내 스스로 인(仁)하게 하면 인(仁)이 따라올 것이다.” “하루라도 나 자신의 잘못된 마음을 고쳐서 예(禮)를 회복한다면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인(仁)을 따를 것이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맹자는 “모든 사람이 요순임금처럼 될 수 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공자와 맹자가 설마 우리들을 속이려고 말하였겠습니까? 황제께서 반복하여 생각해보시고 대신들에게 물어보시고 다시 여러 신하들에게 물어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정말로 제가 거짓으로 꾸며서 말씀드렸다면 황제를 속인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제가 지켜야할 법규를 모르면서도 황제께서 착한 마음의 실마리가 싹트신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기뻐하였고, 황제의 뜻을 이해하고 확충시켜드리려는 말씀을 올렸습니다. 바라건대 황제께서 깊이 살펴보시고 들어주신다면 국가에 다행이고 천하 사람들에게도 다행이고 만세토록 다행입니다.
저는 황제께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고 황공함이 지극함을 못할 뿐입니다. 하급 관원 왕수인은 상소문을 지어 올려 아룁니다.
왕양명,「諫迎佛疏」,『王陽明全集』,卷九
臣自七月(44살,1515)以來,切見道路流傳之言,以爲陛下遣使外夷,遠迎佛教,郡臣紛紛進諫,皆斥而不納。臣始聞不信,既知其實,然獨竊喜幸,以爲此乃陛下聖智之開明、善端之萌蘖。郡臣之諫,雖亦出於忠愛至情,然而未能推原陛下此念之所從起。是乃爲善之端、作聖之本,正當將順擴充,逆流求原。而乃狃於世儒崇正之說,徒爾紛爭力沮,宜乎陛下之有所拂而不受,忽而不省矣。
愚臣之見獨異於是,乃惟恐陛下好佛之心有所未至耳。誠使陛下好佛之心果已真切懇至,不徒好其名而必務得其實,不但好其末而必務求其本,則堯、舜之聖可至,三代之盛可復矣。豈非天下之幸,宗社之福哉!臣請爲陛下言其好佛之實。
陛下聰明聖知(智),昔者青宮,固已播傳四海。即位以來,偶值多故,未暇講求五帝、三王神聖之道。雖或時禦經筵,儒臣進說,不過日襲故事,就文敷衍。立談之間,豈能遽有所開發? 陛下聽之,以爲聖賢之道不過如此,則亦有何可樂?故漸移志於騎射之能,縱觀於遊心之樂。蓋亦無所用其聰明,施其才力,而偶托寄於此。陛下聰明,豈固遂安於是,而不知此等皆無益有損之事也哉?馳逐困憊之餘,夜氣清明之際,固將厭倦日生,悔悟日切。而左右前後又莫有以神聖之道爲陛下言者,故遂遠思西方佛氏之教,以爲其道能使人清心絕欲,求全性命,以出離生死;又能慈悲普愛,濟度群生,去其苦惱而躋之快樂。
今災害日興,盜賊日熾,財力日竭,天下之民困苦已極。使誠身得佛氏之道而拯救之,豈徒息精養氣,保全性命?豈徒一身之樂?將天下萬民之困苦,亦可因是而蘇息!故遂特降綸音,發幣遣使,不憚數萬里之遙,不愛數萬金之費,不惜數萬生靈之困斃,不厭數年往返之遲久,遠迎學佛之徒。是蓋陛下思欲一洗舊習之非,而幡然(就)於高明光大之業也。
陛下試以臣言反而思之,陛下之心,豈不如此乎?然則聖知(智)之開明、善端之萌蘖者,亦豈過爲諛言以佞陛下哉!陛下好佛之心誠至,則臣請毋好其名而務得其實,毋好其末而務求其本。陛下誠欲得其實而求其本,則請毋求諸佛而求諸聖人,毋求諸外夷而求諸中國。此又非臣之苟爲遊說之談以誑陛下,臣又請得而備言之。
夫佛者,夷狄之聖人;聖人者,中國之佛也。在彼夷狄,則可用佛氏之教以化導愚頑;在我中國,自當用聖人之道以參贊化育,猶行陸者必用車馬,渡海者必以舟航。今居中國而師佛教,是猶以車馬渡海,雖使造父爲禦,王良爲右,非但不能利涉,必且有沈溺之患。夫車馬本致遠之具,豈不利器乎?然而用非其地,則技無所施。陛下若謂佛氏之道雖不可以平治天下,或亦可以脫離一身之生死;雖不可以參贊化育,而時亦可以導群品之囂頑;就此二說,亦復不過得吾聖人之餘緒。陛下不信,則臣請比而論之。
臣亦切嘗學佛,最所尊信,自謂悟得其蘊奧。後乃窺見聖道之大,始遂棄置其說。臣請毋言其短,言其長者。夫西方之佛,以釋迦爲最;中國之聖人,以堯、舜爲最。臣請以釋迦與堯、舜比而論之。
夫世之最所崇慕釋迦者,慕尚於脫離生死,超然獨存於世。今佛氏之書具載始末,謂釋迦住世說法四十餘年,壽八十二歲而沒,則其壽亦誠可謂高矣;然舜年百有十歲,堯年一百二十歲,其壽比之釋迦則又高也。
佛能慈悲施舍,不惜頭目腦髓以救人之急難,則其仁愛及物,亦誠可謂至矣;然必苦行於雪山,奔走於道路,而後能有所濟。若堯、舜則端拱無爲,而天下各得其所。惟“克明峻德,以親九族”,則九族既睦;“平章百姓”,則“百姓昭明”;“協和萬邦”,則“黎民於變時雍”;極而至於上下草木鳥獸,無不咸若。其仁愛及物,比之釋迦則又至也。
佛能方便說法,開悟群迷,戒人之酒,止人之殺,去人之貪,絕人之嗔,其神通妙用,亦誠可謂大矣,然必耳提面誨而後能。若在堯、舜,則光被四表,格於上下,其至誠所運,自然不言而信,不動而變,無爲而成。蓋“與天地合其德,與日月合其明,與四時合其序,與鬼神合其吉凶”,其神化無方而妙用無體,比之釋迦則又大也。
若乃詛咒變幻,眩怪捏妖,以欺惑愚冥,是故佛氏之所深排極詆,謂之外道邪魔,正與佛道相反者。不應好佛而乃好其所相反,求佛而乃求其所排詆者也。
陛下若以堯、舜既沒,必欲求之於彼,則釋迦之亡亦已久矣;若謂彼中學佛之徒能傳釋迦之道,則吾中國之大,顧豈無人能傳堯、舜之道者乎?陛下未之求耳。陛下試求大臣之中,苟其能明堯、舜之道者,日日與之推求講究,乃必有能明神聖之道,致陛下於堯、舜之域者矣。故臣以爲陛下好佛之心誠至,則請毋好其名而務得其實,毋好其末而務求其本;務得其實而求其本,則請毋求諸佛而求諸聖人,毋求諸夷狄而求諸中國者,果非妄爲遊說之談以誑陛下者矣。
陛下果能以好佛之心而好聖人,以求釋迦之誠而求諸堯、舜之道,則不必涉數萬里之遙,而西方極樂,只在目前;則不必縻數萬之費,斃數萬之命,歷數年之久,而一塵不動,彈指之間,可以立躋聖地;神通妙用,隨形隨足。此又非臣之繆爲大言以欺陛下;必欲討究其說,則皆鑿鑿可證之言。孔子云:“我欲仁,斯仁至矣。”“一日克己復禮,而天下歸仁。”孟軻云:“人皆可以爲堯、舜。” 豈欺我哉?陛下反而思之,又試以詢之大臣,詢之群臣。果臣言出於虛繆,則甘受欺妄之戮。
臣不知諱忌,伏見陛下善心之萌,不覺踴躍喜幸,輒進其將順擴充之說。惟陛下垂察,則宗社幸甚!天下幸甚!萬世幸甚!
臣不勝祝望懇切殞越之至!專差舍人某具疏奏上以聞。
* 무종 홍제의 어진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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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생기셨네요!